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49)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50화
전쟁이 끝나고 (2)
웅성웅성.
“야, 야야!! 슬해쉬 플 빠졌어!”
“정글러어어어어어어어!!!!”
“미드 미아! 미드 미아!”
“아아아아아니! 상대 탑은 탑에 사는데 우리 정글을 뭐하고 있는 거야!!!!”
시끄러운 고함소리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
각종 음식 냄새와 희미한 담배냄새가 풍기는 곳.
ㄷ자로 된 구석자리에 흰색 야구 모자를 눌러쓴 붉은 머리칼의 여인과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청년이 앉아 있었다.
“야, 블루 내거야.”
붉은 머리칼의 여인, 차연주가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그녀는 얼음으로 이루어진 불사조 캐릭터를 조종하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강우는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은 듯 작은 독침을 쏴 대는 캐릭터로 푸른 골렘을 공격했다.
차연주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았다.
“야 이 미친놈아! 블루 처먹지 말라고!!”
“이거 먹으면 마나가 빨리 차더라고.”
“근데 그걸 네가 왜 처먹냐고!”
“버섯 깔아야 돼.”
태연하기 짝이 없는 그의 말에 차연주는 뒷목을 잡았다.
“아, 뒤질 것 같아. 혈압 씨….”
그녀는 눈물을 머금으며 탭 버튼을 눌렀다.
강우의 아이템을 확인했다.
“…너 AD였어?”
“응.”
“이 개자식이! 갑자기 PC방 가자고 부르더니 이게 뭔 개트롤 짓이야!!”
분노가 치밀어 오른 차연주가 강우의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그녀가 키보드에서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적 팀원이 와서 그녀의 캐릭터를 죽였다.
“아악!”
터져 나온 비명소리.
차연주는 눈물을 머금은 채 회색으로 변한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 나쁜 자식….”
“아, 이 캐릭터 너무 안 좋은 것 같은데. 버섯 데미지가 왜 이래?”
“네 대가리가 안 좋은 거거든!”
머지않아 진군해온 적들에게 본진이 터져나갔다.
‘패배’라고 적힌 붉은 글씨가 떠올랐다.
“……”
차연주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강우는 가볍게 혀를 찼다.
“또 졌네. 아, 라면이나 하나 추가로 더 주문해야겠다. 콜라랑 만두랑 핫바도. 연주 너도 먹을래?”
“너 대체 여기 뭐 하러 온 거야!!”
“뭐하려 왔냐니.”
무슨 당연한 소리를 묻는단 말인가.
“라면 먹으러 왔지.”
“아….”
차연주는 뒷목을 부여잡은 채 그대로 의자에 쓰러졌다.
아찔한 분노가 그녀를 자극했다.
“너, 너 이 새끼… 네가 불러서 오늘 회의도 제끼고 왔는데….”
전쟁이 끝난 지 10일.
세상은 격변의 날 이후 유례없는 평화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었지만 레드로즈 같은 대형 길드의 상황은 달랐다.
전쟁의 뒤처리와 유족들에 대한 보수, 부상자들에 대한 복지 등등.
물론 그 대부분은 세계 각지에서 가디언즈에게 보내는 지원금으로 어느 정도 충당이 됐다.
하지만 그녀는 그래도 한 길드의 수장.
자신의 길드에서 전쟁에 참여했던 인원들이 더 좋은 복지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바쁜 시간을 쪼개서 어렵게 나왔더니 이런 처사라니.
억울하고 화나서 부들부들 몸이 떨렸다.
강우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전부터 꼭 한 번 오고 싶었거든.”
“…뭐. PC방?”
“너랑 처음 만난 곳이 여기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시작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뭐, 그래도 덕분에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한 번 여유가 생기면 같이 오고 싶었거든.”
차연주에게 받은 도움은 꽤나 컸다.
만마전이 봉인 되어 힘이 극도로 약해진 처음 몇 개월.
가장 위기라고 할 수 있는 그 시기에 그녀를 통해 훨씬 더 쉽고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다.
‘서로 노림수가 있는 거래 관계였다고는 하지만 받은 게 많았던 건 부정할 수 없지.’
S급 게이트의 출입권이라던가, 유니크 장비의 지원 등.
최근에는 리리스가 그에게 필요한 정보를 조사해서 알려주지만 그녀를 만나기 전에는 대부분 차연주가 정보원 역할도 해주었다.
“아, 으. 그게….”
차연주는 상상하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입을 쩍 벌린 채 몸을 떨었다.
그녀의 뺨이 머리칼처럼 붉어졌다.
“어, 어차피 널 써먹으려고 한 거거든!”
“역시.”
어디 교본에서 배운 것 같은 대답.
차연주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우는 피식 웃으며 다시 컴퓨터로 시선을 돌렸다.
“…….”
차연주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강우를 노려보았다.
왠지 모르게 한설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아. 내가 못 살아.”
그녀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신기하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가슴이 뛰며 입 꼬리가 계속 올라가려 하고 있었다.
‘내가 미쳤지.’
차연주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저런 만년 동정 새끼가 내뱉는 말에 가슴이 뛰다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소란스러운 PC방.
플레이어로 각성하기 전에도 게임을 즐겨하던 그녀에게 이 공간은 무척 익숙했다.
그 익숙한 공간에 강우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썩 불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최근… 거의 말을 섞지도 못했고.’
그는 너무 아득해졌다.
고개를 아무리 올려도 감히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곳으로 올라가 버렸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부터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 예상은 했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그가 멀어질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막상 만난 지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런 날이 오니 가슴 한편이 씁쓸한 것이 사실.
이제는 심심할 때 가볍게 부를 수도 없었다.
차연주는 추가 주문한 라면을 신나게 먹고 있는 강우를 바라보았다.
‘짊어진 것이… 무거우니까.’
예언의 악마의 손에서 세계의 멸망을 막는다니.
너무 스케일이 커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짐이다.
대형 길드의 길드장이 되며 그녀의 어깨에도 만만치 않은 무게의 짐이 올려져 있지만 강우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나도 라면 주문할래.”
“후우. 후우. 후르릅! 그치? 역시 PC방에선 라면을 먹어줘야지.”
“보통 그 라면 먹자고 PC방은 안 오지만 말이야.”
차연주는 쓴 웃음을 지으며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 이렇게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꽤나 가슴을 들뜨게 만들었다.
붉어진 뺨을 감추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곳에는.
[브론즈Ⅱ로 강등되었습니다.]“야 이 개새끼야!!!!”
그녀의 목소리가 PC방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 나쁜 새끼야아아아아!!”
* * *
-달칵.
“나 왔어.”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있던 한설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찍 오셨네요. 연주랑 같이 놀러간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아… 그게. 도중에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려서.”
강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무슨 부모의 원수를 보는 눈빛으로 보던데.’
게임이야 그냥 즐기면 됐지 랭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가지 않았다.
강우는 PC방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래도 좋았지.’
특히 라면이 정말 맛있었다.
게임을 하며 먹는 라면의 맛은 그냥 집에서 끓여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영화를 보면서 먹는 팝콘이 맛있는 거랑 비슷한 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경험은 없지만 대충 비슷한 이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에게 무슨 말을 하신 거예요?”
한설아가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흘겼다.
“아니, 진짜 모르겠어. 게임 한 판 졌다고 화난 것 같던데.”
“으음.”
한설아는 곤란하다는 듯 뺨을 긁적였다.
그녀 또한 게임을 해본 적이 없으니 차연주의 저런 행동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강우, 그러면 오늘 한가해?”
“아, 응. 저녁도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먼저 가버렸으니까.”
뒤에 있던 일정이 취소되며 자연스럽게 시간이 붕 떴다.
에키드나가 흥분에 찬 눈으로 콧김을 뿜었다.
“흐응! 흐응! 그러면 나랑 같이 만화 보자.”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강우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강우는 피식 웃으며 에키드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에키드나의 머리를 쓰다듬던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큰 것 같네?”
에키드나의 신장이 꽤나 성장해 있었다.
그녀는 맹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뭔가… 저번 전쟁 이후로 몸에 힘이 가득해진 기분이야. 그러다보니 키도 크고 여기도 커졌어.”
에키드나는 자신의 가슴 부위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녀의 옆에 한설아가 있기 때문일까.
‘그냥 절벽인데.’
솔직히 차이를 모르겠다.
통찰의 권능이라도 써야 하나.
“…강우는 어린 게 더 좋아?”
“그럴 리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악마가 되었다고 해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윤리관까지 뒤틀린 것은 아니다.
‘에키드나만 해도….’
전혀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 사실.
그녀의 실제 나이가 수백 살이란 것을 알고 있지만 행동과 외모가 어리다보니 이성으로서의 매력은 전무했다.
지속적인 에키드나의 어필에도 일부러 반응하지 않고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
“흐응! 다행이다.”
에키드나는 안도의 콧김을 뿜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강우는 그녀를 살폈다.
‘나 때문이겠지?’
그녀의 성장에는 분명 자신이 관여 되어 있을 것이다.
“음….”
잠시 고민에 잠겼다.
에키드나에게 듣기로는 그녀가 해츨링에서 성장하기까지는 앞으로 몇 백 년이 더 남았다고 한다.
‘나 때문에 그 시간이 앞당겨진 건가.’
과연 그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드래곤에 대한 정보는 들어 본 적이 없으니까.
‘나중에 리리스한테 부탁해서 조사해달라고 해야겠네.’
강우는 의자에 앉았다.
에키드나가 평소처럼 그의 무릎 위에 앉았다.
이제는 신장이 좀 커서 그런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제 곧 나도 설아처럼 살찔 거야!”
“살, 찔….”
“에이, 설아가 무슨 살이 쪄.”
에키드나가 주먹을 꽉 지며 외친 말에 한설아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강우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피식 웃었다.
“사, 살쪘… 다고?”
하지만 그런 그의 말은 그녀의 귀에 닿지 않은 모양.
그녀는 좌절에 빠진 듯 영혼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그러고 보니 최근에 게이트도 안 나갔고….”
“저기요? 설아 씨?”
“강우 씨가 많이 드시니까 나도 덩달아 같이 많이 먹기도 했고….”
“제 말 들리세요?”
“아, 안 되겠어요 강우 씨! 다이어트예요! 오늘 저녁 김치찌개는 없어요! 앞으로 강우 씨도 저도 저녁은 굶는 거예요!”
“커헉!”
청천벽력과도 같은 그녀의 말에 강우의 두 눈이 부릅뜨였다.
그는 폭주하는 한설아를 설득하기 위해 진땀을 빼며 그녀를 설득했다.
“…….”
폭풍과도 같은 소란이 지나간 이후.
강우는 소파에 앉아 조용히 거실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꿈꿔왔던 생활. 갈망했던 일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앞으로도.’
이런 날이 계속되기를.
강우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 * *
달칵, 달칵. 소음이 흘러나왔다.
탕. 리리스는 날카로운 식칼을 들어 무언가를 잘랐다.
피처럼 붉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후, 후훗.”
그녀는 뚝뚝 떨어지는 붉은 액체를 바라보며 짙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