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12)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13화
쿠로사키 유리에의 사정(1)
“커헉! 억!”
후지모토가 손을 뻗었다.
전신이 떨렸다. 무언가를 움켜쥐려 뻗은 손끝부터, 몸이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다.
마력 탈진.
강신으로 소환한 스사노오가 한계 이상의 마력을 갈취해 가며 마력 탈진 상태가 온 것이다.
그의 몸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추락하는 후지모토를 강우가 받아들였다.
“흠….”
강우는 후지모토를 옥상 위에 눕혔다. 그가 손을 쓰기도 전에 후지모토는 알아서 죽어가고 있었다.
“커헉! 아, 아아아! 사, 살려… 살려ㅈ….”
처절한 목소리로 그가 애원했다.
투명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스사노오가 죽으며 그에 대한 대가가 치러지고 있었다.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비틀었다.
전신 피부가 찌그러지며 몸이 말라붙고 있었다.
흡혈귀에 피를 빨리듯, 그는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일반적인 마력 탈진의 모습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신을 소환한 대가가 꽤나 비싼 것 같네.”
강우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죽어가는 후지모토를 내려다보았다. 스사노오. 지구, 지옥과는 다른 차원의 존재로 추정되는 신.
‘확실히 강하기는 했지.’
교전 자체는 짧았다.
지금 그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힘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스사노오의 힘이 완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는 확실히 ‘신’이라는 걸맞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싸워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
“…이대로 가이아 시스템이 약해지면 그런 놈들도 지구에 나타나는 건가.”
눈살이 찌푸려졌다.
신들이 본신의 힘을 온전히 가지고 지구에 나타난다면, 그 이상의 재앙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악마교만이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군.”
악마교보다 골치 아픈 존재들이 지구에 나타날 가능성은 충분했다.
근본적은 해결법은 자신으로 인해 망가진 가이아 시스템을 복구하는 것.
하지만 역시 복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실마리는 아직까지 찾을 수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한다면….’
강우는 상태창을 열었다.
“마신이라.”
‘마신이 되기 위한 두 번째 단계’라는 문장이 보였다.
과연 이게 몇 단계까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든 조건을 충족하면 그 자신이 신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이제까지 시스템이 거짓말을 한 경우는 없었으니까.’
무슨 원리인지도, 어떻게 가능한지도 알지 못했지만 플레이어 시스템의 신뢰도 하나는 확실했다.
‘신들을 막기 위해 신이 돼야 한다는 건 좀 오그라들긴 하지만.’
어쨌든 미지(未知)의 존재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힘과 격을 갖춰야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쯧.”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가이아 시스템의 복구처럼 아예 답도 보이지 않을 만큼 막연한 것은 아니었지만 두 번째 단계인 ‘마령’의 달성 조건 또한 알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한다면.’
강우는 말라비틀어져 죽은 후지모토의 시체에 다가갔다.
미라가 된 것처럼 몸이 말라붙어 있었지만 그의 왼쪽 눈은 여전히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강우는 그의 왼쪽 눈알을 집어 들었다.
스사노오의 눈.
무려 신화 등급을 가진 장비의 이름이었다.
“근데 이 자식 이거 어떻게 장착한 거지? 눈을 뽑고 직접 넣은 건가?”
만약 그랬다면 후지모토의 의지는 인정해 줄만 했다.
스스로의 눈을 뽑는 건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니까.
-스르륵.
그런 의문에 답하듯, 손에 쥔 눈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탁구공만 한 크기를 가진 푸른 구체가 만들어졌다.
“아, 그럼 그렇지.”
아무래도 눈을 직접 뽑은 건 아닌 것 같았다.
강우는 푸른 구체를 자신의 눈 쪽으로 가져다 대었다.
-띠링.
[이미 각인이 완료된 장비입니다.]“역시 사용할 수는 없나.”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강우는 스사노오의 눈을 품속에 챙겼다.
그가 필요한 것은 스사노오의 눈 안에 들어 있을 신화 등급의 재료.
그것을 사용한다면 ‘악마의 창조술’ 특성으로 장비를 만들어 볼 수 있었다.
‘그건 나중에 하고.’
강우는 몸을 돌렸다. 가볍게 발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일단 돌아가 볼까.’
후지모토를 엿 먹일 준비를 하느라 지난 3일간 에키드나도, 한설아도 만나지 못했다.
매일 같이 만나던 두 사람과 떨어져 있다는 것은 꽤나 쓸쓸한 일이었다.
지옥에서 느꼈던 고독의 기억이 다시 떠오를 정도로.
* * *
일행이 묵고 있던 곳은 도쿄에 있는 어느 3성급 비지니스 호텔이었다.
차연주나 장현재, 백화연 등이 가진 재력을 생각하면 한참 부족한 호텔이었다.
아마 강우가 감옥에 잡혀 들어갔기 때문에 일부러 이런 값싼 호텔을 구했을 것이다.
그가 감옥에 잡혀 있는 동안 고급 호텔에서 편하게 있을 수 없다는 그럴싸한 생각과 함께.
‘그렇게 속 좁지는 않은데 말이야.’
쓴웃음을 지으며 호텔로 들어갔다.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이 다급히 다가왔다.
“야! 어디 갔었던 거야?!”
“마무리를 지으러 갔다 왔지.”
“마무리…?”
“그래. 당한 만큼은 갚아줘야 했으니까.”
강우는 로비 의자에 앉으며 간단하게 설명했다.
모든 진실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천소연이 알고 있는 것처럼, 후지모토 료마의 정체가 진짜 악마교였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그럼, 처음부터 후지모토 료마가 악마교란 걸 알고 있었던 거야?”
“아니. 지하에 갔을 때 처음 알았어. 그리고 그가 야마다 총리와 함께 날 악마교로 몰아가는 걸 보고 손을 좀 썼을 뿐이야.”
“…왜 우리한테는 알려주지 않았던 거야?”
“시간이 없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쾅!
차연주는 단단히 화가 난 듯 테이블을 후려쳤다.
강우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진정해.”
“진정할 수 있겠어?! 잘못됐으면 네가 악마교로 몰아졌을 수도 있었다고!”
“결과적으로는 별문제 없이 끝났잖아?”
“결과가 중요한 게….”
탁. 흥분한 그녀의 어깨를 한설아가 잡았다.
“진정해요, 연주 씨. 강우 씨 말대로 잘 해결됐잖아요.”
“그렇지만….”
“강우 씨도 생각이 있으셨으니 순순히 따라가셨다고 생각해요.”
침착한 그녀의 말에 차연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난폭하게 두 다리를 꼬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강우 씨.”
한설아가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어딘가 슬픈 표정으로 그의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이번에도…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도움은 필요 없었어.”
“그래도요.”
한설아는 쓸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언젠간… 저도 강우 씨의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
아련한 목소리였다.
잘못 건드리면 그대로 부서져 버릴 것만 같기도 했다.
강우는 한설아의 눈을 바라봤다.
‘도움이 되지 못한다라.’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김시훈, 차연주, 천소연, 에키드나와 같은 사람들에 비하면 확실히 전력으로서의 가치는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꼭 도움이 돼야만 하는 거야?”
“…예?”
“적어도 난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함께 사는 건 아닌데 말이지.”
기본적으로 그는 계산적인 인간이었다. 이득이 되지 않는 일은 어지간하면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설아는 경우가 달랐다.
그는 그녀가 맛있는 밥을 만들어주는 식모로 생각하는 것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서울역으로 이사했을 당시 함께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함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소중한 시간이었다.
‘직접 말로는 전해주지 못했지만.’
지금 이렇게 ‘가족’이라고 부르고 싶은 존재가 생긴 것은 처음이었다.
만년이라는 아득한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일이었다. 심지어 지옥에 떨어지기 전에도 이런 경험은 해보지 못했다.
어색했고, 낯설었다.
표현은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들으면 속 터진다고는 하겠네.’
고구마를 먹은 듯 가슴을 움켜쥘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은 신이 아니었다. 모든 일에 완벽하지도, 통달하지도 못했다.
“그, 그건 저도 아니에요!”
한설아가 소리쳤다.
목소리가 꽤나 컸다.
그녀는 새빨갛게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그녀의 입꼬리가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드라마는 나중에 둘이서만 있을 때 찍지 그래?”
차연주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둘의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신경질적으로 다리를 떨었다.
“야. 아까 전에 스시 먹고 싶다고 했지?”
“그랬지.”
“따라와. 맛있게 하는 집 알고 있으니까.”
차연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멀뚱히 있는 사람들을 쓱 훑어보며 말했다.
“다들 뭐 하고 있어?”
“하하하. 연주의 이런 모습은 또 처음 보는 것 같군.”
“시끄러!”
백화연에게 쏘아붙인 그녀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갔다.
강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참, 쿠로사키 유리에는 그 뒤에 어떻게 됐어?”
“기자들과 한참 얘기하다가 돌아갔다. 그래도 다행이로군. 쿠로사키가 그때 당시의 기억이 없었다면 이 정도로 원활하게 얘기가 끝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 뭐, 그렇지.”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쿠로사키 유리에.
그녀가 왜 자신을 옹호해 줬는지는 지금도 이해되지 않았다.
‘후지모토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기라도 했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강우는 차연주의 뒤를 따라 호텔을 빠져나왔다.
* * *
전통 일본풍으로 만들어진 집.
생활에 필수적인 몇몇 가구 말고는 눈에 띄지 않는 검소한 방 안에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쿠로사키 유리에.
일왕의 손녀이자, ‘하늘의 무녀’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좌탁 위에 놓인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때, 거울 속 그녀의 얼굴이 입을 열었다.
-이제 만족했어?
“아니, 만족했을 리가 없잖니.”
그녀는 거울 속 자신과 대화를 나눴다.
누가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면 미쳤다고 하리라.
“아아, 그분을 만나고도 이렇게 먼발치에 지켜볼 수밖에 없다니. 너무 가슴 아픈 일이야.”
쿠로사키는 탄성을 흘리며 자신의 뺨을 쓰다듬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데?
“후훗. 당연히 그분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니.”
그녀는 거울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청초한 외모의 쿠로사키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천소연의 것과는 격이 달랐다.
어떤 남자라도 이 기운을 맛본다면 순식간에 그녀의 노예가 돼버릴 것이다.
쿠로사키의 검은 머리칼이 중력을 거스르며 떠올랐다.
머리칼이 꼬아지며 마치 촉수처럼 꿈틀거렸다.
-그렇게 충성을 바친다면, 왜 직접 찾아가지 않는 거야?
거울 속 쿠로사키가 물었다.
“어머.”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두 뺨에 손을 올린 채 상상하기도 싫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못생긴 얼굴로 어떻게 그분을 만나러 가니?”
-…….
거울 속 쿠로사키는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