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60)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61화
미쳐 돌아가는 상황 (1)
솔직히 말해서, 깜빡 잠들어 버렸다.
마기 제어력을 올리기 위해 쉬지 않고 수련을 거듭한 결과, 우려했던 이상으로 피로가 겹치게 된 것.
그리고 새하얀 빛의 기둥을 만들어 마물들을 쓸어버리는 김시훈의 모습을 보고는 ‘아, 뭐 저 정도면 알아서 하겠네’라고 안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뭐야 이건.’
밀어닥치는 수마(睡魔)를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은 것도 잠시.
몸이 어딘가로 빨려드는 감각에 눈을 뜨니 눈앞에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으응?”
칼기아는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예언의 악마라고 하기엔 그냥 취직 못한 백수나 다름없는 모습.
위엄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다.
“설마 소환이 잘못된….”
잠시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그였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분명 지옥의 서에 쓰여 있는 대로야.’
맥주와 팝콘을 양손에 든 채 소파에 누워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지만 외형적인 것만 보면 ‘지옥의 서’에 적힌 그대로가 맞았다.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인간의 모습.
‘바로 저분이.’
만 년 만에 모든 지옥의 역사를 갈아치우며 악마의 정점에 오른 괴물.
악마의 악마이자.
지옥의 지옥이며.
포식자의 포식자.
마기의 바다를 품고, 수백 가지의 권능을 다루며 모든 대공을 무릎 꿇게 한.
‘예언의 악마.’
칼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겉모습은 중요치 않았다.
그가 연구했던 예언의 악마와 마왕의 조건은 완전히 일치 했다.
이번 소환도 마왕이 지닌 마해를 추적하여 불러들일 수 있도록 악마교가 수천 년간 쌓아올린 모든 재물과 재화를 쏟아부었다.
‘실패할 리가 없다.’
모든 것이 철저한 계산 아래 이뤄진 소환이었다.
“아아!”
칼기아는 무릎을 꿇었다.
“예언의 악마시여!!”
“뭐?”
자신을 예언의 악마라 칭하는 칼기아의 외침에 강우의 두 눈이 부릅뜨였다.
“그게 무슨 개소….”
“그대가 강림할 이 순간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뭐 이 새끼야?”
“전 모든 진리를 알았습니다! 사탄이 옹졸하게 감추고 있던 지옥의 진실을 깨달았습니다! 자! 이것을 보십시오! 당신의 진정한 정체가 담긴 책입니다!”
“씨바, 잠깐만.”
강우의 눈이 떨렸다.
칼기아가 들어 올린 검은 표지의 책.
그건 분명 리리스가 자신과 만나기 전에 지옥의 진실을 악마교에게 전파하겠다며 유포한 ‘지옥의 서’라는 이름의 책이었다.
‘뭐야, 이게 뭔 일이야 씨바.’
상황이 너무 복잡해 따라갈 수가 없었다.
강우의 손에서 맥주와 팝콘이 떨어졌다.
“이 책을 읽고 깨달았습니다! 당신이야 말로 모든 신들이 두려워 공포에 떠는 예언의 악마라고!”
‘아니.’
“온 세상에 파멸을 가져다 줄 진정한 악(惡)이라고!”
‘아니. 저기요, 씨발.’
“우리가 섬겨야 할 것은 사탄이 아니었습니다!”
‘그만해.’
“예언의 악마이시여!!”
‘그만해 이 씨발새끼야.’
“저 우매한 인간들을 벌하고 이 세계에 종말을 가져다주시옵소서!!!”
‘그만하라고 이 미친놈아아아아아아아아!!!’
강우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상황이.
이 복잡하고 난잡한 상황이 드디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리리스… 야, 인마….’
리리스와 만나기 전.
그녀는 지옥의 서를 악마교 내부에 유통했다.
당시 큰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악마교 입장에서 보면 판타지 소설이나 다름없는 것이 바로 지옥의 서였다.
그들이 섬기던 사탄이 사실 패배자이며 고작 만 년에 불과한 시간 만에 지옥의 판도를 뒤집어엎고 악마들의 정점에 올라선 인간이 있다.
이런 허무맹랑한 말을 믿을 존재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래야 했는데.’
강우는 칼기아를 노려보았다.
광기에 빠져 있는 흑마도사의 모습.
‘이런, C바알.’
그 허무맹랑한 소설을 믿어버리는 새끼가 나타나버렸다.
그것도 악마교에 남은, 마지막 ‘악의 위상’이라는 놈이.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돌렸다.
‘어머나, 썅.’
자신을 향해 쏠려 있는 시선을 느꼈다.
가이아와 김시훈, 차연주, 천무진부터 시작해서 이제까지 꽤나 깊은 신뢰를 쌓아 올린 동료들.
그 밖에도 자신의 얼굴을 익히 알고 있는 천랑부대의 플레이어들.
샤르기엘을 포함한 천사까지.
“혀, 형님…?”
김시훈이 떨리는 목소리로,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끔찍한 악몽을 눈앞에 둔 듯 몸을 떨고 있었다.
“…….”
굳게 입을 다물었다.
아니, 굳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을 가장 정확하고,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하나뿐.
‘X됐다.’
이보다 더 지금 상황을 적나라하게 나타낼 수 있는 단어가 무엇이 있을까.
강우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건 뭐 발록 때처럼 빛의 용사고 나발이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망했다.
도저히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무슨 시도를 해볼 수도 없을 정도로 상황이 꼬였다.
“응?”
칼기아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의식을 방해하러 쳐들어온 가이아의 권속이 예언의 악마를 보고 ‘형님’이라 부르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
“대체 이게 무슨….”
-퍼석!
강우가 손을 뻗었다.
칼기아의 머리통이 터져 나가며 뇌수가 비산했다.
‘일단 닥치고 있어.’
계속 칼기아가 나불거리도록 한다면 상황은 악화될 뿐이다.
“혀, 형님!! 이게 어떻게 된….”
“야!! 무, 무슨 말 좀 해봐! 이, 이거 아니지? 뭔가 잘못된 것 맞지?!”
김시훈과 차연주가 당황스런 목소리로 외쳤다.
물론, 그들도 강우가 과거 악마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예언의 악마라는 것은.
온 세계를 파멸시킬 악의 화신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크읏… 그 인간이… 우리를 속인 거로군요!”
“아닙니다!”
샤르기엘의 말을 자르며, 김시훈이 외쳤다.
“뭔가 잘못된 겁니다!! 형님이 그럴 리가 없습니다!!”
“닥치십시오! 지금 저 모습을 보고도 모르시겠습니까!!”
샤르기엘이 손을 들어 강우를 가리켰다.
“악마교가 펼치는 의식이 얼마나 강대하고 사악한 마기를 풍기고 있었는지는 여기 있는 모두가 느꼈을 겁니다!”
사실이다.
의식이 절정에 달했을 때.
허공에 검은 균열이 달리며 숨 막힐 정도로 거대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마기 속에서 나타난 것이 저 인간입니다! 그리고 악의 위상이라는 자도 저자를 예언의 악마라 불렀습니다! 대체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하다는 겁니까!”
샤르기엘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강우를 노려보았다.
“가이아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사탄이 예언의 악마가 아니었다고! 그렇다면 저 자가 모든 원흉인 겁니다! 저자가 사탄을 조종해 모든 일을 꾸민 것입….”
“이 개자식이 뭔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차연주가 거칠게 발을 굴렀다.
그녀의 몸에서 붉은 마력이 피어오르며 쇠사슬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저놈이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착하고 선량한 영웅은 아닐지도 몰라! 그래도, 그렇다고 해도!!”
발악하듯 외쳤다.
“그런 끔찍할 짓을 저지를 정도로 나쁜 새끼도 아니라고!!”
강우가 만약 예언의 악마라고 가정한다면.
이제까지 사탄이 벌여왔던 모든 일들은 그의 명령 하에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사탄이 예언의 악마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그가 직접 밝힌 사실이니까.
그렇다면.
사탄이 정말 예언의 악마의 권속이라면.
수호자 알렉을 죽인 것도.
영웅 레이날드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도.
성자 루드비히를 타락시킨 것도.
모두 강우가 꾸민 일이라는 말이 된다.
“당신들은 모두 저 악마에게 속고 있었던 겁니다!! 지금 이걸 보고도 몰….”
“닥쳐.”
“…예?”
“닥치라고.”
김시훈이 샤르기엘을 향해 성검을 겨눴다.
“네가 뭘 알아.”
검끝이 떨렸다.
“네가 형에 대해서 뭘 아냐고 새끼야!!!”
김시훈은 절규하듯 외쳤다.
“네가 이제까지 형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얼마나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지 대체 뭘 알고 그딴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그건 모두 거짓….”
“입 닥쳐!!”
김시훈이 외쳤다.
하지만 일그러진 그의 표정이, 당황과 분노에 찬 목소리가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김시훈 자신도 이 상황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고.
“형님! 무슨 말이라도 해주십쇼!”
김시훈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그가 기억하고 있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강우의 모습이 보였다.
“…….”
“제발… 형님….”
김시훈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은 처절하고, 처량한 목소리.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문 채 김시훈을 응시했다.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는 것 같은 무표정한 얼굴과 달리 그 내부에서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시바 대체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
마음속으로 절규를 내뱉는다.
머리가 터져 나갈 것 같았다. 아니, 왜 아직도 멀쩡한지 의심스러울 정도.
‘이런 씨바아아아아아아알!!!!’
망했다.
망해도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망해버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 개 같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미쳐 버린 전개를 풀어내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다.
‘악마교가 잘 못 소환한 거라고 우겨?’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것.
강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냐.’
고개를 저었다.
잘 못 소환했다는 것으로 넘어가기에는 이미 일이 너무 커졌다.
물론, 김시훈이나 차연주, 가이아처럼 그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높은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어줄 것이다.
‘하지만.’
강우는 샤르기엘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샤르기엘 외에 다른 천사들도 그를 향해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뭐,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저분은 김시훈 단장님의 의형 아냐?”
“아! 저번에 그 황금빛!”
“그런데 왜….”
다른 플레이어들은 또 어떤가.
그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다 속여 넘길 수 있을 리가 없어.’
플레이어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천사들에게 의심을 사는 것은 최악이다.
라파엘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 뒤에는 다른 대천사들과 신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온 세상을 적으로 돌리는 것과 마차가지인 짓이다.
‘제기랄.’
강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생각해.’
찾아야 한다.
이 미쳐 돌아가는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최악의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을.
‘있을 거야.’
없을 리가 없다.
이런 상황은 익숙하다.
언제나 이런 최악의 상황을 뒤집어 왔다.
‘방법이….’
강우의 두 눈이 부릅뜨였다.
전신에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그래.’
입가가 올라갔다.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한 문제였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그렇구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형님!!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해주십쇼!!”
고개를 든다.
자신을 향해 절규하는 김시훈의 모습이 보였다.
-탁.
발을 박차고, 쏘아졌다.
주먹을 들었다.
-퍼어어어억!!
“커헉!!”
절규하는 김시훈의 얼굴을,
망설임 없이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