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became a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71)
성좌가 된 플레이어-71화(71/250)
제71화
공격이 계속될수록 로키의 움직임은 점차 둔해졌다.
로키가 입고 있는 갑옷은 극한의 방어력과 자기재생을 가진 갑주였다.
하치만 그렇다 해도 상대의 공격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면 회복보다도 부서지는 속도가 더 빠른 건 당연한 이치였다.
특히 같은 급에 이르는 존재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공격하지 않을 셈이야?”
헬가의 말은 틀렸다.
로키도 공격은 하고 있었다.
다만, 치명적인 일격을 날리지 않았을 뿐.
그 점을 헬가도 인지하고 있었다.
로키가 입고 있던 갑주는 대부분 파손되었다.
악령들은 로키의 팔, 다리, 몸과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 그를 억압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일 텐데?”
“…….”
“뭘 망설이는 거냐. 시린.”
로키의 말에 헬가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실수한 거뿐이야.”
“너는 옛날부터 거짓말이 서툴렀지.”
‘조금만 더 하면 틈이 보일 듯하다만….’
로키는 헬가의 시퍼런 대검을 바라봤다.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동요는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평범한 방법으로는 제압하기 힘들 터.
로키는 입맛을 다셨다.
‘좀 더 공격적으로 가야 하나?’
로키는 가까스로 몸을 가누었다.
온몸이 물먹은 스펀지처럼 무겁다.
이제는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마음 같아선 발할 궁전에 있는 신화급 구속템을 쓰고 싶지만.
지금은 수중에 없으니 다른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지금 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그건 윤시린과 자신이 생각해 만든 존재.
“요르문간드! 펜리르!”
신화 속 로키의 자식들.
신이 낳은 괴수!
로키의 갑옷에서 늑대와 뱀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
“헬가를 붙잡아라!”
로키의 명령에 두 마리의 괴물은 늘어난 몸뚱이로 헬가의 몸을 꽁꽁 감쌌다.
헬가는 낯익은 몬스터에 이를 악물며 로키를 쳐다봤다. 정확히는 로키의 갑옷이었다.
“그 갑옷은…?”
“낯이 익지 않느냐? 너와 내가 고심하며 만들었던 갑옷이다.”
로키가 손가락을 튕기자, 뱀과 늑대의 그림자가 헬가를 더욱 압박했다.
“특히 이 구속 스킬은 네가 고안해낸 것이었지.”
“…….”
“헬가 님!”
흑백교의 신자들이 무기를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슬레이프니르.”
로키가 황금의 창, 궁니르를 허공에 휘두르자 창끝에서 공간이 갈라졌다.
종잇장처럼 얇은 실선이 급격히 확장되며 하나의 괴물 말을 소환했다.
보통 말보다 배는 커 보이는 거대한 몸집과 6개의 다리, 황금빛 갈기와 온몸을 마갑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
슬레이프니르.
신들의 왕, 오딘이 탄 명마였다.
거친 입김을 내쉰 슬레이프니르가 입을 쩍 하니 벌렸다.
입 사이로 거대한 불덩이를 소환해 달려들던 신자들을 향해 내뱉었다.
신자들은 급히 뒤로 물러섰다.
“너희는 그 녀석과 놀아줘야겠다.”
로키는 헬가를 쳐다보며 품에서 녹색 물약을 꺼내 들었다.
정화 포션이었다.
로키가 포션을 마시자, 그에게 달라붙어 있던 악령들이 점차 로키에게서 떨어지며 헬가의 몸속으로 흡수되어갔다.
로키는 두 마리의 짐승에게 붙잡힌 헬가를 보며 붉은 안광을 번뜩였다.
“어떠냐? 상황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느냐?”
“나를, 어떻게 할 셈이야?”
“아무것도. 그저 나를 잊었다면…, 나의 옛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할 뿐이다.”
“…….”
“그리하여…,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싶을 뿐이다.”
로키 또한 자기 자신을 상실해 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헬가를 찾아다닌 이유, 그녀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도 있었지만, 자신의 인격을 보호하기 위함인 것도 있었다.
이 낯선 세상에서 공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그녀였으니까.
“그러니, 이야기를 나눠보자.”
***
로키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그녀와 함께했던 추억들을 말했다.
이 세상이 아닌, 자신들이 있던 세상의 이야기.
이야기를 들을수록 헬가는 미약하게나마 반응을 보였다.
어느새 숲은 어둠이 찾아왔고, 달빛만이 두 사람을 비추었다.
“이제 너의 차례다.”
“나는…, 할 이야기 따윈 없어.”
“무엇이든 좋다. 네가 겪은 일. 네가 살아온 일이라도 상관없다.”
“…….”
그가 투구를 벗어 방긋 미소 짓자, 헬가는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경계심을 완전히 푼 모습.
그는 나에게서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나는….”
헬가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한번 시작된 말은 헬가 본인도 이상하다는 걸 자각할 만큼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 과정 중 그녀는 울분을 토해내기도 했다.
인간을 믿고 따랐을 때의 이야기, 배반당한 이야기.
의지했던 이종족 국가가 멸망한 이야기.
그리고….
그녀가 ‘무언가’를 찾아다녔다는 이야기.
그때부터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로키를 쳐다봤다.
숲속의 나뭇잎 사이로 아침 햇살이 두 사람을 비춘다.
고요함 속에 새들의 지저귐만이 들려왔다.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이름. 다시 불러줘.”
“시린.”
“다시….”
“윤시린.”
“…….”
기나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이제… 와서…….”
로키는 헬가와 시선을 마주봤다.
“왜…이제야….”
그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를 찾았냔 말이에요.”
작은 입가엔 옅은 미소가 자리 잡았다.
“김훈 선배….”
정말로 오랜만에 듣는 이름.
멍하니 헬가를 쳐다본 로키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다. 시린.”
로키 아바타로서가 아닌, 김훈 자신으로서의 첫인사였다.
***
로덴 영지에는 단기간에 수많은 사건이 발생했다.
첫 번째는 전사했다 알려진 애쉬 왕자의 귀환.
중앙 귀족의 주력군을 이끌고 나갔던 애쉬 왕자가 귀족뿐만 아니라 병력 대부분을 잃고 야만인 무리를 끌고 온 일이었다.
이에 로덴 영지에는 약탈이 행해지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았다.
두 번째는 연회장에서 일어난 학살극이었다.
애쉬 왕자가 끌고 온 노드족을 암살자 무리가 습격한 사건.
하지만 전멸당한 건 암살자들이었다.
그들은 노드족의 식사자리에 진열품으로 쓰였다는 소식은 로덴 영지민들을 불안케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여기사가 시체가 꽂힌 꼬챙이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로는 흑백 교단.
그들이 아무런 제지 없이 영지에 들어오고, 영지민들에게 물과 음식을 나눠준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그들이 역병을 부른다는 소문이 있었기에….
영지민들의 혼란이 더욱 가중되었다.
그리고 네 번째.
떠난 줄만 알았던 흑백교가 다시 입성하는 일이었다.
“…어, 어이! 이래도 돼?”
성벽 경비를 맡은 병사들은 자연스레 입성하는 무리를 쳐다봤다.
까마귀 탈을 쓴 노드족과 그 옆에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사교도의 교주, 그 뒤로는 신도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저번에는 그들의 입성을 눈감아줬지만, 지금 영지의 분위기를 알고 있는 경비대로서는 이들의 접근을 허용할 수 없었다.
경비대가 그들을 막으려 하자, 지휘권을 가진 기사가 경비대를 저지했다.
“…명이 떨어졌다. 짐승의 탈을 쓴 노드 족은 절대 건들지 말라고.”
“그런…!”
저번에 들어선 노드족만으로도 상당수의 영지민들이 불안에 떨었다.
이번에도 입성시킨다면, 영지에 독을 푼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휘권을 가진 기사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미 늦었어. 잘못하다간 눈앞이 아니라 뒤를 조심해야 할지도 모른다.”
기사의 말에 경비대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영지민들의 반응에 할 말을 잃었다.
“무슨…!”
영지민의 일부가 그들을 향해 무릎을 꿇은 채 양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경비대를 포함한 일부 영지민들은 그런 그들을 향해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기도하는 자 중에서는 절을 하는 이도 있고, 찬양하는 자도, 심지어는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다.
일반적인 존경이나 동경의 시선이 아니다.
그것은 ‘숭배’였다.
“듣자 하니…흑백교라는 단체가 굶주린 자와 병든 자들을 먹여주고 치료해줬다는군. 그것도 한둘이 아니야. 그런 저들에게 생긴 은혜에 대한 집착과 집념이 얼마나 클지….”
기사는 신음했다.
잘못하면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지금은 조용히 넘어가야 한다.”
기사는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만 봤다.
로키가 저택에 도착하자 마중 나온 건 아움과 쿠단이었다.
특히 아움은 로키를 보며 당혹감을 표했다.
“…뭔지는 몰라도 일을 꽤 거창하게 벌이신 모양입니다.”
로키는 헬가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의 뒤를 따라와 조용히 있을 뿐이었다.
“그녀와 동료들에게 방을 안내해주도록.”
“또 이상한 무리를 데리고 오셨군요. 이번엔 누구…?”
아움은 말을 하다가 헬가를 쳐다봤다.
“죽, 죽음의 천사!”
“…저를 아시나요?”
“당연…합니다. 저 아움 리니아입니다! 기억 못 하시는 겁니까?”
그 말에 헬가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만난 이들을 일일이 기억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 그렇습니까? 그, 그래도 직접 요리를 배웠는데….”
헬가가 모른다는 반응을 보이자, 아움이 아쉬움을 표했다.
“이, 이리로 오십시오! 요리에 관해 이야기를…!”
“…….”
아움은 헬가를 데려갔고, 로키는 쿠단에게 물었다.
“칸쿤은?”
“다크 엘프와 함께 놀고 있습니다.”
“그렇군. 그럼… 할룸 후작은?”
로키의 말에 묘한 위화감이 느낀 쿠단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게… 방에 모셔두었습니다.”
“잘했다.”
로키는 그 말을 남기고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그에게 명령을 내릴 차례였다.
***
할룸 후작은 잠에서 깨어났다.
“어?…여기는…어디더라?”
아움이 안내한 방에 온 지 꼬박 하루가 지났다.
그것을 깨닫자 할룸 후작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욕을 내뱉었다.
“이런 제길! 빌어먹을…! 가, 감히 나를 이곳에 감금시켜?!”
사자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심정으로 이곳에 왔건만.
온종일 그 누구도 후작을 찾아오지 않았다.
문을 두들겨도 반응이 없고, 문도 열리지 않자, 그는 자신이 감금된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사실에 버럭버럭 소리치다 지쳐 잠들었다가 이제야 일어난 것이다.
“젠장, 아직도 오지 않는 건가! 감히 나를 농락해? 이 굴욕은 언젠간…!”
“언젠간 뭐?”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할룸 후작이 식은땀을 흘렸다.
고개를 돌리니 소파에 까마귀 탈을 쓴 사내가 앉아 있었다.
“……!”
맙소사!
할룸 후작이 멈칫한 것도 잠시, 그는 특유의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오오! 이건 그러니까…그… 노드의 왕님이 아니십니까?”
급히 침대에 나와 굽실거리며 로키에게 다가갔다.
할룸 후작은 연회장에서 그를 ‘노드의 왕’이라고 칭했던 걸 떠올렸다.
상대가 그 칭호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마음껏 써주리라.
로키는 그런 할룸 후작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잘 기억하고 있군. 돼지.”
“돼…? 네?”
이 녀석, 지금 뭐라고…한 거냐?
할룸 후작의 얼굴이 붉어졌다.
“저기…. 말이 좀 심하십니다. 그전에…좀 짧기도 하고요.”
“내 목숨을 노린 녀석에게 존대는 필요는 없지 않나? 돼지.”
위협하는 목소리에 깔보는 듯한 말투.
지금까지 이런 굴욕을 겪어보지 못한 할룸 후작이었기에, 그의 이마엔 핏대가 솟아올랐다.
“그, 그래도 교섭하신다고 하셨으니…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주셔야지요?”
로키는 할룸 후작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눈앞에 있는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가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가축에게 예의를 지켜라? 재밌는 농담을 하는군.”
그게 한계였다.
할룸 후작의 이성이 끊어졌다.
그는 주변에 있던 장신용 화분을 들어 로키에게 내려쳤다.
퍽-!
하지만 그 분노가 해결되기 전, 그의 얼굴이 먼저 짓뭉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