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26)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27화
사랑의 조언 (1)
“어디 보자….”
강우는 김시훈을 통해 받은 서류를 들었다.
서류에는 최근 가디언즈의 정황과 세계 각국의 움직임, 몬스터에게 점령당한 미수복 지역의 복구 작업등에 대해서 상세히 적혀 있었다.
“중국이랑 일본은 거의 복구했네.”
중국의 상하이, 일본의 삿포로 등 SS급 게이트의 존재로 인해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지역이 존재했다.
가디언즈의 규모가 세계적인 단체로 커지면서 이러한 미수복 지역의 복구에 박차를 가했다.
사실 격변의 날 이후 지구 전체의 인구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면서 굳이 미수복 지역의 토지를 탐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레벨 업이 문제지.’
규모가 커진 만큼 어중이떠중이도 많이 들어온 가디언즈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내몰 필요가 있었다.
고작 몬스터 정도의 위협을 감당하지 못해서는 악마와의 싸움에서 인류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질 테니까.
“그다음.”
서류를 넘겼다.
지금 그가 가장 주시하고 있는 정보에 대해서 적혀 있었다.
라파엘의 사도, 빛의 감시자들의 움직임.
“…아직인가.”
현재 가디언즈와 협력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루드비히를 타락시킨 악마를 찾고 있는 빛의 감시자들.
아직 그들은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적극적으로 움직여 줬으면 하는데 말이야.’
사탄의 세력을 갉아먹기 위해서라도 빛의 감시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루트로 조사를 하고 있는지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
‘천사를 기다리는 건가.’
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빛의 감시자들이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이유.
아마 성검의 주인, 루드비히를 타락시킨 주범인 사탄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지금 그들만의 힘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컸다.
‘지금 놈들이 조사대라면.’
머지않아 천사로 이루어진 본대가 온다.
대천사 중 하나라는 라파엘까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뭐… 일단 천사가 오길 기다려 볼까.”
천사는 가디언즈와 함께 예언의 악마, 사탄과 싸워야 하는 중요한 아군이다.
그들이 오지 않은 상황에서 사탄과 싸우는 것은 미련한 짓.
‘설사 싸워 이길 수 있다고 해도.’
비용과 변수의 문제.
굳이 혼자 힘으로 사탄을 상대할 필요가 없다.
‘거기다가.’
사탄은 신성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신성을 얻어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예상 못할 변수에 대해서는 대비하는 것이 옳다.
-똑똑.
한창 서류를 읽고 있을 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입가에 절로 함박 미소가 지어졌다.
‘임자아아아아아!!’
강우는 크흠, 하고 헛기침을 흘리며 문을 열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를 든 한설아의 모습이 보였다.
“많이 바쁘신가요, 강우 씨?”
“아니. 당장 할 일은 다 끝났어.”
서류 검토를 제외하면 딱히 천사가 오기 전까지 할 일은 없었다.
할 일이 끝났다는 말에 한설아의 입가에 활짝 미소가 지어졌다.
“저, 그, 그러시면….”
“잠깐 바람이라도 쐬러 나갈까?”
“아… 조, 좋아요!”
한설아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색하지만 풋풋한 분위기.
강우는 태어나 처음 겪는 이 간질간질한 분위기를 즐겼다.
‘돌아와서 진짜 다행이야.’
지옥에 있었다면 영원히 이런 기쁨은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어디 갈래? 수호의 전당을 통하면 어지간한 외국도 바로….”
“아뇨. 그냥 근처 공원을 걷고 싶어요.”
“공원? 굳이 거기 말고도 어디든지….”
물리적인 거리나 금전적인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 강우가 지닌 재력은 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는 수준.
최고급 호텔이건 별 세 개짜리 레스토랑이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후훗. 괜찮아요. 그건 다음 기회에 가요.”
한설아는 밝게 웃으며 살며시 강우의 손을 잡아끌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서늘한 밤공기가 뺨을 스쳤다.
아파트 근처에 위치한 공원을 잡담을 하며 걸었다.
딱히 중요한 얘기를 한 것은 아니었다.
에키드나에 대한 얘기, 최근 보는 TV프로와 어딜 가보고 싶은 지에 대한 얘기들.
평소 발록, 리리스와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무게감의 주제에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게.’
기나긴 세월을 지옥에서 버텨온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
“잠깐 어디 앉을까?”
“아, 예.”
앉을 만한 벤치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저녁 타임의 공원은 가족과 연인, 학생들이 가득했다.
‘공포의 권능.’
아주 살짝, 권능을 일으켰다.
공원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갑자기 창백하게 질리더니 이내 도망치듯 공원을 빠져나갔다.
만족스러운 미소가 입가에 지어졌다.
“…갑자기 사람들이 없어졌네요.”
“그러게.”
어깨를 으쓱이며 능청스럽게 답했다.
한설아는 그 범인이 누구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벤치에 앉았다.
고요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러고 보니 강우 씨는 어디 가보고 싶으신 곳 없나요?”
“글쎄. 아는 게 없어서….”
유흥이라는 걸 해봤어야 뭐 하고 싶고 말고가 생길 것 아닌가.
지구를 오기 전, 유일한 유흥이라고는 먹는 것과 무료 웹소설, 만화를 보는 것 외에는 없었던 강우에게 딱히 ‘가보고 싶다’라고 생각되는 곳은 없었다.
“저랑 같으시네요.”
한설아는 가볍게 웃었다.
그녀 또한 힘겨운 학창시절을 보낸 탓에 유흥에는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전에 강우 씨랑 디즈니랜드에 같이 가보고 싶었는데 말이죠.”
“…….”
가늘게 눈을 뜨며 강우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일본에서의 기억을 떠올린 강우가 굳게 입을 다물었다.
마땅한 변명을 찾기 힘들었다.
“나중에 같이 가주실거죠?”
“…물론입니다.”
“헤헤.”
한설아는 배시시 웃으며 손을 뻗었다.
강우의 팔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팔을 타고 전해지는 부드러운 감촉.
‘세상에 씨바.’
강우의 눈이 부릅떠졌다. 동공이 흔들렸다.
한설아는 살짝 고개를 기울여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잠깐만 이렇게 있어요.”
‘영원히 이렇게 있어도 됩니다.’
강우는 꿀꺽 침을 삼켰다.
이런 달달한 분위기가 무척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시바, 뭐 알아야 대처를 하지.’
그에게 지난 만 년의 삶은 살육과 전투의 삶이었다.
지구로 온 이후도 그 삶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일은 알지도, 경험하지도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해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제 결혼 날짜를 잡으면 되는 건가?’
아무래도 결혼 밖에는 선택지가 없을 것 같았다.
‘제기랄. 아직 반지 안 샀는데.’
자신의 안일한 준비성을 자책했다.
초조함이 밀려왔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야 하지? 하와이? 자식 교육은 어떻게 시켜야 하지? 초등학교는 사립으로 보내는 게 좋나?’
“강우 씨?”
“아냐. 사립은 아니야. 역시 초등하교는 평범하게 공립으로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아.”
“…예?”
“그래… 그 SNS인가? 요즘 그거 안 하면 왕따 당한다는데 스마트폰은 언제쯤 사주면 좋을까?”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주택 연금은 지금부터 넣는 게 좋겠지?”
“저기요? 강우 씨?”
한설아는 혼란에 빠진 강우의 눈앞에 손을 흔들었다.
닿지 않았다.
* * *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거지….’
한설아는 난처한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서운 표정으로 계속해서 노후니 육아니 하는 단어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으음.”
난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한설아는 이내 강우의 팔을 조금 더 세게 끌어안았다.
따듯한 온기가 가슴을 타고 전해졌다.
“헤헤헤.”
자연스럽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지난번 자폭에 가까운 고백이 성공한 이후 하루하루가 꿈만 같았다.
‘같이 있을 시간이 많지 않아서 좀 아쉽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과 이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녀는 자신을 손을 내려다보았다.
‘나도 더 분발해야지.’
단순히 그의 보호만을 받으면서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강우의 어깨에는 이 세계의 명운이 걸려 있었으니까.
‘조금이라도.’
그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한동안 강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한설아는 이내 끌어안았던 팔을 풀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이렇게 있고 싶었지만 슬슬 돌아가야 했다.
그녀 나름 개인적으로 수련하고 있는 스킬이 있었으니까.
“강우 씨.”
강우는 아직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혼란에 빠져 있었다.
한설아는 가볍게 뺨을 부풀리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이럴 때는.’
조금 적극적으로 나가는 것이 해답이라는 것은 얼마 전 일로 깨달았다.
한설아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확인하더니 이내 깊게 심호흡 했다.
고개를 들어 강우의 입술 옆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조, 조금 정신이 드셨나요?”
“…….”
한설아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의 시선을 피했다.
“슬슬 돌아가요.”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공원을 지나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먼저 올라가세요.”
“왜? 뭐 들릴 곳이라도 있어?”
“아뇨. 그냥 조금 더 바람 쐬고 싶어서요.”
한설아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 부채질하며 말했다.
강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먼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휴우.”
한설아는 화끈거리는 뺨에 손을 올린 채 숨을 내쉬었다.
입술에 남아있는 감촉이 짜릿하게 몸을 전율시켰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행이네요.”
발소리의 주인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쿠로사키 유리에.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몸 안에 들어간 리리스였다.
“아….”
한설아는 침음을 흘렸다.
리리스.
그녀와 강우의 오랜 관계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축하드려요. 마왕님의 마음을… 얻으셨네요.”
“…….”
“후훗, 비법이라도 알고 싶을 정도예요.”
리리스의 웃음. 그 안에 담긴 짙은 감정을 느꼈다.
한설아는 망설였다.
사실 리리스에게 무언가 말할 것은 없었다.
단순한 문제다.
자신은 성공했고, 그녀는 실패했다.
그것뿐.
‘하지만….’
머릿속이 복잡했다.
리리스는 천 년이라는, 헤아리기 아득한 시간을 강우와 함께 있었다.
그런 그녀의 감정을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가.
머릿속이 복잡했다.
오랜 고민 끝에, 한설아는 입을 열었다.
“조,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예?”
“저도 그렇게 했거든요.”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 것.
그것으로 강우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리리스 씨는 굉장히 소극적이셨을 거야.’
예전의 자신처럼.
그렇지 않았다면 저렇게 아름답고, 한결 같은 여인의 마음을 강우가 몰라줬을 리는 없었다.
“더 적극적으로… 말인가요?”
“예. 진심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느낌으로 가시면 더 좋을 거예요.”
“호오.”
리리스의 눈이 빛났다.
한설아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손이었다.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이게 옳은 일인지. 하지만 리리스 씨가… 저번에 해주신 말씀 있죠? 강우 씨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다고. 그게… 그… 저 혼자서는 자신이 없어요. 저는….”
강우 씨의 과거를 모르니까요.
한설아는 힘겹게 그 말을 입에 담았다.
강우에게 몇 번 물어봤지만 그는 지옥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설아 씨….”
“리리스 씨도 꼭… 그 마음을 전하셨으면 좋겠어요.”
한설아는 방긋 웃었다.
“지금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솔직한 리리스 씨의 마음을 보여주면 강우 씨도 알아줄 거예요. 아, 맞다. 예전에 본체의 모습으로도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하셨죠? 지금도 무척 아름다우시지만… 그 모습이라면 강우 씨가 더욱 좋아할 거예요.”
“아….”
“저도 응원할게요.”
리리스는 가늘게 몸을 떨었다.
그녀는 한설아의 몸을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더욱 적극적으로… 그렇군요. 맞아요. 제가 이제까지 너무 기다리기만 한 것 같네요.”
리리스의 입가가 올라갔다.
기다란 흑발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저도 설아 씨처럼, 용기를 내서 한 발짝 내딛을게요.”
공중으로 떠오른 머리칼이 녹색 촉수로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