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became a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57)
성좌가 된 플레이어-57화(57/250)
제57화
피로 얼룩진 편지.
유안이 마지막으로 하고자 했던 일을 떠올린 로키는 편지를 품에 넣으며 말했다.
“아스가르드로 보내라. 단, 저들 스스로가 가기를 선택한다면 말이지.”
“정말이죠?!”
그녀는 기쁜 듯 손뼉을 쳤다.
“훈 님이라면 그렇게 할 거라 생각했어요. 역시 상냥하세요!”
칸쿤을 보며 로키는 고개를 저었다.
이는 아스가르드의 규칙이었다.
난민을 받아들여 국민을 늘리려는 조치였다.
“하지만 아스가르드까지 보호할 생각은 없다.”
칸쿤은 그 점이 아쉬워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은 자선단체가 아니다.
보이는 난민들마다 일일이 구해줄 수 없는 노릇이다.
그저 자신의 고향으로 가라고 권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허락을 받은 칸쿤은 난민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시무룩해진 얼굴로 돌아왔다.
“…대부분 아스가르드로 가기를 거절했습니다.”
로키는 난민들을 쳐다봤다.
그들에게 희망이란 없다. 돌아갈 집을 잃고, 재산을 잃고, 가족을 잃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보호할 존재, 의지할 존재가 없으니, 남는 건 절망뿐이었다.
그런 그들이 왜 거절한 걸까?
“이유는?”
“…저희를 두려워합니다.”
난민들은 베르세르크 전사들의 도움을 받고 있었지만, 정작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럼 어쩔 수 없다. 포기한다.”
“네….”
칸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쉬가 그런 두 사람을 관찰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저들을 설득해 자신을 돕도록 할 수 있을지 깊은 고민을 할 때였다.
“야.”
갑자기 들려온 음색에 애쉬는 고개를 틀었다.
샐럿이 그를 올려다보며 약 가방을 내밀고 있다.
약 가방에는 약은 없었지만, 붕대와 나무로 만든 고정대들이 들어 있었다.
“다친 인간들이 많아. 치료해줄 건데 도와줘.”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이 사람들, 너희 왕국 사람들 아니야?”
샐럿이 손가락으로 난민이 되어버린 이들을 가리켰다.
“그, 그렇긴 하다만…. 나와는 상관이 없다. 애초에 내 관할 영지도 아니고…. 평민이야 죽어나 가는 게 일상이다. 그걸 일일이 챙겨줄 필요는 없-.”
애초에 여긴 중립 지역이다.
애쉬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애쉬의 태도에 샐럿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봤다.
“쓰레기.”
“……!”
“단지 치료만 해주자는 거였어. 그것조차 안 한다고? 동족인데? 역시 인간들이란.”
샐럿이 실망한 듯 뒤를 돌아보자 애쉬는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아, 아니. 도와주겠다.”
“아깐 싫다며?”
“싫…다는 건 아니었다.”
애쉬의 말에 샐럿은 발걸음을 멈추고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약 가방을 내밀었고, 애쉬는 약 가방을 받아들었다.
“다들 여기서 떠나지 않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 생각일까?”
샐럿은 환자들을 돌보며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다.
그녀도 칸쿤이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전쟁에 의해 고향이 사라진 경험이 있는 그녀인 만큼, 난민들의 상황에 동정심이 생겼다.
“뭐, 뭐가 말인가?”
옆에 있던 애쉬가 용기를 내어 샐럿에게 말을 걸었다.
샐럿은 손가락으로 난민을 가리켰다.
“저 인간들. 다들 갈 곳이 없다고 하니까. 저들을 받아줄 곳이 없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저들을 받아줄 곳?”
애쉬는 난민들을 쳐다봤다.
고향을 잃었다.
가족조차 잃고 남는 것은 없었다.
그것은 애쉬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나와 비슷하군.’
그러면서도 애쉬는 멈칫했다.
똑같다고?
애쉬는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톱에 의해 손바닥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너, 괜찮아? 손이…!”
샐럿은 애쉬의 표정을 보며 놀라 뒤로 물러섰다.
‘아니, 아니야.’
그는 손에 힘을 풀며 저려오는 손을 보고 있는 샐럿을 쳐다봤다.
“저들이 지낼 곳을 마련한다면 너는 만족할 것이냐?”
“뭐?”
넋이 나간 채 애쉬를 보던 샐럿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렇군. 그럼….”
애쉬는 난민들에게 다가갔다.
난민들은 애쉬를 보며 의아해하면서도 경계했다.
넝마 사이로 보이는 고급재질의 의복은 그가 귀한 신분이 아니겠냐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묻고 싶은 게 있다.”
위엄 있는 목소리에 난민들은 절로 위축되었다.
“말씀하십하십시오, 나리.”
“묻겠다. 너희에게 희망이 있는가?”
“…….”
모두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너희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
“나, 나리. 갑자기 무슨 말씀을…?”
“여기에 남아 있다면 너희는 죽을 것이다. 굶어 죽거나, 노예 사냥꾼에게 사냥당하겠지.”
이번엔 샐럿도 눈살을 찌푸렸다.
희망을 주기는커녕 절망만 부각시키는 애쉬의 모습이 옳지 못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잃을 게 없던 난민 중 하나가 화를 이기지 못해 튀어나왔다. 그리고 애쉬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지금 너희의 상황을 말해주지.”
애쉬는 자신의 멱살을 잡은 난민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너희에게 희망이란 없다.”
“……!”
“하지만 이 내가, 너희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그게 무슨….”
애쉬는 시선을 느꼈다.
이 영지에 있는 모든 이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
괴물을 죽인 신화 속 전사들부터, 자신을 천대한 노드의 왕이라는 자도.
그리고 샐럿의 시선 역시.
그 시선을 느끼며 그는 말했다.
“나 애쉬 로니아가 왕족의 명예를 걸고 선언한다! 너희의 터전, 가족의 보금자리! 그 모든 걸 주겠다! 전쟁이 끝난 후, 나의 승리에 너희들의 영광이 함께하리라! 실패하여 내가 죽는다고 해도, 너희들이 살 수 있도록 건의하겠다!”
“…….”
난민들의 눈에는 경악으로 물들었다.
왕족!
“와, 왕자님?”
“설마….”
“지, 진짜야?!”
귀족이 이 자리에서 거짓말할 이유가 없었다.
“와, 왕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난민들은 저마다 엎드렸다.
애쉬의 멱살을 잡고 있던 난민은 황급히 손을 풀고 주저앉았다.
“난 너희를 데리고 로덴 영지로 가겠다! 그곳에 살 곳을 마련해주지! 어떻게 하겠나? 나를 따라올 텐가?!”
생소한 환경, 사람, 몬스터가 가득한 얼어붙은 대지가 아닌, 같은 국가의 다른 도시.
난민들에게 있어선 그곳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왕태자 전하를 따라가겠나이다.”
“저희 또한 따라가겠습니다!”
난민들이 하나둘씩 그에게 말했다.
점차 그 수가 늘어났다.
얼어붙은 대지로 간다는 난민들 역시 몇몇을 제외하곤 그를 따르겠다며 나섰다.
정체불명의 존재보다, 조국의 왕자를 선택했다.
애쉬의 모습을 본 로키는 입맛을 다시며 작게 중얼거렸다.
“쇼를 하는군.”
아움은 그 말에 웃음이 터트릴 뻔했다.
“…너무하시군요. 어설프지만 그래도 나름 용기를 내서 한 말일 텐데. 새로 생긴 동료 아닙니까?”
“동료?”
“분명 로키 님을 믿어서 그런 행동을 한 걸 겁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건 상당히 위험한 행위였다.
그럼에도 정체를 밝혔다면 그만큼 로키 일행을 신뢰하고 있다는 거겠지.
“그가 나를 신뢰해, 이 자리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고 생각하나?”
“네? 아, 네. 아닙니까?”
“그는 나를 신뢰하지 않아.”
처음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애쉬의 본성이 드러나고 있었다.
로키뿐만 아니라 샐럿마저 무의식적으로 깔보고 있다.
“내가 저 녀석에게 느낀 인상에 대해 말해줄까? 그는….”
로키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애쉬를 쳐다봤다.
“벌레다.”
***
“이제 되었나?”
샐럿은 갑자기 무엇을 묻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좀 전에 애쉬가 내뱉은 말을 떠올렸다.
샐럿은 우물쭈물했다. 그녀는 뭔가 석연치 않은 듯 그와의 거리를 벌렸다.
“아, 으, 응….”
그녀의 한 마디에 애쉬는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 위엄을 보인 자는 없다. 지금은 한 여자에게 보여진 자신의 멋진 모습에 스스로 심취한 오만한 왕자가 있을 뿐이다.
애쉬는 로키와 아움의 반응을 살폈다.
그가 자신에 대해 이름과 신분을 밝힌 것은 어느 정도 계산된 것이었다.
왕족이라는 걸 밝힌다면 이 정체불명의 세력은 그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다.
로키의 행동 역시 조심스러워질 것이고 지금까지의 무례를 사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애쉬만의 착각이었다.
“대어를 낚으신 듯합니다. 왕족이면 외교적으로 좋은 협상 거리지요.”
아움의 말에 로키는 흥미가 동했다.
“협상? 어떤 목적으로?”
“로니아 왕국과의 교류, 그리고 신성 교단의 신뢰입니다.”
“오호!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로키 또한 아움 리니아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애쉬가 왕족이라면 여러 가지로 이용할 가치가 있었다.
“저 왕자를 잡아 서부 로니아에 넘기는 겁니다.”
동료가 아닌 듯하니, 아움은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했다.
바로 내전을 끝낼 수 있게 애쉬를 서부 로니아에 넘기자고.
그렇게 되면 동부 로니아는 중심을 잃고 반란군 역시 쉽게 와해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신생 국가 아스가르드에 대해 알려질 것이다.
“문제는 우리 아스가르드에 대한 인식이겠지.”
아움은 로키의 말에 순순히 긍정했다.
“그렇겠죠. 잘해봤자 반역자를 잡아 바치고 건국을 선언한 무장단체라 가벼이 여기겠죠. 심지어 노드인 국가라는 것을 알게 되면 잘해봤자 약탈자 집단이라고 할 테고요. 그렇게 되면 우호 관계는커녕, 비웃음만 얻을 겁니다. 신성 교단에서는 사교도의 나라라고 할 테고요.”
그리고 그 끝에는 전쟁이겠지. 그렇게 된다면 로키와 아움으로서는 ‘귀찮아’질 뿐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나?”
아움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압도적인 무력을 보이면 됩니다.”
너무나도 명쾌한 답을 제시한 아움이었다.
그때, 애쉬는 로키와 아움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기대감이 깃든 눈빛이다.
“잠시 대화를 원하오.”
아움은 힐끔 로키를 쳐다봤다.
“네가 알아서 해라.”
그 말뜻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되어 있다.
‘난 상대하기 싫으니 네가 알아서 해라.’라는 의미와 동시에 여기서 왕자를 잡아 팔아넘기던지, 아니면 그와의 대화를 통해 다른 방법을 선택하든지 하라는 말이었다.
“다만, 암흑가에 대해서는 포기 못 한다.”
때에 따라 고문까지 해서라도 알아내라는 뜻이 담긴 말이기도 했다.
로키는 등을 보인 채 다른 곳으로 향하고, 아움은 애쉬를 맞이하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거 한 나라의 왕족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예가 아닌 가볍게 묵례만 건넸다.
그 태도에 애쉬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심호흡하며 마음을 달리했다.
“그와 대화하고 싶소만?”
“노드의 왕께선 매우 피곤해하십니다. 저에게 말씀하시지요.”
미소 짓는 아움을 보며 애쉬는 확신이 들었다.
이들은 지금 자신을 경계하고 있노라고.
‘분명 나에게 저지른 무례를 청산할 방법을 고심하고 있겠지!’
…라고 어처구니없는 착각을 한 채.
“일단 나와 나의 백성을 구해준 것에 감사하오.”
“아닙니다. 저희야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가? 그럼… 나를 구해준 것에 대해 보답을 하고 싶은데?”
애쉬는 자연스레 반말하며 아움의 얼굴을 관찰했다.
그의 미세한 반응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자세히 살펴본다.
“보답이요?”
“그래! 자네들을 로덴 영지로 초대하고 싶네.”
아움 리니아는 미소 짓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철없는 왕자가 자기 무덤을 파는군.’
애쉬의 말은 말만 ‘초대’일 뿐, 사실상 ‘보호’를 요청한 것이었다.
‘하지만 머리는 어느 정도 돌아가는 게 보여. 저래 보여도 왕족이라는 건가?’
‘초대’의 경우, 애쉬를 호위하는 것이 아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베르세르크 전사들에 대한 정보가 새어 나간다 해도 동부 로니아를 돕는 게 아니기에 서부 로니아의 반발을 사지 않고 쉽게 영지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로덴 영지에서 전쟁이 터지게 된다면 베르세르크 전사대는 어쩔 수 없이 로니아 전쟁에 참여하게 될 수밖에 없다.
애쉬는 그 점을 노리는 것이리라.
‘물론 우리가 동부가 아닌 서부 쪽에 붙을 수 있다는 건 가정을 못한 느낌이지만.’
전쟁 중 애쉬를 무력으로 제압해 서부 로니아에 넘겨줄 수는 있지만, 모양새가 나오지 않았다.
‘좀 더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겠지. 초대라… 우리가 초대받는 손님이라고 해도 로덴 영지에서 올바른 대우를 해줄 리가 없지.’
분명 초대받는다면 동부 로니아의 중요 귀족들과의 만남을 갖게 될 것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귀족들은 자연스레 로키와 아움 일행을 무시하고 깔볼 것이다.
그린 듯 연상되는 미래에 아움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힘의 우위를 확인도 하지 않고 나댄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동부 로니아의 왕자, 애쉬를 잡을 가장 적절한 ‘명분’이 되리라.
“그거 참,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