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42)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43화
첫 번째 임무 (1)
그 일이 있은 후로 김시훈은 천무진과 함께 다시 한 번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애초에 상하이에서 돌아온 것 자체가 갑작스러운 그레이스의 방문 때문.
가이아의 축복을 받아 한층 더 강해진 김시훈은 바로 다시 상하이로 향했다.
-돌아오는 날에는, 사부님보다 강해져서 돌아오겠습니다.
김시훈은 당당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의 옆에 있던 천무진의 표정이 구겨졌다.
새파란 애송이가 고작 몇 개월 만에 자신을 뛰어넘으려고 하니 당연한 반응.
하지만 그만큼 김시훈의 성장 속도로 빠르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에잉, 괜히 말년에 이런 괴물을 주워서는….
천무진은 김시훈의 경이로운 성장 속도에 질린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천골이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모양.
사실 정말 김시훈이 무협지에서 등장하는 무인이었다면 몇 개월 사이에 이 정도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김시훈은 플레이어였다. 레벨이 오르면 스텟이 증가했고, 스텟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강력한 힘을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김시훈과 천무진이 상하이로 떠난 지 일주일.
강우는 가이아, 그레이스와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악마교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그리고.
“강우 씨에게 첫 번째 임무를 전달 드리겠습니다.”
‘드디어!’
가이아의 말에 강우는 쾌재를 불렀다.
애타게 기다리던 악마교의 정보. 드디어 그것이 가디언즈의 정보망에 걸려든 것이다.
“어떤 임무입니까?”
강우는 진중한 눈빛으로 물었다. 표정과 눈빛이 중요했다.
악마교의 움직임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면 당연히 아웃. 어디까지나 걱정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일관해야 했다.
‘내가 그런 건 또 자신 있지.’
감정을 컨트롤 하는 것에는 꽤나 자신이 있었다.
악마의 육체가 가져다주는 육망의 충동을 제어하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었으니까.
“최근 들어서, 가이아 시스템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그건 원래부터 그런 것 아니었습니까?”
가이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래도 이 정도 속도는 아니었습니다. 다른 원인이 있다고 추측됩니다.”
“흠. 어디서 일어나는 일인지는 확정하실 수 있습니까?”
“그건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번에 한국에서 악마교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한국에서요?”
예상치 못한 일. 한국에 자리 잡은 악마교는 백강현이 죽으면서 와해됐다.
‘그사이 또 새로 악마교가 자리 잡은 건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외국 악마교 세력이 굳이 한국까지 들어와 계획을 꾸밀 이유 또한 잘 생각나지 않았다.
“예. 대구? 라는 도시 근처 게이트에서 흔적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대구라면….”
한국에도 일본의 삿포로처럼 ‘격변의 날’ 이후 멸망한 도시가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도시가 바로 대구였다.
‘삿포로랑은 조금 상황이 다르지만.’
삿포로의 경우 그곳에 자리 잡은 강력한 몬스터들 때문에 복구가 늦어지는 반면 대구의 복구가 늦어지는 이유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복구에 필요한 돈이 없다고 했나.’
격변의 날로 인해 세계 전체에 큰 상처가 새겨진지 5년. 아니, 이제 막 6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당장 국가가 멀쩡히 기능할 수 있는 지경까지 온 것만 하더라도 기적에 가까운 일.
돈이 없어서 멸망한 도시를 방치하는 것 정도는 논란거리조차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혹시 혼자서 하시기 부담스러우시다면 김시훈 수호자님도 불러….”
“아뇨. 시훈이는 지금 수련에 집중하고 있는 중입니다. 방해할 수는 없죠.”
“그렇다면 다른 수호자님들은 어떻습니까? 그레이스는 지금 미국에 있지만 제갈현 수호자님이나 이토 신지 수호자님은 지원이 가능하실 겁니다.”
제갈현과 이토 신지.
가디언즈에 들어오고 나서야 들은 중국인과 일본인 수호자의 이름이었다.
알렉 오즈번이나 그레이스 맥커빈과 달리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플레이어들이었고, 월드 랭커는커녕 일반 랭커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은 플레이어들이었다.
‘듣기로는 꽤나 사람이 좋다고 들었는데.’
과연 사람이 좋다는 것이 알렉 같다는 말인지 김시훈 같다는 말인지는 만나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가이아가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은 알렉 오즈번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뭐, 완전히 그렇다고는 볼 수 없나.’
김시훈이나 그레이스의 경우 수호자로서 탁월한 자질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나를 가디언즈에 끌어들인 것만 하더라도 보는 눈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원칙을 어겨가면서까지 자신을 끌어들인 것을 보면 보는 눈이 없다고는 할 없었다.
그처럼 순수한 목적으로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일단 저 혼자 조사해보죠.”
제갈현과 이토 신지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면서 두 사람을 조사할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두 사람도 가디언즈의 멤버인 만큼 놀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악마교가 무슨 한국에서만 활동하는 것도 아니니 각자가 활동하는 지역에서 조사를 하는 것이 효율이 좋았다.
‘심문할 때 방해될 것 같기도 하고.’
이번에는 되도록 활동이 뜸해진 악마교의 꼬리를 잡기 위해 할 수 있는 만큼 심문을 할 예정.
혹시라도 그들이 알렉 같은 인간들이라면 자신의 정의로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돌발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도 있었다.
“알겠습니다. 강우 씨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단서를 얻었으니 우물쭈물거릴 여유는 없었다.
강우는 가디언즈에서 지급한 가면을 얼굴에 쓴 채 ‘수호의 전당’ 밖으로 나왔다.
게이트를 연 장소는 전과 같이 아파트 옥상 위.
“에키드나, 발자하크.”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두 소환수를 불렀다.
이 두 소환수 앞에서는 마음 것 정의로움을 뽐낼 수도 있으니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무슨 일이야, 강우?”
옥상에 먼저 도착한 것은 에키드나.
그녀의 손에는 붉은 소스가 발린 떡꼬치가 들려 있었다.
“…뭐야 그건?”
“발자하크가 만들어 줬어.”
그녀는 크게 입을 벌려 손에 든 떡꼬치를 먹었다. 앙. 소녀의 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크기로 입이 벌어지더니 떡꼬치를 한 입에 집어삼켰다.
-우물우물.
“맛있어.”
“…….”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요동치는 강우의 그림자.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꾸물거리는 그림자 속에서 앙상한 백골이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마스터.]발자하크. 한 때 마왕으로 이름을 날리던 강력한 리치는 거무튀튀한 로브 대신 깜찍한 토끼가 그려진 분홍색 에이프런을 착용하고 있었다.
“발자하크, 너….”
충격적인 비주얼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발자하크는 고개를 들어 쨍쨍히 내려쬐는 햇볕을 올려다보았다.
[호오. 날씨가 아주 좋군요. 흐흐흐….]짙은 마기가 피어올랐다. 사자(死者)를 지배하는 죽음의 군주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런 날씨에는 이불 빨래가 제격이죠. 조금만 여유를 주시면….]“아니, 이불 빨래는 나중에 하고.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어.”
강우는 진지한 눈빛으로 발자하크를 노려보았다.
지금은 이불 빨래 같은 사소한 일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더없이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설마 내가 먹을 떡꼬치가 없는 건 아니겠지?”
[하하하하! 마스터! 이 발자하크를 누구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딱.
발자하크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림자가 다시 요동치며 먹기 좋게 튀겨진 떡꼬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후후. 요즘 설아 님에게 요리를 배우고 있는데 이게 또 심오한 세계로군요.]“어디 한 번.”
떡꼬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매콤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입 안에 퍼졌다.
“잘 만들었네.”
[정진하겠습니다. 그보다 무슨 일로 호출하신 겁니까?]“아 참.”
강우는 손가락에 묻은 소스를 빨아먹고 있는 에키드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임무야. 간만에 몸 좀 움직이자고.”
에키드나와 발자하크의 눈이 빛났다.
* * *
강우는 에키드나를 타고 대구로 향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보는 것처럼 폐허가 된 도시. 주변에 사람의 기척으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주시자의 권능.’
마기를 넓게 펼쳤다.
오히려 이렇게 마기의 기운이 눈에 띄는 환경이라면 조사하기가 편했다.
‘일단 이 주변에는 없군.’
주변 어디에도 마기의 흔적은 없었다.
‘정보가 잘못된 건가.’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확정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보자.”
대구에 나타난 것은 3개의 A급 게이트.
플레이어가 있는 지금에는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등급의 게이트였지만 ‘격변의 날’ 때는 상황이 달랐다.
강우는 세 개의 게이트 중 하나에 들어갔다.
‘빙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기의 기운이 느껴졌다.
마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건….”
마기의 기운이 응축된 장소. 그곳에는 역십자가 형태의 검은 말뚝이 땅에 박혀 있었다.
크기는 대략 1미터 정도.
말뚝의 주변에는 공간이 깨진 듯 균열이 일어나 있었고 점점 그 균열이 크기를 키우고 있었다.
‘뭐지 이건 또.’
이제까지 악마교를 상대하면서 본 적이 없던 오브젝트였다.
검은 말뚝을 향해 다가가려고 할 때였다.
-크르르르르.
“역시 가만히 방치해뒀을 리가 없나.”
낮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A급 게이트에서 가장 자주 목격되는 몬스터들. 오우거와 엘리트 트롤이었다.
‘아니.’
가늘게 눈을 떴다. 주시자의 권능을 사용해 몬스터들을 살폈다.
기본적으로 몬스터들은 마석에 담긴 마력의 힘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지금 몬스터들에게서는 마력보다는 마기의 기운이 짙게 느껴졌다.
‘감염, 되고 있는 건가?’
이전 엘 쿠레로의 머리에 마정을 심어 넣은 것처럼 몬스터들이 ‘마물’에 가까우지고 있었다.
“전투 준비.”
“응!”
[명을 받들겠습니다.]두 소환수가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때였다.
“뭐야 너희들은?”
깡마른 몸에 2미터에 가까운 키. 멀대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청년이 시건방진 미소를 띠우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흐음. 화랑부대 쪽 놈들은 아닌 것 같은데….”
그는 발자하크의 외모를 보고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뭐, 좋아. 침입자는 일단 죽여 버리면 되니까.”
짙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키에에에에엑!
그가 서있는 땅이 뒤집어지며 기다란 꼬리를 가진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는 3미터 정도로 크지 않았지만 전신은 갑주를 입은 듯 단단한 검은 비늘에 뒤덮여 있었고 몸에는 녹색 산성액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SF영화에 나오는 에얼리언과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괴물.
강우는 그 괴물을 보고는 눈을 빛냈다.
‘크리샬리스?’
크리샬리스.
겉모습으로 보이는 위용은 크지 않지만 무려 팔천지옥에 서식하는 마물이었다.
케로베로스와 같은 대형 마물들이 떼거리로 달려들어도 순식간에 학살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마물.
‘이제는 팔천지옥의 마물까지 다룬다, 이건가.’
악마교의 지식에는 탄성뿐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크리샬리스는 엄청나게 포악한 마물로 팔천지옥에 있는 악마들도 함부로 건들지 않는 괴물이었다.
할키온과 같은 고대 마물 앞에서는 한 수 접어주지만 일반 마물들 중에서는 지능도 뛰어난 편.
그런 마물을 저렇게 다룬다는 것은 악마교가 마물을 다루는 지식이 아득한 경지에 올라섰다는 증거.
“팔천지옥이라.”
전에 먹어치웠던 삼천지옥의 마물들의 마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팔천지옥이라면 얘기가 또 달랐다.
강우는 입맛을 다셨다.
“저놈은 내가 상대하지.”
간만에 먹을 만한 먹잇감이 나타났다.
생긴 건 아무리 좋게 말해줘도 먹음직스럽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그래도 내가 리리스랑 천 년을 붙어있었는데.’
에얼리언 정도는 귀엽게 느껴질 지경.
-다음 역은 가능, 가능역입니다.
귓가에 환청이 들리는 기분.
강우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