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35)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36화
두 번째 소환수(2)
“바, 발자하크.”
에키드나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우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아?”
“응. 대륙 북쪽, 죽음의 땅에 있다는 강력한 리치야. 대륙인들에게는… 마왕이라고 불리고 있어.”
에키드나는 경계 가득한 표정으로 발자하크를 노려보았다.
“흠.”
눈을 빛냈다. 고개를 돌려 검은 로브를 입은 해골을 바라보았다.
‘마왕이라.’
사실 저놈이 마왕이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소환수로서 그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냐는 것.
‘근데 정말 마왕 맞나?’
강력한 마기는 느껴졌다. 에키드나보다는 확실히 강했다.
하지만 마왕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냐고 묻는다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안톤이라는 놈하고 큰 차이 없어 보이는데.’
정확히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직접 보기 전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대충 안톤과 비슷하거나 조금 위에 있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묻겠다. 이곳은 어디인가?]발자하크가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위협을 하듯 그의 몸 주변으로 마기가 휘몰아쳤다.
강우는 피식 웃었다.
“내가 널 소환한 거야.”
[날 소환했다고?]“그래. 소환수가 필요했거든.”
[…….]침묵이 흘렀다. 발자하크의 퀭한 동공에서 노란빛이 점멸했다.
[소환수라면… 설마 나, 이 마왕 발자하크를 사역마로 부리겠다는 의미인가?]“뭐, 대충 그런 거지.”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하.]발자하크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가 몸을 들썩였다.
헛웃음이 폭소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하하하하하하! 재미있군! 아주 재미있어!]달그닥. 달그닥.
해골의 입가가 움직이며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강렬한 살기가 발자하크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흉흉하게 빛나는 노란 안광이 강우를 향했다.
[감히 인간이 나를 사역마로 부리겠다는 건가.]“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은 아닌데…. 아, 이거 뭐 설명하기도 좀 복잡한데.”
강우는 귀찮다는 듯 뒤통수를 긁었다.
“어쨌든 소환수로 부리려는 건 맞아. 대신 네가 충성을 다한다면, 나 또한 그 충성에 보답할 것을 맹세하지.”
이것은 지옥에서부터 이어져오던 그 나름의 규칙이었다.
가끔 발록의 과도한 충성이 짜증스럽게 느껴진 적도 있었다.
침실에 침입한 리리스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보내주는 충성에는 합당한 보상과 신뢰를 주었다.
‘그게 군주의 역할이지.’
부하를 아끼지 않은 군주는 나사 빠진 폭군에 불과했다.
충성에는 신뢰로, 반항에는 엄벌로 다스리는 것이 집단을 유지하는 원동력이었다.
[하하하! 겁을 상실한 인간이로군!]발자하크는 웃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겁을 상실한 인간에게는 매가 약이지.]새하얀 뼈만 남은 손가락이 움직였다. 무언가 주문을 영창하는 듯한 모양.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살기에 강우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키드나 때처럼은 되지 않는 건가.’
-띠링.
[소환수가 주인에게 적대감을 표합니다! 계약의 효과가 약해집니다!] [소환수와의 유대감이 약해 강제 명령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의문에 답하듯 푸른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발자하크의 손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주변 대지에 스며들었다.
-달그락. 달그락.
수백 구의 스켈레톤이 땅을 뚫고 나타났다. 단순한 뼈다귀가 아닌, 중세의 기사를 연상케 하듯 중장갑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발자하크가 양팔을 넓게 벌리며 소리쳤다.
[보아라! 느껴라! 그리고 공포에 떨어라! 이것이 나, 마왕 발자하크의 하수인….]딱. 가볍게 손가락을 튕긴다.
-우드드득!
넓게 퍼져나간 파동의 권능이 스켈레톤들을 휩쓸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중장갑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산산이 박살 난 스켈레톤이 비상했다.
[어?]발자하크의 입에서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순식간에 전멸한 자신의 스켈레톤들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인간 주제에 꽤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군!]이내 그는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양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마기가 뭉친 구체가 양손 사이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과연 데스나이트까지 상대할 수 있을까?]두 손에 뭉친 구체가 점점 크기를 불렸다. 마기 균열에서 악마가 나오듯, 3미터 크기로 커진 구체에서 해골기사가 나타났다.
“호오.”
강우는 눈을 빛냈다.
확실히 스켈레톤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12마리인가.’
발자하크가 데스나이트들에게 명령했다.
[가라! 원탁의 기사들이여! 감히 이 발자하크를 기만한 하찮은 인간을 죽여라!]푸르르. 데스나이트들이 타고 있는 유령마가 콧김을 내뿜었다.
“강우!”
에키드나가 강우의 앞을 막아섰다.
마해의 열쇠로 무기를 만들려고 했던 강우의 움직임이 살짝 멈췄다.
“음….”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고민했다.
“뭐, 좋은 기회니까 에키드나에게 맡겨볼까.”
간만에 에키드나에게 맡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실전 경험을 쌓기도 좋겠고.’
강우는 팔짱을 낀 채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에키드나. 이번에 네가 한번 상대해봐.”
“응! 내가 상대할게!”
에키드나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간만에 활약할 기회였다.
‘강우에게 칭찬받을 거야!’
타오르는 의지가 두 눈에 새겨졌다. 그녀의 몸에 푸른빛 무리가 감돌았다.
-크롸롸롸롸롸!
에키드나의 몸이 순식간에 2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드래곤으로 변했다.
그녀를 본 발자하크는 노란 안광을 빛냈다.
[마룡인가. 과연, 주제를 모르는 멍청이는 아니었군.]마룡을 다루는 인간이라니.
에르노어 대륙에서 들어본 적도 없는 존재였다.
[재미있군.]발자하크는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그는 강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레이날드보다 좋을 수도 없겠어.]아르난 제국의 왕자. 신들의 선택을 받아 수호자로 각성한 영웅.
발자하크는 그를 최강의 데스나이트로 만들기 위해 몇 번 노린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각종 신들의 방해로 빈번히 실패했지만 지금 눈앞의 인간에게는 신들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레이날드의 대체품으로 사용하기 좋은 인간인 것이다.
[고작 해츨링에 불과하다! 죽여라!]에키드나의 크기를 보고 바로 해츨링이란 것을 알아차린 발자하크가 소리쳤다.
12마리의 데스나이트들이 무기를 빼어들고 에키드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럼….]발자하크는 몸을 돌렸다. 데스나이트가 마룡을 상대하는 사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후후후. 불쌍하군, 인간. 이 발자하크가 직접 움직이도록 만들다니. 네가 이룩한 경지에 절망하도록 해….]“좋아. 일단 그 말투부터 고치자.”
강우는 손뼉을 쳤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무슨 말이지?]“자기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거 진짜 너무 병신 같단 말이지.”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탄도 그것 때문에 엄청 짜증 났는데 내 소환수까지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누가 네 소환수라는 거냐!]발자하크의 노성이 들렸다.
그의 양손에 강대한 마기가 맺혔다.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동감이야.”
마해의 열쇠로 게이볼그를 만들어냈다.
어차피 서로 대화로 풀 수 없는 상황. 그렇다면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나저나 에르노어 대륙의 마왕이라.’
강우는 스스로를 마왕이라고 밝힌 발자하크의 말을 떠올렸다.
사실 에르노어 대륙에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에키드나에게 듣기는 했지만 그냥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곳이랑 비슷하네, 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만약 저놈이 에르노어 대륙의 최강자라면.’
발자하크가 스스로 밝힌 대로 ‘마왕’이라는 존재가 맞는다면.
‘적어도 에르노어 대륙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
-콰앙!
발을 박찼다.
신속의 권능을 사용한 몸이 빛살처럼 쏘아졌다. 게이볼그가 발자하크의 몸을 찔러들었다.
[흐읍!]마기의 방벽이 만들어졌다.
멈추지 않고 창을 찔렀다.
박살 났다.
발자하크가 다급히 몸을 비틀었다. 손을 저었다. 검은 칼날이 만들어져 강우를 노렸다.
-까앙!
게이볼그로 칼날을 쳐냈다.
[크읏!]발자하크의 전투스타일은 소환수로 자신을 지키며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마법사.
게임에서 흔히 보이는 네크로맨서 계열 캐스터였다.
-후웅! 훙!
게이볼그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찔러들었다.
마법을 캐스팅할 시간 따위는 주지 않았다.
카운터에 가까운 공격 스타일.
발자하크의 노란 안광이 떨렸다.
[대, 대체 인간이 어찌….]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힘. 아무리 근접전이 약한 캐스터라고 해도 이 정도로 밀린 적은 처음이었다.
[어쩔 수 없군.]이대로 있으면 패배는 기정사실이었다.
발자하크는 손목에 찬 팔찌를 뜯어냈다. 팔찌에 붙은 검은 보석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렇게 된 이상 그도 비장의 수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이걸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악신의 피.
고대 신화에서 등장하는 ‘마계’의 존재를 일시적으로 소환하는 힘을 가진 아티팩트.
언젠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위험에 처하면 사용하리라 생각했던 물건이었다.
-쿠구구구궁!
대지가 뒤흔들렸다. 마기의 폭풍이 몰아쳤다.
오히려 발자하크 자신보다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마기의 기운이 주변을 물들였다.
‘음?’
강우는 눈을 빛냈다.
이제까지 발자하크의 기술 중 처음으로 ‘위협적’인 기운이었다.
피부가 찌릿찌릿했다. 전투에 앞선 몸이 흥분에 떨었다. 아니, 일말의 공포까지 느껴질 정도로 강대한 기운이었다.
‘위험하다.’
긴장감이 서렸다. 발자하크와는 그 격이 다른 기운이었다.
[오라! 가장 깊은 심연에서 영원을 탐하는 존재여!]-쩌적!
거대한 균열이 일었다. 유리창이 깨지듯 허공이 박살 났다.
그리고.
[누가 감히 나를 불렀느냐.]산양의 뿔에 보라색 피부. 5미터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거체.
균열에서 나타난 악마는 거칠게 발을 굴렀다.
[나는 구천지옥의 악마, 파멸을 수호하는 자 둠가드다.]“…….”
강우는 입을 쩍 벌렸다.
발자하크가 구천지옥의 악마를 소환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아, 위대하신 마계의 존재여. 그대를 소환한 하찮은 필멸자의 말을 들어주소서.] [말해보거라.]둠가드가 낮게 대답했다.
발자하크는 뼈만 남은 손으로 강우를 가리켰다.
[부디 제 적에게 죽음을!] [흐음. 싸움인가.]둠가드가 고개를 돌렸다.
강우와 눈이 마주쳤다.
[어?]둠가드의 두 눈이 커졌다.
[아니, 이거 마왕님 아니십니까?!]그는 거대한 팔을 휘두르며 방정맞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방금 보였던 위압감 넘치는 모습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오랜만이다.”
강우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파멸을 수호하는 자 둠가드.
강우가 이끄는 마왕군의 3군단장을 맡고 있는 악마의 이름이었다.
[…엥?]두 악마의 만남에 당황한 것은 발자하크였다.
[이게 무슨 일이야?]마왕 발자하크.
에르노어 대륙을 공포에 잠기게 만든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지금 상황에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