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became a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11)
성좌가 된 플레이어-11화(11/250)
제11화
로키는 눈앞에 있는 이방인 두 명을 바라봤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낯익은 물건들.
그중 눈에 익은 보드 게임판에 저절로 시선이 갔다.
‘역시 체스판이다.’
생김새는 똑같아도 규칙과 말의 모형, 하다못해 보드게임의 움직일 수 있는 판의 수가 다른 법이다. 하지만 눈앞의 체스판은 로키가 있던 세계와 게임 자체가 완전히 일치했다.
무엇보다-.
‘익숙한 음식이다.’
이 세상에 없을 떡볶이가 눈앞에 있었다.
그것도 로키가 맛보았던 너무나도 익숙한 맛.
-맛이 어때요? 선배?
‘후배가 만든 맛과 흡사하다.’
같이 사고를 당했던 후배.
그녀가 만들어주던 음식과 일치했다.
로키는 고개를 들어 두 사내, 아움과 페르를 노려봤다.
공기가 팽팽해지며 긴장감이 흘렀다.
“말하지 않는 건가?”
아움은 어느새 주변이 고요해진 걸 깨달았다.
눈앞의 까마귀탈 주변으로 가득한 노드인들은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으며, 가게는 문을 닫아걸기 시작했다.
그 대신, 검붉은 기운이 흘러나오는 스켈레톤들이 거리를 장악하고, 심지어는 건물 옥상마다 올라서서 아움과 페르를 노려보고 있었다.
‘페르….’
아움은 낮게 중얼거렸다.
‘이 포위망에서 빠져나갈 수 있겠나?’
‘무, 무리입니다. 언데드 한두 마리도 아니고… 데스 나이트급 스켈레톤이 사방에 포진한 상태에서는 아무래도 무리-.’
“무리다.”
아움은 고개를 들어 로키를 올려다봤다.
그가 아움을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너흰 도망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도록. 그렇지 않으면 팔 한쪽이라도 가져가야 말하겠느냐?”
로키가 압박을 해오자, 아움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리고 로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우린 상인이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나 보군. 표정 하나 바뀌지 않으니 말이야.”
로키가 고개를 숙여 아움의 눈높이에 맞춰 입을 달싹거렸다.
“고문을 해야 진실을 말하겠느냐?”
“……!”
‘거짓 정도는 판단할 수 있다는 건가?’
상대는 진심이었다. 이 이상 거짓을 말하면 사지를 찢어서라도 진실을 듣고자 할 터.
아움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거짓말을 해도 소용이 없겠군요. 그럼 자기소개를 하도록 하죠. 저는 아움 리니아. 리니아 부족의 대족장입니다. 페르.”
“페르 리니아. 아움 형님의 동생이다.”
“…리니아?”
로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들은 적이 있다. 노드족 중 가장 거대한 부족이라지?”
“…….”
‘우리에 대해 알고 있는 건가?’
정보 수집도 하고 있다는 뜻이로군.
아움은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상대가 자신의 부족에 대해 알고 있다면 자신을 붙잡아 둔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잘 알 것이다.
“저는 리니아의 대족장입니다. 저를 오래 잡아두면 리니아의 전사들이 이 도시를 공격-.”
“아까 칸쿤에 관해 이야기하더군. 그 이야기 속에 ‘쿠단’이라는 말을 들었다만?”
로키로선 아움의 사정 따윈 상관없었다.
‘…그 소란스러운 시장 거리에서 우리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건가?’
그 작은 소리를?
‘인간을 초월한 괴물이로군.’
아움은 더욱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네놈들, 쿠단의 부하들이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희는 쿠단의 ‘협력자’입니다.”
“협력자?”
“쿠단의 반란을 도운 주동자이기도 하지요.”
옆에 있던 페르가 아움에게 눈치를 봤다.
너무 진실을 말하는 게 아니냐는, 그런 눈치였다.
하지만 아움은 알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존재에게 조금이라도 수상쩍은 기색을 보이다간 곧바로 목이 날아갈 거라는 걸 말이다.
“그렇군. 네놈이 반란을 꼬드긴 건가?”
“정확히는 쿠단이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준 겁니다.”
“아까 칸쿤에 관한 이야기가 있더군. 아직도 그 아이를 노리나? 이미 라그나 마을은 사라졌다. 부족도 지금은 ‘발할’이라는 이 도시에 종속되어 하나의 부족이 되었을 뿐. 쿠단이라는 자가 바라는 건 이 도시에 없다.”
“아니요. 쿠단은 ‘라그나 부족’ 따위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로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쿠단이 바란 건 ‘라그나 부족’이 아닌 조카인 ‘칸쿤’입니다.”
로키는 까마귀 탈 속에서 눈을 가늘게 떴다.
“조카를 죽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군. 원수라도 되나?”
아움은 허탈하게 웃었다.
눈앞에 있는 이도 모든 걸 아는 게 아니었다. 그 덕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상대가 완벽하다고 볼 수 없었으니까.
“그 반대입니다.”
로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쿠단은 칸쿤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지켜?”
로키가 의외의 단어에 놀란 듯 되묻자, 아움이 말했다.
“저희만 말하는 건 너무 불공평합니다. 제 정체를 말했으니, 당신도 정체를 밝혀주십시오.”
“나는 치료사 훈이라고 한다.”
거짓말은 아니다.
노드인을 치료했으니 치료사라 할 수 있었으며, 그의 이름 또한 김훈이었다.
로키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움은 믿지 않았다.
“단순히 치료사가 무력과 치료 능력을 가지기 힘들죠. 무엇보다… 이 언데드들은 당신을 향해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리고 있습니다만?”
아움은 주변에 있는 언데드를 가리켰다.
그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로키를 향해 복종의 예를 올리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제2인자로 취급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방인 주제에 뻔뻔하군.”
“…일단 저희는 ‘상인 신분’으로 이곳에 여행 온 손님입니다. 소란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음….”
“또한 저희 부족과 교류 의향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교류?”
“저희 부족이 있는 부지는 철광석과 구리, 마석이 있는 세 곳의 광산 지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에 맞는 손님으로 대우해달라는 건가?”
“맞습니다.”
로키는 아움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순간 그의 까마귀 탈이 그림자로 감싸이며 사라졌다.
그리고 생겨난 것은 뿔이 달린 산양 머리뼈. 몸을 감싸는 칠흑의 중갑이었다.
조금 전까지 호리호리하던 몸과는 달리 육중한 중장비를 걸치고 거대한 망토가 휘날렸다.
아움의 앞에, 지옥에서 기어 나온 불길하기 짝이 없는 죽음의 군주가 등장했다.
아움과 페르는 한순간에 일어난 일에 굳어져 버렸고, 로키는 아움의 질문에 답하였다.
“…로키라고 한다.”
공기가 팽창하며 무거워졌다.
아움은 식은땀을 흘리며 숨이 턱 하니 막혔다.
미친 듯이 심장이 뛰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숨쉬기가 어렵다…!’
눈앞이 흐릿하다.
눈앞의 존재는 정말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위험한 존재라는 걸 아움은 본능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눈앞에 있는 자는 제2인자가 아니라 그는 이 지역을 다스리는 군주였다.
그리고 노드인에게 죄악의 성좌라 칭송받는 신이기도 했다.
‘단순한 사기꾼이 아니었단 말인가!?’
성좌의 강림.
그렇게 해도 믿을만한 위엄이 느껴졌다.
그때, 옆에 있던 페르가 아움의 앞을 막아서며 짐 속에 있던 무기를 빼 들었다.
겁에 질린 듯 몸을 떨면서도 거대한 도끼날을 로키에게 겨누며 목청껏 소리쳤다.
“형님! 도망치십시-!”
사라졌다.
페르의 팔이.
“……!”
페르가 굳어진 채 로키를 바라봤고, 로키의 손아귀에 페르의 팔이 대롱대롱 잡혀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으아아악… 아아악! 혀, 형님… 도망을-! 제가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겠습니-!”
“닥쳐라. 페르! 지금 내가 대화하고 있지 않으냐!”
아움이 버럭 소리쳤고, 페르는 멈칫 놀라며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부여잡은 채 아움을 쳐다봤다.
아움은 로키에게 고개를 숙이며 소리쳤다.
“제 동생이 실례를 범하였습니다! 동생의 무례는 그 팔로 대신할까 합니다. 부디 용서를-!”
“좋다.”
로키가 고개를 끄덕이곤 페르의 팔을 바닥에 던졌다.
페르는 침음하며 주섬주섬 자신의 팔을 들었다.
아움은 고개를 숙인 채 식은땀을 흘렸다.
‘…나도 이성을 잃을 뻔했다! 침착해! 침착하자! 공포에 지배당하지 마! 초조해하지 마! 생각하자. 생각-!’
아움은 심호흡하며 마음을 최대한 진정시켰다. 그러자 빠르게 뛰던 심장이 점차 정상적으로 잦아들기 시작했다.
로키는 그런 아움의 모습에 속으로 감탄했다.
‘대단하군. 그 짧은 순간에 이성을 되찾은 건가?’
정신력이 매우 높다는 뜻이겠지.
“내 정체를 밝혔다.”
로키는 다시 바닥에 앉았고, 갈고리 같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그러니, 너희도 같이 앉아 대화하도록 하지.”
“저희는….”
“거절은 불가다.”
아움은 압박을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사실상 로키의 본모습을 보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만약 로키가 앉으란 소리를 하지 않았다면 볼썽사납게도 엉덩방아를 찍었으리라.
“서로 도시를 지배하는 자들로서, 거짓 없는 진실을 말하도록 하지. 어떤가?”
“…좋습니다.”
아움도 바라던 바였다. 상대의 정체가 궁금했다.
“아까 말했던 칸쿤을 구하려 했다는 뜻은 뭐지?”
“…쿠단은 칸쿤을 구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무엇으로부터?”
“샤먼의 예언.”
“샤먼이 칸쿤을 죽이려 했다는 건가?”
아움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요. 샤먼은 노드인을 중재하는 자일 뿐, 자신이 공격당하지 않는 이상 부족의 일에는 일절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럼 누가 칸쿤을 노렸다는 거지?”
“장로들.”
로키는 눈을 가늘게 떴다.
“라그나 부족의 늙은이들이 예언을 두려워해 그녀를 죽이려 했습니다.”
뜻밖의 말이었다.
라그나 부족의 장로들은 아직도 이 도심에 머물고 있기도 했다.
“미신 따위로 사람을 죽여?”
“…사람은 무엇이든 믿기 시작하면 광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도 보아서 알고 있을 텐데요?”
로키는 자신을 숭배하는 이들을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장로들이 배후라는 말이로군.”
“아니요. 진짜 흑막은 따로 있습니다.”
“누구지?”
“저 또한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로키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끄덕였다.
“그래. 동등하게 대화하고자 했으니, 나만 질문할 수야 없지. 질문하라.”
허가가 떨어지자, 아움이 말했다.
“당신… 정체가 무엇입니까?”
“로키. 김훈. 그리고 이 지역의 창조자.”
로키는 저 멀리에 있는 발할 궁전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움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진실을 말하는 것일까?
그는 정말로 ‘죄악의 성좌’라는 신을 지칭하고 있었다.
“당신이… 정말로 ‘죄악의 성좌’란 말씀입니까?”
“아니, 난 ‘죄악의 성좌’가 아니다.”
“…….”
아움은 눈을 부릅떴다. 설마 그가 부정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역시 성좌일 리 없지.’
아움은 안도했다.
사실 그를 보고 동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상대는 성좌가 아니라면 인간이라는 뜻. 그렇담 ‘죽일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답하였다. 이제 내가 질문해도 되겠나?”
아움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상대는 자신을 배려해주고 있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나고, 타 부족의 대족장이 무단으로 이 도시에 침입했음에도, 그는 심문이 아닌 ‘대화’를 해주고 있었으니까.
“네, 말씀하십시오.”
“칸쿤을 죽이려 한 진짜 배후가 누구냐.”
“칸쿤의 아버지, 카란 라그나.”
“…….”
“그녀의 아버지가 칸쿤을 살해하려 했습니다.”
로키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면서도 몸이 들썩거리며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버지가 딸을 죽이려 했다? 참으로 미친 세계가 아닐 수가 없다.
“이유는? 예언 때문인가?”
“장로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입니다.”
“인정을 받아? 장로들의 영향력이 큰 건가?”
“그때 당시의 라그나 부족에선 부족의 족장을 선발하는 데 있어, 장로들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장로들이 만장일치로 선택한 자가 바로… 쿠단 라그나. 칸쿤의 삼촌이지요. 그는 노드인 중 가히 최강이라 불린 자였으니 말입니다. 카란 라그나가 어떻게 족장이 됐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뭐….”
“…….”
“권력이 흔들릴 기미가 보이자, 카란 라그나는 선택한 것입니다. 쿠단을 독살하고 자신의 딸을 산 제물로 바치고, 장로들에게 믿음을 얻는 것. 그리고 그걸….”
“쿠단이 알게 되었다?”
아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쿠단이 라그나 부족을 박살 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