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became a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30)
성좌가 된 플레이어-30화(30/250)
제30화
비는 눅눅하게 내리고 사람은 없다.
분위기 또한 무겁게 내려앉을 뿐만 아니라 빗줄기 때문인지 자욱한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습한 기운에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휴식 없이 행진 한 용병들에게는 누적된 피로가 몰려왔다.
그들은 고용주인 아자르를 노려봤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 노예들은 성안에 데리고 가.”
“…옥을 열까요?”
“미쳤냐? 노예들이 도망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아자르의 말에 용병들은 당나귀를 이끌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비좁은 문을 겨우겨우 수레를 끌고 집어넣어 빠져나갔다.
용병들은 성내 구석구석을 살펴봤지만, 사람 대신 쥐들만 성내를 활보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거… 아무것도 없는 거 같은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용병의 질문에 아자르는 고뇌했다.
“끄응, 도대체 왜 아무도 없는 거야? 노예 상품을 주문했으니 어디론가 사라질 리는 없을 텐데… 길을 잘못 들어온 건가?!”
아자르는 지도를 보며 끙끙거렸다.
그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분명 지도 상에는 이곳이 맞다. 하지만 마치 버려진 영지처럼 아무도 없었다.
아자르는 용병들에게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으윽, 이런 폭우 속에 다른 영지로 가다간 도중에 상품이 죽어버리고 말 거야. 오늘 하루 여기서 지낸다.”
“…여기서 말입니까?”
용병들은 음침한 분위기의 성채를 바라봤다.
“어차피 아무도 없는데… 뭐 어때! 모두 이곳에 짐을 정비해라!”
용병들은 짐을 풀기 시작했다.
노예들이 실린 수레는 성채 안쪽 구석에 박히게 되었다.
아자르는 성 내부를 훑어보고는 눈을 빛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성안에는 온갖 귀중품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었다.
“오오! 이럴 수가?! 이런 물건들을 버리고 가다니!”
건물 벽에는 잘 그려진 그림, 테이블 위에는 은으로 된 그릇과 촛대, 장식장에는 공예품까지.
귀족이라면 흔히 만질 수 있는 물건이지만, 평민이라면 평생 만져보지 못한 것들이 널려 있었다.
아자르는 주변의 눈치를 보며 슬쩍 물건들을 챙겼고, 용병들도 남몰래 물건을 빼돌렸다.
로키는 복도를 걸으며 성 내부를 관찰했다.
성 내부는 의외로 깔끔했다.
“…깨끗하군요.”
“그야 영주가 지내는 성이니까요.”
옆에 나란히 걷던 폴의 말에 로키는 복도에 장식된 화분을 바라봤다. 화분에 있던 나무는 생생한 초록빛을 띄고 있었다.
“…성안에 있는데 마르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있었다는 흔적이다.
“네?”
“아니요. 그냥 혼잣말입니다.”
아자르는 영주 방으로 추정되는 가장 고급스러운 방 앞에서 용병들에게 말했다.
“이곳은 내 방이다! 아무도 들이지 마!”
그는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용병들은 입맛을 다셨다.
“쩝, 혼자 귀족들이 지냈던 방을 차지하는군.”
“저 쪼잔한 상인이 우리 것까지 주겠냐? 아까도 봤잖아. 비 내리는 거로 노예들이 죽을까 조마조마하는 거. 돈 될만한 거 손대면 발악하며 용병 길드에 항의할 게 뻔해.”
용병들이 투덜댈 때, 용병 대장이 나와 말했다.
“보초를 선별한다.”
용병들은 성 내부의 바닥에서 자기로 결정되었다.
다만 그들은 교대로 성을 지킬 보초를 세우기로 했다.
평범한 마을이라면 모를까, 사람이 전혀 없는 버려진 곳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버려졌다는 건 그만큼 이곳에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위치는 성벽 위 2명과 성문 쪽 2명. 그리고 내벽 근처 2명과 성안 1명 정도로 하도록 하지. 그리고 마을에 아까 사람을 목격했다고 한 거 같으니 조사 인원으로 3명 정도 갈 생각이다. 마을에 사람이 거의 없다면 그 이유가 있겠지.”
용병 중 리더로 보이는 자가 지휘를 맡으며 힐끔 로키가 있는 곳을 쳐다봤다.
로키와 라필타는 고용된 용병이 아닌, 오히려 돈을 주고 아자르에게 도움을 청한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보초를 서게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챘는지 알베르가 나서서 말했다.
“우리도 보초를 서주겠네. 이놈이 할 거야.”
그리고 라필타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알베르 어르신? 저 어제도 보초 섰습니다만?”
“젊은 놈이 고생해야지. 게다가 누가 온종일 세운다고 했나? 교대라고 하지 않았나?”
“…….”
라필타는 폴을 쳐다봤다.
폴은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보초를 서 본 적이 없으니, 저는 빠질게요….”
“너 그걸 핑계라고 하는 거냐?!”
“마법사에게 뭘 바라는 거예요?”
라필타는 혀를 찼다.
“이건 직업 차별이잖아.”
“제가 도와드리죠.”
로키가 나서자 라필타는 눈을 빛냈다.
“정말?”
“네, 잠도 많은 편이 아닌지라.”
그 말에 용병 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위치는 제비뽑기로 하죠.”
보초 근무 인원은 총 7명. 순찰조로 3명이 뽑혔다.
그중 라필타는 성문을 지키고, 로키는 성안 내부를 순찰하기로 했다.
용병 대장은 부하 두 명과 함께 순찰조에 들어갔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오지. 분명 성에 사람이 없다면 마을 사람들이 원인을 알고 있을 거야.”
마을에는 사람이 있는데, 성안에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용병 대장은 부하들과 함께 마을로 내려갔다.
점차 밤이 깊어갔기에 용병들은 성내에서 잠을 청하기 위해 짐을 풀었다.
저마다 여행용 침낭에 누워 오랜 피로로 쌓인 잠을 청하려 했다.
알베르와 폴은 지금껏 피로가 쌓인 탓인지 푹 잠들어 있었다.
로키는 최대한 아자르가 있던 방에서 멀리, 그리고 빗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그가 빗소리가 나는 벽에 기댈 때, 또 다른 음성이 들려왔다.
“어떻게 할 거야? 진짜 할 거냐?”
“그래! 그럼, 노예상은 저렇게 챙기는 데 우리는 가만히 있어? 몰래몰래 챙기고 도망치면 돼! 노예 정도는 괜찮잖아.”
“진짜냐…? 용병 길드에서 아는 날엔 우리 목에 현상금이 걸린다고.”
아직 잠을 자지 않은 용병들이었다.
그들은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대화하더니 슬그머니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은 바로 노예들이 있는 수레 근처.
“하아…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로키는 진심으로 고민했다.
보아하니 용병 중 일부가 노예를 납치해 도망칠 모양이었다.
이걸 못 본 척을 해야 할까? 아니면 말려야 할까?
못 본 척한다고 해도 나중에 들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자신에게 물릴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시끄러워질 것이다. 하지만 말리면?
이마저도 용병들과 시비가 붙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기는 한데….’
다만 귀찮은 건 싫은 로키였다.
***
씻지 않았는데도 어둠 속에 파묻힌 새하얀 은발은 아름답고 하나의 실타래처럼 윤기가 흘렀다.
구릿빛 피부를 가진 엘프가 자신의 사지에 메인 족쇄를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의 다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돼. 그러면 되는 거야. 복수를 위해서라면 이까짓 노예 짓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배가 고프다. 온몸의 피부가 간지럽고 바늘을 찌른 듯 아팠다. 피로함에 눈꺼풀이 무거웠으며 정신 또한 몽롱하다.
하지만 다크 엘프, 샐럿은 이 지긋지긋한 노예 생활을 굳건히 버티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오른쪽 어깨에 난 상처 부위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불로 새겨진 노예 인장.
한 번 새기면 지울 수 없는 증표였다.
엘프로서의 숭고함과 명예를 더럽히는 문장이자 인간들에게 순종을 표하는 문양이었다.
역겹고 혐오스럽다. 하지만 지금의 샐럿에게는 그 증표가 무엇보다 필요했다.
‘그래… 복수를 위해서라면 노예 따위는 얼마든지 되어 주겠어!’
-참으로 볼품없는 모습이군.
갈라진 음성과 함께 그녀의 눈앞에 작은 불길이 일어났다.
손바닥만 한 불꽃은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다 하나의 형태를 이루었다.
하체와 팔은 용의 것이었으며, 40대 초반의 인간형 얼굴.
붉은 수염과 머리카락, 기다란 한 쌍의 뿔, 몸은 인간의 것이지만 붉은 근육질 위로 용의 비늘이 둘러싸여 있는 외견이었다.
팔짱을 낀 손바닥 크기의 불꽃의 정령은 샐럿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한때 중간계를 두려움에 몰고 갔던 마왕 칼리브의 딸이 하찮은 인간들의 노예가 되다니! 정말로 재밌군.
“…그 하찮은 인간에게 진 정령이 할 말일까?”
-…….
불꽃의 정령, 모든 불의 주인이자 왕인 불꽃의 대정령, 이프리트는 샐럿의 말에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그는 마왕 칼리브와 계약해 종속된 정령으로, 50여 년 전 인간과의 전쟁에서 패한 존재이기도 했다.
-흥, 그건 네 아비가 약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간계에서는 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프리트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사실상 그 반대였다.
그가 계약한 마왕 하네스는 지금껏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령술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프리트, 그가 놀랄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도 졌다. 인간에게.
그것도 ‘12인의 영웅’ 한테서 말이다.
다크 엘프였던 하네스와 불꽃의 대정령인 이프리트가 힘을 합했음에도 그 나약한 12명의 인간 중 단 한 명도 죽이지 못했다.
아무리 수가 많다고 해도, 아무리 강했다고 해도… 세계의 일부인 정령이 인간 따위에 패하다니!
이프리트는 옛일을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서, 넌 지금 그런 하찮은 인간 따위에 복수하겠다고 노예를 자처한 건가?
“…그래.”
샐럿은 증오로 얼룩진 선홍빛 눈동자로 이프리트를 노려봤다.
“인간 중 가장 지위가 높은 녀석을 유혹해 꼭두각시로 만들 거야. 그러면 인간들은 서로 싸우게 되겠지.”
-하, 멍청하군.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쉬워. 내기할까?”
그때,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천막으로 덮인 감옥이 걷어지며 웬 사내들이 보였다.
“…진짜다. 엘프야!”
“그것도 다크 엘프로군.”
“저, 정말…. 실물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야! 그 노예상, 대박이잖아? 이렇게 작은 규모의 노예상이 이런 엘프를…!”
용병들은 서로를 바라보다 샐럿을 쳐다봤다.
“…이놈으로 하자.”
“정말? 미쳤어!? 다른 노예도 아니고 비싼 다크 엘프라고! 귀족들도 구하지 못한 귀중품을…!”
“아니! 들고 튀다가 바로 파는 거야. 다크 엘프가 엘프보다 더 희귀해서 비싸게 팔리니, 이왕 도둑질할 거면 비싼 걸로 가져가자고!”
그들의 말에 샐럿은 눈살을 찌푸렸고, 앞에 있던 이프리트는 쿡쿡 웃어댔다.
-넌 인간들에게 사랑받고 있군.
“아니, 전혀.”
용병들은 이프리트가 바로 눈앞에 있음에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정령이니만큼 힘을 쓸 때가 아니면 본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이프리트는 용병들의 행동을 편히 지켜봤다.
그들은 다급한 듯, 초조한 듯, 흥분한 채 빠르게 감옥에 걸린 자물쇠를 뜯어내려고 했다.
몇몇은 불안한지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역겨워. 역시 인간이야. 욕망 따위에 지배당하다니!”
-허, 너는 증오라는 감정에 지배당한 주제에 그 말은 좀 아니지 않나?
샐럿은 이프리트의 비꼬는 말투가 싫었지만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자신은 타락했다.
‘증오’라는 복수심에 불타 스스로가 노예가 되면서까지 복수를 원했다.
“이게 다 인간 때문이야. 인간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샐럿의 말에 용병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 엘프, 혼자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머리가 이상한 모양인데? 그러고 보니 호위를 할 때 혼자서 계속 중얼거리는 걸 본 적이 있어.”
“그래서 그 작은 노예상이 이 물품을 얻었나.”
하지만 용병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욕망을 풀 수 있는 상대를 원했을 뿐이니까. 바로 눈앞에 있는 장난감을 말이다!
“빨리 열어!”
“조금만 기다려! 너무 단단하다고. 부숴버릴까?”
“들키면 어쩌려고?!”
그때였다.
“어이, 뭐 하는 거지?”
냉기가 섞인 목소리가 이상하리만치 크게 울렸다.
용병들은 움찔 놀라며 슬쩍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봤다.
커다란 까마귀 탈을 머리에 깊게 뒤집어쓴 사내가 입구에 서 있었다.
“뭐야! 망 안 보고 있었어?”
“쳇, 어떻게 하지? 때려눕혀?”
“…어이, 잠깐만! 상대는 노드인이야. 우리만으로 될까?”
용병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그리고 뭔가 생각이 났는지 샐럿을 힐끔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아, 저 노드인, 왜 이곳에 있는지 알겠어!”
“뭐?”
“저놈도 우리처럼 노예를 원하는 거야. 어이, 노드인! 우리가 이걸 훔치면 그다음 우리와 같이 이 노예를 팔아서 반반씩 나누도록 하자. 그럼 불만 없지?”
“…….”
로키가 침묵을 유지하자, 용병들은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그들은 로키의 침묵을 긍정으로 알아들은 것이다.
“자자, 조금만 기다리라고! 이 몸의 락픽 기술을 보여주마!”
용병 중 하나가 자물쇠에 핀을 집어넣고 열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샐럿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용병을 보고 말했다.
“그만둬.”
그녀의 선홍빛 눈동자는 핏빛처럼 붉게 물들었다. 그에 눈이 마주친 용병의 눈은 몽롱하게 풀려버렸다.
용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깜박이고 풀린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녀의 신기 [매혹].
상대방을 따르게 하는 이능의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