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51)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52화
마왕 발자하크 (1)
“그럼 수호의 전당 쪽에 빈방이 많으니 레이날드 씨는 그곳에서 생활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알겠습니다. 저도 아직 이 세계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으니 그곳에서 기초적인 지식을 쌓는 것도 좋을 것 같군요.”
“호호호. 그건 제가 직접 도와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가이아 씨가 있어서 든든하군요.”
두 신의 사도는 벌써 친해지기라도 한 듯 다정하게 대화를 나눴다.
아마 신들의 선택을 받은 두 사도 사이에 서로 끌리는 것이라도 있는 모양.
‘그럴 확률이 높겠지.’
만난 것으로 친다면 고작 몇 시간 정도.
그사이에 저렇게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흘리고 있는 것을 보니 가이아가 티리온의 빛을 몸에 받아들인 것이 분명 연관이 있을 것이다.
“…….”
그런 둘의 모습을 보고 김시훈의 표정이 초조함에 휩싸인 것은 당연했다.
직접 나서지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에도 불안한 듯한 모습.
아니, 지금 자신이 느끼는 이 감정이 뭔지 그 스스로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걱정하지 마라, 시훈아.’
아무 말 없이 김시훈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김시훈의 천성이 워낙 착한 탓에 방황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였다.
‘형만 믿어, 인마.’
“형님?”
“아. 왠지 기운 없어 보여서.”
“아, 아닙니다, 형님. 하하하. 좀 머릿속이 복잡해서요.”
김시훈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었다.
“레이날드 때문이냐?”
“아, 아뇨!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인마. 얼굴에 다 쓰여 있다.’
강우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김시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걱정하지 마라. 가이아 씨는 너한테 호감이 있는 것 같으니까.”
“그, 그런 것 아닙니다!”
“하하하! 사내새끼가 뭐 그런 거로 부끄러워하냐.”
“형님!”
얼굴을 붉힌 채 그를 노려보는 김시훈의 모습이 꽤나 귀엽게 느껴졌다.
아마 진짜 남동생이 있다면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강우는 낄낄 웃으며 가이아와 레이날드의 뒤를 따랐다.
“아, 근데 가이아 씨는 어디에 묵으십니까?”
“저도 기본적으로는 수호의 전당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레이스가 도와주지 않으면 생활하기 불편한 몸이라….”
“엇. 그렇다면 이곳에 두 분과 함께 지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호호. 괜찮습니다. 수호의 전당은 넓으니까요. 지내는데 필요한 설비도 다 갖춰져 있습니다.”
“음. 그렇다고 해도 두 분과 같은 곳에서 지내는 건….”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이어지는 가이아와 레이날드의 대화에 얼굴을 붉히던 김시훈은 입술을 깨물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급격히 친해진 것도 모자라 동거까지 한다고 하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
‘이거 빨리 손을 써야겠는걸.’
심란해하는 김시훈을 보니 마음이 아려왔다.
‘계속 가면을 쓰고 있는 것도 의심을 받을 테고.’
결코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레이날드를 이대로 놔두는 것은 위험한 것이 사실.
기왕 처리할 거라면 빠르게 처리하는 편이 이득이었다.
‘어디 보자.’
강우는 가늘게 눈을 뜬 채 생각을 이어갔다.
의심을 피하면서도 레이날드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
그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야 했다.
‘사실 방법 자체는 좋은 게 있는데.’
문제는 그 방법을 사용하기 위한 과정.
그것이 바로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음.”
고민에 잠겼다.
‘여기서는….’
가늘게 눈을 떴다. 그때였다.
“그러면 내일부터 바로 발자하크의 수색을 시작하죠. 발자하크가 그 사탄이라는 악마의 하수인으로 들어갔다면 발자하크를 통해 사탄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레이날드의 말에 가이아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레이날드 씨의 열정은 알겠지만 지금 저희에게는 발자하크는커녕 그들이 몸을 담고 있는 악마교를 추격할 방법도 없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지금 가디언즈에게 악마교를 추적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그녀의 말에 레이날드는 산뜻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악마교라는 조직을 추적할 수는 없지만 발자하크라면 티리온 님의 축복으로 어디 있는지 위치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 그 말씀이 사실인가요?!”
이어지는 레이날드의 말에 가디언즈 멤버의 얼굴에 경악이 퍼졌다.
강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미친?’
이번에도 역시 예상치 못했던 전개.
강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거 진짜 꾸물거릴 때가 아니잖아.’
발자하크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경악에 휩싸인 사람들을 바라보며 레이날드가 말을 이었다.
“예. 하루에 한 번. 하늘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그 시간에 발자하크가 있는 위치와 그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계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허.”
“그런 능력이….”
탄성이 흘러나왔다.
발자하크에 국한되었다고는 하나 잘만 한다면 사탄, 더 나아가 악마교의 핵심 전력들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알 수도 있는 능력이었다.
가디언즈 멤버들의 눈빛이 열의에 타올랐다.
한 번 숨기 시작하면 당최 그 꼬리를 잡을 수 없었던 악마교의 본체를 알아낼 기회였다.
‘야 이 사기꾼 새끼야.’
물론, 강우의 표정은 똥을 씹은 듯 구겨졌다.
티리온이라는 놈이 대체 뭐하는 신인지는 알 수 없어도 가이아에 비해서 할 수 있는 능력의 차이가 너무 큰 것이 사실.
에르노어 대륙이 아닌 지구에까지 이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사기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건 신중해야 하겠네요.”
“예, 잘만 활용한다면 악마교의 전력을 낱낱이 파악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김시훈도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사랑타령을 하며 레이날드에게 질투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
“그러면 좀 더 시간을 가지고 발자하크의 위치와 상태를 체크하도록 하죠.”
“네. 하늘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시간이라면 해가 질 때겠네요.”
“몇 시간 남지 않았으니 기다리겠습니다.”
열의에 찬 가디언즈의 멤버들.
‘시바.’
강우만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에 손을 올렸다.
‘오늘 바로 움직여야 해.’
한 번 계시를 받는다면 그것으로 끝.
발자하크를 먼 곳으로 대피시키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매일 이뤄지는 계시가 정확히 어디까지 정보를 주는지 알 수 없는 이상 쓸데없는 변수는 만들지 않는 것이 좋았다.
강우는 가늘게 눈을 뜬 채 생각에 잠겼다.
‘저번처럼 내가 직접 움직이기는 힘들어.’
분신의 권능으로 더미를 만들고 직접 움직이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티리온의 가호가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가장 큰 문제.
티리온이라는 신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 그가 직접 움직이다가 정체가 들통날 위험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움직인다.
강우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그가 해야 할 일과 지금 상황을 떠올렸다.
‘잠깐만.’
눈이 반짝였다.
고개를 돌려 가디언즈와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레이날드를 바라보았다.
김시훈에 뒤지지 않는, 조각 같은 외모를 가진 금발의 미청년.
실제 그의 성격 또한 김시훈과 비슷했다.
‘정확히는 시훈이보다 알렉에 가깝지.’
김시훈은 자신의 영향으로 알렉처럼 되지 않았다.
하지만 레이날드는 달랐다.
본질은 김시훈과 비슷할지 몰라도 그는 자신을 만나지 않았다. 보다 ‘알렉’스러운 김시훈이라는 의미.
“그렇다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입술을 핥았다.
‘이용할 수 있다.’
레이날드가 받는다는 신의 계시. 그를 역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강우는 열띤 회의를 진행 중인 가디언즈 멤버들에게 떨어져 통신용 수정 구슬을 들어 올렸다.
가디언즈 멤버에게 지급되는 수정 구슬이 아닌, 그의 소환수들에게 연락하기 위해 따로 만들어둔 수정 구슬.
‘정의롭다는 건 피곤한 일이지.’
강우는 웃었다.
* * *
“가이아 씨. 잠시 얘기드릴 게 있습니다.”
“제게요?”
“예. 시훈이 너도 같이 와.”
“하지만 형님. 조금만 있으면 해가 질 시간인데….”
“어차피 계시를 받는다고 바로 움직일 건 아니잖아. 며칠간은 계시를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악마교에 대해서 분석할 예정 아니었어?”
“그렇긴 합니다만.”
김시훈과 가이아는 갑작스러운 강우의 제안에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따라 나왔다.
그들이 향한 곳은 수호자의 전당 안에 설치된 대련실.
어마어마하게 넓은 크기를 자랑하는 새하얀 방에 도착한 강우는 몸을 돌렸다.
“여기에는 무슨 일입니까 형님?”
“사탄이 습격했을 때 영상을 다시 한번 살펴봤어. 이번에 레이날드 씨를 통해 사탄과 직접적인 전투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아, 그렇군요.”
강우는 오른손 중지에 낀 반지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한 번 시험해 보려고.”
“무엇을 말입니까?”
“지금 우리가 사탄을 감당할 수 있는지.”
“…….”
“레이날드 씨를 보고 느낀 게 있어.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야.”
“…형님.”
“시훈이 너도 무신의 영혼을 품고 있잖아. 전혀 위축될 필요 없어. 레이날드 씨가 할 수 있다면, 너도 할 수 있는 거야.”
강우는 무기를 들어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너랑 대련하는 건 처음인 것 같네.”
“하하하. 그러네요.”
김시훈도 강우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엘 쿠에로 블레이드를 뽑았다.
강우는 가이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가이아 씨는 그곳에서 시훈이에게 혹시 티리온 님에게 받았던 것과 같은 감각이 드는지 확인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것 때문에 저도 부르신 거였군요. 알겠습니다.”
가이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시훈의 기운에 의식을 집중했다.
강우와 김시훈의 대련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사실 그것 때문에 부른 건 아니었지만.’
강우는 희미하게 웃었다.
두 사람을 이곳에 부른 것은 어디까지나 레이날드에게서 떨어트려 놓기 위해.
그는 왼쪽 눈에 의식을 집중했다. 소환수의 시야와 그의 시야가 공유됐다.
-발자하크. 준비는 끝났냐?
-물론입니다, 마스터.
-예정대로 진행해.
-예.
-흐응! 강우! 나도 열심히 할게!
-그래.
짧은 대화가 오갔다.
“하압!”
엘 쿠에로 블레이드를 꺼내든 김시훈의 발을 박찼다.
* * *
“아.”
수호의 전당.
방에 앉아 있던 레이날드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몸 안에 차오르는 충만함.
계시가 시작되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악!
-크흐흐흐! 아주 좋은 제물이로군!
“이, 이건….”
소녀의 비명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그의 시야에 발자하크가 비쳤다.
깍아지듯 솟아오른 협곡. 무너진 암석들.
그가 이 세계에 오기 얼마 전 사탄의 습격을 받았다는 장소였다.
시야에 비치는 발자하크의 품에는 가녀린 소녀가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발자하크는 노란 안광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레이날드. 네가 이 세계에 도착했다는 것을 이 마왕 발자하크가 모른다고 생각했나?
“서, 설마.”
-흐흐흐.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계시를 통해 알았겠지.
발자하크의 음산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꺄아아악! 사, 살려줘!! 제발 살려주세요!
-이 소녀를 구하고 싶다면 혼자 이곳으로 와라, 레이날드.
그 말과 함께 발자하크가 소녀의 목을 거칠게 틀어잡았다.
-커헉! 컥! 사, 살려…!
소녀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두 다리를 바동거렸다.
“네 이놈!! 지금 무슨 짓을…!”
레이날드의 동공이 커졌다.
차오르는 분노가 그의 이성을 날려 버렸다.
“발자하크!”
영웅이 포효했다.
발자하크의 사악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크하하하!! 티리온의 가호가 있으면 나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가이아의 종속들을 만나면 뭔가 달라질 거라 생각했나?
텅 빈 백골의 눈에서 노란 안광이 타올랐다.
-내가 누군지 잊은 건가 레이날드?
발자하크가 손을 들어올렸다. 어마어마한 마기의 격류가 그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검은 로브 자락이 춤을 추듯 펄럭였다.
-나는 마왕 발자하크다.
펄럭.
검은 로브 자락 사이로 분홍빛 에이프런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