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59)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60화
온 세상이 파멸할 것이다 (2)
“키에에에에에엑!!”
끔찍한 괴성이 울려 퍼진다.
“후우.”
깊게 숨을 들이쉰다. 루드비히의 검자루를 움켜쥔다.
거칠게 진각을 밟으며, 검을 휘두른다.
아래서 위로.
사선으로 그어진 검의 궤적을 따라 새하얀 검기가 뻗어 나갔다.
괴성을 흘리며 달려들던 마물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촤악!
타르를 연상시키는 진득한 검은 피가 사방에 튀었다.
슬쩍 몸을 돌려 피한 후 앞으로 달려나갔다.
“아아아악!!”
“죽여!!”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쓰러진 천랑부대원들에게 수백에 달하는 마물들이 달려들었다.
-콰드드드득!
그때, 수십 줄기의 붉은 쇠사슬이 뻗어 나와 마물의 몸을 갈랐다.
붉은 단발을 가진 여인이 마물의 몸을 발로 걷어차며 달려왔다.
“그 칼기아란 놈은 어디 쪽에 있는 거야?!”
차연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시훈은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폐허로 변한 건물의 잔해.
그 너머에 지하로 통하는 통로가 보였다.
지금은 누군가의 습격으로 멸망했지만 예전에 악마교의 지부 중 하나가 있었다는 장소.
“저쪽 안에 있다고 합니다.”
“끄응. 꽤 머네.”
사실 거리 자체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키에에에에엑!”
“이것들이 진짜!”
차연주가 손을 교차했다.
그물처럼 펼쳐진 붉은 쇠사슬이 마물의 전신을 휘감았다. 치이이익.
메케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피어났다.
“뭐 이렇게 마물이 많은 거야….”
그녀는 질린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통로까지의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이유.
그것은 폐허 주변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천에 달하는 마물들 때문이었다.
“악마교의 마지막 저력인 것 같습니다.”
“그런 것 치고 정작 악마교도 놈들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데….”
차연주가 가늘게 눈을 뜨며 주변을 살폈다.
그녀의 말대로 주변을 가득 채운 것은 끔찍한 외형의 마물들 뿐.
그들을 부리는 악마교도나 추기경급 존재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김시훈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이상해.’
이 정도 규모의 마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악마교도가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당장 생각나는 가능성은 두 가지.
‘마물들을 미끼로 던지고 도망쳤거나.’
김시훈은 칼기아가 있다는 지하 통로의 입구를 노려보았다.
‘악마교도를 끌어모아 뭔가를 준비하고 있거나.’
섬뜩한 불길함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왠지 이대로 칼기아가 도망을 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있어.’
논리에 의한 추측이 아닌, 직감에 의존한 불확실한 예측.
하지만 저 지하 통로에서 느껴지는 음산한 기운이 그 예측에 확신을 더해줬다.
손에 쥔 성검에 힘을 더했다.
“차연주 씨.”
“응?”
“이대로 마물들을 모두 정리하고 가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정면으로 돌파하겠습니다.”
“뭐?”
차연주가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 김시훈을 바라보았다.
3백여 미터 거리에 있는 지하 통로. 그 통로까지 향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마물의 숫자는 어림잡아도 천은 가볍게 넘어 보였다.
‘그걸 정면으로 돌파하겠다고?’
제정신으로 할 소리인가.
-우우우우웅!
“야, 야 잠깐만! 너 설마 진짜로….”
콰아앙!
김시훈은 거칠게 발을 굴렀다.
눈부신 빛무리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저, 저 미친놈이…!”
한 걸음.
검을 낮게 휘두른다. 3미터가 넘는 마물의 다리가 잘려나가 쓰러진다.
두 걸음.
머리를 짓밟고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역수로 검을 잡아 내려찍는다.
응축된 힘이 폭발하듯, 새하얀 검기의 다발이 부채꼴로 퍼져나가 마물의 몸을 도륙한다.
세 걸음.
벌어진 틈으로 몸을 비집어, 마물이 뭉쳐있는 곳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파고든다.
“후우.”
양손으로 검을 쥐고, 들어 올린다.
새하얀 빛이 기둥처럼 높게 치솟았다.
“천룡.”
나지막이 입을 떼며, 단전의 내공을 끌어올린다.
폭발하듯 퍼져나가는 빛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일섬.”
-콰과과과과과광!!!
30여 미터로 늘어난 새하얀 검기가 마물을 쓸어버렸다.
백여 마리가 넘는 마물의 몸이 강렬한 에너지에 노출되어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신화 속 거인이 검을 내려치는 듯한 경이로운 광경.
“허….”
“어, 언제 저런 힘을….”
천무진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차연주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김시훈을 바라보았다.
단신으로 수천 마리의 마물이 모여 있는 곳을 파고들어 길을 뚫어내다니.
인간이라고는 믿기 힘든 신위. 차라리 괴물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광경이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이 기회예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부대원들을 향해 일갈을 내뱉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천랑부대원들이 김시훈이 터놓은 길을 따라 돌격했다.
“와아아아아아!”
“돌파해!!”
김시훈을 선두로 쐐기 형태로 뭉친 천랑부대.
무시무시한 돌파력으로 마물의 바다를 갈랐다.
“키에에에엑!!”
“크읏!”
김시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대체 어디서 나오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마물들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부족해.’
자신 혼자라면 어찌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천랑부대를 다 이끌고 돌파하긴 힘들었다.
“연주 씨! 사부님! 최대한 정예 플레이어만 추려서 이쪽으로 모여주십시오!”
“크읏! 그렇게 하다간….”
천무진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마물의 무리를 돌파하고 있는 도중 어중간하게 그들만 빠져나간다면 뒤처진 본대가 포위를 당한 꼴이 되어버린다.
“괜찮습니다.”
김시훈이 한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곳에선 새하얀 날개를 지닌 천사들이 마물을 습격하고 있었다.
“어둠에 물든 자에게!”
“빛의 심판을!”
파죽지세로 마물의 무리를 학살하는 천사들.
그중 샤르기엘과 몇몇 천사들이 김시훈 쪽으로 붙었다.
“적들의 수장은 어디에….”
“이쪽입니다!”
김시훈이 지하 통로를 가리켰다.
차연주와 천무진, 샤르기엘이 지하 통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천랑부대의 정예 플레이어들과 천사 중 그 급이 높은 천사들이 힘을 합쳐 길을 뚫어냈다.
-쿵! 우르르르!
지하 통로가 무너져 내렸다.
허물어진 벽 너머로 넓은 공동이 나타났다.
“자자스 자자스 나스타나다 자자….”
“치, 침입자다!”
검은 로브를 입은 수백 명의 사제가 무언가 알 수 없는 의식을 치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김시훈이 달린다.
-촤악! 촥!
“커헉!”
“아아아악!”
눈부신 속도로 휘둘러진 검이 사제들의 몸을 갈랐다.
김시훈이 표정이 초조함에 물들었다.
‘뭔가 불길해.’
수백의 악마교도가 모여 펼치고 있는 의식.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 목적과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저 의식이 성공하도록 놔두면 안 돼.’
확신에 가까운 직감.
발걸음이 다급해졌다.
눈앞을 가로막은 사제들을 베어 넘겼다.
“이 더러운 악의 종자들!”
샤르기엘도 마찬가지.
복잡하게 펼쳐진 마법진에서 섬뜩한 마기를 느낀 그는 여섯 장의 날개를 활짝 펼치며 날아올랐다.
“죽어랏!”
의식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비쩍 마른 노인을 향해 샤르기엘이 날아들었다.
칼기아가 고개를 들었다.
“크흐흐흐.”
음산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지팡이로 바닥을 내려찍는다.
-쿠웅!
“커헉!”
마기가 원형으로 퍼져나가 샤르기엘을 튕겨냈다.
거대한 망치에 후려 맞은 듯 샤르기엘의 몸이 튕겨 나가 벽에 부딪혔다.
“끌끌끌. 가이아의 권속들에 천사라… 아주 좋은 관중들이 무대에 모이게 됐군.”
칼기아는 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돌렸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공동 전체를 짓눌렀다.
“크읏! 뭐, 뭐야 저 새낀….”
전신을 짓누르는 거대한 압박에 차연주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붉은 쇠사슬을 조종해 칼기아를 공격하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크윽!”
“모, 몸이….”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공동 전체를 짓누르는 거대한 마기에 플레이어와 천사들은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촤아악!
그중에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던 것은 김시훈 하나.
김시훈은 수백에 달하는 악마교도를 썰어버리며 전진했다.
“저놈을 막앗!”
“의식을 방해하지 못하게 해라!”
악마교의 사제들이 그를 향해 강력한 흑마법을 쏘아냈다.
수백, 수천에 달하는 흑마법이 김시훈을 향해 쏟아졌다.
“일섬(一閃).”
무수한 흑마법들을 베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한 걸음 옮기며 검을 휘두를 때마다 열에 가까운 사제들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콰아아앙!
“하아, 하아.”
하지만 아무리 그라고 해도 강력한 흑마법의 포화에서 멀쩡할 수는 없었다.
상처가 늘어 가고, 전신에 피가 흘렀다.
‘제길.’
입술을 깨물며 칼기아를 노려보았다.
그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광기에 찬 웃음을 계속 터트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콰앙!
“기, 김시훈 수호자님!!”
“가이아씨…?”
벽이 무너지며 가이아가 나타났다.
금발을 가진 중년의 여인이 가이아를 업어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레이스 맥커빈이 그녀를 안아 들고 통로 안까지 들어온 것이다.
갑작스런 가이아의 등장에 김시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여긴 위험합….”
“의식을, 의식을 막아야 합니다!!!”
절규에 가까운 외침.
가이아는 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외쳤다.
“계시가, 계시가 내려왔습니다. 지, 지금 저자는…!”
“크흐, 크흐흐흐!!!”
칼기아가 폭소를 터트렸다.
“이제야 알게 된 모양이구나 가이아의 화신이여!”
앙상한 손으로 품속을 뒤졌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너희는 이 의식을 막을 수 없다!”
그가 품속에서 꺼낸 것은 검은 표지의 책.
“나는 드디어 깨달았다! 우리는 속고 있었던 게야! 사탄이라는 이름에 우롱당했던 게야!”
책을 펼쳤다.
검은 마기가 폭발적으로 솟구쳤다.
“오, 오오오오!!”
“진리여, 진실이여!!”
“드디어 진정한 군주를…!”
사제들이 광기에 찬 함성을 내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이건 또 무슨….”
김시훈은 갑작스런 그들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다.
칼기아의 외침이 이어졌다.
“이 책에 모든 진실이 담겨 있었다! 이 책이야말로 지옥에서 내려온 성서! 모든 진실이 담긴 책일지니!”
그가 펼쳐 든 책의 표지에는 ‘지옥의 서’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광기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사탄은 거짓된 왕이었다! 신들조차 두려움에 벌벌 떨게 만든 예언의 악마는 그자가 아니었어! 진정한 악마는, 지옥의 군주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콰앙!
지팡이를 거칠게 내려찍는다.
“자, 오십시오! 이곳에 현신하십시오!!”
쩌적. 허공에 금이 가며 검은 균열이 나타났다.
“지옥의 군주여! 구천의 지옥을 다스리는 악마들의 왕이여!!!!”
쩌저저적!
검은 균열이 커졌다.
“크하하하하!! 너희는 이미 늦었다! 이미 의식은 돌이킬 수 없다!”
양팔을 넓게 펼치며 광소를 터트렸다.
“두 눈 똑똑히 보아라! 온 세상이 파멸하는 이 순간을!”
쩌저저저저적!!
“자, 예언의 악마여! 그 예언에 따라 세계를 파멸시켜 주십시오!!!”
-쿠우우우웅!!
거대한 충격과 함꼐 공동이 크게 진동했다.
연기가 높게 치솟아 올랐다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
한 손에는 맥주. 다른 손에는 팝콘을 들은 채 소파에 늘어져 있는 강우가 있었다.
그는 마치 잠을 자다가 깬 듯 몽롱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뭐야.”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반쯤 감겨 있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뭔 일이야 X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