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4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48화
나는 사탄이다 (2)
-쿠우우웅!
“크으읏!”
거대한 충격이 다시 한 번 창고 전체를 뒤흔들었다.
제갈현은 흔들리는 창고 안에서 중심을 잡았다. 그는 입술을 깨문 채 술법들을 제어하는 제어실로 다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제길.’
절로 표정이 일그러졌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진짜로 예언의 악마가 창고를 습격할 줄이야.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설마.’
제갈현의 표정이 굳었다. 오늘 만난 두 사람의 얼굴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단순한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공교로웠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제갈현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들을 의심하고 말고 할 때가 아니었다.
창고를 습격한 예언의 악마를 막는 것.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는 것이 우선이었다.
“후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몸이 떨렸던 것도 잠시. 그는 빠르게 평온을 되찾았다.
창고 전체에 걸린 술법을 제어하는 제어실. 커다란 의자에 앉아 제어장치에 손을 뻗었다.
“예언의 악마라.”
마른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제갈현은 흥분에 찬 눈빛으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무리 네가 괴물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이곳을 뚫릴 생각은 없었다.
그레이스에게 설사 예언의 악마라도 함부로 이곳을 넘볼 수 없다고 한 것은 허언이 아니었다.
이 창고는 그의 술법이 지배하고 있는 영역.
창고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술법만 해도 수십여 개에 달한다.
전쟁으로 치면 성벽을 높게 쌓고, 화포를 가득 채운 요새에 적이 달려든 꼴.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예언의 악마라고 해도 함부로 설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계산이었다.
“우선.”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제갈현은 새하얀 가면을 쓴 채 투명한 구슬을 집어 들었다.
[긴급 구조 요청 신호를 발송합니다.]자신감이고 뭐고 일단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상황을 한시라도 빨리 가이아에게 전하는 것.
그래야 술법으로 시간을 끌면서 추가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 있었다.
‘아니.’
제갈현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잘만하면 이번 기회에 예언의 악마를 처치할 수도 있다.’
술법으로 주변을 비춰보니 다른 추가 병력을 보이지 않았다.
사탄 혼자서 이 창고를 습격했다는 의미.
적장이 홀로 요새에 달려든 꼴이니 위기가 아닌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띠링.
[알 수 없는 기운이 창고를 감싸고 있습니다. 구조 요청 신호의 발송이 지연됩니다.]“제길.”
들떴던 기분이 단숨에 곤두박질쳤다. 제갈현은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을 천천히 살폈다.
‘발송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야.’
어디까지나 지연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는 얘기는 예언의 악마의 힘을 소진시키면 창고를 둘러싼 알 수 없는 기운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결국은 싸워야 한다 이거지.’
제갈현은 제어실에 있는 술법 제어용 헤드기어를 착용했다. 마치 VR게임을 하듯 밖의 상황이 그의 시야에 넓게 펼쳐졌다.
술법과 헤드기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조합이었지만 둘 사이의 시너지는 상상 이상이었다.
‘고리타분한 늙은이들은 평생 이해 못 하겠지만.’
그의 본가, 제갈세가에서는 ‘격변의 날’ 이전부터 술법이 전승되어 왔다.
제갈현은 가문의 후계자로 어렸을 적부터 술법을 익혀왔다.
술법에 대해 남다른 재능을 지녔던 그는 단순히 전승되는 술법을 익히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그가 시도한 것은 바로 현대 과학과 술법의 접목.
본가의 술법사들은 현대 과학과 술법을 접목하려는 제갈현의 시도를 강하게 비판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시작해 볼까.”
헤드기어를 쓴 채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오랜 연구 끝에 만들어진 현대 과학을 활용한 술법 장치. 그 장치가 지닌 위력은 기존의 술법과는 격을 달리했다.
[시스템 가동. 방어 레벨을 2로 조정합니다.]“부족해. 4까지 올려.”
[정정. 방어 레벨을 4로 조정합니다.]딱딱한 기계음과 함께 제갈현의 손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키보드가 달깍거리는 소리가 제어실 안을 가득 메웠다.
‘움직인다.’
붉은 가면을 쓴 악마가 몸을 움직였다.
저벅. 저벅. 느긋하게,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천천히.
제갈현의 표정이 구겨졌다.
“여유를 부리겠다, 이거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언제까지 그 여유를 부릴 수 있는지 보자고.”
[침입자의 배제를 시작합니다.]악마를 향해 두 개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하늘로 떠오른 마법진에서 화염 줄기가 쏟아졌다.
검은 장막에 튕겨 나온 화염이 대지에 흩뿌려졌다.
악마는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 마법진에서 얼음의 창이 튀어나와 악마를 노렸다.
-파각!
가볍게 손을 휘젓자 얼음 창이 박살 났다.
악마는 멈추지 않았다.
대지가 갈라지며 암석이 솟구쳤다. 악마가 발을 굴렀다. 솟구치던 암석째로 대지가 무너졌다.
악마는 멈추지 않았다.
37개의 마법진이 빛을 뿜었다. 폭풍우가 내리치듯 빛무리가 악마를 향해 쏟아졌다. 딱.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를 향해 쏟아지던 빛무리가 증발하듯 모조리 사라졌다.
악마는 멈추지 않았다.
64개의 마법진이 거대한 폭발을 만들었다.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돌조각들이 사방에 흩날렸다.
안개처럼 깔린 먼지 속에서 악마가 걸어 나왔다.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어둠은 여전히 장막처럼 두꺼웠다.
악마는 멈추지 않았다.
“방어 레벨 5로 조정.”
제갈현의 이마에 땀이 흘러내렸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방어 레벨 5로 조정합니다.]-쿠구구구궁!
창고 옆 격벽이 열렸다. 푸른빛을 뿜어내는 골렘들이 쏟아져 나왔다.
골렘 무리가 악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악마가 몸을 낮췄다. 두 팔을 아래로 늘어트리고 날개를 펼치듯 양팔을 벌렸다.
-콰드드드드드득!
솟구치는 어둠의 칼날이 골렘들을 꿰뚫었다.
그 단 한 방으로, 골렘들은 전멸했다.
“방어 레벨 6으로 조정.”
[방어 레벨 6으로 조정합니다.]172개의 마법진이 나타났다. 악마를 둘러싼 마법진이 동시에 빛을 뿜었다.
빛의 쐐기가 악마를 노렸다.
악마의 몸에서 검은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빛의 쐐기가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후우, 후우.”
제갈현의 숨이 거칠어졌다. 키보드를 박살 낼 것처럼 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사방으로 터져나간 빛의 쐐기들이 서로 튕겼다. 빛이 어지럽게 얽히며 찬란한 광경을 만들어냈다.
30여 미터에 달하는 빛의 창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환술을 더했다. 빛의 창이 수십 개로 늘어났다.
본체는 하나. 하지만 술법에 통달한 자가 아니라면 구분할 수 없었다.
빛의 창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건 막을 수 없을 거다.’
자부할 수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그랜드캐넌을 뒤흔들었다. 암벽이 무너져 내리며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이런 미친….”
빛의 창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있는 악마의 모습이 보였다.
수십 개의 환영 속에서, 악마는 정확히 진짜를 구별했다.
-쩌적!
빛의 창에 균열이 달렸다. 3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창이 산산이 박살 났다.
악마가 웃었다. 정확히는 가면 쓰고 있기에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제갈현은 왠지 그가 웃고 있다고 느꼈다.
“허억! 허억!”
무리한 술법의 운용에 숨이 가빠왔다. 코에서 뜨끈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비릿한 피가 입술을 타고 안까지 흘러들었다.
“바, 방어 레벨 7로 조정.”
[방어 레벨을 최대로 조정합니다. ‘수호의 검’을 발동….]-콰드드득!
시스템의 목소리가 이어지기 전에, 격벽이 처참히 뜯겨나갔다.
제어실의 벽이 찢겨나가며 붉은 가면의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갈현은 전율했다.
“괴, 괴물.”
몸이 떨렸다. 괴물, 이라는 단어 밖에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누구를 감히 괴물 따위와 비교하는가.]붉은 가면에서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 장난감으로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악마가 손을 뻗었다.
제갈현의 몸이 강렬한 흡입력에 빨려들어 갔다.
“커헉!”
[기억해라, 인간.]가면 너머로 보이는 흉포한 눈이 제갈현을 향했다.
[나는 죽음이다. 나는 종말이다. 모든 분노한 자의 어버이이며, 분노 그 자체다.]가면이 기울어졌다.
[나는 사탄이다.]그 말을 끝으로, 제갈현의 의식이 끊어졌다.
* * *
“…예?”
가이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에 쥐고 있던 식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통신용 수정 구슬을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이 덜덜 떨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김시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강우의 집에서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던 도중 걸려온 연락을 받자마자 가이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강우와 그레이스, 한설아 또한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표정을 굳혔다.
“차, 창고가… 습격, 당했다고 합니다.”
“습격이라고요? 악마교입니까?”
강우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가이아는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창고를 습격한 것은… 사탄입니다.”
“…예?”
경악이 퍼졌다.
강우와 김시훈, 그레이스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전개에 입을 쩍 벌렸다.
설마 사탄이 직접 움직여 창고를 습격하다니?
우스갯소리로 말하긴 했지만 정말로 사탄이 움직일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사, 사탄이라고요?!”
김시훈은 흥분한 표정으로 그녀의 어깨를 쥐었다.
가이아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한 시간 전에 창고에 습격해서 모아놓은 씨앗을 모조리 가져갔다고 합니다.”
“크읏!”
김시훈이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강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형님!”
“바로 출발하자.”
강우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시훈이 수호의 전당으로 향하는 게이트를 만들었고, 그레이스와 가이아가 그 뒤를 따랐다.
강우는 그들보다 다소 늦게 뒤를 따라갔다.
‘좋군.’
분신의 권능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물론, 창고를 습격한 사탄은 그의 분신이 아니다.
권능으로 만든 분신 따위에게 가디언즈의 창고를 박살 낼 수 있는 힘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분신은 고작해야 밥을 먹는다는든지 대화를 나눈다는든지 하는 간단한 행동밖에 할 수 없었다.
“하하.”
가벼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다.
분신은 밥을 먹거나, 대화를 나누는 등의 간단한 행동만 할 수 있다.
‘이걸로.’
세계에서 수거한 균열의 씨앗들과 ‘자신은 사탄이 아니다’라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앞서 나간 김시훈과 가이아, 그레이스를 쫓아 게이트에 몸을 실었다.
강우의 ‘분신’이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