Pioneer Simon RAW novel - Chapter 157
권능 획득 (2)
크라인은 앤더슨을 보면서 역시 자신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남에게 간섭받기 싫어하고 의지하기 싫어하는 것에서 자신을 많이 닮은 것 같았다.
“뭔가 불만이 많은 것 같다.”
“형에게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형이 후작이고 영주라고 해서 내가 왜 기사까지 그만두어야 하는지, 참. 그리고 내가 기사로 있는 것에 모두 다 불편해 하는지, 원.”
앤더슨은 말까지 불퉁하게 하여 불만이 가득함을 표현했다. 어투마저 반말조라 듣고 있는 크라인은 꼭 어린 아이가 투정하는 것 같아 피식 웃고 말았다.
“그게 세상의 법도다. 네 형의 위치를 생각하면 네가 같이 있는 것으로 모두가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네가 아무리 아랫사람을 자처하고 몸을 사려도 그들에게는 또 다른 상전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당분간 나랑 같이 영지 일이나 같이 하자.”
“거기와 여기가 무슨 차이가 있는데요?”
“여기서야 네가 상전이라고 해도 나나 네 형이 더 높으니 문제될 것은 없다. 그저 상전이 하나 더 늘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앤더슨은 크라인이 하는 말의 의미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영지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피오르드 영지에서는 모두가 정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이방인을 대하는 것 같았는데 영지에서는 그렇게 하지가 않고 당연히 영지의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영주인 사이먼의 대리인으로 인정을 하기에 아무런 경계를 하지 않고 대하였다. 아울러 앤더슨을 대할 때 사이먼에 대한 두려운 감정을 표출하지도 않았다. 사실은 피오르드 영지에서도 사이먼에 대한 두려움을 앤더슨을 대할 때 은연중 드러냈다.
“네 형과 이야기가 된 것이 적당한 시기가 되면 너에게 영지를 개척하도록 하여 독립을 시키기로 했다. 물론 네 형이나 나는 자금을 지원하는 것처럼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 외에 너를 돕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그런 준비를 한다고 생각해라.”
앤더슨은 사이먼이 아버지를 통해서 그런 이야기를 전하자 고개만 끄덕거렸다. 사이먼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다면 받아들이기도 거절하기도 곤란하여 화를 낼 것이지만 아버지를 통해 들으니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이먼이 만들어준 영지를 받아 영주가 되면 결국은 휘하의 영주가 되는 것이었다. 더구나 여기처럼 몬스터가 많은 곳에서는 영지를 지키기 위해 다시 사이먼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혼자 영지를 개척할 능력을 가져야 자립할 수 있었다.
“스스로 개척하고 스스로 지켜내라는 말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 능력을 갖추면 그 때 독립하도록 하겠습니다.”
앤더슨도 더 이상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그도 세상의 이치를 모를 정도로 어수룩한 인물은 아니었다. 단지 그저 이런 상황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 푸념을 하는 것이었다.
“데마린 산맥에서 적지 않은 몬스터를 상대했다고 들었지만 여기서 상대하는 몬스터는 그보다 한 단계 더 강하다고 보면 된다. 아직 급한 것은 아니니 나와 같이 영지 개척의 일을 하다가 시간이 되면 동쪽 방벽으로 가서 몬스터를 상대하도록 하자.”
기사로서 영지 개척에 나서는 것과 그 일을 총괄하는 사람으로서 나서는 일은 분명 달랐다. 기사로서 나서는 일은 현장을 경비하거나 작업을 돕는 것이지만 총괄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신경 써야 했고 자신이 영지를 개척한다면 그런 일을 다 해야 한다는 사실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차분히 준비를 해라. 네 형은 처음부터 혼자 시작했다. 그럼에도 크게 실수를 하지 않았다. 사전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준비했기 때문이다. 용병으로 다니면서 배우고 전쟁에서 군을 지휘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너도 지금부터 일을 하나씩 배우면서 준비해라.”
앤더슨은 당장 어떻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력이 아무리 높아도 자금이 없으면 불가능했고 사람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그것을 스스로 만들고 유지할 능력이 있을 때에야 영지를 개척할 수 있어 보였다.
사이먼은 영지를 개척하면서 한동안 헬로이안의 마법서적과 드래곤 레어의 서적을 읽어 나갔다. 물론 대륙 곳곳을 다니면서 고대의 유적들을 탐사하는 작업도 병행을 해나갔다. 그러나 워낙 시간이 오래 되어서 그런지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미 그런 것이 있다면 예전에 다른 사람이 발견하여 발굴한 것 같았다.
‘정말 바쁘군.’
사이먼은 낮에 영지를 개척하는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러니 시간이 그리 많지가 않았다. 영지 개척의 일은 그가 필요했다. 아버지가 있더라도 그가 자리에 없으면 보류가 되고 일이 진척되지 않았다. 그러니 직접 나서서 많은 일을 결정해야 했다.
‘용언이나 신언은 언어이면서 마법이다. 말 그 자체가 명령을 담고 있고 권능을 담고 있다. 권능을 벗어난 용언이나 신언은 그저 헛소리에 불과하지만 권능이 뒷받침되는 한에서는 의지가 바로 구현이 된다.’
사이먼은 용언 마법에 대해 적어 놓은 서적을 살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것들을 읽어 가면서 뭔가 깨닫는 것이 있었다. 인간과 드래곤이 마법을 전개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원리는 한편으로 비슷했다.
특히나 상상력이나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이용하는 것을 비슷했다.
‘9서클의 마법은 바로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권능을 발휘하는 단계이다. 고대의 서적에 9서클의 마법에 대한 서술이 존재하는데 내가 사용하는 언령 마법이 바로 그런 영역이다.’
사이먼은 자신에게 권능이 부여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 것이 답답했다. 마나운용에 능숙한 것 외에 크게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권능을 확인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이미 나는 언령 마법인 무형살을 사용하고 있잖아. 그것도 일종의 권능이지.’
사이먼은 자신이 굳이 먼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산책을 하듯이 밖으로 나왔고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숲은 겨울이 가고 봄이 오자 다시 생명력이 넘치고 있었다.
‘저기 꽃이 피고 있는가? 죽이거나 베거나 하는 것만이 아니라 보다 아름답고 화사하게 꽃이 피는 것도 가능하겠지.’
사이먼은 멀리 서 있는 조금 볼품이 없어 보이는 야생의 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지금보다 예쁘고, 지금보다 향기로워져라.’
사이먼은 자신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것을 알기에 그렇게 믿고 자신의 능력을 내보냈다. 자신에게 깃든 미지의 힘이 들꽃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자 야생화의 모습이 조금 바뀐 것 같았다. 모양은 그대로인 것 같지만 색이 선명해지고 진한 향기가 주변에 퍼져 나왔다. 외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분명 변화가 생겼다.
사이먼은 주변을 돌면서 그렇게 다른 사람이 들으면 어이없어할 이상한 명령을 내리고 다녔다. 자신의 권능이 발휘될 수 있는 한도에서 비밀리에 실험을 했다. 그 대상은 나무가 되기도 했고 돌멩이가 되기도 했고 날아가는 곤충이나 작은 새가 되기도 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전지할 경우에 전능할 수가 있다. 그 대상이나 행위를 잘 알고 익숙한 것일수록 권능을 발휘하는데 용이하다. 이렇게 되면 무식한 경우 신이 될 수는 없고 어떻게 운이 좋아 신이 되었다고 해도 능력이 떨어지겠군.’
풀을 보고 무조건 잘 자라라고 하는 것보다 햇빛을 잘 받고 땅에서 양분과 물을 충분히 흡수하고 맑고 기운이 충만한 공기를 받아들여서 잘 자라라고 하는 경우가 훨씬 능력이 적게 소요되면서 발휘되는 효과는 오히려 더 높았다.
‘만일에 내가 벌판에 나가서 자라고 있는 농작물에게 권능을 발휘하면 수확량이 높아질 것이고 공사장에 가서 짓고 있는 건축물을 강화하면 건물이 튼튼해지고 오래갈 것이다. 병사에게 강해지라고 하면 강해질 것이고 아이들에게 건강하게 자라라고 하면 잘 자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한편으로 죽이거나 파괴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만 먹으면 그런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 예가 바로 자신이 사용하는 무형살이었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권능을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는데 굳이 나쁘게 하는데 권능을 사용할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전투가 벌어지면 가장 필요한 것이 그런 능력일 것이다. 어쩌면 궁극적으로는 그런 능력의 차이가 신의 서열을 결정할 수도 있겠지.’
사이먼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동안 산책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이먼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신성을 품되 펼치지 말라는 말이 이런 의미인가? 하지만 그것은 그 존재, 크로이엘의 의지이지 내 의지는 아니다.’
사이먼은 그렇게 결심을 하였다. 자신의 의지로 살겠다고. 지금 상황에서는 크로이엘의 의지를 따를 수가 없었다.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인간 세상의 일에 내 의지를 강요할 생각은 없다. 자칫 다른 사람을 나에게 종속된 존재로 만들어 내 의지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자중자애하면서 조금 더 공부하고 수련하자. 서 둘지 말자. 아직 살아갈 날은 많다.’
사이먼은 자신에게 찾아온 변화를 기뻐하고 환호하기 보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두렵게 생각하려고 했다. 남의 의지마저 함부로 범하여 세상의 순리를 뒤흔드는 것이 아닌지 두려워했다.
사이먼이 산책을 하고 마가렛에게 가자 마가렛이 약간 놀라는 표정이 되었다.
“왜 무슨 일이 있어요?”
사이먼이 마가렛에게 물었다.
“그게 아니라 당신의 모습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아서요. 처음 보는 사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고요 갑자기 뭔가 달라진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가? 내가 밖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표정이 굳어서 그런 것 같군.”
사이먼은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을 하고 마가렛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면서 같이 집안으로 들어갔다.
‘둘 다 건강해야 해.’
사이먼은 마가렛과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면서 그런 마음을 가졌다. 그러자 사이먼의 기운이 움직여서 마가렛과 아이를 감싸는 것 같았다. 마가렛은 기감이 예민한 편인지 그런 기운을 느꼈는지 기분 좋은 표정이 되었다.
“오늘 따라 당신의 손길이 따사로운 것 같아요. 닿는 순간 기분이 무척 좋네요.”
“그거야 내가 당신을 항상 생각하니 당연한 것이죠. 내가 얼마나 당신을 생각하는데요.”
사이먼은 머쓱한 표정으로 감추면서 얼버무렸다.
“저도 그래요. 아이도 당신이 나를 만져주자 느낌이 전해져서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 전보다 활기가 넘치는 것 같아요.”
“당신이 기분 좋으니 우리 아이도 기분 좋은 것 같은데요.”
사이먼은 애매모호하게 말을 하였다. 분명 자신의 권능이 영향을 미쳤지만 그저 건강해지는 정도의 영향만 미친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권능이 너무나 강하게 발휘되어 부작용이 발생할 수가 있기에 걱정이 되었다.
‘생각마저도 함부로 하면 안 되겠군. 너무나 강하게 누구를 미워한다면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겠지. 저주도 축원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겠지.’
사이먼은 자신의 마음마저 조심스럽게 다스려야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의도하지 않더라도 세상에 재난을 일으킬 수가 있었다.
“잠시 어디 좀 다녀올게요.”
사이먼은 자신의 상태를 상담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영역인 서재로 들어가서 공간 이동을 했다.
‘이제 뭔가 바뀌었군.’
‘그렇게 느껴지는가?’
사이먼은 바로 데빌론이 자신의 변화를 알아차리자 그렇게 반문을 했다.
“굳이 의념으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는 것 같군.”
“그렇지. 말이란 생각의 표출이니 달리 말할 이유가 없지.”
서로 의념을 통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가능해졌다. 말은 달라도 생각은 자연스럽게 통하기 시작했다.
“이제 너도 초월자의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아울러 중간계의 수호자가 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기도 하다. 다른 데미갓에게 잡혀 소멸을 당하지 않으려면 무조건 중간계를 지키고 침입자들과 싸워서 이겨야 할 것이다.”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이먼은 권능을 발휘하게 되면서 권능을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다.
“크로이엘의 징표가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중간계의 상황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아마도 그 징표는 데미갓에 이를 가능성이 있는 자를 감시하기 위해 만든 족쇄일 것이다.
너는 그것을 알고 오히려 그 족쇄를 부수고 적당히 이용하는 것이고. 크로이엘도 그것을 알 것이지만 달리 손을 쓰기가 곤란해 방관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항상 유념해야 한다. 너는 아직 중간계의 신이 아니라 그저 초월자, 데미갓에 불과한 존재이다. 초월자를 사냥하려는 마왕부터 신계의 존재까지 항상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그들에게 사냥당해 소멸 당할지 모른다. 권능을 키우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 다른 데미갓을 사냥하여 그 권능을 흡수하는 것이다. 몇 년, 몇 십 년이 걸려야 쌓을 수 있는 권능을 단기간에 갖게 만들어 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