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oneer Simon RAW novel - Chapter 60
치명적인 실수 (1)
사이먼은 상당히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인상 자체가 날카로워보였다. 더구나 그러면서도 윤곽이 굵어 강인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몸은 호리호리한 느낌이지만 키가 크고 팔의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고 몸의 균형이 좋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강한 기사들이 갖는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풍기는 기세 자체가 남달랐다. 강한 느낌을 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하여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묘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제나 경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행정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사이먼은 묻는 것에 대답을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이런 귀찮은 자리를 빨리 마치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사람이 있기에 역시 어떤 사람인지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마가렛은 엑스퍼트 기사답게 꽤나 몸이 잘 발달되어 있었다. 나이가 열여덟 살에 불과해 여자로서 아직 성숙하지 않아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해 시간이 지나면 상당한 미모를 뽐낼 것 같았다.
‘애니카보다 조금 키는 작은 것 같지만 여자로서 큰 키이군. 손에 굳은살이 많은 것을 보니 검술 수련을 열심히 하는 것 같군. 분위기로 봐서는 성격은 무던한 편인 것 같고 신중한 성격으로 보이는군. 하지만 은근히 고집이 있어 보이는 것이 상대하기 쉬운 여자는 아닌 것 같다.’
사이먼은 보지 않으려고 해도 어쨌든 외모를 볼 수밖에 없었다. 마가렛이 검은색의 평범한 드레스를 걸치고 있는 것을 보면 사치를 부리는 여자는 아닌 것 같았다.
“용병을 하다가 행정아카데미에 다닌다니 특이하네요. 졸업 후에는 다시 용병을 할 건가요?”
“그럴까 합니다. 어느 한 곳에 얽매이는 것은 성격에 맞지 않아 자유로운 용병이 제게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왜 행정아카데미에 온 것인가요?”
사이먼의 말에서 약간의 빈틈을 발견한 마가렛은 순발력 있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무식한 용병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수련을 좀 더 하는 시간에 공부까지 하려고 왔습니다. 용병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 다른 일을 하려면 행정이나 부기라도 조금 알아야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이먼은 평상시 다른 사람에게 말하던 대로 대답을 했다. 그런 대답에 마가렛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대답에서 달리 빈틈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직설적인 말이라 그에 대해 달리 말을 하기도 곤란했다.
결국 사이먼이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 때문인지 마가렛이 별로 관심이 없어서인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서로 상투적인 이야기 몇 마디를 하고 그 자리를 마쳤다.
20. 치명적인 실수
마스터인 크렌샤 드리오스 자작은 근위기사단에 속해 있지만 일반 근위기사가 아닌 특무숙위기사를 맡고 있었다.
왕실에 속한 세 명의 마스터는 번갈아 가면서 왕과 왕궁을 호위하고 있었다. 세 명의 마스터 중에 반드시 한 명은 왕의 근접거리에 존재하면서 호위를 했다.
그렇게 하면 상당히 자유가 없을 것 같지만 오히려 가장 자유로운 직업이 그 일이기도 했다. 숙위를 서는 것은 그냥 왕궁에서 머물기만 하면 되었다.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놀아도 되는 일이었다.
왕궁에 그저 머물기만 하면 되는 일이기에 마스터들끼리 서로 시간만 잘 맞추면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어디를 가는 거야?”
레오트라 밸콘 자작이 교대를 마치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세 사람은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이틀 동안 숙위를 서고 4일간 휴식을 취했다. 4일의 휴식 중에 특별한 일이 발생하는 상황을 대비하여 마지막 이틀은 내 성 안에서 역시 대기해야 했다.
다른 두 마스터가 결혼을 했지만 크렌샤는 결혼을 하지 않고 나이 마흔다섯이 되었어도 혼자 지내고 있었다. 왕궁 밖에 저택이 있지만 그곳은 그의 재산을 보관하는 창고 이상은 아니었다.
“행정아카데미에 로스티아 학장이 좋은 술을 구했다고 해서 얼마나 좋은 술인지 살펴보려고요.”
그 말에 레오트라 벨콘 자작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크렌샤와 레스티아 학장이 그렇게 친한 관계도 아닌데 찾아가니 결국 막무가내로 찾아가서 술을 강탈하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해도 크렌샤가 아무런 대가를 주지 않고 강탈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원래 가격보다 더 대가를 지불할 것이 분명했다.
“적당히 말로 하라고. 로벤슨 영감의 귀에 들어가면 귀찮아 질 수가 있어.”
레오트라가 언급한 로벤슨은 역시 마스터로 특무숙위대장을 맡고 있었다. 나이는 벌써 70이 넘었고 작위도 백작이었다. 물론 전대 숙위대장인 아르고스라는 마스터가 더 있지만 그는 3년 전에 크렌샤가 마스터가 되면서 은퇴를 할 수가 있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왕궁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워낙 크렌샤는 유명한 사람이기에 누구도 가로 막는 사람이 없었다.
“행정아카데미로 가지.”
크렌샤는 왕궁에서 사용하는 귀빈용 마차대기소로 가서 대기하던 마차에 훌쩍 올라서면서 그렇게 말을 했다. 특무숙위기사에게 주어진 특권 중에 하나가 왕실에 있는 귀빈용 마차를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는 권리였다.
크렌샤의 지시에 마부가 대기하던 마차를 출발시켰다. 사전에 크렌샤가 외출을 할 것이라는 연락을 받은 상황이기에 사전에 준비를 마치고 대기할 수 있었다.
크렌샤는 아카데미에 다가갈수록 묘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알 수 없는 감각이 그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지만 워낙 미미하고 미묘했기에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행정아카데미에 당도하자 그런 감각도 사라졌기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행정아카데미를 경비하는 경비대는 왕실에서 출발한 귀빈용 마차가 당도하자 문을 활짝 열고 통과를 시켰다. 마차는 멈추지 않고 거침없이 아카데미 중앙에 있는 본관 앞으로 갔고 현관에 마차를 댔다.
크렌샤는 마차가 멈추자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드리오스 자작님.”
크렌샤가 마차에 내리자 현관문이 열리면서 총감이 나타나 인사를 했다. 행정아카데미를 책임진 학장이 자작이고 총감은 행정아카데미의 서열 세 번째로 준남작의 직위에 불과했다.
“학장인 로스티아 듀렌 자작은 어디에 있는가?”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총감인 헥스톨은 20대 청년 같은 크렌샤를 보면서 위화감을 느꼈지만 최대한 공손하게 말을 했다. 나이건 직위건 모두 그보다 상위이니 당연했다.
“학장실에 있나보군.”
크렌샤가 뒤를 따르면서 그렇게 말을 했다. 1층에서 가장 좋은 곳에 학장실이 있었다. 크렌샤가 학장실로 다가가기도 전에 학상실의 문이 열리면서 로스티아 듀렌 자작이 나타났다.
“어서 오십시오.”
“로스티아, 드디어 아카데미 학장이라니 출세했다?”
말을 편하게 했지만 로스티아 듀렌 자작과 크렌샤의 나이는 고작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아울러 로스티아 듀렌 자작도 행정 관료로 어느 누구보다 두각을 나타내어 촉망을 받는 인물이기도 했다.
“크렌샤님에 비하겠습니까? 그저 겨우 작년에야 여기 부임했습니다.”
로스티아는 크렌샤를 학장실 안으로 안내했고 크렌샤는 마치 자기 집을 찾아가는 것처럼 당당하게 따라갔다.
“내가 듣기에 재미난 말이 있어서 말이야.”
“그저 운이 좋아 산시베리아 술을 한 병 구했습니다. 하지만 고작 30년 정도밖에 묵은 것이 아니라서 그리 좋은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산시베리아 술이잖아. 전에 했던 약속을 지켜야지.”
순간 로스티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둘은 명주를 모으는 취미가 있어 서로 부딪친 경우가 많았다. 명주에 관련된 정보는 로스티아가 먼저 얻고 구하기도 로스티아가 더 많이 구했지만 최종적으로 크렌샤가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번에 로베트리아 술을 내가 양보하는 대신에 나중에 내가 원하는 술을 하나 원가에 양보해준다면서.”
순간 로스티아 듀렌 자작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어렸다.
“이번에 구한 술은 라벨에 금칠이 되어 있는 것이라던데. 그것을 가져오라고. 다른 산시베리아 술로 가져올 생각은 하지 말게. 그러면 내가 화를 낼 거야.”
같은 산시베리아 술이라도 골드라벨과 실버라벨은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실버라벨이 아무리 오래 되었어도 골드라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어디서, 누구한테 들었습니까? 골드라벨의 산시베리아는 구경한 적도 없습니다.”
주는 것은 주는 것이고 자신의 일을 밝힌 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다음에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이야, 나중을 위해 정보원을 색출하겠다는 것인가? 만일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후에 벌어질 일은 감당할 수 있겠지? 맹세를 한다면 믿어주지.”
크렌샤의 말에 로스티아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맹세를 할 경우 그 뒷감당이 쉽지 않았다. 맹세를 하고 발뺌을 하면 정보원과 대질이 이루어질 수가 있었다.
정보원을 색출하는 것과 그 후에 벌어질 일을 감당하는 것을 견주어 보면 그냥 정보원을 모르는 것이 더 나았다. 로스티아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백기를 들고 말았다.
크렌샤는 산시베리아 술을 받기로 약조를 하고 느긋하게 행정아카데미의 교정으로 나왔다.
“행정이란 말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지만 당신이 학장으로 있는 행정아카데미에 왔으니 구경이라도 한 번 해야겠지. 안 그러면 서운할 것 같은데.”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아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1,2학년 천여 명이 넘는 학생이 수업을 받고 있었다. 물론 공강 시간이 있는 경우 휴식을 취하는 학생들도 꽤나 되었다.
로스티아는 크렌샤에게 사고를 치지 말고 빨리 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할 배짱이 없어 결국 안내인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부학장이나 총감에게 안내를 맡겼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번거롭지만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크렌샤를 조금이라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었기 때문이다.
크렌샤는 건물을 구경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로스티아를 비롯하여 행정아카데미의 주요 간부들이 주르르 따라서 이동을 하니 제법 귀빈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저번에 기사아카데미에 갔을 때에 비하면 알아보는 사람도 없어 그리 흥이 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복도를 지나갈 때에 각 강의실에서 강의가 진행이 되고 있고 강사가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상대로 떠들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강사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하는 것 같지만 마스터인 크렌샤에게는 아주 잘 들렸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강사들의 이야기 중에는 종종 우스갯소리도 하는 경우가 있어 피식 웃기도 했다.
그렇게 걷던 크렌샤는 행정아카데미를 올 때 느꼈던 묘한 느낌이 다시 들었다. 크렌샤는 언젠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나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르고스 영감!”
순간 크렌샤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가 갑자기 그렇게 중얼거리자 그 중에 있던 자들 중에 몇몇은 흠칫 놀라는 기색이 되었다. 크렌샤가 말하는 이름이 무엇인지 아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행정아카데미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간부들이었다.
‘완전한 마스터에게서 느꼈던 느낌이야. 영역마저 감추었지만 그 존재감을 완전히 감추지 않았을 때 느끼는 그 느낌이야. 이런 경우는 상대가 뭔가 탐색을 할 때라고 했는데. 설마 여기에 그런 강자가 있다는 것인가?’
크렌샤는 마스터라고 하지만 완전한 마스터가 아닌 반쪽짜리 마스터였다. 오러 블레이드와 바디 실드까지는 전개가 가능하지만 아직 영역은 가지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 영역을 가진 마스터는 그가 마스터가 되면서 은퇴한 아르고스가 왕실에서는 유일했다. 그렇기에 은퇴를 했지만 완전한 은퇴를 하지 못하고 여전히 암중에서 왕궁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크렌샤는 천천히 행정아카데미를 다니면서 그 느낌을 쫓아갔다. 그러나 그가 그 느낌을 추적하려고 마음먹자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가 추적하려는 것을 알고 아예 기세 자체를 지워버린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 수준이 아르고스에 필적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짜증이 확 솟구쳤다. 상대는 자신의 존재를 알고 상대를 하지 않겠다고 퇴짜를 놓은 것이다. 괜히 무시를 당한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쫓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렇다고 난리를 피우며 찾기에는 후환이 두렵기도 했다.
더구나 의식적으로 기세를 지운 이상 그가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로스티아에게 산시베리아 술을 받기로 해서 좋아졌던 기분은 순식간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