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1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18화
빛의 감시자 (1)
“아직까지 아무 움직임이 없다고?”
리리스가 가져다 준 서류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예.”
“흠….”
침음을 흘렸다.
‘움직임을 보일 때가 됐는데?’
루시퍼나 사탄.
둘 중 하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두 악마 중 어떤 악마도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마기 스탯을 올려야 하는데.’
과거 구천지옥에서의 경지를 넘어 마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일단 마기 스탯 150을 도달할 필요가 있었다.
이미 성장 자체가 한계치에 도달한 마기 스탯을 올리기 위해서는 대공급 존재가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데 생각했던 것과 달리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짜증이 솟았다.
‘먼저 그 거대지부라는 곳을 공격할까.’
그것도 방법 중 하나.
잠시 고민을 이어가던 강우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조금 더 기다려보자.’
1만 명 이상이 모여 있는 거대지부라고 해서 대공급 존재가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아프리카에 있던 거대지부만 하더라도 추기경급만 많았을 뿐 대공 같은 존재가 있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그 악의 위상이라는 놈들이 몇 명인지 모르니.’
마몬과 사탄.
그 둘은 분명 악의 위상급의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그 둘이 끝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안정적인 마기 수급을 위해서도 악의 위상급 존재가 여럿인 게 좋았다.
설사 대공이 부활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와 비슷한 급의 존재라면 마기 스탯을 올리는 데 문제가 없을 테니까.
‘대공이 아니고서야 악의 위상이라고 불릴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구천지옥의 존재 외에 대공에 준하는 존재는 신 외에는 만나지 못했다.
강우는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생각에 잠겼다.
-우우웅.
그때, 책상 위에 올려둔 수정 구슬이 빛을 뿜었다.
가디언즈의 정예 맴버들에게 지급되는 수정 구슬.
손을 뻗어 수정 구슬을 들어 올렸다.
[아, 형님!]“무슨 일이야?”
수정 구슬을 통해서 들리는 김시훈의 목소리.
[지금 가이아 씨가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계시?”
[예. 일단 직접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바로 갈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우는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계시라.’
예전에 이계의 신, 베니고어가 왔을 때 가이아가 계시를 받은 일이 있었다.
‘이번에도 이계의 신이 오는 건가?’
지금 지구의 상태는 파산한 국가와 마찬가지.
지구의 신들이 자력으로 지구를 지킬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곳저곳 도움을 요청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스탯이 3이나 올랐었지.’
머나먼 이계의 신이건, 아니면 지구와 인접해 있다는 에르노어 대륙, 환 대륙의 신이건 상관없다.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해야 하고, 털어먹을 수 있는 것은 남김없이 털어먹어야 했다.
지금 지구의 신들은 자신들이 담당한 세계를 지킬 힘이 없으니까.
“쯧, 하여간 무능한 새끼들.”
이계의 세력에서 지구를 지켜야 할 놈들이 하는 거라고는 다른 세계에 빌붙는 것뿐.
이토록 한심한 신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바로 수호의 전당으로 가실 건가요?”
“응.”
“따라가겠습니다.”
“아니, 여기 있어.”
고개를 저었다.
‘만약의 경우가 있으니까.’
마기의 지배자 효과로 그녀의 마기까지 감출 수는 있지만 굳이 사서 위험 요소를 늘릴 필요는 없다.
“그럼 부르시면 언제든 갈 수 있도록 대기하겠습니다.”
“발록에게도 전해둬.”
“예.”
수정구슬을 들어 바닥에 놓았다.
새하얀 게이트가 나타났다.
-화악.
이제는 익숙해진 감각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겼다.
김시훈의 모습이 보였다.
“가이아 씨는?”
“여기입니다.”
김시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이끌었다.
뒤를 따르니 휠체어에 앉은 가이아가 고개를 쳐든 채 가늘게 몸을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신내림을 받은 무당과 같은 모습.
김시훈의 표정이 이해됐다.
“아으, 아.”
한동안 몸을 떨던 가이아가 거친 숨을 토해냈다.
“하아, 하아. 와, 와주셨군요.”
“당연하죠. 가이아 님의 계시를 받으신 겁니까?”
“아뇨. 이번에도 가이아 님의 계시는 아니었습니다.”
가이아는 고개를 저었다.
“저번처럼 이계의 신이 온다는 계시입니까?”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앞으로의 일을 위해 조력자를 보내주신다고는 했는데… 저번처럼 신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에르노어 대륙의… 빛의 감시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해요.”
“빛의 감시자?”
“누군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
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좀 알려 줄 거면 제대로 알려줘라.’
일단 지르고 보자는 생각인지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도움을 요청하고 다니는 듯한 모습.
자칫하면 오히려 이쪽에 피해를 줄 수 있는 행동이었다.
‘결국 똥 치우는 건 우리잖아.’
다시 한 번 무능력한 신들의 행동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게 나라냐.’
대체 누구 때문에 파산했는지는 몰라도 이렇게 무분별하게 외세의 힘을 끌어다 쓸 줄이야.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수호의 전당으로 오는 건가요?”
“아뇨. 그… 빛의 감시자들도 지구에 조사할 것이 있다고 해서 아프리카 쪽으로 온다고 해요.”
“아프리카…?”
“예. 그 얼마 전에 대규모 전투의 흔적이 발견된 곳 아시죠?”
“아.”
모를 리가 있나.
루시퍼와 사탄이 격돌한 장소였다.
“바로 가죠.”
강우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 * *
격렬한 전투의 영향으로 황폐해진 초원.
그곳에 나타난 푸른색 게이트를 통해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이들이 걸어 나왔다.
새하얀 로브의 뒤에는 천사의 날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숫자는 다섯.
선두에 선 금발의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이곳이….”
“지구, 라는 곳이군.”
“에르노어에 비해 마나의 분포가 상당히 낮군요.”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이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조사를 이어갔다.
“루드비히 사도님. 지구의 사도들과는….”
“라파엘 님께서 연락을 취해두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굳이 그들을 도와줄 필요가 있습니까? 어차피 망가진 신의 권속 따위 마(魔)를 멸하는 데 도움도 되지 않을 터인데.”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그들 또한 빛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서로를 비춰주어야 합니다.”
루드비히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사제들이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때였다.
“반갑습니다.”
새하얀 게이트에서 세 남녀가 나타났다.
강우와 김시훈, 가이아였다.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깊게 허리를 숙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가이아의 사도들이여. 저는 빛의 감시자 루드비히라고 합니다.”
예의 바른 동작. 정중한 목소리와 몸짓에 가이아는 마주 고개를 숙였다.
“가이아라고 합니다.”
“오… 섬기는 신의 이름을 그대로 딴 것입니까?”
“본명은 버렸습니다.”
“…감탄스러운 일이군요.”
루드비히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파엘 님에게 얘기는 들었습니다. 가이아 님은 현재….”
“의식이 없으십니다.”
“그렇군요.”
루드비히는 숙연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자애로운 신이 그런 상황이라니, 빛을 섬기는 입장에서 실로… 마음이 아픈 일이군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에겐 이 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모인 수많은 영웅들이 있습니다.”
“하하하. 믿음직스럽군요.”
루드비히는 밝게 웃었다.
주변이 환해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시원한 웃음.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온화한 분위기가 경계를 누그러트렸다.
‘빛의 감시자들이라.’
강우는 가늘게 눈을 뜨며 그들을 살폈다.
등 뒤에 새겨진 천사의 문양.
‘일단 천사는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들을 섬기는 존재리라.
강우는 앞으로 걸어가며 물었다.
“빛의 감시자란 무엇입니까?”
“아, 죄송합니다. 설명이 부족했군요. 저희는 라파엘 님을 섬기는 신도들입니다.”
‘역시.’
천사와 연관된 놈들이 맞았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드비히를 천천히 훑어봤다.
‘…잘 모르겠군.’
천사의 힘을 지닌 존재들은 처음 만난다.
루드비히와 다른 빛의 감시자들이 어느 정도 힘을 지니고 있는지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뭐, 나중에 천천히 알아가면 되겠지.’
일단 그들이 ‘마기의 지배자’를 뚫고 마기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은 확인했다.
그렇다면 괜히 그들과 척을 지는 것보다 우호적인 관계를 쌓는 것이 좋았다.
“듣기로는 따로 조사하실 것도 있어서 이곳으로 오셨다고 했는데….”
“아, 예. 루시퍼의 행방을 찾고 있습니다.”
“루시퍼?”
“예.”
루드비히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파엘 님과 대적하고 있는 사악한 악마의 이름입니다. 얼마 전 갑작스럽게 모습을 감췄습니다.”
“그 루시퍼가 지구로 왔다는 말씀이신가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이곳에서 그자의 기척이 느껴지는 것은 확실합니다.”
대공 루시퍼.
그가 지구로 왔다는 소식에 가이아와 김시훈의 표정이 굳었다.
강우만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이 자식 에르노어 대륙으로 돌아간 게 아니었어?’
가늘게 눈을 떴다.
한 쪽 팔을 뜯어내며, 푸른 게이트 속으로 사라진 루시퍼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 돌아가긴 했을 거야.’
그 뒤에 천사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완전히 숨어든 것 같았다.
‘뭐, 나쁜 소식은 아닌가.’
천사들 쪽에서 루시퍼를 찾아줘도 상관없었다.
라파엘과 루시퍼의 싸움을 유도한 후 숟가락을 얹어도 나쁜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서로 함께 빛을 섬기는 자들로서, 악을 멸하기 위해 힘을 합쳐봅시다.”
루드비히가 밝게 웃으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가이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이렇게 다른 세계의 일까지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설사 이곳이 다른 세계라고 해도, 마(魔)는 반드시 멸해야만 하는 존재니까요.”
“아…. 무, 물론이죠.”
가이아는 일순 강우를 향해 고개 돌렸지만 이내 능청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과거 구천지옥의 마왕이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이 현명하겠다고 판단했으리라.
“저희도 도울 수 있는 대로 돕겠습니다.”
강우는 루드비히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이거 나쁘지 않은데.’
그들이 악마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건 말건 자신이 악마라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상 중요치 않다.
‘일단 사람도 괜찮아 보이고.’
사람이 젠틀하니 불쾌한 느낌은 아니었다.
악마에게 조금 지나친 적대심을 보이는 것 같지만 대천사의 사도라면 이해할 수 있다.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을 것 같구만.’
“아, 루시퍼의 행방 말고도 또 하나 조사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언의 악마… 라는 존재인데. 라파엘 님께서 지구의 신들과 협력해 놈을 찾을 방법을 전해주셨습니다.”
‘아니네. 동료가 되기는 힘들겠네.’
어쩐지 처음부터 뭔가 말하는 것부터 불쾌하게 느껴졌다.
분명 저 사람 좋은 미소는 가면.
그 속에는 더럽고 추악한 악의가 가득한 것이 훤히 보였다.
악마를 멸한다는 명목하에 얼마나 많은 죄악을 저질러 왔는지 상상하기도 힘들 지경.
‘이 타락한 천사의 종자 새끼.’
타오르는 분노가 전신에 퍼졌다.
절로 주먹이 쥐어지고, 몸이 떨렸다.
역겨움을 참기가 힘들었다.
‘내 두 눈 똑바로 뜨고 있는 이상 네놈 뜻대로 흘러가도록 두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