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became a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51)
성좌가 된 플레이어-51화(51/250)
제51화
“……?”
웬 사내가 있다.
무언가 낯익은 사내였지만 모습은 매우 초라해 보인다.
눈빛은 죽어있고 턱에는 정리되지 않은 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다. 얼굴빛은 창백했으며 뺨은 홀쭉한 것이 며칠은 굶주린 것처럼 보인다.
“…누구?”
로키는 진심으로 물었다.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로키에게 있어 정말 인상 깊은 인물이 아니면 기억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내는 로키를 보며 눈물을 울컥 쏟으며 외쳤다.
“저, 저입니다! 유안! 잡화상 유안입니다! 얼마 전 제가 알렉스 수도사님이 계시는 수도원에 모셨지 않았습니까?”
그제야 로키는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을 수도원에 안내해준 잡화상이었다.
그런데 그가 왜 이곳에…?
“무사하셨군요!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유안은 로키의 손을 잡으며 애처롭게 울었다.
***
유안과 로키, 애쉬와 샐럿은 하르마 영지의 하나뿐인 여관으로 향했다.
여관 역시 영지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해주는 듯 허름하고 초라했다.
입구로 들어서자, 카운터와 배치된 원형 탁자가 보였다.
촛등이 실내를 겨우 비추었고, 그곳을 제외한 곳들은 모두 빛이 비치지 않아 어두웠다.
주변의 다른 건물과 달리 여관은 2층으로 되어 있었지만, 방이라고 해봐야 4개 정도가 한계였고, 손님도 없는 듯 겨우 한, 두 명 정도가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로키가 여관에 들어서자 썩어 문드러진 바닥에서 삐꺽거리는 소리가 났다.
건장한 성인 남자가 힘껏 바닥을 치면 부서질 거 같다.
갑자기 나타난 손님을 본 여관 주인은 깜짝 놀라며 그들을 정성껏 자리로 안내했다. 그 또한 장사가 안되니 힘든 모양이다.
간단한 식사를 주문했지만 나온 것은 가격에 비해 시들시들한 야채수프와 상한 게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로 색이 변한 빵이 전부였다.
로키는 빵조각을 집어 들고는 고개를 저으며 유안에게 내밀었다.
“많이 드시지요.”
“가, 감사합니다!”
로키는 사실 여관에 대해 로망이 있었지만, 그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게임과 같이 수많은 모험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왁자지껄 웃으며 술을 마시는 광경 등을 생각했지만, 모험가는커녕 영지민 몇몇만이 앉아 수다를 떨 뿐이다. 활기보다는 음침하기 짝이 없다.
“…초라하군요.”
그의 감상을 말하자 유안은 씁쓸한 미소로 말했다.
“그야 모두가 힘든 시기이니까요.”
유안과 로키, 샐럿은 원형 탁자에 자리했고, 애쉬는 배정받은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유안은 붉어진 눈을 손등으로 닦았다. 그리고 로키가 사준 음식을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어 씹어먹었다.
그동안 며칠째 먹지 못한 모양이다.
그 모습에 로키는 궁금해졌다.
예전에 본 유안이라는 이 잡화상은 마르긴 했어도 이 정도로 초라한 형색은 하지 않았었다.
한때 산적에게 속옷 빼고 모두 털렸음에도 털털한 웃음을 짓던 그가 지금은 우울증 환자처럼 불안한 눈빛으로 로키를 쳐다보고 있다.
“저, 저기… 죄송합니다. 혹시 남은 음식은 가져가도 되는지요…?”
길거리의 거지 같이 구걸까지 했다. 자존심이고 뭐고 없었다. 그의 눈은 굶주림에 대한 공포와 절망만이 가득해 보였다.
로키는 그런 유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이 은혜,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유안은 꾸벅꾸벅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 있었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토록 긍정적이던 사람이 이런 몰골이 된 것일까?
로키는 망설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로키의 말에 음식을 챙기던 유안은 몸을 떨었다.
그는 손에 힘을 주며 탁자를 내려쳤다.
“…크흐흑.”
그리고 서럽게 울음을 터트렸다. 로키의 옆에 앉은 샐럿은 당황했는지 안절부절못했다.
유안은 흐느끼는 말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을이… 불탔습니다.”
마을이 불타?
“어쩌다…?”
피로에 얼룩진 유안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상인분들과 동행하며 마을을 떠난 직후, 잊은 물건이 있어 아내와 함께 마을로 돌아갔는데… 모두 불탔더군요. 남은 건 재뿐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조리….”
유안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움켜쥐었다.
“…죽었습니다. 산적이 습격한 것 같았습니다. 마을에 돈이 되는 물품은 모조리 사라지고 없더군요.”
“…산적?”
겨우 산적 따위에?
로키가 본 수도사라면 산적 수십 명 정도는 손쉽게 격퇴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역병도 아닌 산적?
웜 페스트라면 모르겠지만 산적 따위에게 졌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딱히 상관할 봐는 아니지만.’
그래도 묘하게 신경 쓰였다.
“수도사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
유안은 분노한 듯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는 인상과 어울리지 않게 살기 어린 눈빛을 보였다.
“알렉스 수도사님은 제가 고아일 때부터 저를 키워주신 분이시죠. 요즘은 벌어지는 로니아 왕국의 동서 전쟁에 길을 잃고 헤맨 분들께 마을로 데려가 보금자리까지 마련해주시는 선량하시고, 존경받는… 정말로 멋진 분이셨지요. 그런 분을 그 썩을 놈들이…!”
유안은 이를 뿌듯 갈았다.
“그분의 목을 베고 나무 기둥에 걸어놨습니다. 게다가 그분의 피로 ‘나는 사교도입니다’라고 써놓기까지 했죠. 썩을 놈들! 천벌 받을 놈들!”
“…….”
“쳐 죽일 놈들! 개자식들!”
욕을 하는 유안을 보며 샐럿은 로키를 쳐다봤다.
“그 인간 노인. 죽은 거예요?”
“…….”
로키는 그녀의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은 채 유안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서 이곳에 온 겁니까?”
“…네, 제 사정으로 있을 만한 곳은 이곳, 하르마 영지뿐입니다. 지금 아내와 같이 왔습니다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합니다.”
“아내분은?”
“지금 아는 지인과 함께 있습니다.”
“그렇군요.”
“여행자님께서는 뭐 아시는 거 없습니까? 그… 마을이 불탄 이유 말입니다!”
유안의 말에 로키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나온 직후 일어난 일이니 알 수 있을 리 없다. 게다가 안다고 해도 눈앞의 사내에게 말해봤자 좋을 게 없을 것이다.
“그렇습니까? 수도사님이 부탁한 우편도 보내드려야 하는데, 그게 마지막 유언이 될 줄은….”
유안은 편지를 꺼내 들었고 로키는 편지를 보며 물었다.
“보낸다고요?”
“신성 교단에 보내는 겁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모든 걸 정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
유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잡담이 길었습니다. 이 은혜는 언젠가 반드시 갚겠습니다! 그럼 여행자님, 조심하십시오.”
“…그쪽도 행운을 빕니다.”
유안이 여관을 빠져나갔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샐럿은 로키를 빤히 쳐다봤다.
“……?”
“그 인간 노인, 어떻게 된….”
“…먼저 방으로 들어가라. 일을 도와줘서 고마웠다.”
그 말에 샐럿은 고개를 숙였다. 로키가 말하기를 꺼린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인간 노인, 죽은 걸까? 그래도… 착한 인간이었는데.’
샐럿은 토라진 얼굴로 2층 배정된 방으로 걸어갈 때였다. 바로 맞은 편에서 애쉬가 걸어오고 있었다.
씻다 내려온 듯 얼굴과 머리에 물기가 젖어 있다. 다만 샐럿의 눈에는 그의 손이 상당히 눈에 띄었다.
여관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깨끗했던 애쉬의 손은 시퍼런 피멍이 들어 있었다.
“그 손은…?”
애쉬는 손을 보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아인 따위가 신경 쓸 바 아니다.”
묘하게도 신경질적인 말투다.
그 점을 애쉬 본인도 깨달았는지 입을 다물었다.
“…뭐?”
‘기껏 걱정되어 물어봤더니…!’
샐럿은 울컥해 그를 지나치며 걸어갈 때였다.
애쉬는 그런 샐럿을 쳐다보며 말했다.
“미, 미안하다. 아인.”
샐럿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멈췄다.
“…나는 아인이 아니라 샐럿이란 이름이 있어.”
“그래, 샐럿…. 그…. 너는 개종할 생각 없나? 저 노드인은 개종한 듯하더군. 너도 개종한다면 대륙에서의 대우가 달라질 거다.”
그건 애쉬가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개종이고 뭐고 아인은 애초에 인간 취급하지 않는 걸 잘 아는 샐럿이었다.
샐럿은 뒤를 돌아보며 애쉬를 보았다.
“싫어.”
단 한 마디와 함께 혀를 날름 내민 샐럿이었다.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빠른 걸음으로 방으로 향했다.
그 모습에 애쉬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쉽군. 꽤 괜찮은 인재라 받아주려 했는데…. 과연 아인은 아인인 건가…?”
그녀의 의술이라면 자신에게 상당히 도움이 될 터. 어쩌면 로니아의 왕, 아버지의 치매를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첩이나 노예로 둔다면 괜찮겠지.”
아인을 그대로 옆에 두는 건 위험하다. 신성 교단의 미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식상이라도 첩이나 노예로 부린다면 그들도 넘어가 줄 것이다.
‘그전에 신성 교단과의 오해를 풀 수 있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애쉬는 계단 아래, 카운터에 있는 로키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저 노드인. 나와는 신분의 격차가 있으니, 그 아인 역시 나를 따를 터.”
아인에게 있어 대륙은 위험한 곳이다.
그러니 자신이라면 저 노드인 보다 더 안전하게 그녀를 지켜줄 수 있을 터였다.
애쉬는 천천히 로키에게 다가갔다.
그는 카운터에 있는 여관 주인에게 술을 시키고 허락도 없이 로키의 옆자리에 앉았다.
로키를 회유할 생각에서였다.
엘프만이 아니라, 이 노드인도 상당한 인재.
둘 모두 얻게 된다면 지금의 상황에선 상당히 든든해질 것이다.
“노드인, 할 말이 있다. 같이 이야기 좀 하…읍?!”
하지만 그가 말을 다 마치기 전 로키의 손에 막혀버렸다.
로키의 손은 그의 입을 틀어막는 것으로도 모자라 으깰 것처럼 힘을 주었다. 그리고 살기 어린 눈빛으로 애쉬를 노려봤다.
“어이, 애송이.”
“……?!”
로키의 눈빛에 애쉬는 덜컥 겁이 났다. 심장이 쪼여오고 오싹한 느낌에 등골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로키의 악력은 점점 애쉬를 압박해왔다.
카운터에 있던 여관 주인은 깜짝 놀라 술을 타던 잔을 떨어뜨렸고, 여관에서 술을 즐기던 영지민들은 깜짝 놀라 그 둘을 바라봤다.
주변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로키는 애쉬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네놈이 입을 놀리는 건 상관없다. 네가 다른 이를 평가해도 말이다. 다만 내 일행에게 그따위로 말한다면 난 네놈과의 거래고 뭐고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라.”
애쉬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치 자신의 혼잣말을 들은 것 같은 행동이다.
“그녀가 마음에 든다면 동등한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해라.”
‘어떻게?! 2층에서 한 말을…!’
내심 속내마저 들켰다는 것에 수치심이 들었다.
사물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왕족이 아인에게 호감을 가진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자신은 그런 그녀를 지켜주고자 생각했을 뿐이다. 그게 뭐가 잘못되었단 말인가!
“내가 있는 곳에서 내 동료를 무시하는 발언은 나에게 하는 것과도 같다. 그걸 명심하도록.”
로키의 낮은 목소리에 애쉬는 떨리는 얼굴로 고개를 수어 번 끄덕였다.
로키는 그제야 손을 풀었다.
애쉬는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고 로키를 노려봤다.
“너무하는군. 실수가 있어도 나는 귀족이다. 조금만 더 대우를….”
“…말을 못 하도록 턱을 으깨줄까?”
“…….”
애쉬는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자신이 겁을 먹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곤하군. 자도록 하지.”
애쉬는 이를 악물며 2층으로 올라갔다.
“한심하군.”
얼어붙은 호수에 있던 경비병의 말이 맞았다.
다는 아니겠지만, 귀족의 일부는 자신보다 낮은 이들을 하찮게 여기고 있었다.
로키는 애쉬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
우드득….
쩝쩝….
뼈가 부서지고 생고기가 뜯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청년은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절망, 좌절, 그리고 공포와 애원. 그 모든 감정이 담긴 청년은 목이 떨어진 채 바닥에 꽂혀 앞을 바라보고 있다.
시체가 되어버린 청년이 바라보는 건 사냥 당해 죽은 난민들의 모습이었다.
수많은 짐과 수레들이 대지에 널려 있다. 곳곳에는 시체가 널려 있다.
그리고 그 시체는 까마귀와….
와이트의 먹잇감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