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oneer Simon RAW novel - Chapter 56
사비올라에 가다 (4)
“그보다 이번에 스타니엘 자작이 6서클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왕립마탑에 유능한 마법사가 하나 가세를 했으니 정말 축하할 일입니다.”
마탑이 스타니엘 자작에게 당했다고 하지만 종종 주도권을 빼앗기거나 약간의 이득을 양보한 것이지 실제로 큰 손해를 입은 것은 별로 없었다. 스타니엘 자작도 마법사이니 단지 주도권을 왕실에서 차지하는 정도였다.
그동안 스타니엘 자작으로 인해 가장 피해를 입은 것은 마탑이 아니라 신전이었다. 알 리시온 추기경이 뭔가 왕국을 상대로 하여 일을 하려고 하면 그 의중을 귀신같이 알아내고 국왕인 사일러 3세를 움직여서 대비를 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사일러 3세이지만 그 이면에 스타니엘 자작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전면에 나서지 않고 저택과 왕궁만 왔다 갔다 했기에 마음에 들지 않아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포교 사제를 철수하도록 만든 것도 스타니엘 자작이었다. 신전에 대한 지원을 개별 신전으로 국한시키고 사제의 품성이나 치료활동을 평가하여 차별적으로 지원을 했다. 왕국이나 왕실, 영지민에 기여한 것이 큰 신전을 우선적으로 지원하였다.
교단 중심으로 활동을 하는 사제가 있는 곳은 지원을 하지 않고 포교사제들이 건립한 신도중심의 신전에 지원을 하니 교단의 권위가 살지 못했다. 그러니 결국 화가 난 알 리시온 추기경은 왕실의 지원을 거부하고 포교 사제를 철수시켰고 결국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왕실직영지의 소영지 대부분에 신전이 세워졌을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알 리시온이 포교 사제를 철수시킨 탓에 결국 요원한 상황에 처하고 만 것이다.
알 리시온은 피케라가 스타니엘 자작이 6서클이 되었다고 하자 불편한 심기를 얼굴에 그대로 표출할 수밖에 없었다.
“기대하지 않은 마법사가 늦게나마 성취를 거두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늦게 성취를 거둔 마법사가 성취도 크다니 앞으로 어떤 성취를 거둘지 기대가 됩니다.”
바로나 탑주도 동조를 하여 심기가 불편한 알 리시온 추기경을 자극하는데 일조했다.
결국 회합을 주선한 알 리시온 추기경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골치 아픈 존재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입학식이 끝난 후부터 수업이 진행되었다. 사이먼은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침이면 검술 수련을 하였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자 도서관의 사서들과 안면을 트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것 같군.”
도서관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기에 기숙사에서 읽을 책을 대출하려고 가자 당직을 서던 사서가 아는 체를 했다.
“네, 이런저런 이야기를 읽는 것이 즐겁습니다.”
사이먼은 당직을 서고 있는 사서가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라는 것을 알기에 공손하게 대답을 했다. 도서관의 사서는 교사와 전문 사서 1명이 있는데 저녁 당직은 보통 교사들이 번갈아가면서 서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보통 저녁 식사 후에 외출을 하였다가 취침 시간 직전에야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자네는 아예 나가지 않는 것 같군.”
“밖에 나가도 할 것도 없고 그냥 여기서 책을 읽는 것이 즐겁습니다.”
사이먼의 말에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교사가 달리 말을 하지 않고 가져온 책을 대출 처리했다.
“빌려간 책들을 보면 제법 어려운 것들인데 행정을 배우기 위해 아카데미에 온 것이 아니라 책을 읽기 위해 온 것인가?”
“그런 학생도 있습니까?”
사이먼은 자신의 의도가 들킨 것 같아서 대답 대신에 반문을 했다. 자신이 그런 학생이라는 것은 무언중에 긍정한 것이기도 했다.
“여기에 온 학생 중에 열에 둘 정도는 그런 목적으로 오지. 진짜 행정관이 될 목적을 가진 자는 절반 정도 밖에 안 될 거야. 한데 초반에는 열심히 책을 읽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밖에서 노는데 정신이 팔려 초심을 잃고 그저 졸업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지.”
책을 건네면서 그렇게 말을 했다.
“어쨌든 열심히 하게.”
사이먼은 책을 받아들어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등급이 있으니 자주 와서 등급을 올리게. 등급을 올리면 제3 서고에 들어갈 수가 있게 되니.”
도서관을 출입하는 데는 일종의 등급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보낸 시간과 읽은 책에 따라 등급을 부여하여 중요한 서적이 있는 서고에 들어갈 수 있게 했다.
“들었습니다. 지금 3등급이지만 1등급까지 올려 제4 서고까지 출입을 하겠습니다.”
“제4 서고까지 출입을 하려면 아카데미 성적도 좋아야 하니 시험도 잘 봐야 하네.”
그냥 적당히 공부를 하면서 책이나 읽으려고 했는데 아카데미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으려면 성적이 10% 이내에 들어야 하는 것을 알게 되자 결국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3서고나 4서고에 있는 책이 그나마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부디 초심을 잃지 말고 열심히 하게. 자네를 보면 상당히 수련을 한 것 같은데 기사가 되더라도 식견을 갖추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네.”
사이먼은 상위 10%에 들어도 그리 주목을 받는 것은 아니기에 일단 그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하기도 했다.
‘까짓것 50등 안에 들면 되는 것 아냐. 30등 이내가 되어야 중앙에서 행정관으로 발탁이 되고 10등 이내에 들어야 주요 부서에 배치가 되니 크게 그 정도를 한다고 주목받지는 않겠지.’
사이먼은 중간만 갈 생각이었지만 도서관에 출입하기 위해서 결국 좋은 성적을 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이먼은 입학 후 3개월 뒤에 도서관 출입과 도서 대출 실적을 평가하여 2등급이 되었다. 거의 매일 출입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번에 입학한 학생들 중에 고작 30명 정도만이 해당이 되었다.
1등급은 1학기 성적이 나온 후에 선정된다고 했다. 그 때에도 2등급을 유지하면서 성적이 상위 10% 이내에 들면 1등급으로 자동 승격이 되었다.
사이먼은 아직 1서고와 2서고의 책 중에서도 읽을거리가 많기에 3서고나 4서고에 드는 것이 급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1등급을 받는 것이 유리한 면이 있기에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노력을 했다.
‘열심히 했는데 중간 평가에서 고작 28위라니 50위 안이 아니라 30위 안에 들기는 했지만 이 성적을 유지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닐 것 같군.’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험기간 대부분의 시간을 시험공부를 하는데 썼는데도 그 성적이니 행정아카데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만만치가 않아 보였다.
‘수준이 낮지만 마법사들이 그렇게나 있다니.’
행정아카데미에 진학한 학생 중에 수준이 떨어지지만 마법사가 무려 10명 이상 있었다. 그들은 고작 1서클에 불과했지만 공부를 아주 잘했다. 대부분 마법을 익히는데 중요한 마나친화력이 떨어지는 경우였지만 그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머리가 좋고 가장 어려운 과목인 수학이나 수학이 필요한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사이먼도 그들만큼 성적을 받았지만 절박하게 공부를 하지 않은 탓에 다른 과목에서 조금 뒤처졌다.
여기에 엑스퍼트에 든 자들도 20여 명이나 되었다. 기사가 될 것이 확실한 자들도 역시 공부를 위해 행정아카데미에 오는 것 같았다. 그들도 성적이 대부분 좋았다. 특히 엑스퍼트 중에 차대 영주가 될 소영주인 자들만 무려 열하나가 있었다.
‘굳이 더 높은 성적을 낼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이 수준은 유지하도록 하자.’
사이먼은 덩치가 크고 평상시 수업을 할 때 조용히 있었기에 공부를 못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성적이 나온 것을 보고 다들 놀라는 기색이었다.
“하여간 도서관에 출입하기 위해서 성적을 내다니 너도 대단하다. 나는 그냥 적당히 공부를 하여 졸업 후 영지에 가서 행정관이나 할 생각이다.”
행정아카데미를 졸업하면 영지에서 하급행정관을 하는 것은 문제가 없기에 굳이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할 필요가 없었다. 영지 행정관으로 임용될 때는 성적을 보지 않기에 적당히 졸업만 하면 되었다.
“한데 너는 요사이 무엇을 하기에 저녁도 먹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가 늦게 들어오는 거야?”
룸메이트인 윌슨은 수업만 끝나면 아카데미 밖으로 나갔다가 기숙사 복귀시간에 맞추어서 돌아오고 있었다. 짐작은 하고 있지만 맞는지 알고 싶었다.
“알잖아. 용돈으로 보내 주는 돈으로 셋집을 얻는 대신에 하숙집을 하나 얻었다는 것을.”
“설마 그거 말이냐?”
“내가 사제도 아니고 어쩔 수 없잖아. 그렇다고 저쪽 레저토 구역에 출입하는 것은 왠지 불안하고 말이야.”
여자를 만나 살림집을 차렸다는 말이었다. 가진 것이 없이 월세 방에 사는 젊은 여자가 사비올라에 혼자 와 있는 젊은 남자를 하숙생으로 받아들여 같이 살면서 하숙비 조로 돈을 받아서 생활을 했다. 그렇게 돈을 모은 여자도 꽤나 되었다.
여기서 윌슨이 말한 레저토 구역은 사비올라 외성에 존재하는 몇 개의 사창가 중에 행정아카데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창가를 지칭했다.
“너처럼 하는 애들이 많은 것 같던데 얼마나 많은 학생이 그렇게 지내냐?”
사이먼도 여자를 모르는 것은 아니기에 그런 생활이 이해가 되었다. 단지 사이먼은 전에 호펀의 여관에서 지낼 때의 경험 때문에 자제하고 있었다.
“학생들 중에 절반 정도는 그렇게 보낸다고 보면 된다. 괜히 쓸데없이 헤매고 다니는 것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돈도 적게 들고 생활도 안정이 되어 공부하는데 낫다. 나도 거기 가서 보내는 시간의 절반은 공부하는데 쓰고 있다. 너도 생각이 있으면 말을 해라. 그런 쪽에 평판이 괜찮은 집을 소개해줄 수도 있으니.”
“되었다. 오지의 영지 출신이다 보니 기숙사비를 내는 것도 버겁다. 그런 처지에 무슨 여자냐?”
사이먼은 돈이 궁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핑계를 대서 피하였다. 도서관에 읽지 않은 책이 많은데 그런 일에 시간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벌써 1학기가 끝나고 한 달 동안 방학을 했다. 사이먼은 방학이 되었지만 여전히 기숙사에 있었다. 윌슨은 방학기간 내내 외부에서 보낸다고 방학이 시작되는 날 짐을 싸서 나가버렸다.
사이먼은 모처럼 외출을 하기로 했다. 그간 몇 가지 물품을 사기로 했다. 더구나 보관하고 있는 트롤피를 처분할 필요도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보관을 하고 있으면 보존마법이 걸려있어도 변질될 위험이 있었다.
사이먼은 물품보관소에 들러 마법배낭을 찾은 연후에 밖으로 나왔다. 전에 갔던 마법상점에 들러 처분할 것을 처분하고 잡화점에 들러 물건을 구입했다. 그가 구한 것은 기숙사에서 사용할 잡다한 소모품이 대부분이었다.
팔고 사는데 별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기에 사이먼은 큰 길을 따라서 여기저기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사이먼은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기감만 사용하여 주변을 감지하고 있었다. 사비올라에서 마나를 사용할 경우 기사나 마법사에게 들킬 위험이 높았다.
큰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눈앞에 내성의 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내성은 허가된 자들만이 거주할 수 있고 그들만이 사실상 출입할 수 있었다. 그 외에는 임시출입증이 있어야 출입이 가능했다.
그러다가 사이먼의 눈빛이 달라졌다. 유독 한 장소에서 살기가 은밀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저기가 뭐하는 곳이지?’
내성의 성문을 살피다가 결국 돌아섰는데 왔던 길이 아니라 구경을 위해 다른 길로 가다가 살기가 일어나는 곳을 발견한 것이다. 워낙 은밀해 최소 상급의 기사나 4서클 정도의 마법사가 집중적으로 감지해야 가능해 보였다.
아카데미와는 반대편으로 난 길로 이어진 곳인데 꽤나 고급주택이 즐비하게 이어져 있었다. 사이먼은 그런 저택들의 외관을 눈요기 삼아 구경하고 있었다.
“하여간 사비올라에도 이상한 곳이 많군. 이 주변에서 가장 작은 저택인데 이런 집에 이상한 것들이 잔뜩 있군.”
그가 6서클 마법사가 아니라면 파악이 불가능할 정도로 미약한 마나의 기운마저 있었다. 상당수의 마나스크롤이 마나의 기운을 지워주는 마법진에 의해 감춰져 있었다. 이런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범상치 않은 일을 벌이려는 자들 같았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호기심이 일었지만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 괜히 이상하다고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가 저택 안에 있는 자들에게 이상한 일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서울 것은 없지만 귀찮았다.
그러나 막 돌아서서 얼마 가지 않아 그 저택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살기마저 강하게 일어났다가 다시 잠잠해졌다.
‘뭐야? 누가 저 집을 습격이라도 하는 거야.’
사이먼은 한쪽으로 난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서 혹시라도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염려가 되어 몸을 감추었다. 갑자기 주변에 엑스퍼트급의 인물들이 많아지면서 부산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행동을 보면 뭔가를 염탐하는 정보원들로 보였다.
‘무슨 일이지?’
호기심이 일었지만 마나를 일으켜 탐지를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기에는 주변에 있는 자들이 호락호락한 자들이 아니었다. 그가 조금 거리를 벌리고 나자 상당한 수준의 호위를 거느린 마차가 한 대 나타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