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72)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73화
그녀가 남긴 편지 (1)
“자,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야?”
시야가 흔들렸다. 귓가가 뜨거워지며 머릿속이 엉켰다.
전혀 예상하지도, 상상하지도 않았던 말.
“이미, 리리스가 지구에 왔다고?”
발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에 드디어 마왕님께서 자신을 불렀다며 얼마나 자랑을 하면서 가는지….]그는 거칠게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안 그래도 흉악하기 짝이 없는 발록이 표정까지 일그러트리니 공포영화에서나 볼법한 흉악한 얼굴로 변했다.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
[크윽. 그 얼굴만 믿고 나대는 요망한 년…. 마왕님, 리리스의 색계에 너무 빠져서는 안 됩니다.]진심어린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싸늘했다.
“닥쳐.”
[예?]“닥쳐 봐, 새끼야.”
강우는 두 손으로 머리칼을 움켜쥔 채 몸을 떨었다.
‘안 돼.’
찔꺼억.
수십 개에 달하는 녹색 촉수가 꿈틀거리는 소리.
끈적한 점액질이 촉수를 타고 흘러내리며 수천 개의 빨판이 피부를 핥았다.
18개의 눈과, 뱀처럼 기다란 혓바닥이 그의 입술을 스쳤다.
‘어머니, 씨발.’
과거의 기억.
트라우마.
머릿속에 새겨진 낙인.
풀려날 수 없고, 잊을 수도 없는 기억들. 감정들. 감촉들.
‘멍청하다고 해서 미안하다, 시훈아.’
김시훈이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멍청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모습은 어떤가.
‘살려줘.’
어두운 밤.
부드러운 물건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는 지옥에서 어렵사리 만들어낸 침대 위에 누워 잠에 들려고 할 때.
이불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촉수들. 이불을 다급히 들추자 그 안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18개의 붉은 눈동자.
옷을 들추며 더듬는 축축한 손길. 옷을 적시며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끈적이는 점액질.
비명을 지르기 위해 입을 벌리자 날렵하게 입 안으로 들어오는 기다란 혓바닥.
-사랑해요, 나의 왕이시여.
‘으아아아아아아!’
담당일진을 만난 학생처럼.
포식자를 마주친 먹잇감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덜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리, 리리스가… 지구에… 왔, 다고?”
공포가 그의 몸을 지배했다.
어두운 밤의 기억이 그를 옥죄여왔다.
그렇게 싫으면 리리스가 방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들면 되는 거 아니냐 물을 수 있겠지만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리리스와의 동침은 ‘동맹’이라는 측면에서도, 형식상이지만 그의 ‘아내’라는 것 때문에라도 함부로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왕비와 전혀 잠자리를 갖지 않는 왕이 있는 국가.
그 국가 대부분의 국민들이 왕비를 무척 아끼고 사랑하며, 찬양한다고 하자.
당시 일곱 대공의 세력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마왕군 내부에 분열을 일으킬 수 없는 강우의 입장에서는 반강제적으로 그녀와 동침할 수밖에 없었다.
“우웁.”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다급히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이런 반응을 보이고 믿기 힘들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리리스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향해 한결같은 충성과 사랑을 보이며 최선을 다해주는 그녀를 싫어할 리는 없었다.
‘그래서 더 문제였지.’
차라리 적이었다면 단칼에 찢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적이 아닌 아군. 그것도 마왕군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주요 인물이었다.
심지어 그에게 심장이라도 뜯어다 바칠 정도의 사랑을 보내고 있었다.
입장 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그녀를 차갑게 내치는 것은 힘들었다.
‘그래, 시바. 호구인 내가 잘못이지.’
발록과 리리스. 두 화상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들이 소중 하냐, 아니냐를 고르라면 당연히 소중했다.
천년의 시간을 함께 지내며 수많은 역경을 넘어왔다.
인간성이라는 것이 손톱의 때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미운 정이라도 쌓이는 것이 당연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 겁니까?]“하아. 아니다. 말을 말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리리스와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고, 그것은 강우에게 뿌리 깊은 트라우마를 심어주었다.
“그나저나….”
가늘게 눈을 떴다.
‘역시 왔다면 그때 온 거겠지.’
일본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리리스가 소환되는 것을 간신히 틀어막았을 때의 기억.
아키야마라는 정신 나간 악마교도와의 교전. 그리고 그 이후에 있었던 일들.
그때 균열 속에서 리리스 본인이 나온 것은 아니었으니 그녀의 영혼이 쿠로사키 유리에의 몸 안에 흘러 들어갔거나 했을 가능성이 컸다.
“아.”
탄성이 흘러나왔다.
쿠로사키 유리에. 그녀의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들이 하나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강우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맞아. 그래서 그랬던 거야.’
일왕의 손녀라는 자가 후지모토 료마가 아닌 자신의 편을 들어준 것.
이상할 정도로 그의 부탁을 쉽게 들어줬던 것.
그 모든 것이 쿠로사키 유리에의 몸 안에 리리스가 들어가 있다면 설명 됐다.
“어, 잠깐만.”
느낌표 하나가 머릿속에 떠오른 감각.
강우는 두 눈을 부릅떴다.
‘이거 오히려 좋은 상황 아닌가?’
그가 리리스를 꺼려하는 이유는 순전히 끔찍한 외모 때문이었다.
고작 외모가지고 뭐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경우 도를 넘어섰다.
‘걔랑 천 년 붙어있어 봐라, 그딴 말이 입에서 나오나.’
대형 문어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달라붙는 격인데 여기서 고작이란 말이 나올 수가 없었다.
강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리리스가 쿠로사키 유리에의 몸 안에 들어가 있다면!’
가장 근본적이며, 핵심적인 문제가 한 방에 해결된 것.
심지어 쿠로사키 유리에는 한설아와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뭐, 이제 와서 리리스랑 뭘 해볼 생각은 없지만.’
한설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강우는 고개를 저으며 입술을 핥았다.
‘어쨌든, 이건 반길 만한 일이야.’
인간의 육체로 들어간 리리스가 어느 정도의 힘을 지녔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악마가 지닌 힘의 근본은 영혼.
루시퍼만 하더라도 달랑 영혼 하나와 지옥무구만으로 힘을 회복했으니 그녀 또한 전성기에 준하는 힘을 지녔을 확률이 높다.
발록에 이어 리리스.
‘이러다가 지구에서 마왕군을 만드는 건 아니겠지.’
희미한 불안감이 솟았으나 어쨌든 상황은 고무적이었다.
강우는 품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전에 통화했던 쿠로사키 유리에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음.”
통화음이 울렸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번 더 전화를 걸었다.
“안 받네.”
눈살을 찌푸렸다.
‘어쩔 수 없지.’
강우는 몸을 돌렸다.
[마왕님?]“잠깐 갔다올 데가 있으니까 여기 있어.”
[용무가 있으시다면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발록은 투기를 뿜어내며 말했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사람이 많이 필요한 일도 아니니까. 그보다 지금 네 몸으로는 가봤자 혼란만 불러올 거야.”
[끄응.]“무슨 일 있으면 부를 테니까 이거 귀에 다가 끼고 있어.”
강우는 발록의 귀에 들어맞는 통신기를 건넸다.
발록은 공손하게 통신기를 받아들였다.
[명을 기다리겠습니다.]대답하지 않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강우는 천공의 권능을 사용하여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쿠로사키 유리에가 있는 곳이 도쿄였지.’
일왕이 지내는 성에 살고 있다고 들었다.
허공을 박차듯 발을 굴렀다. 하늘 높이 날아오른 강우의 몸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졌다.
* * *
고풍스러운 성.
한 시간도 걸리지 않고 도쿄로 날아온 강우는 성 위에 섰다.
문을 찾아 그 안으로 들어갔다.
“누, 누구냣!”
내부를 지키던 경호원들이 다급히 그를 둘러쌌다.
강우는 품속에서 흰색 가면을 꺼냈다.
“가디언즈입니다. 쿠로사키 유리에 님에게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가디언즈…?”
“어, 잠시만.”
가디언즈는 대외적으로 공개되어 있지 않은 비밀조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각국의 수뇌부들은 그 존재를 알고 협력하고 있는 상황.
쿠로사키 유리에를 지키는 경호원들이라면 가디언즈에 대해 아는 것이 당연했다.
“비켜주세요.”
그때, 한 명의 청년이 경호원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이, 이토 대장님.”
“저분은 제가 알고 있습니다. 가디언즈의 일원이 맞으니 다들 돌아가 주세요.”
“예!”
침착한 인상에 뱀눈을 가진 청년.
사진으로 본 기억이 있는 청년이었다.
“이토 신지 씨 맞습니까?”
이토 신지.
가디언즈의 일원으로 가이아의 선택을 받은 수호자 중 한 명이었다.
“예. 맞습니다. 강우 씨. 이렇게 직접 본 건 처음이네요. 가이아 님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쿠로사키 유리에 님에게 드릴 말이 있습니다.”
형식적인 인사치레를 할 시간은 없었다.
강우는 이곳에 온 이유를 짧게 말했다.
이토 신지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잠시 이곳으로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토 신지의 뒤를 따라갔다. 그는 담백한 인상이 느껴지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인기척은 없었다.
“여긴….”
“쿠로사키 유리에 님의 방입니다.”
“지금 밖에 나가 있으신 겁니까?”
“아뇨.”
이토 신지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강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잠깐 이거.’
“쿠로사키 유리에 님은 한 달 정도 전부터 행방불명되신 상태입니다.”
‘이런 시바.’
불긴한 예상이 들어맞았다.
‘얘는 또 어디에 간 거야.’
한 달 전이라면 균열의 씨앗을 수거하는 작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어디로 가셨는지는 모르십니까?”
“예. 전국적으로 수색하고 있지만 아직 단서는….”
이토 신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쿠로사키 유리에의 서랍장으로 다가서 새하얀 종이봉투 하나를 꺼냈다.
“쿠로사키 유리에 님께서 만약 오강우 님이 직접 자신을 찾아온다면 전해달라고 한 편지입니다.”
“…내용이 뭐죠?”
들춰보지 않았을 리는 없었다.
한 국가의 수장 격인 존재가 사라진 이상 무조건 확인해 봤을 것이다.
이토 신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알 수 없는 문자로 적혀 있었습니다. 아마 강우 씨에게만 보이도록 장치가 되어 있던 거겠죠.”
“왜 미리 연락하지 않으신 겁니까?”
“저희 쪽에서 먼저 연락을 취하면 편지가 불타 사라질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가능한지는 몰라도,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죠.”
“흠.”
강우는 편지를 받아들였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편지까지 남기고 사라진 거야?’
봉투를 뜯어 종이를 꺼냈다.
그가 손을 대자 종이에 적힌 검을 글씨들이 꾸물거리며 움직였다.
편지에 적힌 글자는 한글.
‘한글은 또 언제 배운 거야.’
의문을 뒤로한 채 내용을 읽었다.
[사랑하는 마왕님에게.아마 이 편지를 읽으셨을 때쯤 마왕님은 제 정체를 알아차리셨겠죠. 그렇지 않다면 ‘쿠로사키 유리에’를 직접 찾아오실 이유가 없으니까요.]
‘눈치 한 번 더럽게 빠르네.’
눈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발록과는 확연히 차이나는 모습.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문장을 읽었다.
[우선, 이 인간의 몸을 빌려 지구에 왔음에도 정체를 숨기고 있던 것에 대해 사죄드립니다.]‘아, 맞아. 그러고 보니 왜 정체를 숨기고 있던 거야?’
[이 추하고 더러운 외모로… 감히 마왕님의 앞에 나설 용기가 없었습니다.]“뭐?”
육성이 흘러나왔다.
“뭔 개소리야?”
추하고 더럽더니?
쿠로사키 유리에의 외모는 아무리 낮게 쳐도 미인의 범주였다.
[저는 이렇게 추한 외모를 가진 육체를 벗어나 마왕님께서 사랑하셨던 제 모습으로 돌아올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아니.”
[그러던 중, 드디어 방법을 찾아냈습니다.]“아니 X발.”
아니, 라는 말 이외에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후후훗. 벌써부터 가슴이 떨리지 않으십니까? 사랑하는 왕이시여. 이 리리스의 가슴은 벌써 왕과 재회할 생각에 터질 것만 같습니다.]“아니, 왜. 아니… 대체 왜 X발….”
[인간들 중에서도 꽤나 마기를 다루는데 능숙한 인간들이 있더군요. 악마교. 그들이 제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뭐, 뭐 씨발?”
[그러고 보니 마왕님께서 이 악마교가 사탄 따위를 마왕이라 섬기고 있다 말씀하셨죠? 후훗. 이번에 제가 그들에게 진정한 마왕이 누구인지, 똑똑히 알도록 만들겠습니다.]“아, 아아.”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저는 악마교에 가담하여, 진정한 마왕의 존재를 널리 퍼트리겠습니다. 그리고 제 원래 모습을 되찾아 마왕님을 다시 찾아가겠습니다.]손이 떨렸다. 귓가가 뜨거워졌다.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사랑하는 왕이시여,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당신의 리리스가. 쪽♥]마지막 하트문양을 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쫘악! 쫘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
편지를 찢었다.
있는 힘 것 포효를 내질렀다.
“나한테,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에에에에!!”
“무, 무슨 일이십니까?!”
손을 뻗었다. 이토 신지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씨발 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예, 예?”
“내가! 내가 X발!!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왜 나만 햄보칼 수가 없는 거야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