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became a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39)
성좌가 된 플레이어-39화(39/250)
제39화
수도사 알렉스는 들고 있던 농사용 비료를 밭에 뿌렸다.
“후우… 날씨가 좋군. 그저께까지만 해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 걱정했는데 다행이야!”
그는 무사히 자란 초록빛 식물들을 바라봤다.
그중에는 덜 익은 주름진 피망이 매달려 있다.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본 알렉스는 미소를 지었다.
“잘 자라다오.”
그가 조심스럽게 피망을 만졌을 때였다.
“신부님-! 신부님-!”
청아란 목소리에 알렉스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틀었다.
피망이 자라는 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막 세워진 듯한 깨끗한 수도원이 보였고, 그곳에는 수많은 아이가 뛰어놀고 있다.
검사 놀이를 하는 아이부터, 성경을 읽는 아이, 늘어져라 낮잠을 자는 아이까지… 모두 활기가 넘쳐 보였다.
그중 한 소녀가 바구니를 가지고 알렉스에게 다가왔다.
“신부님! 신부님! 이거 보세요! 이렇게 많이 땄어요!”
활기차게 미소 짓는 소녀를 보며 알렉스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아아, 이러면 안 되잖니. 엠마! 이것들은 아직 덜 익었단다.”
“네?”
어리둥절한 소녀를 보며 알렉스는 고개를 저었다.
수개월이나 노력한 결과물이 소녀의 선의에 의해 망가지고 말았다. 그 점에서 아쉬운 알렉스였지만, 소녀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기회였다.
소녀에게 피망에 대해 잘 가르쳐줄 때였다.
알렉스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보렴. 아직 손바닥만 하지? 색깔도 노랗고. 좀 더 크고 색이 변하면 더 맛 좋고 영양가가 있는 피망이 될 수 있단다.”
“네? 그, 그런 건가요? 할 수 없네요. 이건 못 먹는 거죠? 그럼 버려야겠어요!”
“…….”
풀이 죽기보다는 오히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 모습에 알렉스는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엠마! 너 혹시 일부러…!”
“아, 아니에요! 절대 피망을 싫어서가 아니에요! 단지 쓰고 씹는 게 이상해서…그리고 이상한 냄새가… 그냥… 먹기가 조금….”
“…그게 싫은 거잖니! 허…! 이 맛 좋은 피망을 왜 맛없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알렉스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기다리렴. 네가 반할만한 맛 좋은 피망을 따주마! 어디 보자… 아! 여기 잘 익은 피망이 있구나!”
알렉스는 빙그레 웃으며 피망 하나를 조심스럽게 접목 가위로 잘라내고 엠마에게 내밀었다.
“자, 먹어보렴. 엠마!”
“…….”
“…엠마?”
알렉스는 의아해하며 앞을 바라봤다.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소녀가 없었다.
그가 피망을 내민 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
알렉스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주변을 둘러봤다.
조금 전까지 활기차던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깨끗했던 수도원은 관리가 되지 않아 허름해진 벽 곳곳에 누런 곰팡이가 피어있었고 벽 일부가 허물어져 있었다.
초록빛을 띠었을 밭은 시들시들했으며, 알렉스가 쥐고 있던 피망은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아.”
그리운 향수가 스쳐 지나가며, 알렉스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에는… 더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오직 자신 혼자만이 남았다는 걸 말이다.
“…저, 저녁 시간이군! 마침 배가 너무 고프니 빨리… 가서… 먹어…야…지.”
알렉스는 떨리는 목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집으로 돌아간 그는 시들시들한 피망을 끓는 물에 데치고는 썰어 탁자 위에 올려놓고서 의자에 앉았다.
그는 눈을 깜박이며 탁자 위에 있는 여러 개의 접시와 그 위에 올려진 맛없고 쓴 피망 조각들을 바라봤다.
“…이런, 또 너무 많이 준비해버렸네.”
‘나도 노망이 난 모양이야!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렇게… 익숙해지지… 않은… 건… 지….’
마음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제발 익숙해지자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반대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제발 익숙해지지 말라고.
익숙해지면 아이들을 잊을 것이고, 익숙해지지 않으면 계속해서 아이들을 그리워하고 기억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알렉스에게는 평온한 삶은 없었다.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해!”
알렉스는 피망 조각을 포크로 찍어 입에 넣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희망은 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버텨야 했다.
그것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지라도.
“…아, 역시… 맛이… 좋네! 이 피망!”
알렉스는 미소를 지었다.
맛이 좋았다.
단지 물에 데쳤을 뿐인데도 맛이 너무나도 좋았다! 훌륭했다!
소금이나 조미료 따윈 없었다. 아무런 소스도 없다. 싱겁고 쓰기만 한 피망은 씹히는 맛 또한 ‘최악’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묵묵히 먹었다.
스스로 맛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돌아올 아이들에게 피망이 맛있다는 걸 증명 할 수 없을 테니까.
“아아, 왜 아이들은… 이렇게…. 맛 좋은 걸… 싫어… 했을…까? 하하. 하…하하….”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눈가에 이슬이 흘러내렸다.
고통스럽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 외로움을 없애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었다.
똑! 똑!
알렉스는 노크 소리에 흠칫 놀라며 급히 눈물을 닦아내고 자리에 벌떡 일어섰다.
“아! 그렇군. 며칠 전에 유안에게 생필품 배달을 부탁했었지!”
조금 전까지 음울한 기색은 온데간데없다. 그는 힘차게 일어서 급히 문가로 다가갔다.
찾아온 손님에 대한 기쁨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저번에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는데 바쁜 일이 있다고 해서 거절했었지? 오늘은 기필코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해야겠어!”
알렉스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라 문을 열었다.
“오랜만이구먼! 유안! 오늘 같이 식사 좀…!”
말을 하던 알렉스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
작은 소녀다.
구릿빛 피부와 선홍빛 눈. 부드러운 은발을 가진 소녀가 문 앞에 있었다.
아담한 몸집에 후드를 깊게 뒤집어쓰고 있으니 몸이 더 왜소해 보였다.
“아….”
알렉스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소녀는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알렉스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의 반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듯 호기심이 담긴 눈빛이다.
알렉스는 저도 모르게 떨리는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엠…마?”
소녀는… 그가 알고 있는 소녀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
“이야! 깜짝 놀랐습니다! 갑자기 숲속에서 커다란 까마귀가 튀어나오기에 몬스터인 줄 알았지 뭡니까?”
당나귀로 수레를 끄는 30대 중반의 사내는 호탕하게 웃어댔다.
수레에는 잡다한 잡동사니들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앉을 공간은 거의 없어 보였다.
그 좁은 공간을 까마귀 탈을 쓴 사내와 후드를 뒤집어 쓴 소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자리가 좁지요? 하하! 그래도 걷는 것보다 좋지 않습니까?”
“…….”
로키는 끊임없이 말을 거는 잡화상, 유안이라는 사내의 말을 무시하며 바로 옆에 앉아있는 소녀를 바라봤다.
소녀는 로키의 시선을 느낀 건지 움찔하더니 고개를 숙일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이제 경계심이 풀린 건가?’
숲에서 벗어난 로키는 하나의 길을 발견했다.
수많은 사람이 이동하며 자연스레 만들어진 길이었다. 그 말은 그 길만 따라가면 마을이든 도시든 사람이 사는 곳이 나온다는 말이 된다.
그때만 해도 로키를 따라오던 샐럿은 경계심이 남아 있는지 5m 정도 거리를 두고 따라올 뿐이었다.
그전에는 대략 10m 정도의 거리를 두거나 혹은 나무 위에서 관찰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일전의 모습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건지 날이 지날수록 거리를 줄이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미묘한 여정이 계속되던 중, 지나가던 잡화 상인에게 도움을 받게 된 것이다.
처음엔 단지 가까운 마을에 있는 여관으로 안내를 부탁했지만, 잡화상 유안은 웃으며 손사래 쳤다.
-지낼 곳 말입니까? 으음… 아마 어려울 겁니다! 요즘 이 나라가 전쟁이다 뭐다 하니 이방인을 꺼리거든요. 게다가….
유안은 손가락으로 로키의 옆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조금 떨어져 걷던 샐럿에게 향해 있었다.
-아내분이 매우 힘들어 보이니까 제대로 된 곳에서 지내야죠! 마침 제가 잘 아는 수도원이 있으니 그곳에 부탁해보도록 하죠!
샐럿은 유안의 말에 당황해하는 눈치였지만, 유안이 시골 마을에서나 있을 법한 특유의 밝은 미소로 로키를 반강제적으로 밀어 수레에 태우고 손짓을 해 샐럿도 불러들였다.
결국 얼떨결에 둘이 같은 수레에 타게 된 것이다.
뭔가 반응을 보여야 했지만, 너무 갑작스러워 타이밍을 놓친 상태.
로키는 수레를 올라타는 순간 그녀도 유안의 손에 이끌려 자연스레 로키의 옆에 앉게 된 것이다.
“이야! 덕분에 살았습니다! 수도원에 사시는 그분이 외로움을 많이 타시니까요. 그분이라면 기뻐하며 받아주실 겁니다.”
밝게 말하는 유안을 보며 로키는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이곳은 얼어붙은 대지의 근처에 가장 인접해 있는 로니아 왕국, 지금 서부와 동부로 나뉘며 일왕자와 이왕자의 왕좌를 건 내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쟁의 여파는 주변국에 영향을 미치기 쉽다.
잦은 전쟁은 나라의 국력과 경제를 악화시킨다. 치안이 불안해지니, 삶의 터전을 잃은 자들은 타락해지기 쉬웠다.
강도나 약탈자, 탈영병들이 활보하는 게 흔한 일상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눈앞에 있는 유안은 그런 살벌한 세상을 모르는 듯 로키와 샐럿을 경계심 없이 선의로 대하고 있었다.
“…친절하시군요.”
“네? 아,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고맙습니다!”
“보통 이방인은 경계하지 않습니까? 저처럼 이상한 복장을 한 사람은 더욱 꺼릴 텐데 말이죠.”
“으음, 하긴! 이상하긴 하죠! 그것도 매우! 까마귀 탈이라니… 너무 불길하지 않습니까?”
“…….”
너무 솔직하게 말하는 유안이었다.
“그래도 말이죠. 강도들은 이런 시골을 털어봤자 나올 게 없는 걸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돈이 나오리, 물건이 나오리! 오직 있는 건 몸뿐입니다.”
유안은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저희가 걱정하는 건 강도 놈들보다도 사람을 납치해가는 노예 사냥꾼들이나, 약탈자들입니다. 그들에게 걸리면 저희는 희망이 없죠.”
방그레 웃는 유안을 보며 로키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도 저희를 도와주시는 겁니까? 경계심이 너무 없군요.”
“으음, 그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너는 사기 당하기 딱 좋은 성격이야!’라고 많이 하더군요. 그만큼 순진하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하!”
긍정적이다.
어찌 보면 좋은 성격이지만 이와 같은 세상에서는 위험을 초래하는 성격이었다.
“사실 얼마 전에는 강도를 만나지 않았겠습니까? 그때는 팬티 한 장조차 남기지 않고 물건이 홀라당 털렸었지요! 하하! 덕분에 요즘 적자를 메운다고 밤낮으로 가리지 않고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훈을 얻었지요! 강도를 만나면 물건은 두고 튀어라! 그러면 옷만이라도 남아 있으니 말이죠! 하하!”
…광적으로 긍정적이다.
로키는 까마귀 탈속에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도 저희를 도와주는 이유가 뭡니까?”
한번 험한 꼴을 당한 사람은 경계를 가지기 마련이다. 정말 악질적인 강도를 만났다가는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나갈 수도 있으니까.
로키의 질문에 유안은 미소를 지었다.
“아, 그건 예로부터 아젤란 성좌님께서 전해 내려오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
“제625장, 사절의 가르침, 누군가 힘든 상황이라면 악한 일이 아닌 이상 도움을 주어라. 그럼 그들의 마음이 구원받을지어다…라는 것이죠! 수도사님이 주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건가?’
로키는 이곳 대륙의 종교적 영향력에 대해 얼핏 들은 바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게다가 까마귀 모습은 워낙 친숙한지라.”
‘친숙해?’
그의 말에 로키는 의아해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