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oneer Simon RAW novel - Chapter 87
흑마법사 논쟁 (1)
사이먼의 공식적인 근무처는 왕실 궁내부였다. 그렇기에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은 자신의 공식적인 집무실로 찾아가야 했다. 궁내부를 책임지는 자는 대신이라 불렀고 에르니아 프로넬 후작이 맡고 있었다.
“일단 궁내부에서 영지순찰관을 맡게 되었으니 각 영지를 한 번 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
“모든 영지를 다 돌아보라는 말입니까?”
직할영지 산하에 소영지들을 다 합하면 무려 250여 개에 달했다. 그런 영지를 다 둘러보려면 몇 년은 소요될 수 있었다. 그러니 사이먼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반문을 했다.
“산하의 소영지까지 돌아보는 것은 불가능하고 일단 여덟 개 주의 주도를 방문하여 각 직할령의 상황을 청취하라는 말일세. 각 주마다 부지사가 행정을 총괄하고 있으니 그들을 방문하면 될 것이네. 곧 주지사의 교체가 진행되는데 그 때 문제가 없도록 모든 업무에 만전을 기하라고 하면 될 것이네.”
사이먼을 책임이 없는 한직에 앉혀 놓았지만 그래도 정해진 일을 하는 흉내라도 내야 되었다. 그래야 각종 감사니 감찰이니 감독이니 감투를 쓰고 있는 자들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 그런 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 있기에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각 주도에는 워프게이트가 가동이 되고 있으니 방문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네. 이번 일은 왕실 궁내부 행사이니 수행원으로 화이트 피닉스 기사단 산하에 있는 왕실 경비대에서 10명을 차출하여 움직이면 될 것이 네.”
“알겠습니다.”
사이먼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기에 일단 일을 하는 흉내라도 내야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각 주의 주도를 방문하여 하루 정도 머물면서 상황을 청취하였다. 각 주의 주지사를 면담하고 그 후에 실무 책임자인 부지사와 면담을 하고 그 아래에 있는 고위 행정관과 이야기를 하면 방문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물론 방문하는 날 저녁에는 주지사나 부지사가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해야 했다. 그 자리에는 주도에 있는 여러 귀족들이나 인근에 있는 영지를 책임진 영주 대리나 대리 영주가 참석을 하기도 했다.
각 주는 주지사의 나이가 60이 다 되어 가는 경우가 많아 오래지 않아 교체할 예정이라 기강이 흐트러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주지사의 교체와 더불어 전문행정관료인 부지사도 교체되는 경우가 많기에 그들도 자신들의 거 취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기에 사이먼에 대한 대접이 천차만별이기도 했다.
아직 더 관직에 머물 생각이 있는 관리는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서서 환심을 사려고 했고 이번에 퇴직하려고 하는 자들은 그저 형식적으로 상대를 했다. 그럴 경우에는 아무런 행사도 없이 그저 잠자리와 식사만 관사에서 챙겨주는 경우도 있었다.
사이먼은 행정아카데미 출신답게 그래도 둘러본 것에 대하여 보고서를 작성하여 궁내부 대신에게 보고했다. 그저 첫인상 정도이지만 사실대로 작성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매월 한 번 정도 순찰을 나가도록 하게. 이미 오렐리어스 백작과 협의를 하였네.”
보고서를 제출하고 10여일이 지닌 후에 궁내부 대신이 그렇게 통보를 했다. 다른 보고서와 달리 객관적이라서 현지의 상황을 아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었다. 총 여덟 개 주이기에 이틀씩 나가면 대략 한 달의 절반의 시간을 투입하는 것이니 적당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이먼도 외부에 나가서 한 바퀴 돌면서 바람을 쐬는 것도 나쁘지 않기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사비올라에서 하는 일이 없이 그저 대기만 하고 있는 것도 답답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간에 마법서를 읽거나 책을 읽었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궁정마법단의 마법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는 6서클 마법서도 다 읽어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이먼의 등장으로 인해 골치 아픈 사람들이 생겼으니 그들은 바로 각주의 주지사와 부지사, 행정 관료들이었다. 현안 중에 그리 좋은 내용이 아니면 보고를 하지 않고 묵살해 버리는 일도 많았는데 사이먼이 와서 보고 간 후에 보고를 하니 묵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사이먼의 행보로 인해 직할영지에 대한 왕실의 통제력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간 정해진 세금만 납부하면 작 주나 소영지에 대하여 간섭을 하지 않았지만 사이먼이 정기적으로 영지를 순찰하자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흑마법사 논쟁
헬로이안은 자신이 실패했다는 사실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을 하였다. 그의 높은 자부심과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이니 심기가 불편했다.
장난감이나 애완동물로 생각했던 자가 족쇄를 풀고 도망을 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자신의 손아귀에서 발버둥을 치다가 결국 상처를 입고 마지막을 장식해야 정상인 존재가 비상을 했으니 다시 붙잡아다 원위치를 시켜야 했다.
“영지순찰관을 맡아 직할 영지의 주도를 모두 순회했다는 말이지?”
헬로이안은 사이먼의 동태를 실시간으로 알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행적 자체를 나중에라도 보고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니 그 일을 맡은 프라인만 정신이 없었다.
“그렇습니다. 사비올라에서 워프게이트를 이용하여 주도를 방문했고 현지에서 일박을 하고 다시 사비올라로 복귀하였다고 합니다. 각 주를 전부 도는데 한 달 정도 소요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매월 동일하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그래? 그러면 그 일정을 파악해 보도록 하지. 사비올라는 침투하기가 부담스럽지만 남부의 혼타 지역이라면 충분히 도모할 수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신전에서 사이먼에 대한 시선이 그리 좋지가 않다면서?”
헬로이안은 신전에도 끄나풀을 심어두고 있었다. 흑마법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을 포섭하여 신전의 동향을 보고받고 있었다. 물론 자신들의 정체가 흑마법사라는 것은 정보원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신전에서는 데마린 산맥의 마스터급 몬스터를 처리한 것이 사이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그곳에 조사단을 파견하였지만 허탕을 쳤는데 그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프라인은 사이먼에 대해 조사한 것을 자세히 보고했다. 용병대전 이후에 사이먼에 대한 헬로이안의 관심이 높아졌기에 당연했다.
“크로이엘 교단의 알 리시온이란 자는 참으로 치졸한 성향을 가진 자이지. 그놈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우리보다도 나쁜 짓을 더 많이 했을 거야. 왕실에 마스터가 등장한 자체가 맘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 뭔가 트집 잡을 구석이 필요한 상황에서 두 가지를 연관 지은 것이지.”
헬로이안은 프라인에게 그런 설명을 해주더니 뭔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일단 소문이라도 하나 내도록 해. 사이먼이 마족, 특히 마왕과 계약을 한 덕분에 그렇게 어린 나이에 검술 실력이 뛰어나다고. 그러면 신전 녀석들이 알아서 날뛸 것이야. 마음에 들지 않은 자라면 어떻게든 이단으로 몰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몰아 귀찮게 하는 자들이니 충분히 사이먼을 귀찮게 할 거야. 나는 그녀석이 혼타 지역에 올 때 가서 살펴보도록 할 것이야.”
헬로이안은 자신의 시술이 실패했다는 사실 자체가 화가 나서 일단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헬로이안의 지시를 받은 자들은 사이먼에 대한 소문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마스터가 출현했다는 소문에 더해 그 마스터인 사이먼이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 화제였는데 마족과 계약을 한 덕분에 사이먼이 그 나이에 마스터가 되었다는 사실이 더해지면서 그런 소문이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소문을 접한 크로이엘 교단은 그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고 알 리시온 추기경에게 보고가 되자 마침내 조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마족과 계약을 했다는 내용은 심상치가 않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흑마법사가 아닌 검사가 마족과 계약하는 것은 유래가 없는 일이라서 신전으로서도 섣불리 조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흑마법을 익힐 경우 다크 소드라고 하는 마법을 전개하여 수준에 따라 고위급 검사로 위장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소문마저 돌면서 사이먼이 흑마법사라는 이야기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논리적인 허점을 보완한 새로운 소문이 돌면서 재차 사이먼을 음해하는 내용이 확 퍼져나갔다.
마법이나 검을 아는 자들이 들으면 그들의 상식에 어긋나는 이야기라 무시했지만 마법이나 검술에 대해 모르는 일반인들이 들으면 그럴 듯했고 크로이엘을 따르는 신도들도 절대 다수가 일반인들이기에 그 소문을 사실로 믿기 시작했다.
신전도 그런 소문이 나는 것이 이상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왕실에 속한 자이기에 그 소문의 허점을 알면서도 그냥 방치를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도 논리적으로 허점이 있는 것을 알기에 조사를 하자는 이야기를 일축하고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괜히 명분도 없이 나섰다가 궁지에 몰리기 싫었기 때문이다.
사이먼은 이런 소문의 배후에 흑마법사인 헬로이안이 존재하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그렇기에 소문이 확산되어도 달리 대응을 하지 않고 있었다.
‘도발이 점점 심해지겠지. 이런 소문으로 그들은 신전과 왕실 둘 중에 하나가 타격을 입기를 바라는 것이겠지. 그들 입장이야 어떻게 되어도 손해날 것이 없으니 정체를 감추고 소문을 내는 것이겠지.’
흑마법사인 헬로이안은 어느 쪽이 승리를 해도 손해가 없는 일이기에 암중에서 소문을 내면서 추이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도록 놔둘 수는 없기에 적당한 시기가 되면 제동을 걸 필요는 있었다.
‘신전에서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왕실 소속이기에 이상한 소문이 나도 방치를 하는 것이겠지. 그로 인해 왕실이 타격을 입기를 바라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들이 과연 검증을 하자고 나설지 의문이군. 아마도 그들도 허점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소문만 부풀리면서 흠집을 내려고 하는 것이지만.’
사이먼은 자신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것을 알지만 그저 무시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 두고두고 그런 소문이 그를 귀찮게 할 것이 뻔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보다 신전에서 괜한 트집을 잡기 위해 소문을 낸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흑마법사가 접근하기도 하겠지. 헬로이안이 내가 저주에서 벗어난 것을 알면 필사적으로 일을 꾸밀 것이 분명하다.’
사이먼은 자신을 음해하는 소문이 난 곳이 남부라는 것에 주목을 했다.
‘전에 카라이얼 교단에 대한 소문도 남부에서 먼저 시작이 되었다. 분명 그들의 끄나풀이 활동하는 곳이 남부일 것이다.’
사이먼은 왕의 안식처에서 조사한 내용을 접하고 남부 지역이 카라이얼 교단에 대한 소문의 진원지였던 것에 주목하여 두 가지 소문이 어떻게 난 것인지 살폈다. 두 가지 소문이 난 것이 상당히 유사했다. 같은 집단에서 같은 방식으로 소문을 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흑마법사들이 남부에 웅크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하나? 아니면 그들 근거지와 무관한 곳을 골라 작업을 하는 것일까? 어쨌든 그들을 돕는, 또는 그들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된 세력이 그곳을 기반으로 활동한다고 봐야겠지.’
사이먼은 자신과 관련된 소문에 관련된 자료를 검토하여 그런 결론을 냈다.
“일단 자네에 대한 소문은 무시하기로 했네. 하여간 신전에서 하는 짓을 보면 치졸하기 짝이 없네. 항상 흑마법사를 걸고 넘어가는 것도 식상한데 주제를 바꾸지 않나?”
오렐리어스 백작도 사이먼이 마족과 계약을 하였고 다크 소드라는 마법 자체가 어이가 없기에 의심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다. 더구나 사이먼이 궁정마법단에 출입을 하는 동안 아무도 흑마법사라는 증거를 발견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심할 수가 없었다.
흑마법에 민감한 것은 신관만이 아니라 마법사도 마찬가지였다. 사이먼이 흑마법을 익혔다면 7서클의 케오룬 백작이 모를 수가 없었다. 사이먼이 그 사실을 감추었다면 그보다 더 수준이 높다는 증거인데 온전한 마스터가 흑마법까지 익히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설사 운이 좋아 마법을 익힐 수도 있겠지만 말썽이 많은 흑마법을 익힐 이유가 없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문제가 없는 백마법을 익힐 것이니 흑마법을 익힐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엑스퍼트 단계에서는 마법사가 편법을 사용하여 검사로 위장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마스터 단계에서 편법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를 편법으로 구현하는 것은 진짜로 마스터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신전에서도 터무니없는 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이라 생각하네. 뒤에서 소문을 부풀리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 살피는 것 같네.”
“누군지 모르지만 너무나 악의적인 것 같습니다. 이 소문의 배경에 신전과 왕실을 이간질하려는 흑마법사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이먼의 말에 오렐리어스 백작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뭔가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른 것 같았다. 흑마법사의 기도도 분쇄하고 그것을 방조하는 신전에게도 한 방 먹일 수 있는 계책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