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2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24화
성검 루드비히 (1)
“너, 이 개자….”
루드비히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가늘게 몸을 떨었다.
끓어오르는 분노에 머리가 새하얗게 불타는 것만 같았다.
“으, 아아.”
두 뺨에 손을 올렸다.
언어가 되지 못한 단어의 편린들이 입속에서 흘러나왔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끝났어.’
직감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가디언즈의 표정에서, 김시훈의 절망어린 표정에서 모든 것을 읽었다.
악마의 편집.
대체 언제 자신의 말을 그렇게 끼워 맞췄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만들어 낸 결과물은 자신이 봐도 어처구니없을 정도.
‘누가 듣더라도.’
이미 악마의 술수에 빠져 타락한 뒤에 유언을 남기는 메시지.
나는 이미 늦었다고, 너희는 여기 오지 말고 도망치라는 단말마.
이걸 듣고 대체 그 누가 그를 타락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인가.
“아, 아니야!”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손가락을 들어 강우를 가리켰다.
“이 모든 건 저 쓰레기 새끼가 꾸민….”
-꾸르륵. 꾸륵.
그때, 그의 뒤통수에 달라붙어 있던 녹색 촉수 하나가 꾸물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강우가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그의 머릿속에 전달하기 위해 붙여둔 촉수.
수십 갈래로 갈라진 촉수가 그의 몸을 타고 빠르게 움직였다.
딱히 공격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몸을 타고 뻗어 나간 촉수가 피부 위에 달라붙었다.
마치 피부 위에 흉측한 혈관이 돋아난 듯한 모습.
그리고….
“역시, ‘침식’당하고 있군요.”
강우는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루드비히의 몸에 돋아난 흉측한 녹색 혈관.
그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절대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 모습.
침식, 이라는 단어가 그 이상으로 어울리기 힘든 모습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닥쳐라!! 사악한 악마야!”
일갈을 내뱉었다.
강우는 가증스럽다는 듯 루드비히를 노려보았다.
파리하게 질린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이미 루드비히는 없다는 것을, 네게 완전히 잠식당해 사라졌다는 것을 내가 모를 것 같으냐…!”
“여러분.”
“크흡. 루드비히 씨… 어쩌다가 이런….”
“제발 제 말을 들어….”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루드비히….”
“이런 X발.”
루드비히는 당장이라도 미쳐 버리겠다는 듯 머리를 움켜쥐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보인다.
참혹하게 일그러진, 안타깝고 슬픔에 가득 찬 눈빛.
“루드비히….”
김시훈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충격을 지워내지 못하는 듯 몸을 비틀거리고 있었다.
각자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
자신이 아닌, 강우의 말을 믿고 있다는 사실.
“하, 하하.”
루드비히는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 상황을 반박할 말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를 반박하기 위해서는 수십 장의 문서가 필요하다, 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돌이킬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오르는 분노에 머리가 뜨거워졌다.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강우를 응시했다.
그가 슬쩍 입꼬리를 올리는 것이 보였다.
‘오강우.’
벼락처럼 깨달았다.
흩어져있던 퍼즐들이 머릿속에서 맞춰졌다.
누가 과연 수호의 전당에서 아프리카로 향하는 게이트를 조작했는지.
누가 던전 안에서 구조 신호를 받아낸 건지.
누가 마해를 가진 채 가디언즈 내부에 잠입한 건지.
“너, 였구나.”
루드비히는 덜덜 몸을 떨었다.
두 눈을 부릅뜨며, 입을 벌렸다.
광기에 가까운 분노가 그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성이 흐려지며, 감정이 폭발했다.
“네놈이었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진실로 타락했고 하지 않았고는 중요치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타락했다’라고 규정한 순간, 자신은 사실과 관계없이 타락한 것이 되었다.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한 노력도, 목숨을 걸어서까지 지키려고 한 굳은 신념도 지금 이 순간 아무런 의미를 잃었다.
“오, 강우우우우우우!!!”
광기에 몸을 맡겨, 발을 박찼다.
성검을 쥐었다. 눈부신 광휘가 그의 움직임을 뒤따랐다.
던전을 빠져나오기 위해 대부분의 힘을 사용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으아아아아아!!”
라파엘에게 마왕에 대한 사실을 전해야 한다는 것도, 한설아라는 이름을 지닌 여인에 대한 사실을 전해야 한다는 것도 잊었다.
지금 이 순간, 그런 것은 아무것도 중요치 않았다.
눈앞에 강우가 보였다.
지구를 수호하는 수호자들 사이에 껴서, 가증스럽게 자신을 모욕하고 있는 악마.
인간의 탈을 쓴 괴물.
그가 지은 비릿한 조소가 낙인처럼 뇌에 새겨졌다.
“죽어어어엇!!”
성검을 내려찍었다.
-까아아앙!!
찬란한 빛에 휩싸인 그의 검을, 김시훈이 막아냈다.
김시훈은 초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루드, 비히….”
“비켜어어엇!! 너희들 다 속고 있는 거다!! 저 악마의 술수에 놀아나고 있는 거라고!!”
“크윽.”
“이 머저리 새끼들!! 네놈들이 그러고도 지구를 수호하는 존재라고 말하는가!!!”
“루드비히…!”
김시훈은 광기에 잠식된 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애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와 만난 시간은 길지 않았다.
고작 일주일 정도.
그가 궁금해 하는 지구의 문화들을 조금 소개시켜줬을 뿐이다.
친구, 라는 낯간지러운 단어를 사용하기도 애매한 관계.
하지만.
“제길, 제길, 제기랄!!”
김시훈은 거친 욕을 내뱉었다.
새하얀 광휘에 휩싸여 있지만, 눈앞의 보이는 루드비히의 모습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광기에 물든 눈빛, 거칠어진 숨, 그리고 악마에게 ‘잠식’당했다는 것을 증명하듯 흉측하게 돋아난 녹색 핏줄.
그 모습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루드비히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태라는 것.
‘형님.’
김시훈은 답을 구하듯, 고개를 돌렸다.
강우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저었다.
이미 늦었다, 는 짧으면서도 단호한 몸짓.
“…….”
김시훈은 손에 쥔 검을 굳게 쥐었다.
강우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시훈아 여긴….”
“아뇨.”
슬픔을 억누르며, 낮게 입을 열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타락한 성자(聖者)를 응시한다.
광기와 분노에 미쳐있는, 이제 것 그가 보지 못했던 루드비히의 모습.
그의 목에 걸려 있는 펜던트가 보였다.
자신이 선물해준 펜던트.
김시훈은 두 눈을 감았다. 눈시울이 뜨겁다.
‘해야 해.’
아무리 괴롭더라도, 아니 이렇게 괴로운 일이기 때문에 그의 손으로 직접 해야 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없었다.
‘루드비히.’
어떤 악마가 그를 타락시켰는지는 모른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할 수 있다.
루드비히처럼 확고한 신념을 지닌 성자를 타락시킬 수 있는 악마는 그가 알기로 많지 않다.
‘집중해.’
쓸데없는 생각을 지운다.
감정을 칼로 도려낸다.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하는 일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깊게 가라앉은 눈빛.
일순, 그의 눈빛이 ‘강우’가 보이는 눈빛과 같아졌다.
“후우.”
숨을 들이 쉰다.
검자루를 양손으로 쥔 채 몸을 낮게 낮췄다.
발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아!!”
광기에 물든 채 난동을 피우는 루드비히.
김시훈은 짧게 말했다.
“걱정 마라, 루드비히.”
“이 개자식들아아아아아!!!”
“내 손으로 네 고통을 끊어주마.”
“사람 말을 좀 들으라고오오오오!!!”
발작을 일으키듯 소리치는 루드비히.
순간적으로, 그가 악마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희망이 스쳤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강우의 말이 떠올랐다.
이미 늦었다. 손 쓸 수가 없다.
강우가 아무 생각도 없이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우의 능력은 경이롭다.
강우가 단호하게 말했다면, 그 말이 맞으리라.
“미안하다.”
마지막으로 짧게 말한 후, 앞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서 멀어진 검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공중을 날았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천룡일섬.’
빛이 번뜩였다.
광기에 휩싸인 채 발작하는 루드비히의 몸이 검에 꿰뚫렸다.
붉은 피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비릿한 혈향이 퍼졌다.
“쿨럭!”
“루드비히….”
김시훈은 젖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루드비히의 몸이 쓰러졌다. 손을 뻗어 그의 몸을 안았다.
“내가 너를 기억하마.”
“아, 으….”
루드비히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땡그랑.
성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김시훈과 루드비히.
수호자와 타락한 성자가 만들어내는 감동적인 장면.
강우는 눈물을 훔치는 척 고개를 돌리며 바닥에 떨어진 성검을 힐끔 쳐다보았다.
꿀꺽.
‘무조건 신화 등급 이상이겠지.’
기대감이 끓어오르는 것이 사실.
‘혹시 고유 스탯 상승효과가 있을지 누가 알아?’
성검 루드비히에 고유 스탯 증가 옵션이 달려 있다면, 성검이 마기 스탯을 올려주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긴 할 것이다.
하지만 한설아가 사용한 빛의 은총이라는 스킬을 받고 마기 스탯이 증가했던 경험도 있으니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닌 상황.
강우는 은근슬쩍 둘에게 걸어가 바닥에 떨어진 성검을 주워 들었다.
-띠링!
[성검 루드비히가 역겨운 영혼에 저항합니다!!]우우우웅.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역겨운 영혼이라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자신만큼 순수한 영혼이 어디 있다고 저런 메시지창이 뜬단 말인가.
‘시스템도 믿을 게 못되네.’
-띠링!
[너무도 역겨운 영혼에 성검 루드비히가 어둠에 물들기 시작합니다!]‘아니.’
[성검 루드비히가 역겨움에 구토를 합니다!]‘시바 검이 뭔 토를 해.’
[성검 루드비히의 성력이 소멸하기 시작합니다!]‘아니, 이 씨ㅂ….’
[성검이 분해됩니다! 하이엘프의 축복, ‘마(魔)를 탐지하는 빛’ 기능이 망가졌습니다!]‘알았어, 안 가질 게. 그만해 이 새끼야.’
성검을 쥔 강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성검 루드비히는 정말 구토를 하듯 검끝으로 성력을 토해내고 있었다.
마기 탐지 능력이 망가진 것은 상관없지만 이렇게 가다간 신화 등급 무기가 사라질 판.
“시훈아.”
“형님….”
강우는 김시훈의 어깨를 잡았다.
손에 쥔 성검 루드비히를 김시훈의 손에 쥐어주었다.
검끝으로 성력이 흘러나오는 것이 멈췄다.
“아….”
“분명 이 검의 이름도 루드비히로 알고 있다.”
“…예.”
김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루드비히와 만난 날, 성검의 이름을 들은 기억이 있다.
강우는 김시훈의 어깨를 잡으며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검은 네가 가져라. 너만이 쥘 자격이 있다.”
“형님… 저는… 그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구하지 못했지.”
그렇기 때문에.
“그를 구하지 못했던 만큼, 네가 그의 검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해라.”
“강우 형님….”
“잊지 마라.”
눈물을 흘리는 김시훈과 함께 루드비히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사악한 악마에 의해 타락한 성자, 루드비히.
그는 자신의 죽음이 원통하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손을 뻗어 부릅뜬 루드비히의 눈을 감겨주었다.
“루드비히가 항상 너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크흡.”
김시훈은 고개를 떨궜다.
그의 눈을 타고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김시훈은 성검을 품속에 안은 채 손을 뻗어 루드비히의 목에 걸린 펜던트를 빼냈다.
“예.”
자신의 목에 걸었다.
“잊지 않겠습니다.”
타오르는 눈빛으로 몸을 일으켰다.
빛의 감시자, 루드비히.
비록 악마에 의해 타락했지만 그의 굳은 의지와 신념은 김시훈에게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