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62)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63화
미쳐 돌아가는 상황 (3)
“뭐, 라고…?”
김시훈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검을 쥔 손이 덜덜 떨렸다.
-내가 아직도 오강우로 보이니?
조롱하듯 흘러나온 말.
“아, 아아.”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왜 그 상상을 못 했을까.
“너….”
강우가 자신을 공격할 리가 없다.
천사의 몸을 찢고, 차연주의 목을 움켜쥘 리가 없다.
그는 그런 인간이 아니다.
누구보다도 상냥하고, 착한 형이다. 피가 섞인 가족보다 오히려 더 사랑하고, 존경하는 형이다.
“누구, 야.”
그런 강우가 갑작스럽게 돌변했다.
답은 복잡하지 않았다.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간단한 문제였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헛웃음 나올 정도로 단순한 문제였다.
저자는, 눈앞에서 이죽이고 있는 놈은,
강우가 아니다.
“누구냐고 새끼야!!”
김시훈이 손을 저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무기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수십 개에 달하는 무기. 머리가 뜨거웠다.
한계에 도달한 연산에 무심코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으아아아아!!!”
무시했다. 그딴 것을 신경 쓸 여유도, 이유도 없다.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분노가 그의 몸을 움직였다.
수십 개의 무기가 강우를, 아니 강우의 탈을 쓴 예언의 악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카가가가가강!!
새하얀 불꽃이 튀었다.
검은 방벽에 막힌 무기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글쎄, 내가 누굴까?”
강우는 낄낄 웃으며 좌중을 훑어보았다.
그들에 눈에 담긴 당혹과 공포, 혼란이 비쳤다.
보이지 않게, 주먹을 쥐었다.
‘씨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주먹을 불끈 쥔 채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기분.
‘됐다, 이건 됐어!’
자신이 생각해도 기가 막힌 연출.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단순하면서, 효과적이다.
예언의 악마를 소환해서 자신이 나타난 것이 문제라면,
애초에 ‘오강우’가 소환된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여론을 몰아가면 된다.
‘좀 미안하긴 하지만.’
바닥에 쓰러진 채 켁켁 거리는 차연주와 눈물자국이 선명한 김시훈이 보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는 해도 두 사람을 몰아붙인 것에 대해 죄책감이 끓어올랐다.
‘연주야, 미안하다.’
처음 보는 기술을 꺼내 들었건만 너무 허망하게 제압해 버렸다.
‘엄청 준비한 것 같던데.’
붉은 꽃이 개화한 것처럼 쇠사슬이 뻗어나가는 기술.
차연주를 자주 만나는 자신도 처음 본 기술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 나름 남몰래 수련하고 있던 기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 자체가 위력만 컸지 구조가 너무 허술했다.
기운을 다루는데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른 강우의 시선으로 보면 허점투성이 기술이었다.
‘끄응.’
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기술이 허망하게 파훼된 순간, 당혹과 절망이 퍼진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런 그녀의 목을 움켜쥔 채 꽤나 큰 고통을 줘버렸다.
‘나중에 진짜 다 갚을게.’
할 수만 있다면 싹싹 빌고 싶은 심정.
‘그리고.’
강우의 시선이 김시훈을 향했다.
“감히, 감히 네가…!”
분노와 안도, 증오와 절망이 뒤섞인 일그러진 얼굴.
분노와 증오의 대상은 생각할 것도 없이 자신일 것이고, 그 안에 섞인 안도는 그래도 ‘예언의 악마가 강우가 아니었다’라는 안도감일 것이다.
‘시바, 미안하다 시훈아!’
가장 큰 죄책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생각할 것도 없이 김시훈이었다.
온몸에 상처를 입은 동생을 보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감각.
‘어쩔 수가 없었다.’
구차한 변명이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지금 상황을 뒤집기 위해서는 자신이 ‘오강우’가 아닌 ‘오강우의 탈을 쓴 예언의 악마’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사실감을 더하기 위해 김시훈을 한계까지 몰아붙여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형도 마음이 아파.’
김시훈에게 살초를 펼칠 때마다 혹시 이러다 진짜 김시훈이 죽는 건 아닐지 심장이 벌렁거렸다.
‘버텨줘서 고맙다, 인마.’
김시훈이 그의 기대에 부응해 아슬아슬하게나마 살초를 버텨준 덕분에 지금 상황이 완성될 수 있었다.
‘시바 설마 살다살다 내가 나를 사칭할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쩌겠는가.
지금 상황을 뒤집기 위해선 이 방법 외에는 없었다.
‘이제….’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밀려오는 죄책감과 별개로 성공적인 전개에 입가가 올라갔다.
“네가 감히 형을…!”
분노에 떠는 김시훈의 모습은 말 그대로 주인공 그 자체.
그가 존경해 마지않는 형을 사칭한 예언의 악마에 대한 살기가 풀풀 피어오르고 있었다.
강우는 다시 한 번 광기 어린 웃음을 터트렸다.
“푸흡! 푸하하하하! 좋아! 바로 그 모습이야! 사탄이 널 왜 마음에 들어 했는지 알겠어.”
“…….”
김시훈은 살기가 담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검을 쥐었다.
저 눈앞의 존재가 강우가 아닌, 그를 흉내 낸 악마라는 것을 안 이상 더 이상 주저할 것이 없었다.
-슈욱!
김시훈의 몸이 흐릿하게 변했다.
음속을 넘는 속도로 움직이는 그의 몸 주위에 거대한 소닉붐이 일었다.
한계까지 내공을 끌어올린 김시훈이 강우의 머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어허, 왜 그러는 거야?”
-카아아앙!!
손등에서 솟구친 검은 칼날로 여유롭게 검을 막는다.
비릿한 조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존경하는 형이잖아? 응? 형한테 이런 살벌한 공격을 해도 되겠어?”
“닥쳐!!”
“푸흡, 하하하하!”
비웃음을 흘리며 몰아치는 김시훈의 공격을 막는다.
‘끄응.’
여유롭게 막고 있는 겉모습과는 달리 강우의 목덜미엔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자식 언제 이렇게 강해졌지?’
강우는 흥미롭다는 눈으로 김시훈을 바라보았다.
지금 한계 이상의 힘을 쥐어 짜내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가 모르는 사이에 또 강해진 건지 알 수 없지만 검격을 막아내는 게 쉽지 않았다.
‘쑥쑥 성장하고 있구나, 시훈아.’
뿌듯한 미소가 입가에 지어졌다.
마음 같아선 어깨라도 두들겨 주고 싶었지만 그러기는 힘든 상황.
‘그나저나.’
강우는 주변을 살폈다.
일단 계획의 첫 단추는 성공적으로 끼웠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이것만으로는 모든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시훈이나 연주면 몰라도 천사까지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겠지.’
당연한 일이다.
갑자기 자신이 오강우가 아닌, 정체 모를 악마라고 주장해 봤자 그 말을 순순히 믿을 리가.
천사들과의 신뢰 관계는 두텁지 않다.
어디까지나 이해와 타산이 겹친 협력 관계.
김시훈이나 차연주 같은 굳은 신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조금 더 확실한 증거.’
오강우와 예언의 악마가 완전히 별개의 존재라는 명확한 증거가 필요했다.
‘예상대로 간다면.’
조금 있으면 그 기회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강우는 그때를 기다리며 김시훈을 몰아붙였다.
“크윽!”
공격을 이어가던 김시훈이 고통스럽다는 듯 손을 움켜쥐었다.
한계를 넘어선 반탄력에 손 피부가 너덜너덜하게 찢겨나가 있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이 흘렀다.
“쿨럭! 쿨럭! 으으….”
그때, 바닥에 쓰러져 있던 차연주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붉은 멍자국이 남은 목을 움켜쥐며 강우를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저 개새끼가 강우가 아니라 다른 놈이라 이거지?”
그녀의 눈에도 짙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김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입술을 조용히 깨물었다.
‘역부족이야.’
여유롭게 미소 짓고 있는 악마를 노려보았다.
강우의 탈을 쓰고 있는 저 정체 모를 악마의 힘은 상상이상.
도저히 지금 여기 있는 천사와 플레이어들만으로는 상대할 수 없었다.
“샤르기엘님!”
김시훈이 다급히 그를 불렀다.
“다른… 악마라고?”
샤르기엘은 지금 상황이 쉽사리 이해가지 않는지 혼란에 빠진 표정이었다.
“샤르기엘!!”
김시훈이 일갈했다.
그제야 샤르기엘의 시선이 김시훈을 향했다.
“라파엘 님을 불러! 지금 당장!”
“그분은….”
샤르기엘의 표정이 굳었다.
사탄에게 당한 라파엘의 상처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이제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수준.
“빨리!!”
“크읏….”
샤르기엘은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김시훈의 말이 옳았다.
지금 여기 있는 이들의 힘만으로 저 정체 모를 악마를 이길 수는 없었다.
“기다려라.”
샤르기엘은 눈을 감고 라파엘과의 교신을 시도했다.
그의 머리 위에 금빛 테두리의 원이 떠올랐다.
“흐응. 지원군을 부를 생각인가? 뭐, 나쁘지 않지.”
강우의 탈을 쓴 악마는 낄낄 웃음을 흘리며 샤르기엘과 김시훈을 바라보았다.
김시훈은 품속에서 통신용 수정 구슬을 꺼냈다.
가디언즈 멤버끼리 통신을 할 때 사용하는 마도구였다.
‘저놈이 강우 형이 아니라면.’
필시 지금 강우와의 교신이 가능할 터였다.
김시훈은 수정 구슬에 내공을 밀어 넣었다.
-우우우웅.
“어…?”
수정 구슬에서 빛이 반짝였다.
특유의 진동음도 들렸다.
-무슨 일이야?
강우의 목소리도 들렸다.
모든 게 완벽한데.
그런데.
“어, 어째서…?”
김시훈의 눈빛이 떨렸다.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응? 왜 그래 사람을 불렀으면 얘기를 해야 할 것 아냐.”
그 수정 구슬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강우의 탈을 쓴 정체 모를 악마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
“어, 어떻게 네가… 혀, 형의 수정 구슬을….”
“푸흡, 푸하하하하하!!”
강우가 배꼽을 부여잡은 채 광기 어린 웃음을 터트렸다.
‘왔다, 왔어!’
기다리고 있었던 상황이다.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다.
자신이 강우가 아니라면, 김시훈이나 차연주나 둘 중 하나가 그에게 급히 연락할 것은 생각할 것도 없는 일이다.
‘자, 이제 그럼.’
두 번째 단추를 끼워 맞출 차례.
준비는 김시훈과의 전투 중에 이미 마친 상태였다.
“글쎄… 내가 왜 이 수정 구슬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 좀 더 간단한 질문을 해보지.”
“무, 무슨….”
“지금 네 소중하고 소중한 형은.”
강우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
김시훈의 몸이 덜덜 떨렸다.
강우가 아닌 존재가, 강우가 지니고 있던 수정 구슬을 가지고 있는 이유.
“푸흡,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광기에 찬 웃음이 울려 퍼졌다.
강우의 탈을 쓴 예언의 악마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탁.
마치 허공에 티비 화면이 떠오르듯,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아, 아아.”
영상을 본 김시훈은 무릎을 꿇었다.
농밀한 절망이 그의 몸을 휘감는다.
-시훈, 아….
노이즈가 잔뜩 낀 영상 속에 보이는 강우.
사지가 결박 된 채, 쇠사슬에 묶여 있는 강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무언가에 억지로 파내진 듯 한 쪽 눈이 사라진 강우는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망, 쳐.
“아, 안 돼에에에에에에에에!!!!!”
김시훈의 처절한 절규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