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20)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21화
성자(聖者)를 타락시키는 방법 (2)
“뭐, 뭐야 이게.”
눈앞에 떠오른 정체 모를 메시지.
하지만, 그 메시지를 읽기도 전에 동굴 전체를 뒤덮고 있는 어둠이 꿈틀거린다.
측면에서 솟구친 촉수가 그의 머리를 노린다.
다급히 머리를 숙인다.
촉수가 머리칼을 스치며 지나간다.
-퍼억!
“커헉!”
그의 옆에 서 있던 빛의 감시자 하나가 대신 촉수에 걸려들었다.
-찔꺼억.
촉수를 타고 흐르는 점액질.
촉수의 첨단이 갈라지며 날카로운 돌기가 나타났다.
“히, 히익! 사, 살려줘!! 살려줘어어어!!!”
처절한 비명을 내지른다.
몸을 비틀며 눈물을 흘린다.
끔찍한 공포. 죽음을 넘어서는 농밀한 공포가 그의 몸을 집어삼킨다.
몸을 비튼다. 생을 갈망하듯, 애처롭게 손을 뻗는다.
하지만.
-철퍽!
“아, 아악!!! 루, 루드비히 님!!! 루드비히 님!!! 사, 살려주십쇼!! 루드비히 니이이이임!!!”
“…….”
사제의 얼굴에 첨단이 갈라진 촉수가 달라붙는다.
수십 개의 돌기가 살을 음미하듯 꿈틀거린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돌기에 살이 베인다. 수십, 수백 개의 돌기가 피부를 드러내며, 벌어진 상처 사이로 흐르는 피를 빨아먹는다.
그리고.
-꾸르륵. 꾸륵.
노란 고름이 돌기를 타고 흘러나온다.
벌어진 피부 사이로 들어간 고름.
끔찍한 악취와 함께 정신이 아득해지는 고통이 그를 잠식한다.
“아아아아악! 아아아악!!”
“제라스 사제님!!”
루드비히가 다급히 손을 뻗었다.
새하얀 빛무리가 맺혔다.
성검 루드비히.
찬란한 성력으로 넘치는 검.
그의 이름, 삶, 목적과도 같은 검.
검을 쥐었다.
휘둘렀다.
-콰드드드득!
촉수에 검이 닿았다. 성인 남성의 허벅지 굵기만큼 긴 살점 덩어리가 성검에 베였다.
에르노어 대륙이 멸망의 위기에 빠질 때 말고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신비의 종족, 하이엘프의 축복을 받은 검.
마(魔)를 멸하는 축복의 힘이 퍼졌다.
새하얀 빛이 독처럼 퍼졌다.
살덩어리가 폭발하며 사제의 머리를 감싸고 있던 촉수가 떨어져 나갔다.
“아.”
짧은 탄성,
신음에 가까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철퍽.
벌어진 두개골, 줄줄이 흘러나오는 노란 고름. 썩은 피부와 대롱거리는 눈알.
사제는 이미 죽어 있었다.
루드비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품속에서 통신용 수정 구슬을 꺼냈다.
가이아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사용하라고 받은 통신용 구슬.
‘제길.’
-치직. 치지직.
안개가 끼듯 수정 구슬에 노이즈가 발생했다.
노이즈에 섞여,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남자의 목소리다.
-누… 구. 무슨, 일?
“루드비히입니다. 게이트에 누가 손을 쓴 것 같습니다. 악마의 함정이라고 추측됩니다.”
-상황… 어떻…?
“저는 괜찮지만, 이미 부하가 당했습니다.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가디언즈 모두에게 지원을 요청합니다. 저희는 도망치면서 시간을 벌 생각입니다.”
-밖… 나올 수… 니까?
“이대로는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공간 자체가 악마에게 지배당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어디.
“모르겠습니다. 아마 던전 내부로 진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 로, 구… 치지이이익!!
노이즈가 짙어졌다.
귀가 얼얼할 정도의 소음. 루드비히는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수정 구슬을 바닥에 던졌다.
어두컴컴한 심연 너머를 응시했다.
몸을 돌리며 외쳤다.
“전진합니다!!!”
이대로 있으면 죽도 밥도 되지 않았다.
촉수가 없는 곳으로 피해야 한다.
“예? 저, 전진한다고요?”
“여기서는 돌아가는 것이….”
쏟아지는 촉수의 공격을 막고 있던 두 사제가 다급히 외쳤다.
루드비히는 입술을 깨물며 외쳤다.
“도망칠 곳은 이미 없습니다.”
“아, 아아.”
그의 말에 사제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들어온 게이트의 입구가 어둠에 좀 먹히듯 사라진 상태였다.
사제들의 표정이 절망에 삼켜졌다.
루드비히가 성검을 꺼내든 채 한 걸음 나섰다. 몸 안의 성력(聖力)을 끌어 올렸다.
새하얀 빛이 전신에서 뿜어졌다.
천사의 힘.
악마가 마기를 지니고 있다면, 천사는 성력으로 기적을 행사한다.
그 힘을 성검에 집중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긋는다.
-푸화아아아아악!!
성검 루드비히에서 뻗어 나간 찬란한 빛이 일직선으로 촉수를 가른다.
모세가 파도를 가르듯, 촉수로 가득한 어두운 공동 안에 길이 만들어졌다.
“지금!”
“으아아아아아!!!”
빛의 감시자들이 달려나갔다.
그들은 거추장스러운 로브를 벗어던지며, 양손에 성력을 집중했다.
타오르는 화염처럼 맺힌 새하얀 빛.
그 빛을 방사형으로 뿜어낸다.
-치이이이이익!!
갈라진 틈을 메우듯 다가오는 촉수들이 빛의 화염에 불탔다.
매케한 연기와 함께 악몽과도 같은 악취가 뿜어져 나왔다.
“크윽!”
“멈추지 마세요!!”
끔찍한 악취에 멈춰선 사제의 목덜미를 잡아끈다.
촉수가 그가 있던 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몸을 낮게 숙인다. 성력을 등에 집중한다.
-펄럭!
등가죽을 뚫고 새하얀 날개가 펼쳐친다.
전력으로 날개를 펄럭인다. 촉수로 가득 찬 공동을 빠른 속도로 빠져나간다.
칠흑으로 날아간다.
[크하하하하하!!]웃음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에 담겨 있는 역겨운 마기의 기운.
루드비히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역시 악마의 짓이었군.”
어떻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됐는지, 무슨 방법으로 수호의 전당 내에 위치한 게이트를 조작해 이곳으로 불러들였는지 의문이 스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일단 악마를 죽인다.’
신념에 흔들림은 없다.
악마가 함정으로 그를 끌어 들였다면, 모조리 죽여 버리고 빠져나가면 될 뿐.
[반갑다, 인간.]“…….”
대답하지 않는다.
상대는 악마. 대화를 섞을 가치가 없는 역겨운 이단자였다.
성검을 든다. 자세를 취한다.
[크흐흐흐, 적어도 이름이라도 서로 알아야 하지 않겠나?]전신이 녹색 촉수로 뒤덮인 악마가 웃는다.
끔찍한 마기가 그를 짓눌렀다.
“악마에게 밝힐 이름은 없다.”
단호히 답한다.
[크하하하하! 좋은 패기로군!]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악마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가 웃을 때마다 어둠에 물든 공간이 출렁였다.
악마는 촉수에 뒤덮이지 않은 두 주먹을 들었다.
[그래도 너를 죽일 존재의 이름이다.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악마가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나는 요그사론이라고 한다.]“…….”
들어 본 적 없는 악마의 이름이다.
루드비히는 눈살을 찌푸렸다.
중요한 건 상대가 누구인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눈앞의 적이 악마라는 사실뿐.
‘모든 악마는.’
죽인다.
-우우우우웅!
성검이 빛을 뿜었다.
검을 쥔 채, 달린다.
악마는 덩치에 맞지 않는 날렵한 동작으로 공격을 피했다.
왼발을 중심으로 몸을 반 바퀴 돌렸다.
몸을 낮추고, 탄력을 이용해 쏘아졌다.
[흐흐흐흐.]“히, 히익!”
미끄러지듯 공격을 피한 그는 손을 뻗어 사제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사제의 몸을 방패삼듯, 앞으로 내밀었다.
“루, 루드비히 님…!”
-푸욱!!
“커헉!!”
망설임은 없다.
사제의 몸을 그대로 갈라버리고 검을 내지른다.
그가 자신의 부하이건, 빛을 섬기는 동료이건 중요치 않다.
‘악마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그런 하찮은 것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다.
사제의 몸을 가른 검이 요그사론의 어깨를 찔렀다.
녹색 촉수가 찢어지며 단단한 근육으로 덮인 붉은 피부가 드러났다.
마치 단단한 갑주에 검이 부딪히듯 강렬한 반탄력이 손바닥을 찢었다.
[크하하!! 가차 없군! 네놈의 부하라도 망설이지 않는 건가?]“닥쳐라, 악마.”
루드비히가 낮게 답했다.
오랜 기간 자신을 따르던 부하를 자기 손으로 죽였음에도 그의 얼굴에는 조금의 후회도 없다.
슬픔도, 죄책감도 없다.
느낄 리가 없다.
빛을 섬기는 존재가 악마를 배제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악마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해도 상관없다.
-철컥.
검을 들어 올린다.
새하얀 빛무리가 어둠을 밝힌다.
찬란한 성력으로 빛나는 몸. 펄럭이는 새하얀 날개.
인간이라기보다 천사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
[재밌군.]요그사론은 웃었다.
[마왕님이 아주 좋아하시겠어.]“…마왕?”
불길한 그 이름에, 루드비히는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사탄을 말하는 건가.”
요그사론이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사탄?? 사타안? 이 요그사론이 그런 나약한 악마를 섬길 것 같은가?]“…….”
루드비히의 눈동자가 떨렸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마왕이 사탄이 아니라면.
‘누가.’
마왕이라는 오만한 칭호를 거론한단 말인가.
[오라, 빛의 종자여. 진정한 마(魔)의 힘을 깨닫게 해주마.]루드비히의 생각이 이어지기도 전에, 요그사론의 몸이 빛을 가르며 쇄도했다.
* * *
‘좋군.’
던전의 밖.
리리스가 설치한 마법장치를 통해 내부의 모습을 보고 있던 강우의 입가가 올라갔다.
발록과 루드비히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 지 30여분.
전황은 서서히 루드비히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강하긴 강하네.’
마령을 이루면서 과거의 모든 힘을 되찾은 지금.
그와 영혼과 힘이 이어진 발록은 정말 대공과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강자였다.
그런 그를 상대로 30분.
그것도 중간중간 발록에게 깊은 상처까지 남기고 있었다.
아무리 대천사의 사도라고 하나 이 정도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
‘저 검의 영향도 있겠군.’
성검 루드비히.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검을 느긋이 바라보았다.
분명 루드비히는 기대했던 것 이상의 힘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결국 거기까지.
-땡그랑!
“커헉! 허억! 허억!”
루드비히의 무릎이 꿇렸다.
그는 가슴을 움켜쥔 채 거친 숨을 토해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강우는 웃었다.
‘슬슬 시작해 볼까.’
손에 쥐고 있던 통신용 수정 구슬을 품 안에 넣었다.
그를 대신해, 검은 구체를 하나 꺼내들었다.
그의 움직임에 맞춰 바닥에서 은밀하게 뻗어나간 촉수 하나가 루드비히의 뒤통수에 달라붙었다.
‘연결’ 됐다는 것을 확인한 강우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의 목소리는 루드비히의 머릿속에 직접 울려 퍼질 것이다.
‘이 효과가 중요하지.’
귀로 듣는 것이랑은 그 느낌이 다르다.
귀가 아닌 머리.
몸 전체에 울려 퍼지는 느낌이 중요하다.
‘자, 그럼.’
이제 준비해 온 대사를 말해야 할 차례.
강우의 표정에 흥분이 감돌았다.
‘캬, 시바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은 대사였는데.’
마왕의 자리까지 올라서면서 이 대사를 한 번도 쳐보지 못했다는 것이 억울하게 느껴질 정도.
“크흠, 큼.”
목을 풀었다.
‘감정 잡고.’
천천히 눈을 뜨며 마기를 끌어올렸다.
타락에 가장 어울리는 대사.
타락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한마디.
“힘을 원하는가?”
검은 구체를 통해 그의 목소리가 흘러들어갔다.
기괴하고, 음산한 목소리가 루드비히의 머릿속에 직접 울려 퍼졌다.
심연에 닿아 있는 듯 어둡고 축축한 목소리.
“…뭐?”
루드비히는 갑자기 머릿속에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강우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키햐아아아아!!! X바 그래! 이 대사지!! 타락하면 이 대사가 빠질 수 없지!’
전율이 일었다.
‘오우, 야.’
힘을 원하는가.
자신이 내뱉은 대사가 귓가에 맴돌았다.
‘개멋있어 진짜.’
임자가 이 모습을 봤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