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18)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19화
정의의 검(2)
“여긴 무슨 일입니까?”
강우는 다소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가늘게 눈을 뜨고, 알렉을 위아래로 살폈다.
‘확실히 이름값을 하는 것 같긴 한데.’
가만히 서 있는 동작에서도 기품과 함께 정돈된 마력의 기운이 느껴졌다.
물론 이게 전부일지, 아니면 더 큰 힘을 숨기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한 가지 있었다.
‘후지모토보다는 위야.’
본신의 힘보다 스사노오의 눈이라는 사기급 장비의 힘에 기대어 월드 랭커 반열에 오른 후지모토와는 달랐다.
언뜻 보기에 허리춤에 찬 검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순수한 ‘실력’으로 월드 랭커 반열에 오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당신은….”
알렉의 시선이 강우를 향했다.
김시훈이 나서 설명했다.
“제가 친형처럼 모시는 분입니다.”
“오, 기사들의 형제애란 건가요?”
“음. 좀 다를지도 모르지만 제가 존경하고 따르는 분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하. 검룡에게 그런 선배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 반갑습니다. 알렉이라고 합니다.”
“오강우입니다.”
알렉이 내민 손을 마주잡았다.
강우의 손을 잡은 알렉의 표정이 일순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검룡이 따를 만한 분이시군요.”
“동생에게 부끄러운 형은 되지 말아야죠.”
“하하하! 좋은 말씀입니다.”
알렉은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여러분은 검룡의 동료로 보이는군요. 실례가 아니라면 소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예. 물론….”
김시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 명씩 설명하려 했다.
강우가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우선 머나먼 타지에서 시훈이를 만나기 위해 온 목적부터 듣죠.”
괜히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끌고 싶지는 않았다. 속편하게 친분을 쌓을 생각도 없었다.
강우는 자리 앉아 알렉에게 눈짓을 보냈다.
알렉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앉았다.
“검룡의 동료 분들과 좀 더 친분을 쌓고 싶었는데 아쉽군요. 하지만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목적을 말하지 않고선 경계할 수밖에 없겠죠.”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는 한 달 전, 유럽 쪽에서 움직임을 보이는 악마교 세력들과 일전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사이트에서 본 내용이었다.
“그들은 강했습니다. 월드 랭커라는 이름이 부끄러워질 정도였죠. 저는 그들과 싸우던 도중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도망쳤습니다.”
“…인터넷에는 악마교의 습격을 미연에 방지했다고 적혀 있던데요.”
“그들의 사악한 계획 자체를 막아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계획을 뒤로 늦춘 것일 뿐, 근본적으로 해결하진 못했죠.”
그는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오히려 지금은 악마교도들의 암살자가 제 뒤를 쫓고 있는 상황입니다.”
“흐음.”
강우는 침음을 삼켰다.
상황은 알겠다.
하지만 그것이 검룡을 찾으러 온 이유는 되지 않았다.
“그래서, 설마 시훈이에게 지켜달라는 목적으로 온 건 아니겠죠?”
냉정하게 말해서 김시훈은 아직 약했다.
그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이수역 사건에서 보여준 영웅적인 모습 때문이었지 그 힘 자체가 아니었다.
차연주만 하더라도 아직까진 김시훈을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었다.
“하하, 물론이죠. 아직 얘기드릴 게 더 남았습니다.”
알렉 오즈번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게 뒤를 쫓기던 중 저는 ‘가디언즈’라고 불리는 집단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죠.”
“가디언즈…?”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아직 유명하지 않은 곳입니다. 다만, 이건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가디언즈는 인류의 희망입니다.”
뜨거운 눈빛으로 말했다.
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가디언즈.
그 명칭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알렉은 김시훈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시훈 씨.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아, 예….”
“혹시 ‘수호자’라는 존재에 대해서 들어 본 적 있으십니까?”
“……?!”
김시훈의 동공이 커졌다. 동요가 퍼졌다.
강우 또한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수호자.
시스템의 선택을 받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나타난 존재들.
“서, 설마 알렉 씨도…?”
더듬거리며 물어보는 그의 질문에 알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도 ‘수호자’ 중 하나입니다.”
“…….”
침묵이 내려앉았다.
강우는 갑작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머리에 손을 올렸다.
‘수호자라는 존재가 하나가 아니었던 건가.’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현재까지의 단서로는 가이아 시스템은 ‘외계(外界)’ 간섭을 막기 위한 일종의 대기권과 같은 역할이었다.
그것이 자신에 의해 망가진 후 외계의 간섭에도 세계를 지킬 수 있는 일종의 백신을 만들었다.
‘수호자가 정말 백신 같은 존재라면.’
한 명이 아니라고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김시훈이라는 한 명의 존재에게 세계 전체의 안전을 맡기는 것이 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알렉 씨는 언제쯤 수호자가 되신 거죠?”
“음. 저는 1년쯤 지났네요. 월드 랭커가 된 직후입니다.”
“…….”
강우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1년 전.
자신이 아직 지구로 귀환하기 전이었다.
‘내가 오기 전부터 수호자는 있었다는 얘기군.’
그렇다면 몇몇 가설을 수정해야 했다.
‘처음부터 시스템이 망가질 것을 예상하고 있던 건가, 아니면 단순한 대비책이었던 건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강우는 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단맛이 입 안에 퍼졌다.
“시훈이가 수호자인 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
“하하. 그건 제 능력이 아닙니다. 같은 가디언즈 중에 수호자를 찾는 힘을 가진 동료가 있어서요. 저를 찾은 것도 그였습니다.”
“…그렇군요.”
이제는 그의 목적이 확실해졌다.
가디언즈.
그 얘기를 아무 생각도 없이 내뱉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는 시훈 씨를 저희 가디언즈에 가입시키고 싶습니다.”
‘역시 이렇게 나오는 건가.’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저를 가디언즈에….”
“예. 이수역 사건의 영상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수호자가 될 재능이 있는 사람입니다.”
알렉은 뜨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가디언즈가 된다면, 수호자로서의 힘을 어떻게 더 강화시키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때의 좌절감을 다시 느끼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그때의 좌절감이요?”
“예.”
알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올곧은 눈빛으로 말했다.
“동영상에서 마물을 베어 넘기는 당신의 표정을 보았습니다. 괴롭고, 슬픔에 찬 표정.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마물들의 정체는 무고한 시민이었으니까요.”
“아….”
김시훈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입술을 깨물고 검을 휘둘러야 했던 기억.
알렉은 김시훈의 손을 붙잡았다.
“강해진다면, 그들 모두를 구할 수 있습니다.”
“모두를 구한다니 어떻게….”
“제압하는 겁니다. 아직은 그들을 원래대로 돌릴 방법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찾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시훈 씨, 저희에게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눈빛.
‘모든 사람을 구하겠다’는 그의 말이 김시훈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절망의 빠진 모든 자들을 지켜줄 수호자가 필요합니다.”
“…….”
김시훈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에 동요가 퍼지고 있었다.
가슴이 뜨겁게 울렸다.
모든 사람을 구한다.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알렉은, 정의의 검은 그 터무니없는 말을 진정으로 실현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주먹이 움켜졌다.
정의감으로 불타는 알렉의 눈빛이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이건….’
기회였다.
동경하던 ‘정의의 검’과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는 기회.
정의에 대한 신념을 배우고, 약자를 지킬 힘을 기를 수 있는 기회!
‘검황님에게는 죄송하지만.’
그는 천무진에게 수련을 받고 있었다.
천골이라는 재능은 검황의 수련에서도 빛을 발했다.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무공을 터득하고 있었고, 오히려 한 발짝 더 발전시키기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시훈의 시선이 알렉에게 향했다.
쿵쿵. 심장이 뛰었다.
올곧은 눈빛이 그를 전율시켰다.
검황 천무진을 통해 무공을 배울 순 있었다.
하지만 ‘사상’을, ‘신념’을 배울 수는 없었다.
“저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일순 강우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여기서는 자신이 선택하는 게 옳을 것 같았다.
“함께하겠….”
일순 그의 말이 끊겼다.
김시훈의 동공이 커졌다.
몸이 떨렸다.
항거할 수 없는 기운이 그를 옭아맸다.
‘뭐지?’
사고가 이어지지 않았다.
의식이 흐릿해졌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목소리에는 저항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가디언즈에 참가할 수 없습니다.”
“아….”
알렉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유를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죄송합니다.”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 자신도 왜 알렉의 제안을 거절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거절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끓어올랐을 뿐이었다.
알렉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쉽군요. 하지만 저도 바로 제안을 수락하실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당분간은 한국에 머무를 생각이니 생각이 바뀌시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그는 자신의 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내밀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시훈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탁.
강우는 손에 쥔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눈앞에는 그만 볼 수 있는 시스템창이 떠올라 있었다.
[종속의 권능이 발현되었습니다.] [사역마의 행동에 대한 지배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다행이군.’
오래전에 들어둔 보험이 드디어 활약하는 순간이 왔다.
강우는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멀어지는 알렉의 등을 바라보았다.
둘의 대화를 듣는 순간 아까 전에 느꼈던 ‘묘한 거슬림’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정의의 검.’
올바르며, 올곧다.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어울리는 별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시훈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그 이름에 선망의 시선을 보내는 것도 당연하리라.
‘그렇게는 둘 수 없지.’
묘한 거슬림은 지금 그러한 김시훈의 상태였다.
알렉에 대해 선망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괜찮았다. 존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똑같이’ 되려 한다면 곤란했다.
‘알렉은 지나치게 올바르다.’
비유하자면 그는 순백의 검이었다.
검에 피를 묻히기 꺼려하는, 모든 사람들을 구하고만 싶어 하는 새하얀 검.
김시훈의 검이 그처럼 새하얗게 물들게 놔둘 수는 없다.
‘시훈아.’
강우의 시선이 김시훈을 향했다.
‘네 검은 좀 더 더러워져야 해.’
그렇지 않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걱정 마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시훈의 어깨를 두드리며, 멀어지는 알렉의 뒤를 따랐다.
피 한 방울 묻지 않는 검은 검의 형상을 한 철 쪼가리에 불과하다.
‘내가 더러워지게 만들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