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31)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32화
어디서 아는 척이야(1)
“하.”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누가 이 쪽지를 보냈는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악마교.’
왜 그들이 자신을 부르려는가.
짧은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가늘게 눈을 뜨고 고민에 잠겼다.
“그랬군.”
일본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중상에 빠진 아키야마와 그를 데리고 도망친 악마교도들의 모습.
아마 그쪽을 통해 자신에 대한 정보가 악마교에 새어나갔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왜 부르려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자신은 악마 소환계획을 방해한 장본인이었다.
척살단을 보내면 모를까.
이런 화살에 편지를 꼬아 보내는 것 같은 원시적인 방법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가보면 알 수 있겠지.”
대충 예상가는 건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부르는 곳으로 직접 가보는 것이 제일 확실했다.
대놓고 파놓은 함정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위험천만한 행동.
‘나쁘지 않아.’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들이 어떤 함정을 준비했건, 얼마나 많은 대비를 해뒀건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마물 무리에서 보이지 않는 악마들이 그쪽에 모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그리고 준비 자체도 거의 되어 있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커.’
아마 악마교 측에서도 그가 이렇게 수상쩍은 냄새가 풀풀 풍기는 제안을 수락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그랬다면 최소한 어디로 오라고는 적었겠지.’
지금 그들이 보낸 쪽지는 애초에 ‘만나고 싶다’라는 최소한의 의도만을 전달하는 것이 그 목적.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를 전달하는 것은 그 이후, 아마 이 전쟁이 끝난 후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때까지 기다릴 이유는 없지.’
강우는 웃었다.
검은 손이 쏘아졌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기의 잔향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 잔향을 따라 질주했다. 신속의 권능이 몸을 감쌌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의 몸이 쏘아졌다. 만주 벌판에 먼지구름이 만들어졌다.
* * *
“확실히 강하군요.”
마물들의 시야를 통해 강우를 살피던 안톤은 탄성을 흘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물 무리 한가운데까지 혼자서 파고든 그는 말 그래도 압도적인 모습으로 마물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그 패도적인 모습에 안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자, 그럼.”
안톤은 품속에서 검은 양피지로 이루어진 책을 꺼냈다.
‘악몽의 서’라는 이름을 가진 강력한 무기.
그가 ‘위상’들에게 악의 사도라는 직위를 하사 받을 때 함께 받은 물건이었다.
“자자스 자자스 나스타나다 자자스.”
주문을 외운다.
악몽의 서의 마기와 자신의 마기가 공명했다.
지금 그의 시야를 제공하고 있는 마물, 케로베로스의 내부를 통해 미리 장치해둔 ‘손’을 뻗어냈다.
그 공격을 간단하게 제압한 강우가 쪽지를 읽는 것이 보였다.
“됐군.”
안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주변에 서있던 악마들 중 하나가 물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뭐지? 어떤 놈을 죽이면 되나?]“끌끌끌. 성급해하지 마세요. 본격적으로 그와 만나는 것은 전쟁 이후가 될 겁니다.”
안톤은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악마의 표정이 구겨졌다.
[여기서 더 기다리란 말인가? 우리는 악마다. 피와 살육으로 살아가는 악마! 더 이상 전투를 뒤로 미루는 것은….]“성급해하지 말라는 말을 이해 못 하신 겁니까?”
안톤은 가늘게 눈을 떴다. 무시무시한 마기가 악마들을 압박했다.
[크윽….]악마들의 표정이 창백히 굳었다.
안톤이라는 인간이 지닌 마기는 구천지옥의 악마와 필적했다.
대부분이 오천, 육천지옥에 살아왔던 그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힘.
악마들은 침묵했다.
“좋군요.”
안톤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그를 따로 불러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무슨 방법이 좋으려나.’
가장 무난한 것은 역시 인질.
‘같이 살고 있는 여자가 있다고 했지.’
욕망에 점철된,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사진을 통해 본 여인의 모습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녀를 인질로 잡을 수 있다면 그를 꾀어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허,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건만.”
안톤은 가슴 앞에 십자가를 그리며 허허롭게 웃었다.
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그를 악마교로 회유하는 것. 섣부르게 자극해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안톤의 눈이 빛났다. 만약 그가 제안을 거절한다면, 그 인질의 처리에 대해서는 그의 자유였다.
-쓰읍.
입술을 핥았다. 자애로운 외모 속에 숨겨진 탐욕에 일그러진 추악한 본성이 드러났다.
“자, 그럼 일단 오늘은 여기서….”
돌아가자고 말하려고 할 때였다.
“음?”
무언가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안톤은 고개를 돌렸다.
이쪽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 기운이 느껴졌다.
“설마…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건가?”
안톤의 얼굴이 당황에 물들었다.
그를 부른 것은 사실이었지만 설마 그 단순한 쪽지 하나로 진짜 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아니, 그보다 어떻게 내 위치를 알았던 거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안톤은 악몽의 서를 펼치며 주변 악마들에게 물러나라 명령했다.
“끌끌, 뭐든 상관없지.”
회유한다.
거절한다면 죽인다.
두 가지 원칙이 정해진 이상 망설일 것은 없었다.
안톤은 다가오는 기운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 * *
-쿠웅!
묵직한 충격이 땅을 울렸다. 신속의 권능을 거둔 강우는 눈앞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자글자글한 주름에 정갈한 사제복. 숨기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마기.
“얘기를 하고 싶다고?”
통언의 권능을 사용하며 물었다.
안톤의 눈이 반짝였다.
“러시아어를 할 수 있으셨던가요?”
“그렇다고 하지. 우선….”
강우는 고개를 돌렸다.
거리가 있긴 하지만 그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악마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입가가 비틀어 올라갔다.
‘좀 급이 낮은 악마들이군.’
오천지옥 이하.
아무리 높게 쳐줘도 육천지옥 정도에서 보이는 악마들이었다.
악마들은 강우를 봤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살기를 피어 올리고 있었다.
‘날 아는 놈들은 없나보네.’
납득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얻게 된 것은 구천지옥으로 들어서면서였다.
소문은 들었다고 해도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특히 오천지옥, 육천지옥 같은 ‘중층’에 산다면 더더욱.
‘오히려 잘된 일이지.’
강우는 느긋한 표정으로 안톤을 바라봤다.
“하고 싶은 말이라는 게 뭐지?”
“끌끌. 말이 잘 통해서 좋군요. 당신에게 제안을 하나 할까 합니다.”
“제안?”
“예.”
안톤은 웃었다.
“혹시 악마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너희가 그렇게 개판을 치고 다니는데 모르는 사람이 있겠냐?”
헛웃음을 흘렸다.
안톤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 말은 악마가 지닌 특권에 대해 알고 계시냐는 질문이었습니다.”
“특권?”
“그렇습니다. 악마라는 존재가 지니고 있는, 악마교만이 부여해 줄 수 있는 특권!”
안톤은 힘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인간은 언젠가 죽죠. 아무리 많은 재화를 쌓아도, 무수한 여인을 품어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력을 가져도 결국에는 죽습니다.”
강렬한 눈빛이 강우를 향했다.
“하지만. 악마는 죽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수명의 제약도, 식음에 대한 갈망도 없죠.”
나긋나긋한 말투. 그에 대비되는 힘 있는 목소리와 강렬한 눈빛.
‘새끼, 다단계하면 잘하겠네.’
강우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저희는 인간을 악마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낱 필멸자에게 영원과 영생을 선물해 드릴 수 있습니다.”
“…….”
“생각해 보세요. 당신 같은 강자가, 강력한 힘을 지닌 선택받은 인간이 왜 굳이 인간들 사이에서 썩어간단 말입니까? 당신에게 그런 모습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필멸자를 지배하며 그 위에 군림해야 할 제왕의 모습이 더 어울리지요.”
흥분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나긋나긋하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적당한 칭찬으로 구슬리며 ‘네게 이런 일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설득한다.
“어떻습니까? 저희와 함께 하는 겁니다. 저희라면 당신에게 어울리는 지고(至高)의 권력을, 영원한 삶을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그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저는 당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눈에 담긴 힘에 대한 갈망과 열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저와 같습니다. 지금 당신이 있는 자리는 당신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허리를 숙였다.
“자.”
강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저희와 함께하지 않겠습니까? 당신도 악마가, 필멸의 제약을 벗어던진 절대의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안톤은 사람의 욕망을 자극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닌 듯 매끄럽게 말을 이어나가며, 쓸데없이 흥분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담담하게.
욕망을 자극했다.
만약 백강현, 후지모토 료마와 같은 인간이었다면 아무 망설임 없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으리라.
하지만.
“나를, 악마로 만들어주겠다고?”
그의 앞에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강우였다.
“하, 하하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을 악마로 만들어주겠다는 안톤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배가 아파왔다. 몸이 들썩였다. 지금 이 상황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게 느껴졌다.
“너.”
강우는 웃음을 참으며 안톤의 말을 떠올렸다.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말했지?”
“그렇습니다. 비록 당신을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나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가진 그 눈빛. 그 갈망에 찬 눈빛만 봐….”
“하하하하하! 이 새끼, 이거 웃긴 놈이네.”
결국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뭐, 눈깔에 스카우터라도 다셨어요? 눈빛만 봐도 알긴 뭘 알아? 네 엄마도 눈빛만 봐서는 네가 뭐 하는 새낀지 몰라, 인마.”
“…….”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강우는 낄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디서 아는 척이야.”
손을 들어올렸다.
무시무시한 마기의 격류가 손에 집중됐다.
-쩌적.
힘을 견디지 못한 땅이 갈라졌다. 폭풍이 몰아치듯 대기가 미쳐 날뛰었다.
손을 뒤집었다.
그리고.
“너는 내가 누군지 몰라, 이 새끼야.”
세상이 뒤집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