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became a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47)
성좌가 된 플레이어-47화(47/250)
제47화
“귀족? 어떤?”
그의 말투에는 호기심이 담겨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짤막하지만 덤덤한 로키의 말투에 당황한 것은 애쉬였다.
귀족이라고 밝히면 조금이라도 정중해질 줄 알았더니, 전혀 아니었다.
‘믿지 않는 건가?’
애쉬는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비록 피와 흙먼지가 묻어 있었지만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의복이다. 지나가던 사람이 보면 백이면 백 고귀한 혈통으로 볼 증거였다.
‘설마, 내 몸이 좋지 못하다는 걸 알고 그러는 건가?’
와이트에게 두 다리를 잃었으니, 이리 무시하는 거겠지!
‘허! 하지만 미천한 신분으로 감히…어?’
애쉬는 몸을 살피다 순간 멈칫했다.
‘다리가…, 있어?’
분명 뜯어졌던 다리가 멀쩡히 있었다.
‘…그렇다면! 내 몸은?’
애쉬는 몸을 더듬거렸다. 특히 배 부위를 어루만졌다.
성수로도, 고위급 치료 마법으로도 회복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곳이었다.
그런 상처가 지금은 흉터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있었다.
“도대체…?”
“어떤 귀족이냐고 물었다만?”
로키의 질문에 애쉬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꿈? 꿈인가? 하지만 이렇게 생생한 꿈은… 그럼 그때 느꼈던 아픔은…?”
“…….”
자신의 질문이 무시당한 로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처 때문인가?”
“…치료해준 건가? 그대는…. 마법사인가? 하지만 잘린 다리와 구멍 뚫린 배를 어떻게…?”
믿을 수 없는 기적에 허덕여 하는 애쉬였다.
로키는 그를 보며 귀찮은 걸 미루기 위해 손가락으로 나무 위를 가리켰다.
“……?”
애쉬는 그의 손을 따라가자 한 명의 소녀를 볼 수 있었다.
나무 위, 나뭇가지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소녀.
구릿빛 피부와 선홍빛 눈, 후드 사이로 내려진 은발이 인상적인 소녀였다. 그녀가 입고 있는 고급스러운 의복에 애쉬는 의문이 들었다.
‘귀족 집 아가씨인가? 그렇군. 들은 적 있어. 노드인들이 짐승의 탈을 쓴다고 말이야.’
그가 보기에는 귀족집 아가씨와 호위로 고용된 노드인로 보인다. 그렇담 다른 일행은…?
애쉬는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가출한 귀족 아가씨인가?’
그렇게 생각하기도 잠시, 들려오는 소리에 그 추측은 전부 사라져버렸다.
“엘프의 약은 상당한 효력을 지니지. 네 상처도 약으로 치료한 것이다.”
로키의 말에 당황한 건 샐럿이었다.
엘프의 약은 효능이 뛰어나다. 하지만 포션이나 치료 마법에 비하면 효과가 매우 미비했다.
그런데 대륙의 그 어떤 포션도, 치료 마법으로도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엘프의 약으로 치료한다?
그런 건 전설이나 동화에서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엘프?”
애쉬는 다시 다크 엘프, 샐럿을 쳐다봤다.
가려진 후드 사이로 기다란 귀가 보였다.
“진짜… 엘프로군.”
그로서도 엘프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만큼 낯설고 신비한 존재였다. 하지만 아무리 신비하더라도 과연 그런 게 가능할까?
“저 사교도가 나를 살려준 건가…?”
확인차 묻던 애쉬는 입을 다물었다.
로키가 그에게 미약하게나마 살기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려준 은인에게 사교도라니… 예의가 없군.”
“…….”
“뭐 상관없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네놈을 구해준 거니까.”
이야기?
설마, 단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자신을 살려냈단 말인가?
로키는 그런 애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죽음의 천사에 대해 알고 있나?”
***
로키는 역병이 돈다는 곳만 골라서 찾아가고 있었다. 정보가 부족한 그로서는 발로 직접 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죽음의 천사라는 것을 알고 있어 보이는 금발이 청년을 만난 것이다.
대답을 기다리는 로키는 애쉬를 쳐다봤다.
애쉬는 로키를 보며 어쩐지 망설이는 눈치였다.
“아는 것을 말해라. 아는 사실대로.”
압박하는 듯한 분위기에 애쉬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따지는 투로 로키에게 말했다.
“…말이 짧군. 내가 몰락 귀족이기는 하나, 엄연히 고귀한 혈통이다. 그러니 예의를 갖추-.”
“…말이 짧다.”
애쉬의 말은 로키의 짤막한 말에 의해 끊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애쉬의 바로 옆으로 스쳐 지나간 섬광 때문이었다.
너무나도 빨라 인식하기도 힘든 속도의 빛이 지나갔고 뒤이어 풍압이 애쉬의 피부를 때렸다.
애쉬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잘리며 흩날렸다.
애쉬는 굳어진 채 삐꺽거리는 고개를 겨우 돌려 뒤를 바라봤다.
좌우로 갈라진 나무들이 쓰러졌다.
다시 고개를 돌려 로키를 보자, 그가 손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했다.
‘…신기 사용자?!’
손을 휘두르기만 했을 뿐인데 나무를 베다니?!
엄청난 위력을 가진 실력자였다.
그제야 자신이 의식을 잃기 전, 와이트가 조각이 되어 흩날린 걸 떠올렸다.
“고귀한 혈통이든 뭐든 상관없다. 우리는 네가 말한 ‘사교도’니까 말이지.”
로키는 진한 미소로 애쉬를 노려봤다.
“…….”
애쉬는 마른침을 삼켰다.
까마귀 탈로 가려져 로키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지만, 분위기만으로도 온몸을 난자하는 듯한 위엄에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말았다.
그동안 배웠던 제왕학은 의미가 없었다.
애쉬는 자신의 신분을 존중하는 귀족만 상대해왔다. 처음으로 신분이란 울타리 없이 까마귀 사내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당하니, 머리가 백지장처럼 새하얘지는 건 당연했다.
애쉬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를 쓰며 입을 열었다.
“죽음의 천사…에 대해서는 나도 모른다.”
애초에 그것이 무엇인지도 그는 모르고 있었다.
술집에서 평민들이 안줏거리 삼은 소문 따위를 그가 접해 볼 리 없었다.
로키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지만, 역시나 하는 결과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쓸모없는 짓이었군. 아까운 포션만 날렸어.”
“…….”
난생처음 받는 대우에 애쉬는 할 말을 잊어버렸다.
마치 계급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말투다.
‘가만, 이 녀석… 노드인이었지?’
그들에게는 고용주와 피고용자만 있을 뿐, 신분의 고하 따윈 따지지 않는다. 그래서 귀족들은 노드인을 싫어했다. 다만, 그 어떤 용병보다 ‘신용’만큼은 높이 쳐주었다.
야만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긍지로 고용주가 먼저 배신하지 않는 한 그들도 배신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점을 떠올린 애쉬는 골똘히 생각했다.
이런 녀석들은 신분제에 대해 몇 날 며칠을 설명해도 알아들을 리 없었다.
애쉬는 로키의 눈치를 살폈다.
로키는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눈치였기에 애쉬는 아는 대로 말하기로 했다.
“죽음의 천사 따위는 모른다. 하지만….”
“……?”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알고 있지.”
“…무슨 말이지?”
“암흑가라고 들어봤나?”
로키는 미소를 짓고 턱을 쓰다듬었다.
폴에게 들은 적이 있다.
대륙 곳곳에 퍼져 있고 정보력만큼은 비교할 바 없이 뛰어난 조직.
폴 일행도 그 조직을 찾지 못했다 했건만, 눈앞에 있는 이 청년은 알고 있단 말인가?
“그 조직에 대해 알고 있나?”
“알고 있지. 그리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과 교섭을 했었다. 원한다면 만나게 해주겠다.”
마침, 애쉬도 이 노드인의 힘이 필요했다.
신기 사용자가 호위라면 두려울 게 없을 것이며, 노드인이라는 점에서 적어도 로니아 용병보단 훨씬 신뢰가 갈 터였다.
애쉬는 고개를 숙였다.
우선 그의 눈 밖에 날 순 없었다.
“우선, 나를 살려준 것에 감사하마.”
상대방은 모르겠지만, 왕족이 고개를 숙인다는 건 크나큰 의미가 있다.
“내가 그들과 다리를 놓아주마. 대신, 나를 보호해다오. 그에 따른 보상도 해주겠다.”
용병으로서 로키를 고용하겠다는 이야기.
“나를 로덴 영지까지만 안내해다오.”
로키는 곰곰이 생각했다.
아직도 하대하는 게 거슬렸지만, 귀족인 점을 고려해 로키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보상이라 해봤자, 로키에게 있어서 금전적인 보상은 필요가 없다.
다만, 상대가 대륙의 정보 조직과 접촉할 수 있는 연결점을 제공해준단다.
그 점은 상당히 구미가 당겼다.
“그럼 잠깐 동행하도록 하지.”
로키의 말에 애쉬의 눈에 희망이 담겼다.
“감사하마! 그런데….”
애쉬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노드인과 엘프의 조합.
참으로 안 어울리는 동행이다.
그 사이에 자신까지 끼자니 참으로 기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너희는 누구지? 용병…? 아니면 여행자인가?”
“우리…? 우리는….”
로키는 말을 하려다 ‘우리’라는 말에 흠칫하며 나무 위에 있는 샐럿을 힐끔 쳐다봤다.
‘언제부터 우리라는 단어를 칭하게 된 건지….’
로키는 입맛을 다시며 생각하던 단어를 내뱉었다.
“약초꾼이다.”
***
애쉬를 만나고 반나절이 지났다.
“끄응~!”
샐럿은 잠에서 일어나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숲에 있을 때는 언제 습격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노예였을 때는 어떤 끔찍한 짓을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던 그녀는 안심하고 잘 수 있는 현재에 감격해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그’ 덕분에 가능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의지하게 된 거지?’
마음만 먹으면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 아니, 애초에 그는 그녀를 억류한 적이 없다.
그러니 아무 말 없이 떠나도 그는 그러려니 할 것이다.
그저, 옆에 머물고 싶고 호기심이 생긴 게 그녀였다는 게 문제였다.
‘그 이상한 포션도 그렇고, 그 이상한 힘도 그렇고… 진짜 정체가 뭘까?’
호기심이 많은 그녀로서는 그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어느새 복수에 관해서도 점차 잊어가고 있다는 걸 그녀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몽롱한 눈을 하고 길게 하품을 한 그녀는 문득 자신의 주위에 로키가 보이지 않는 걸 깨닫고 흠칫 놀라며 상체를 급히 일으켜 세웠다.
‘설마?!’라는 생각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샐럿은 옆에서 들려온 음성에 행동을 멈췄다.
-…걱정하지 마. 그분은 이 근처에 계시다.
“…….”
샐럿은 어느새 소환된 이프리트를 쳐다봤다.
그는 화톳불에 피워진 불 위에서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어딨어?”
-저쪽 숲.
이프리트는 손가락으로 숲속을 가리키자 샐럿은 망설임 없이 그곳을 향해 걸으려 했다.
“…어디 가는 거지?”
애쉬가 샐럿을 보며 말을 걸어왔다.
그의 의상은 피가 묻은 찢어진 제복 그대로였다. 육체는 상처 하나 없이 모두 회복했지만, 정신적인 피로가 쌓였는지 눈이 초췌해 보인다.
샐럿은 그를 잠시 바라보고는 무시한 채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인간 따위와 말을 섞고 싶지 않은 그녀였다.
그나마 인간 중 좋은 인상을 받은 것이 알렉스였지만, 다시 수도원으로 찾아갈 리 없으니 그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샐럿은 생각했다.
“자, 잠깐-! 기다려다오. 그 노드인도 보이지 않-.”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윽-!”
침음 소리에 샐럿은 고개를 돌렸다.
애쉬가 급히 움직이다 화톳불에서 튄 불똥에 손을 덴 것이다.
‘이래서 방구석 귀족 놈들은….’
샐럿은 한심하다는 듯 그를 쳐다보다가 무시하려 했지만, 마음에 걸렸는지 발길을 옮겼다.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손 줘봐.”
“…….”
애쉬가 손을 내밀자, 샐럿은 약 가방을 꺼내 그의 손을 약을 발라주고 그 위에 나뭇잎을 감싸주었다.
“고, 고맙다.”
애쉬는 얼굴을 붉혔다.
“얌전히 있어.”
“어, 어디 가려고 한 거였나?”
“그를 찾으러 가는 거뿐이야.”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아나?”
“종종 자리를 뜨곤 해.”
“그, 그렇군.”
애쉬는 우물쭈물했다.
마치 갈 곳 잃은 어린아이처럼 불안해 보인다.
그런 애쉬에게 샐럿은 동정심이 생겼다.
마치 자신의 옛 모습을 보는 듯했다.
“묻고 싶은 게 있다.”
“뭐야?”
“그… 노드인. 그는 어떤 사람이지?”
“…노드인?”
샐럿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로서는 노드인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그 수도사도 그에게 ‘노드인’이라고….’
그러고 보면 샐럿은 그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함께 다니긴 했지만 서로 자주 이야기하는 편은 아니었다.
알렉스와의 만남 이후로 나눈 말을 따지더라도 겨우 열 마디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로키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으며, 애쉬의 말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말문이 막힌 그녀를 보며, 애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답을 기다리는 애쉬를 향해 샐럿이 입을 열었다.
“그냥… 말했다시피 약초꾼.”
“약초꾼? 물론 그가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실력만 보면 평범한 약초꾼으로 살기엔 너무나 아까운 인재다. 그럼, 그가 원하는 게 있나? 그 암흑가와의 접선 말고, 혹 재물이라던가?”
애쉬는 왕족이었다. 지금은 이런 상황이지만, 이후 일이 잘 해결된다면 보상을 줘야 했기에, 이러한 질문을 한 것이었다.
“모, 몰라.”
샐럿은 점차 위축되었었다.
질문이 들어올 때마다 입을 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그럼….”
그리고 다음 애쉬의 질문에-.
“그의 이름은?”
샐럿은 말문이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