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became a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106)
성좌가 된 플레이어-106화(106/250)
제106화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먹구름이 낀 하늘에서 물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다 이윽고 폭우가 되어 쏟아졌다.
땀에 젖은 것인지, 아니면 빗줄기에 젖은 것인지 모를 정도로 갑옷은 축축하게 젖어 무거웠다.
노드 병사는 거친 숨을 내쉬며 함성을 질렀다.
“오오오오-!”
“끼아아아악-!”
“…시끄러!”
푸욱-!
노드 병사가 달려드는 제국 노예병의 심장에 검을 찔러넣고는 다시 뽑았다.
노예병이 무릎을 꿇고 축 늘어졌다.
노드 병사 역시 다리에 힘이 풀려 한쪽 무릎을 꿇고 검으로 몸을 지탱했다.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 이거 위험한데…? 어라?”
콰직-!
어색하게 웃는 노드 병사는 어깨 뒤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고통에 고개를 틀었다.
양팔이 잘린 제국 노예병이 노드 병사의 어깨를 깨물고 있다.
“…네가 무슨 짐승이냐? 사람을 물게!? 으럇!”
노드 병사는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러 노예병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장전…!”
외벽 위, 늘어선 노드 병사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당긴다.
“발사!”
쿵-!
손가락을 놓자 화살이 쐐도 하며 외벽에 달려오는 적병들을 관통했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빗나가 땅에 박혔다.
‘못 맞췄다?’
활을 쏜 노드 병사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손가락에 낀 질긴 오크 가죽이 다 헐다 못해 그 안에 있는 손가락에 피가 배어 나오고 있다.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아 떨려왔다.
쉬지 않고 화살을 당겼기 때문이리라.
“…죽어!”
노드 병사 중 하나가 제국 노예병을 발로 명치를 차 외벽 아래로 떨어뜨렸다.
노예병은 바닥에 추락해 ‘쿵!’ 하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전장의 끝을 알리듯, 고요함이 찾아왔다.
노드 병사가 숨을 들이켜며 중얼거렸다.
“이겼…다.”
“이겼다-!”
그들을 따르던 혁명군이 사기 높은 고함을 외쳤다.
하지만-.
부우우우웅-!
또다시 울리는 진격의 나팔 소리.
노드군은 혀를 내둘렀고, 혁명군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끝이 없는 전투.
그들에게 점차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젠장, 이건 못 해 먹을 짓이로군.”
“…그래, 이렇게 한다면 오래 버티기 힘들 거야.”
노드 병사들은 숨을 들이켜고 내쉬었다.
수십 차례의 전투.
적들이 끊임없이 몰아쳤다.
“놈들은 우리를 지쳐 쓰러지게 만들 생각이야.”
이미 휴벨 영지 외벽과 그 밖에는 수많은 시체가 나뒹굴고 있다.
이 정도 피해라면 보통의 군대는 물러서기 마련이건만, 제국의 노예병들은 아군의 피해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해 온다.
방패막이, 고깃덩어리, 도구 등등.
제국의 노예병이 왜 그렇게 불리는지, 노드군과 혁명군은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환각 포션에 중독된 이들이다.
고통은 미비하고, 폭주 된 분노는 적에게 향한다.
노예병 하나하나는 그리 강하진 않았지만, 완전히 숨통이 끊어지지 않는 이상, 좀비처럼 달려들었다.
무엇보다 황제 카샤르가 직접 참전하지 않게 해야 했다.
결국, 이런 요소는 노드군마저 체력적으로 한계에 봉착하게 만들었다.
“아! 싸움은 좋아해도 이런 식의 싸움은 진짜 싫다고!”
“그러게… 전쟁에 대한 나의 로망은 어디로 간 거야?”
“…미친놈들!”
노드 병사들은 불평불만은 해도 겁에 질린 표정은 아니었다. 다만 외벽 위에 있던 혁명군들이 문제였다.
혁명군은 적이 다가오는데도 일어설 힘 없는지 벽에 기대어 축 늘어진 상태다.
이대로라면 다가오는 제국 노예병들의 먹이가 되리라.
“어이! 거기 혁명을 외치던 애국자들! 움직이지 못하면 방해되니까 썩 꺼져!”
“움직일 수 있는 놈만 남고 다 물러서! 네놈들 지키는 데 더 지치니까.”
혁명군은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하다는 듯 노드 병사들을 노려봤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건만, ‘야만인’들 따위에게 저런 말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혁명군 사이에서 노드군의 인식은 좋지 못했다.
자신들이야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싸운다는 명분이지만, 저들은 그저 에론 왕자에게 고용된 ‘용병’ 따위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노드 병사는 그런 그들의 생각을 아는지 말했다.
“왜, 야만인들에게 무시 받으니 열받냐?”
“뭐?”
“싸우기 싫으면 내려가!”
“젠장, 그래. 이제는 무리야! 더는 싸우지 않겠어!”
결국 참다못한 혁명군들이 불만을 토해냈다.
노드 병사들은 그들을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혁명군이 외벽 계단을 내려가려 할 때였다.
“멍청이들!”
“그래, 너희의 각오가 겨우 그 정도겠지.”
“뭐, 관둬. 이 나라가 망하면 저들의 가족이 노예가 되는 거 말고 더 있겠어?”
계단을 내려가려던 이들이 멈칫하며 굳어졌다.
노드 병사들은 점차 외벽으로 다가오는 노예병들을 보며 실실 웃고는 농담처럼 말했다.
“크론 제국, 꽤 악명 높다지?”
“어, 귀족 빼고 인간 취급도 안 한다고 하더군.”
“듣자 하니 개돼지보다 노예의 가치가 낮다더군. 그 때문에 크론 제국인이 종속국에 여행가 온갖 행패를 부린다며? 어린아이들은 장난감 삼아 때려죽이고, 여자는 능욕하고, 남자들은 그냥 죽여 버리고…. 또 나라에서는 그런 제국의 눈치를 보고.”
“그뿐이겠냐? 로니아 측에서 내건 조건이 매년 수천 명에 이르는 노예들을 바치는 거래잖냐. 조공도 어마어마하다는데?”
“그래도 사람이 많으니….”
노드 병사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혁명군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너희 가족들이 당첨되어 제국에 팔려 갈 확률은 미미하겠어?”
“…….”
노드 병사는 잔인한 미소 지었다.
“언제 가족이 팔려나갈지 몰라 끙끙거리겠지만.”
혁명군이 몸을 덜덜 떨었다.
“지나친 세율에 먹고 살지도 못해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살며 괴로워하겠지.”
혁명군은 이를 악물었다.
“왕은 미쳐서 타국에 백성들을 바치고 ‘어이쿠 잘 봐주십시오!’하고 앉아 호의호식, 너희는…‘아아! 오늘 하루도 버텼구나. 그런데 내일은 어떻게…?’라며 삶을 되새기겠지. ‘그때 좀 더 발악했더라면….’이라고.”
혁명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눈빛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나약하고 무능한 너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후회’뿐이잖아?”
노드 병사들은 씩 웃었다.
“너흰 겨우 그 정도뿐인 노예 새끼들이잖아.”
“닥쳐!”
“우리를 뭐로 보는 거냐!? 야만인!”
혁명군이 노드 병사에게 다가가 눈을 부릅떴다.
“싸워주마!”
“겨우 이 정도로 물러설 거 같아?”
“하, 이 새끼들, 겁나 단순하네. 하지만….”
노드 병사는 혁명 병사의 멱살을 잡고 그의 이마에 머리를 박았다.
하지만 혁명군 병사는 물러섬이 없이 그를 노려보고 있다.
마음에 드는 눈빛이다.
“존나게 마음에 들어. 그래, 그럴 바에야 차라리 죽을힘을 다해 그 운명에 반항해라. 이 미친 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가족을 지켜보라고. 그리고 이 세상에 당당히 외쳐!”
노드 병사는 목이 터지라 외쳤다.
“‘내가 해냈다!’, ‘내가 지켰다!’ ‘내가-!”
그의 목소리가 외벽에 메아리쳤다.
“나의 가족을, 나의 자유를, 이 손으로 지켰다고!”
“……!”
노드 병사가 외벽에 있는 혁명군에게 외쳤다.
“설마 네놈들 가족들이 노예로 살기 원하는 건 아니겠지?”
혁명군 병사들의 머릿속에 그들의 가족이 새겨졌다.
“발악해! 놈들을 향해 저항하라고!”
나름 살만했던 시절은 단 한 명의 미친 왕에 의해 망가졌다.
“순종적인 개가 되기보단 반항적인 인간이길 선택해!”
이 모든 걸 바꿀 수 있는 건 단 하나였다.
애쉬 왕의 몰락.
그것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살아남을 방법이었다.
노드 병사들의 질책에 혁명군이 무기를 움켜쥐었다.
각자 살기가 깃든 눈빛으로 영지로 다가오는 제국의 노예병들을 노려봤다.
“그래! 그래야 사내자식들이지! 움직일 수 있는 놈들은 기합 팍팍 넣어! 너희 스스로가…!”
노드 병사들과 혁명군이 무기를 움켜잡았다.
저 멀리 공성탑이 다가오고, 그곳에 탄 노예 병사들을 노려봤다.
“가족을 지켜라.”
***
“끼아아악!”
노예병들이 사다리를 탄다.
공성탑이 외벽에 닿자, 그곳에서 노예병들이 벌레 떼처럼 밀려왔다.
그들에겐 두려움이란 없다.
환각 포션을 마셨으니까!
그들은 살아있는 최강이자 최악의 망령들이었다.
하지만-.
서걱-!
“죽여!”
“끄아아악!”
그런 살아있는 망령들마저 고전하는 이들이 있었다.
제국 노예 병사들에게 포션이 있다면, 살고자 발버둥 치는 이들에겐 ‘신념’이 있었다.
“죽을까 보냐!”
“내 가족은 노예가 아니야!”
“살겠다!”
“자유를 위해! 혁명을 위해!”
혁명군은 크론 제국의 노예병들에게 창을 찌르고 검을 휘둘렀다.
노예병 하나가 자신의 몸에 찔린 창에 비명을 질렀다.
“끼아아아악-!”
지지 않겠다는 듯, 노예병 역시 자신을 찌른 혁명군의 어깨에 단검을 꽂았다.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뒤로 물러서겠지. 그렇게 되면 노예병은 그 병사를 덮쳐 난도질할 터였다.
그게 노예병들이 학습한 ‘전투에서 이기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혁명군 병사가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이를 악물며 고통을 이겨냈다.
“……!”
꿰뚫린 어깨에, 그리고 창에 쥔 팔에 힘을 주며 더욱 노예병을 밀어붙였다. 창날이 크론 제국의 노예병의 가슴을 꿰뚫다 못해 관통했다.
“으아아아악!!”
“끄…끄아아아악?!”
크론 제국 노예병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미미했던 고통이 서서히 커지며, 상대방의 표정을 보며 공포에 일그러졌다.
와락 일그러진 얼굴.
분노와 증오.
그리고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 깃든 얼굴이다.
망설임 따윈 없다. 물러섬 따윈 없다.
몸이 갈가리 찢겨도 물러서지 않아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평화롭게 살겠다! 자유를 위해 살겠어!”
앞날을 생각하고….
“네놈들에게 가족들이 놀아나는 꼴을 볼 거 같으냐! 네놈들의 노리개가 될 거 같아…!?”
최악을 상정하고….
“그래, 기합을 팍팍 넣어! 남자의 자존심을 보여줘! 허리에 힘을 주라고! 야만인인 우리보다 못하면 어쩌자는 거냐? 너희는 할 수 있어! 네놈들이 지키고자 하는 걸 지켜라!”
그들이 독려한다.
크론 제국의 노예병은 포션에 중독된 미친 자들이다.
약을 마시기 위해 물러서지 않는다.
하지만 혁명군은 신념에 미친 자들이었다.
가족을 위해,
앞날을 위해,
자유를 위해 물러서지 않았다.
크론 제국의 노예와 로니아의 혁명군.
서로 물러서지 않은 채 굳은 의지와 각오로 결의를 다지며 싸우고 있다.
“물러서지 마!”
혁명군은 ‘신념’을 가진 채 전의를 불태웠다.
***
“대단하지 않습니까?”
한스는 혀를 내둘렀다.
설마 혁명군이 이토록 집요하게 버텨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신념을 가진 자들은 무섭지. 그 점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한스는 팜을 쳐다봤다. 그리고 묻는다.
“그럼, 팜은 신념을 어떤 가지고 계십니까?”
“…….”
“예전부터 궁금했습니다. 팜 후작. 당신은 왜 에론 왕자님을 섬기는 겁니까?”
그라면 애쉬를 섬기며, 애쉬를 꼭두각시로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한스로선 알 수 없었다.
한스의 질문에 팜은….
“글쎄. 잊은 지 오래다.”
대답을 회피할 뿐이었다.
***
“…생각보다 많이 거슬리는군.”
카샤르는 옥좌에 앉아 외벽 위에서 들려오는 환호성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원하는 건 그들의 절망이다.
상대가 좌절을 맛보고 희망을 잃어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
그 괴로움에 울부짖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다 죽어가는 놈들이 발악한다.
그것도 희망을 잃는 게 아닌, 오히려 희망을 밝히며 버티고자 한다.
그 모습에 카샤르는 불쾌함을 느꼈다.
“어이.”
카샤르가 옆 조련사를 불렀다.
비늘갑옷, 얼굴에는 울고 있는 듯한 하얀 금속 가면을 두른 조련사가 고개를 숙였다.
카샤르가 직접 기른 삼천에 이르는 크론 제국의 최정예 근위부대.
카샤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오는 종자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정신을 망가뜨리고 오직 싸움을 위한 병기로서 길들인 존재이며 검술과 격투술, 궁술과 승마술, 공성 병기를 다루는 기술까지….
그 외에 노예 조련 등 다재다능한 엘리트 전사들이었다.
“네놈들이 직접 저 외벽을 함락시켜라.”
크론 제국의 군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