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became a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44)
성좌가 된 플레이어-44화(44/250)
제44화
“…창고?”
보통 이런 약재가 많은 곳에는 약을 보관하는 창고도 따로 있기 마련이다.
샐럿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슬쩍 로키를 바라봤다. 그는 생각에 잠긴 듯 이마를 짚고 있었다.
‘…바빠 보이네.’
어떻게 하지? 열어봐?
샐럿의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지하실에서부터 향긋한 약초 냄새가 흘러나왔다.
‘구경은 해도 된다고 했지?’
호기심이 강한 그녀는 끙끙거리며 문을 열었다. 잘 손질된 건지 뜻밖에도 문은 잘 열렸고 이윽고 검은 공간이 드러났다.
샐럿은 그 모습에 거부감이 들었다.
다크 엘프의 시야로도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묘하게 그리운 약초 냄새가 그녀의 코를 자극했다.
향기로우면서도 달콤한 냄새는 그녀가 있었던 왕궁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내가 공부했었던 약제실에서도 이와 같은 냄새가 났었는데.’
“뭘 하는 거지?”
로키의 음성에 샐럿은 손가락으로 문 입구를 가렸다.
“응? 그…, 지하실이 있어요. 약초를 보관하는 곳인가 봐요.”
로키는 눈을 깜박거렸다.
그러고 보니 알렉스가 약초 보관 창고가 있다고 했다.
“구경하면 안 돼요?”
로키는 샐럿을 보며 고민했다.
‘계속 서 있기만 해서 지루했던 건가?’
알렉스의 허락은 이미 맡은 상태였다.
그렇담 괜찮겠지.
“멀리 가지는 말도록. 조심하고.”
샐럿은 고개를 끄덕였다.
로키가 다시 고개를 틀어 책을 읽기 시작하자, 샐럿은 지하로 내려가는 문 입구를 조심스레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샐럿은 옆 벽면에 의지한 채 약초 향기를 따라갔다.
그리운 향기였지만, 역시 어두운 시야와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두려움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불빛 하나 없으니 무서웠다.
‘어떻게 눈을 감고 있는 게 더 나은 것 같지?’
그녀는 조심스레 길고 긴 계단을 내려갔다.
청각과 후각에 의지하며 내려가길 잠시, 그녀의 귀에 작은 물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시야가 가까이에 있는 물건을 겨우 식별할 정도가 되었다.
땅을 판 우물과 그것을 끌어 올리는 펌프가 보인다. 벽에는 암반을 깎아 만든 듯한 지하가 보였고, 그 벽에 걸린 귀한 약초들을 보며 샐럿은 감탄했다.
‘대단해! 이것들은 정말로 귀해서 찾기 힘든 건데…! 인간 따위가 어떻게 이 정도로 모은 거지? 아, 왕국에서도 이처럼 약초가 많은 방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했었는데….’
그녀는 약초의 향기를 맡자 조금 전에까지 우울했던 마음이 조금씩 흐려지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 있어 달콤하고 쓰라린 약초 냄새는 마음을 달래주는 무언가였다.
그때, 희미하게나마 썩은 내가 섞여 풍겨왔다.
“…뭐야? 상한 약초가 있는 걸까?”
그녀는 코를 킁킁거렸다.
약초 냄새와 뒤섞여 무슨 냄새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하지만 어디선가 맡아본 냄새 같았다.
‘어디서 나는 거지?’
그녀는 냄새를 추적해 나아갔다. 그리고 커다란 철문 앞에 도달했다.
‘약초 냄새도 나. 하지만….’
생명이 썩었을 때 나는 부패한 냄새도 나고 있었다.
“도대체 뭐야? 이 귀한 약재들을 어떻게 쓴 거야!”
그녀는 왠지 모르게 자신의 추억이 더럽혀진 느낌에 화가 났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행동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닫힌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원형의 손잡이를 돌리자, 닫힌 문이 조금씩 열렸다.
순간, 그녀는 코를 막고 말았다.
지독하리만큼 퍼져 나오는 썩은 내에 그녀는 속이 뒤틀리는 걸 느꼈다. 하지만 냄새보다 그녀에게 충격을 준 것은 철문 안에 있는 ‘그것’들이었다.
그녀는 그대로 부들거리며 뒷걸음쳤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눈가가 축축하게 젖어버렸다.
그녀는 급히 지하 계단을 올라갔다.
***
“……?”
책을 읽던 로키는 자신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느낌에 고개를 틀었다.
샐럿이다.
그녀는 애써 무표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눈가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거 같고, 옷자락을 잡은 손엔 힘이 담겨있었다.
“무슨 일이지?”
“지하.”
“……?”
“그곳에.”
샐럿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아이들이….”
로키는 고개를 틀었다.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작은 입구가 보였다.
***
-신부님! 신부님! 저희랑 같이 놀아요!
아이들의 청명한 소리가 들려왔다.
신난 듯 활기차게 내뱉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 목소리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알렉스였다.
-아아아…?! 또 피망이에요? 제발 다른 요리를 해주시면 안 되나요?
아이들의 불만 어린 소리.
싫다는 듯, 화가 난 듯, 짜증을 내는 듯 투정하는 목소리가 알렉스를 섭섭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신부님…살…려…주세…요!
절망 어린 목소리.
애원하고 절망하며, 살려달라고 외치는 아이들. 피눈물을 흘리며 손을 뻗어왔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알렉스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만지지도 못한 채 내버려 둘 뿐이다.
‘아아….’
알렉스는 아이들을 보며 오열했다. 도와주고 싶었다. 손을 뻗고 싶었다. 그 구원을 바라는 손을 잡고 싶었다.
-신…부…님!
그 목소리에 알렉스의 평온함이 사라졌다.
점차 괴물에게 먹히는 아이들.
그 모습을 보며 알렉스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머리카락이 거칠게 삐져나왔고 눈이 퀭하게 칙칙했다.
-…….
이제는 목소리조차 없다.
아이들의 활기찬 소리도, 투정 부리는 소리도, 울며 애원하는 소리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의 곁에 있는 건 오직 공허함뿐이었다.
그 공허함이 너무나도 컸다.
그는 그 자리를 메우고 싶었다.
예전으로 돌아가게 만들고 싶었다.
아이들과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그 아이들의 기쁨, 투정을 받으며 사랑을 나눠주고 싶다.
그래서…!
괴물에게 먹혔던 이들을 되돌리기 위해 실험을 강행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더는 아이들로 있지 못했다. 그들은 새로운 생명체가 되어버렸다.
그 순수하던 아이들이 아닌 죽음을 뿌리는 역겨운 썩은 시체가 되어버렸다.
***
“…….”
눈을 뜬 알렉스는 넋이 나간 채 앞을 바라봤다.
바짝 말라버린 눈을 손등으로 비비자 이질감과 함께 안구가 아파왔다.
알렉스는 눈물마저 말라버린 자신의 몸 상태에 더는 흐느낄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어깨가 들썩일 뿐이었다.
‘이제 한계로군. 나 혼자서도 이 병을 치료할만한 약을 만들 수 있을 리 없어.’
도움이 필요했다. 그렇기 위해서는 ‘신성 교단’의 도움이 필요하다.
대륙 어디서든 그들만큼 이 역병을 오랫동안 연구한 곳도 없으며 치료제를 만든 곳도 없다.
‘그들이라면… 알고 있을 게야.’
알렉스는 침상에서 일어났다.
비쩍 말랐지만 단련된 근육으로 쌓인 몸을 움직이며 옷걸이에 걸린 로브를 입었다.
탁자에 앉아 깃털이 달린 펜과 종이를 준비해 잉크를 묻혀 글을 적어 내려갔다.
‘성황이 이 편지를 보면 안 된다. 오직 교황님만이 구원해주실 수 있음이니.’
편지를 쓴 그는 봉투에 넣고 촛농을 떨어뜨려 자신의 이름이 담긴 인장을 꾹 눌러 찍었다.
‘내일 아침, 유안에게 편지 좀 부쳐달라고 해야겠어.’
그는 촛불을 끄고 다시 침상으로 향하다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자신의 지하 연수실로 향하는 입구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은 게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설마… 아니, 아니겠지. 괜찮아. 입구를 들킨다 해도 랜턴이 없는 이상 깊숙이 들어갈 수는 없을 테니….’
하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한번 확인해보는 것도 좋을지도 모른다.
마침 입도 심심하던 참이니 같이 수다를 떨며 피망요리라도 먹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후우… 그 여행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알렉스는 랜턴을 든 채 묘지에 있는 연구실로 걸어갔다. 그가 문을 열고 미소를 짓고 말했다.
“어떠신지요? 관심이 가는 것이 있으…?”
하지만 그곳에 아무도 없는 것과 카펫에 가려졌던 입구가 드러난 모습에 알렉스는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맙소사…?!’
설마 그 여행자들이 이 안으로 들어간 것인가…?!
“빌어먹을!”
신을 모시는 성직자에게서 나오기 힘든 욕설이 흘러나왔다.
그는 수도원에 있는 새 부리 가면을 챙겨 오려 했지만 망설였다.
지금 이 고민을 할 사이에도 그들이 그곳을 향해 가고 있다면…?
‘…안 돼!’
더는 고민할 처지가 아니다.
망설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더욱 깊숙이 지하로 내려가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성수는 있다. 게다가 공기 중으로 감염되는 것도 아니야.”
알렉스는 심호흡했다. 그리고 빠르게 지하실로 걸어 내려갔다.
노인의 걸음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빠르고 힘이 있었다.
랜턴에 비친 시야를 의지하며 떨려오는 마음을 추스르고 땀을 닦았다.
진한 약초 향 가운데 나는 썩은 내가 알렉스의 코를 자극했다.
이미 ‘그곳’의 문이 열린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희생자가 나오게 돼!’
알렉스는 지하 계단을 모두 내려간 후 앞으로 걸어갔다. 우물로 소독할 생각도, 약초로 썩은 내를 지울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는 다급하게 지하의 ‘감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겐가?!”
여행자 소녀가 까마귀 탈을 쓴 사내의 뒤에 숨어서 바짓가랑이를 움켜쥐고 떨고 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까마귀 탈을 쓴 사내는 어디에서 꺼냈는지 모를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그 여행자는 자신을 적대시하고 있는 지하실 감옥의 ‘소년’, ‘소녀’들에게 검을 겨누고 있다.
그 순간 알렉스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지금 뭐 하는 짓이냐고 물었네!”
지하 동굴 속에 알렉스의 소리가 메아리쳤고, 그때야 로키가 반응을 보였다.
고개를 틀어 알렉스를 바라본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지독한 짓을 했군. 여기에 이런 괴물을 키우다니.”
“키운 게 아니네! 치료하려는 것이야!”
“치료?”
로키는 감옥 안을 바라봤다.
온통 암벽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그곳에서는 소년과 소녀의 모습을 한 와이트들이 목과 팔, 다리 등에 쇠사슬이 감긴 채 먹잇감인 생명체에게 달려들려고 하고 있다.
눈은 이미 없었다. 공허한 그 공간을 매운 건 구더기와 같은 웜 페스트들뿐이었고, 피부는 이미 검게 물들고 바짝 말라 있었다.
팽팽해진 쇠사슬에 의해 팔다리가 꺾이고 부서진다. 피부가 찢어지면 그사이에 썩은 피와 함께 웜 페스트가 흘러내렸다.
인간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는 모양새였다.
‘완전히 맛이 간 괴물들이야.’
“문을 닫게! 아이들이 다치지 않는가!”
“…아이들? 당신 눈에는 이게 아이들로 보이나?”
“비켜!”
알렉스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철문을 잡았다. 그런 알렉스의 손을 잡은 건 로키였다.
“네놈이 이곳에서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어. 하지만 저 역겨운 기생 식물 때문에 망가진 육체의 주인은 생각지 않는 건가?”
“그래서 치료하려는 거다!”
“저게… 치료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로키는 어이가 없다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미 감옥 안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죽어’있다.
아이라는 생명체라기 보다는 ‘웜 페스트 덩어리’였다.
지금의 이 상태라면 로키의 정화 포션과 회복 포션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 손 놓게.”
“저 아이들은 뭐지?”
“놓으라고 했네.”
알렉스의 눈이 날카롭게 로키를 노려봤다.
살의가 담긴 눈빛에 로키는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그는 이 세계에서 반인반신의 존재.
인간 따위가 자신에게 살의를 띈 것에 저도 모르게 살기를 내뱉었다.
“……?!”
알렉스는 멈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알렉스뿐만 아니라 샐럿 또한 깜짝 놀라 그에게서 뒷걸음질 치며 떨어졌다.
로키는 심호흡하며 알렉스의 손을 풀었다. 그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최대한 성질을 죽였다.
‘…집착의 이유가 이거였나?’
평범한 수도원의 노인이라면 이렇게 강박적으로 웜 페스트를 연구할 리 없을뿐더러, 그 무시무시한 역병을 유리막에 전시하면서까지 실험을 했을 리도 없었다.
눈앞에 있는 아이들이 이 집착의 원인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가족… 같은 건가?’
가족. 하지만 이미 감염되어버린 존재.
그것을 최대한 되돌리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물론, 결과는 처참했을 터.
“정말로… 치료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차분하게 높임말로 바꿔 묻자, 알렉스는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그는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네! 할 수 있어! 할 수 있고말고! 치료할 수 있어! 가능해! 가능하다고! 가능…!”
그는 몇 번이고 되새기며 말했다. 마치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억지로 자신을 설득시키기 위한 말 같았다.
그런 알렉스의 말을 로키는 끊어버렸다.
“불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