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became a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20)
성좌가 된 플레이어-20화(20/250)
제20화
대지 위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붉은 햇살에 물든 황혼의 광경은 지옥도를 연상케 했다.
으깨져 죽고, 터져 죽고, 꿰뚫려 죽는다.
죽음과 마주한 나약한 인간들은 저항하고자 하는 의지도 잊은 채 무력하게 등을 보이며 도망쳤다.
하지만 그들의 저항이 무색하게, 망자의 탈을 쓴 사신들은 기계적으로 그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아움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하…. 하하… 제발… 그만…!”
인간이란 생명이 벌레처럼 짓밟히는 모습에 아움은 실성한 듯 웃었다.
“아움 리니아. 너의 패배다.”
아움은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바로 옆에 로키가 서 있었다.
“하…!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래! 아직!”
아움의 눈빛에 살의가 담겼다.
그는 검을 든 채 로키에게 겨누었다.
“네놈을 죽인다면 나의 승리다!”
“네놈이 나를 죽일 수 있다고 보는가? 그 검을 힘껏 휘둘러도 내 몸은커녕 이 갑옷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할 거다.”
“…….”
아움의 눈 근육이 실룩거렸다.
알고 있다. 지금도 눈앞에 있는 자와 마주할수록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깊게 깨닫게 된다.
“…내가 졌다. 지금 당장 이 학살을 멈춰! 이건 폭력이다! 이미 싸우기를 포기한 자들까지 죽이는 것은 전쟁 따위가 아니야!”
“그래, 전쟁이 아니지. 이건….”
로키는 그의 바로 눈앞까지 얼굴을 들이 내밀었다.
“‘놀이’다.”
“……!”
“애초에 네가 쿠단을 넘겼으면 이런 사단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네가 자초한 것이다.”
“내가… 한 것이라고?”
“네놈이 나를 죽일 수 있다는 오만함이, 이 결과를 불러왔다.”
마치 샤먼의 예언처럼, 아움이 노드족에게 크나큰 재앙을 불러온 거 같았다.
‘물론, 쿠단을 데려왔어도 언젠가는 마찰을 빚었겠지만.’
로키가 세력을 구축하면 할수록, 위기감을 느낀 노드족이 대거 일어날 터였다.
로키가 이렇게 나선 건 테스트와 동시에 자신에게 대항하고자 하는 세력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와 같았다.
다만, 로키가 전면에 나선 건 아움이 직접 그를 찾아와 집착할만한 ‘실마리’를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실마리가 아니었다면 로키는 그저 발할 궁전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리라.
“이 모든 게 나 때문이라고…?”
아움은 털썩 주저앉았다.
손에 쥔 검의 감촉이 느껴지자, 그것을 자신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이 재앙을 불러들인 것이 자신이다. 그리고 그 자신이 목숨을 끊는다면 눈앞의 재앙을 멈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힘을 주며 자결하려는 순간, 로키는 멈칫 놀라며 아움에게서 최대한 거리를 두었다.
쾅!
동시에 그 자리가 거대한 해머에 의해 부서져 버렸다.
아움은 멍하니 자신의 앞에 나타난 인물을 바라봤다.
“쿠단?”
쿠단은 아움이 쥔 검을 발로 걷어차 버렸다.
“…지금 자결해봤자 좋은 거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건 나뿐이다. 그러니…!”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지요.”
“……?”
“악마를 죽이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
쿠단은 아움을 등지며 워해머를 바로 잡았다.
“네 녀석은… 진짜겠지?”
쿠단은 이번에야말로 눈앞에 있는 존재가 성전에서 보았던 악마라는 걸 확신했다.
이윽고 워해머를 그에게 겨누었다.
“이날을 기다렸다. 이 악마 놈! 네 놈을 찢어 죽일 것이다!”
쿠단의 말에 로키는 그가 든 워해머를 쳐다봤다.
“찢어 죽이기보다는 다진 고기로 만든다는 표현이 옳겠군. 그 워해머, 상당한 물건이야. 드워프 말고도 다른 장인이 이곳에 있던 건가?”
“아움에게 들었다. 네놈이 칸쿤을 길들이고 있다고! 너를 죽이고 칸쿤을 자유롭게 만들겠다!”
쿠단은 워해머를 양손으로 쥐고 그대로 뛰어올랐다. 신기인 괴력이 그의 근육을 풍선처럼 부풀리게 만든다.
그 모습에 로키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자리를 데스 나이트 2기가 방패를 들고 막아냈다.
깡-!
스켈레톤 방패병의 방패벽조차 간단하게 부쉈던 쿠단의 워해머.
하지만 데스 나이트가 들고 있던 방패는 꿰뚫지 못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데스 나이트들이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무슨…?!”
‘내 공격이 막혔다?!’
“이놈들은 언데드 중 최상급에 속한 녀석들이다. 레이드 보스몹급은 아니더라도 그 아래 정도이지. 인간이 그리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로키의 비아냥거리는 어조에 쿠단은 이를 악물었다.
데스 나이트들은 방패를 휘둘러 쿠단을 튕겨냈다. 그리고 한 손에 잡은 거대한 철퇴와 같은 대검을 마치 지푸라기를 잡은 듯 맹렬한 속도로 휘둘렀다.
대검의 공격 패턴은 단순하다. 너무 큰 나머지 무게와 주변 환경에 제약을 받아 위에서 아래, 좌에서 우로 베는 형태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눈앞의 데스 나이트는 그런 제약을 무시한 채 ‘검술’을 실천하고 있었다.
몸을 빙글 돌며 휘두르고, 사선으로 가르고, 나선으로 돌려서 휘두르며, 당겨 찌르기까지.
속도 역시 너무나도 빨랐기에 쿠단은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막는 데 급급했다.
‘오! 대단하군! 내 손에 상처를 입혔을 때부터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로키는 쿠단의 무력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그는 기껏해야 인간이었다.
“쿠단, 네 놈이 아무리 인간의 영역을 벗어났다 한들, 이들을 이길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않는….”
“으럇-!”
쿠단은 워해머가 아닌 손을 움켜쥐고 끌어당겼다. 그리고 데스 나이트 품에 파고들어 주먹을 내질렀다.
데스 나이트가 방패로 막았지만…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쿠단의 주먹을 중심으로 방패가 부서져 나갔다.
결국 쿠단의 주먹이 데스 나이트의 명치를 가격했다.
콰쾅-!
데스 나이트는 튕겨 나가 몇 바퀴를 굴렀지만, 중심을 잡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크으으으으…
“…하핫!”
로키는 그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워해머로 부수지 못한 걸 맨손으로…?
저 손이 무기보다 더 강하다는 걸까?
아니면 저 무기 역시 쿠단이란 자의 능력을 뒤받쳐주지 못할 정도로 성능이 떨어지는 걸지도 모른다.
‘저놈, 진짜 인간이 맞는 건가? 상위 레벨의 언데드 몬스터를 맨손으로 제압하다니!’
로키는 이쪽 세상의 인간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지 생각하며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미 쿠단은 게임상의 캐릭터를 능가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쿠단이 더욱 성장하면 어떨지 궁금해졌다.
‘그래도… 지금은 한계인 모양이로군.’
쿠단이 데스 나이트들과 대치하며 거칠게 호흡했다.
이미 온몸은 생채기로 가득했으며, 팔은 방금 전 일격에 완전히 박살이 났다.
그는 서 있을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은 건지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눈에 띌 정도였다.
“쿠단. 난 네게 물을 게 있다.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두지 않겠느냐?”
로키는 말하면서도 조금은 고민했다.
그에게서 ‘실마리’를 듣고 싶다는 감정. 그리고 쿠단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더 보고 싶다는 감정이 부딪혔다.
“웃기지 마. 이대로 끝낼성싶으냐?”
포기하지 않겠다는 거겠지.
결국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저, 저기…. 로키 님.”
그때, 로키의 갑옷을 툭툭 건드는 인물이 있었다.
칸쿤이었다.
“칸쿤.”
“전쟁은 참혹하네요.”
“그렇지.”
“아움은 항복했어요. 노드족 모두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꺾였어요. 쿠단 외에는 모두 이 전쟁을 멈췄으면 할 거예요.”
“그중 하나가 너겠군.”
칸쿤은 고개를 끄덕이며 살며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두 손을 모아 로키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부탁이에요. 이 전쟁을 멈춰주세요.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를게요.”
“무엇을 줄 거지?”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모든 걸 드리겠어요.”
“어떻게?”
칸쿤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노, 노력해서요?”
마지막에 당황한 모습이 아직도 그녀가 어린아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로키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 말은 언젠가 성장한다는 뜻과도 같다.
‘정말로 캐릭터 육성 게임을 하는 거 같군.’
로키는 고개를 돌려 쿠단을 쳐다봤다.
“하지만 쿠단 녀석은 끝을 봐야만 하는 모양이다만?”
“죄, 죄송해요…. 저 고집 쎈 사람이 저의 삼촌이라….”
칸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로키의 앞에 섰다.
그리고 자신의 검을 움켜잡았다.
“제가 상대할게요.”
“네 실력으로는 쿠단을 이기지 못해. 계산 미스다. 녀석은 어처구니없는 괴물이야.”
칸쿤은 성장했지만, 쿠단이 보인 무력은 그보다 훨씬 상위에 속해 있었다.
“저도 알아요. 그의 무력을 직접 봤거든요.”
“…….”
“하지만 삼촌이 정말로 저를 위해 이 전쟁을 벌인 거라면….”
칸쿤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저를 죽이지는 않겠죠.”
그리고 이 전쟁도 라그나 일족이 멈춰야 했다.
“그래, 그럼….”
로키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노드인을 사냥하던 언데드들의 동작이 멈추며 로키의 뒤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미 승부는 끝났다. 그래도 싸우고자 하는 이들이 있으니, 결투나 구경해 볼까?”
로키는 빙판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주위로 데스 나이트와 리치가 호위하듯 에워쌌다.
쿠단 라그나.
칸쿤 라그나.
두 사람은 거리를 두며 마주 봤다.
“…비켜라. 칸쿤.”
“들었어요. 삼촌이… 저를 보호하기 위해 싸웠다고요. 그리고…, 오해 때문에 일이 불거졌다는 것도.”
“…오해가 아니다.”
“…매번 생각하지만, 삼촌. 그 고집 좀 꺾으세요! 그러니 곰탱이 같은 머리라고 불리는 거라고요.”
칸쿤의 말에 쿠단은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조카와의 대화.
이 무의미한 대화조차 너무나도 즐겁다.
하지만, 그 대화를 즐기고 있을 순 없었다.
“저놈은 너의 영혼과 육체를 취할 괴물이다. 그런 괴물을 왜 감싸는 거지?”
“제가 저분을 모시기로 했으니까요.”
칸쿤은 양손으로 부르트강의 손잡이를 움켜잡고 어깨 뒤로 빼며 자세를 낮췄다.
“칸쿤…. 넌 결국 악마에게 홀린 거구나.”
“저는 저의 마음으로 섬기는 거예요. 아무리 삼촌이라고 해도…, 저분을 해치고자 한다면 저는 막을 수밖에 없어요.”
“칸쿤, 아무리 네가 검에 재능이 있다고 해도 나를 이기지 못….”
칸쿤의 발이 움직였다.
왼발을 축으로 몸을 빙글 회전하듯 날아든다. 검을 사선으로 올려쳤다.
쿠단의 워해머가 움직이며 칸쿤의 검을 간단히 막아냈다.
금속음과 함께 불꽃이 튀며 쿠단은 칸쿤을 노려봤다.
“…해. 하지만 성장했구나.”
쿠단은 그대로 칸쿤의 검을 튕겨냈다. 그리고 주먹으로 그녀의 복부를 후려갈겼다.
“…쿨럭!”
칸쿤은 입에서 기침을 토해내며 몇 바퀴를 빙판길에 굴러갔다.
움찔움찔 몸을 떨며 복부를 움켜쥔 칸쿤은 이를 악물었다.
로키가 준 갑옷을 입었음에도 몸에 상당한 데미지를 입었다.
제대로 된 공격도 하기 전에 그대로 나가떨어졌으니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꼈다.
칸쿤은 쿠단을 바라봤다.
온몸이 걸레 조각처럼 찢겨 있으며, 그 사이로 피가 계속 흐르고 있다. 호흡도 거칠고 눈에는 피로감에 물들어 있다.
거의 죽기 직전의 상대로 단 한 번의 일격에 뻗어버린 것이다.
칸쿤은 힐끔 로키를 쳐다봤다.
로키는 그저 묵묵히 그 둘을 지켜볼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자신을 믿고 지켜봐 주고 있다.
‘힘으로는 이길 수 없어. 그러니 정면보다는….’
칸쿤은 자신의 갑옷을 털어냈다. 긴 치맛자락을 가진 드레스 같은 형태였지만, 움직이는데 이상하리만큼 편했다.
그뿐만 아니다, 쿠단의 일격을 막아낼 정도로 튼튼하기도 했다.
‘물론 삼촌이 일부러 봐준 것도 있겠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바로 일격뿐만 아니라 워해머로 때려눕히며 죽일 수도 있을 터였다.
지금도 겨우 일어서는 칸쿤을 보며 쿠단은 뭐가 그리 불만스러운지 이를 악물 뿐이다.
“칸쿤! 비켜라! 너는 나를….”
“이길 순 없죠. 하지만 삼촌.”
칸쿤은 입꼬리를 비틀어 말아 올렸다.
“저를 죽이지 못하시잖아요.”
“……!”
“그만 싸우던가, 아니면 저를 죽이던가! 선택하세요!”
“…홀려도 단단히 홀렸군.”
“홀리지 않았어요.”
“아니,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악마를 감쌀 이유도 없겠지.”
“저분은 삼촌이 생각하는 그런 자가 아니에요.”
“…더는 너를 내버려 둘 수 없구나. 나 또한 진심으로 가마.”
그는 워해머를 그녀에게 겨누며 신기인 ‘괴력’을 사용했다.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덩치 또한 더욱 커졌다.
칸쿤은 그런 삼촌을 올려다봤다.
“나를 뛰어넘어봐라. 칸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