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2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24화
붉은 가면(3)
“사… 탄?”
김시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악마였다. 성경을 비롯한 온갖 장르와 매체에서 최종 보스격으로 등장하는 존재.
그 유명한 ‘일곱 개의 대죄’ 중 분노를 담당하는 악마.
“네가 사탄이라고?”
김시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붉은 가면을 노려보았다.
그가 생각하는 ‘악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검은 장막에 가려져 흐릿하게 보였지만 실루엣은 분명 인간의 것이었다.
[그렇다.]“커헉!!”
스스로를 사탄이라고 밝힌 붉은 가면의 존재가 알렉의 목을 움켜쥔 손에 힘을 더했다.
알렉이 절박한 표정으로 두 다리를 바동거렸다.
“그만!”
김시훈이 소리쳤다.
당장에라도 목숨이 끊어질 것 같은 알렉의 모습이 보였다.
깊은 초조감이 밀려왔다.
[초조해 보이는군.]“…….”
[이자가 네게 소중한 존재인가?]악마가 물었다.
김시훈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알렉은 그에게 소중한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네놈에게 알려줄 이유는 없다.”
검을 들어올렸다.
엘 쿠에로 블레이드.
강우가 선물해 준 전설급 무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강우 형님.’
악마교가 나타났다는 알렉의 다급한 연락을 받자마자 강우에게 바로 연락했지만 다른 용무가 있는지 받지 않았다.
지금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대할 수는 없단 의미.
‘내가 저 악마를 처치해야 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터무니없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었다.
‘정의의 검’ 알렉 오즈번이 패배한 상대였다.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창룡쇄도.’
천무진에게 배운 창룡검법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빠르고, 강맹한 검격이 사탄을 노리고 쏘아졌다.
-퍼억!
“커헉!”
[약하군.]사탄이 실망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굳이 몸을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가벼운 손짓 한 방에 김시훈은 뒤로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쓰러진 김시훈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강렬한 눈빛이 타올랐다.
“약한 건 나도 알고 있어.”
검기를 사용했다. 푸른 마력이 검날에 맺혔다.
진각을 밟으며 검을 내리그었다.
푸른 검기가 악마를 노렸다.
살기가 가득 담긴 검기가 사탄을 머리를 노렸다.
사탄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검은 파동이 일어나 김시훈을 후려쳤다.
“크윽!”
몸이 뒤로 밀려났다. 검붉은 피를 토했다.
고작 손가락을 튕겼을 뿐인데도 거대한 망치에 후려 맞은 듯 몸이 떨렸다.
[필사적이군.]“쿨럭! 쿨럭!”
[왜 그렇게 필사적이지? 알렉 오즈번은 너와 아무 연관이 없는 인간일 텐데.]“…….”
김시훈의 시선이 떨렸다.
아무 연관이 없는 인간.
악마의 말이 머릿속에 새겨졌다.
맞는 말이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알렉 오즈번은 자신과 별 연관이 없다.
자신이 그의 친우인 것도 동료인 것도 아니었다.
그저 동경하던 영웅에 불과했다.
스크린 너머로 본 영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은 미련한 짓이다.
“쿨럭!”
핏물이 흘러나왔다.
‘알고 있어.’
자신이 지금 얼마나 멍청한 짓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지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강우가 이 모습을 본다면 정색하며 그를 질책하리라.
‘하지만.’
몸을 일으킨다. 비틀거리는 두 다리로 굳건히 땅을 밟았다.
고개를 돌렸다.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컥컥거리는 알렉의 모습이 보였다.
‘형님은 이해하지 못하시겠지.’
자기 자신에 대한 실소가 흘러나왔다.
아마 강우는 자신에게 알렉이, ‘정의의 검’이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한 번도 말한 적은 없었으니까.
단순한 동경이 아니었다.
자신은 스크린 속 영웅에 눈이 먼 어린애가 아니었다. 아이돌에 열광하는 소녀가 아니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목숨을 걸 리가 없다.
김시훈은 검을 들어올렸다.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저 악마에게 모든 사정을 구구절절이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 연관이 없는 사람을 필사적으로 구하는 게 그렇게 이상하냐?”
[이상하다기보다는 멍청하지.]“멍청하다, 라.”
김시훈은 웃었다.
“맞는 말이야.”
부정하지 않았다. 이해를 바라지 않았다. 보통 사람도 이해하기 힘든 일을 악마가 이해하리라 생각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강우 형.”
김시훈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강우에게 구원 받은 은혜를 아직 갚지 못했다. 아니, 갚기는커녕 그 뒤로 더욱 도움만 받았다.
그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후우.”
호흡한다. 단전의 내공이 전신에 퍼져나갔다. 손에 쥔 검이 단순한 무기가 아닌 팔의 연장선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신검합일. 그 감각에 몸을 맡겼다.
-콰앙!
발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붉은 가면의 악마가 한 손을 들어올렸다. 마기를 뿜어내는 검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김시훈은 검기가 맺힌 엘 쿠에로 블레이드를 높게 들어 내려찍었다.
푸른빛 검과 검은빛 검이 격돌했다.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어마어마한 검격이 오갔다.
하지만 힘의 차이는 명확했다.
검신을 타고 전해지는 반탄력에 손바닥이 찢겨졌다.
무시했다.
-후웅!
발을 뒤로 빼고 몸을 낮췄다.
정면대결은 답이 없었다. 휘둘러지는 공격을 피해 엘 쿠에로 블레이드를 내질렀다.
한 마리 용처럼 매끄럽게 움직이는 검이 검은 장막을 찔렀다.
“커헉!”
무시무시한 반탄력에 김시훈이 튕겨져 나갔다.
다시 한번 검붉은 핏물이 쏟아졌다.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공의 문제가 아니었다.
기본적인 힘의 차이가 차원이 달랐다. 아무리 달려들어 봤자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만도 못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덜덜 떨리는 다리로 일어섰다. 다시 한번 검을 움켜쥐었다.
눈앞의 거악(巨嶽)을 향해, 그는 망설임 없이 발을 박찼다.
* * *
검을 교차했다. 다시 한번 김시훈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대단한데?’
강우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조롱의 의미가 아니었다. 순수하게 감탄한 것이다.
지금 극마지체를 이룬 자신과 김시훈의 신체스펙의 차이는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무공이 어쩌고 기술이 어쩌고 할 수준을 넘어섰다.
세 살짜리 아기가 기술이 뛰어나다고 프로레슬링 선수를 이길 수는 없다.
이건 애초에 메워질 수 있는 격차가 아니었다.
‘역시 시훈이가 알렉보다 훨씬 낫네.’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알렉의 검은 정도(正道)를 극한으로 갈고 닦은 느낌이었다.
강맹하고 올곧지만 그만큼 단순했다.
하지만 김시훈의 검은 달랐다.
‘보이지 않아.’
‘알 수 없다’라고 표현하는 게 가장 적절하리라.
김시훈의 검술은 수천, 수만 번의 전투를 겪어온 강우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김시훈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퍼억!
“크윽!”
김시훈이 다시 바닥을 굴렀다.
물론 그것이 지금 당장 김시훈이 월드 랭커급 강자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당장 알렉과 싸운다고 해도 김시훈이 패배하리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본 스펙 차이 때문이지.’
김시훈은 성장하고 있다. 레벨 제한도 그의 성장을 억누르지 못했다.
이제 막 60레벨을 넘긴 플레이어가 강우에게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김시훈은 그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물론 레벨만 따지면 나보다 높긴 하지만.’
어차피 중요한 것은 레벨이 아닌 실질적인 힘이 되는 스텟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강우는 100레벨 플레이어와도 견줄 수 있는 스텟을 가지고 있었다.
‘이거 계획을 좀 수정해야겠군.’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김시훈의 모습을 보며 강우는 입술을 핥았다.
원래라면 압도적으로 그를 찍어 누른 후에 본격적인 ‘자극’을 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생각이 달라졌다.
김시훈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필사적이었다.
‘단순히 동경해서 저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만약 그랬다면 이 정도로 처절하게 달려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가 사역마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오히려 잘됐군.’
김시훈에게 있어 알렉의 가치가 크면 클수록 자극은 강해질 것이다.
강우는 알렉의 목을 잡은 채로 서서 한 손으로 김시훈을 상대했다.
김시훈의 검이 날카롭게 찔러들었다.
강우의 검과 닿기 직전, 갑작스럽게 검의 방향이 틀어졌다. 교활한 뱀이 사냥하듯 종잡을 수 없는 검술이었다.
-까앙!
‘옳지, 잘한다.’
장막에 막힌 검이 튕겨져 나갔다.
김시훈은 그 반탄력을 역으로 이용해 한 바퀴 몸을 돌리며 강우의 머리를 노렸다.
곡예를 보는 것처럼 경이로운 움직임이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일부러 힘을 낮췄다.
김시훈의 검술이 더욱 강맹하게 그를 몰아붙였다. 카득. 장막으로 보호되지 않는 붉은 가면 끝이 살짝 박살났다.
‘잘한다, 우리 시훈이!!’
알렉처럼 어떻게든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검술이 아니었다. 모든 검격 하나하나가 급소를 노렸다. 살기가 물씬 뿜어져 나왔다.
상대를 죽이는 것.
그것 이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완벽한 살검(殺劍)이었다.
‘크으, 그래 이게 바로 전투지!’
만약 김시훈의 신체 스펙이 더 높았더라면 정말 짜릿한 전투를 경험할 수 있었으리라.
살짝 아쉬움이 밀려왔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시훈이는 더 강해질 거다.’
하늘이 내려준 재능, 천골.
거기에 무신의 영혼.
검황 천무진이라는 훌륭한 스승까지.
지금 김시훈에게 부족한 것은 딱 하나였다.
‘그리고 지금 그 부족한 걸 채워주려는 거고.’
강우는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이제 슬슬 그를 제압할 때였다.
다시금 힘을 끌어올렸다.
그때였다.
-우우우우웅!!
“허억! 허억!”
검을 휘두르는 김시훈의 몸이 폭발적인 푸른빛에 휩싸였다.
-띠링.
[사역마 ‘김시훈’이 무신의 힘을 받아들입니다.] [사역마 ‘김시훈’이 창룡검법의 정수를 터득하였습니다.]‘뭐야, 이건.’
눈앞에 푸른색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또 각성한 거야?’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예상에는 없던 일이었다.
‘아니, 얘는 뭐 시도 때도 없이 각성하냐.’
나루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