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52)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53화
고대 마물 (2)
어둠.
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칠흑이 보인다.
‘가라앉고 있다.’
불현 듯 느낀다.
끝없는 어둠 속으로, 밑이 보이지 않는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여긴.’
가늘게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든 의심은 만마전의 가장 깊은 곳, 심연의 마기가 가득한 세계.
“…….”
굳게 입을 다문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런 거창한 세계가 아니다.
단순한 꿈. 스쳐지나가는 환영에 불과했다.
‘자각몽… 인가?’
잘 모르겠다. 평소에도 짧게나마 잠을 잘 때 꿈을 꾸긴 하지만 오늘따라 꽤나 생생한 기분.
‘아….’
검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의 기억.
지옥에서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지나간다.
-찔꺼억.
무언가, 점액질을 띤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뭐야.’
고개를 돌렸다.
칠흑이 내려앉은 공간 속.
질척한 무언가가 뻗어 나와 그의 몸을 순식간에 휘감았다.
‘크윽.’
몸을 비틀었다. 마기를 사용해 권능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커헉!’
이곳은 현실이 아닌 꿈. 가상의 공간.
마기도 없고, 권능 또한 없다.
이전에 마신의 시체 안으로 들어갔던 것과는 개념이 다르다.
이곳은 그냥 진짜, 순수한 ‘꿈’이었다.
-츄르르르.
점성을 띤 무언가가 완전히 몸을 결박했다.
‘이, 건.’
익숙한 감각. 그의 삶에 깊은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던 바로 그 감촉.
‘왜… 이게.’
사고가 이어지지 않았다.
의식의 끈을 끊어내듯, 그의 전신을 휘감은 촉수가 몸 곳곳에 있는 모든 구멍으로 침입했다.
끔찍한 악몽.
절망을 형상화한 기억의 파편.
-쩌억.
어둠이 벌어졌다.
18개의 붉은 눈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여인의 웃음소리가 공간 전체를 가득 울렸다.
‘으, 아.’
손을 뻗었다. 무용지물.
그의 몸은 계속해서 가라앉았다.
어둠 속으로. 헤어 나올 수 없는 악몽 속으로.
깊이. 깊이.
‘아, 아아.’
발버둥 친다. 필사적으로 손발을 휘젓는다.
미친 듯이 절규를 내질렀다.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없다.
어둠 속에서 빛이 점멸했다. 파직.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으아아아아아아!!!”
이불을 젖히며 몸을 일으켰다.
전신이 식은땀에 젖어 있었다. 달라붙은 옷의 감촉이 불쾌하다.
“허억, 허억.”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익숙한 방의 모습이 보였다.
“뭐, 뭐야 대체.”
강우는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미칠 듯이 생생한 꿈.
지구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진 이후 잊어가고 있던 지옥에서의 기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제기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기분 나쁜 기억을 머릿속에 지워냈다.
“하아….”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왠지 한설아의 얼굴이 몹시 보고 싶어졌다.
‘만약 지옥에서도.’
그녀와 같은 여인이 있었다면.
아니, 리리스가 정말로 흔히 상상하는 ‘서큐버스’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래도 조금은 나았겠지.’
외모는 중요하다.
아름답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18개의 눈에 전신이 고름이 흘러나오는 촉수로 뒤덮여서는 안 된다.
인간이고 악마고 대부분의 감각이 시각에 의존한다는 것은 같다.
‘예쁜 여자 한 명만 있었어도 지옥 생활이 좀 더 나았을 거라니.’
스스로의 생각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솔직히 자신이 생각해도 좀 꼴사납고 저열한 생각이긴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질적인 생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그에게는 마음의 안식처가 될 곳이 뭐라도 하나 필요했다.
‘하드디스크에 야X 하나 없는 놈들만 내게 돌을 던져라.’
이성을 갈망하는 것은 본능이다.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뭐… 애초에 지옥이 그런 곳이니까.”
리리스를 탓할 건 없다.
지옥의 악마들이 원래 다 그렇게 생겼는데 뭐 어쩌겠는가.
‘이미 지난 일이기도 하고.’
그래도 지옥에서의 삶을 떠올리면 지금도 발작을 일으키듯 몸이 떨리곤 한다.
강우는 고개를 저으며 이불을 들췄다.
“후후훗.”
이불을 들추자.
그곳에는.
“오늘 바로 할키온을 토벌하러 가신다고 하셨죠? 마왕님에게 힘을 드리기 위해 밤에 몰래 들어왔어요.”
헤헷.
리리스가 활짝 웃으며 귀엽게 혀를 내밀었다. 18개 중 9개의 눈이 감기며 윙크했다.
꿈속에서 보았던 녹색 촉수들이 강우의 몸을 휘감았다.
“아, 아아.”
강우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 고개를 숙였다.
절망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 * *
[많이 지쳐 보이십니다, 마왕님.]“…시끄러.”
발록의 말에 강우는 지친 표정으로 답했다.
아침부터 끔찍한 일을 당한 탓에 대답할 만한 정신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저나 준비는 끝났어?”
악몽을 떨쳐내듯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발록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준비랄 게 뭐 있겠습니까.]그는 자신의 터질 듯한 근육을 과시하듯 팔을 접었다.
강우는 피식 웃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통제는 잘되고 있군.’
미국 플로리다 주에 위치한 게이트.
리리스가 손을 써둔 대로 게이트 주변에는 사람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할키온….]발록은 이 게이트 너머에 있을 존재를 생각하며 표정을 굳혔다.
그의 몸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흘러나왔다.
“왜, 고대 마물이라고 하니까 좀 긴장되냐?”
발록답지 않은 모습에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대 마물과 싸워 본 경험이 없다고는 하나 발록이 저 정도로 긴장하는 것은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하아.]발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할키온이 워낙 끔찍한 외모를 가진 탓에… 싸우는 건 두렵지 않지만 솔직히 그 혐오스러운 모습을 다시 보고 싶지는 않군요.]“…….”
이어지는 발록의 말에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너 혹시 예전에 할키온을 직접 만난 적이 있는 거야?”
그러지 않았다면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할 리가 없다.
[…그렇습니다.]발록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 구백 년 전쯤일까요. 그때 부하들과 함께 조사를 나갔다가 실수로 할키온의 서식지로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번 놈을 볼 수 있었죠.]“잠깐, 구백 년 전이라고?”
구백 년 전이라면 발록과 만나 함께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다.
아득한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지만 그때 발록에게 할키온을 만났다는 보고를 들은 기억은 없었다.
“왜 보고 안 했던 거야?”
[아….]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보고는 상하관계에 있어서 핵심이다.
의도적인 보고 누락은 심한 경우 즉결 처형까지 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
[죄, 죄송합니다, 마왕님!]발록은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다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당장 할복이라도 할 기세로 머리를 조아리는 그를 바라보며 강우는 머리를 긁었다.
“아니, 뭐. 따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이유가 궁금해서 그래.”
보고 누락이 큰 죄인 것은 맞으나 이미 구백 년이나 지난 일.
이제 와서 죄를 추궁할 필요는 없었다.
‘근데 진짜 왜 그랬지?’
아무 이유 없이 의도적으로 보고를 누락할 리가 없다.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꽤나 중요한 이유 때문에 그랬을 확률이 크다.
[그건….]발록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때 본 할키온이, 너무도 끔찍했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마왕님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신데 그 끔찍한 것을 신경 쓰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변명이라기엔 너무 빈약했다.
‘뭐, 그때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은가.’
구백 년 전이면 대공과의 갈등이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을 당시.
서식지 외에는 나서지 않는 고대 마물에게까지 신경을 쓸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말하니까 오히려 궁금하네.’
얼마나 끔찍하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젠 궁금할 지경.
강우는 흥미롭다는 듯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가자.”
[이, 이 죄는 제 목숨으로 갚….]“헛소리하지 말고.”
발록의 다리를 가볍게 걷어차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게이트를 통과하자 울창한 밀림이 눈앞에 펼쳐졌다.
“…….”
짙은 혈향이 풍겨왔다.
“아주 맘 것 날뛰고 있구만.”
울창한 숲이 펼쳐진 곳곳에 갈가리 찢겨나간 몬스터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하긴.’
상대는 고대 마물이다.
대공과도 겨룰 수 있는 괴물이 게이트 내에 나타났으니 몬스터들의 입장에서도 재앙이나 다름없는 일.
마물의 특성 중 하나인 ‘서식지’를 형성하기 위해 주변에 보이는 몬스터를 족족 잡아 죽였을 가능성이 크다.
[마왕님.]“알아.”
강우는 마기를 끌어올렸다.
언제든 권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전의 준비를 갖췄다.
발록 또한 두 주먹을 들어 올리며 마기를 일으켰다.
-철컥.
그의 양 주먹에 검은 갑주가 생성됐다. 마치 서양의 기사가 건틀렛을 착용한 듯한 모습.
저것이 발록이 새롭게 얻은 힘 ‘패왕갑’이리라.
“…그러고 보니 채찍은 안 쓰냐?”
[패왕갑과는 잘 어울리지 않아 요즘에는 주먹을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흐음.”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록의 주 무기가 채찍인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맨손 전투의 숙련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알아서 하겠지.’
김시훈의 무공에 대해 직접적인 조언을 해줄 수 없듯, 발록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미 완성된 전사.
주 무기였던 채찍을 버렸을 정도면 그의 선택이 옳으리라.
-흑, 흐윽… 흑.
그때, 숲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강우는 칼날의 권능으로 검을 만들었다.
“저기다.”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에서 강렬한 마기가 느껴졌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할키온.’
악마조차 경기를 일으킨다는 끔찍한 생물.
과연 그가 어떻게 생겼을까 생각하며 수풀을 헤치고 나아갔다.
‘상관없어.’
그가 얼마나 역겹게 생겼든, 중요치 않다.
‘어차피.’
지옥에 로망은 없다.
끔찍한 것으로 치면 이미 그 바닥의 바닥을 본 상태.
시체를 이어 붙여 짓이겨 놓은 것 같은 생김새라도 웃으며 포식의 권능으로 뜯어먹을 자신이 있었다.
‘자.’
모습을 보여라.
강우는 시야를 가리는 넝쿨을 길게 뻗어 나온 칼날로 베어냈다.
그곳에는.
“…….”
[크윽! 역겨운 외모는 여전하군!]발록이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주먹을 쥐었다.
강우는 입을 쩍 벌린 채 할키온을 바라보았다.
“흐윽, 흑.”
눈물을 흘리고 있는 백발의 여인.
등에 돋은 박쥐의 날개.
이마에 돋아나온 두 개의 뿔. 엉덩이 부근에서 꾸물거리는 꼬리.
그리고.
눈부실 정도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
“야, 발록….”
덜덜 몸이 떨렸다.
할키온의 외모는 전율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솔직히, 한설아나 에키드나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
비유를 하자면,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서큐버스’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 X발.”
지난 지옥에서의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여자는커녕 사람조차 볼 수 없었던 그 아득한 세월.
그나마 생긴 부인은 리리스.
매일 밤 촉수에 시달리며 울부짖은 그 나날들.
즐거움이라고는 조금도 찾을 수 없었던 메마른 공간.
그걸 견뎌왔는데.
그걸 참아왔는데.
그런데.
그랬는데.
“아, 아아.”
머리를 움켜쥐었다.
-너 혹시 예전에 할키온을 직접 만난 적이 있는 거야?
-그렇습니다.
“으, 아.”
-왜 보고 안 했던 거야?
“야, 이….”
-그때 본 할키온이, 너무도 끔찍했기 때문입니다.
“씨발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
강우의 두 뺨을 타고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보고를 안했던 거야, 이 개새끼야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