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6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64화
오강우 구출 작전 (1)
노이즈가 잔뜩 낀 영상.
마치 십가가처럼 세워진 기둥에 강우의 사지가 결박되어 있었다.
단순히 쇠사슬로 팔을 묶었다, 는 개념이 아니었다.
마기로 이뤄진 것 같은 검은 쇠사슬이 강우의 살을 꿰뚫고, 거대한 기둥에 칭칭 둘러져 있었다.
양 어깨와 팔, 종아리, 허벅지, 쇄골.
꿰뚫린 살에서 피와 고름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한 쪽 눈이 억지로 파내진 강우의 얼굴은 고통과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
-시훈, 아.
“아, 아아.”
그런 상황에서도.
저렇게 끔찍한 상황에서도.
-도망… 쳐.
도망치라는 말만을, 반복해서 중얼거린다.
“흐음.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인데?”
강우의 탈을 쓴 예언의 악마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손가락을 튕긴다.
-철컥.
-커헉, 큽!
강우의 살을 파고들어 있는 검은 쇠사슬에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났다.
선인장을 보는 것처럼 촘촘히 돋은 가시.
몸을 꿰뚫은 10개의 쇠사슬이 움직였다. 날카롭게 돋은 가시에 살점이 찢겨나갔다. 말라붙은 피가 떨어져나가며 새롭게 피와 고름이 흘러내렸다.
-크학! 악!
필사적으로 고통을 참고 있는 듯한 그의 모습.
김시훈의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멈춰, 이 개새끼야아아아아!!”
전력으로, 선천지기의 힘까지 폭발시키며 달렸다.
짐승의 포효와도 같은 괴성이 흘러나왔다.
“푸흡, 푸하하하하하!!”
예언의 악마가 웃는다.
지금 상황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즐겁다는 듯이, 광기와 열락으로 일그러진 웃음을 토해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죽여 버리겠어.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김시훈이 달려든다.
하지만 이미 한계 직전까지 도달한 그의 몸은 가벼운 손짓 한 방에 허망히 바닥을 구를 뿐이었다.
“으, 아아.”
처절한 모습으로 신음을 흘린다.
사지를 억지로 움직여 바닥을 긴다.
처참하고, 비참한 모습.
“아주 좋은 형제애야. 하하. 정말, 정말로….”
예언의 악마는 열기에 찬 숨을 토해냈다.
“아름다워.”
질꺼억. 찔꺽.
점성을 띈 액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김시훈은 예언의 악마를 향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강우의 탈을 벗어내듯, 정수리부터 피부가 벌어졌다.
마치 벌레가 허물을 벗는 듯한 모습.
쭈글쭈글해진 피부가 바닥에 떨어졌다.
강우라는 탈을 벗어던진 악마의 몸은….
“아, 아아.”
김시훈은 두 눈을 부릅떴다.
가이아가 예언의 악마가 누군지에 대해 ‘모른다’고 했던 이유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타르처럼 끈적한 검은 액체.
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심연.
그 나락의 끝에 존재하는 듯한 끔찍한 악마.
“뭐, 뭐야 저게 씨발….”
차연주가 몸을 떨었다.
악마?
저게 과연 악마라고 할 수나 있을까.
눈도, 코도, 입도 없다.
존재하는 거라고는 오로지 끈적한 점성을 띤 어둠.
“이, 이 빌어 처먹을 슬라임새끼가….”
겉모습을 보며 저거 별 것 아닌 슬라임이라고 조롱해 봤지만 말을 내뱉는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차연주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것이,
저 괴물이,
고작 슬라임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이 인간을 구하고 싶은가?]“…….”
낄낄낄.
조롱하며 허공에 떠오른 영상을 가리킨다.
굳이 답을 할 것도 없다.
김시훈에게 있어서 강우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는 예언의 악마도 알고 있는 눈치니까.
-툭.
예언의 악마가 무언가를 던졌다.
손가락 두 마디만한 검은 보석.
검은 점액질로 이루어진, 그 악마는 웃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를 구하고 싶으면 보석을 사용해라. 너를 저 인간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궁금하구나.]찔꺽.
점액질이 움직였다.
[네가 얼마나 더 아름답게 타오를 수 있을지.]아리송한 선문답.
그 말과 함께 공동의 외벽이 박살났다.
여덟 장의 날개를 가진 천사가 나타났다.
라파엘이다.
“크읏….”
라파엘은 상처가 낫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움직인 탓인지 싸우기도 전에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숨은 거칠었고, 사탄과 싸울 때에 비하면 날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도 확연이 약해져 있었다.
[어이쿠, 이만 가봐야 할 시간이로군.]예언의 악마는 몸을 돌렸다.
“도망치게 놔둘 것 같은가!”
-콰앙!
라파엘이 쇄도했다. 예언의 악마는 검은 점액질로 이루어진 팔을 휘둘렀다.
콰드득. 라파엘의 어깻죽지의 살점이 크게 뜯겨나갔다.
“큭…!”
“라, 라파엘 님!”
샤르기엘이 급히 다가왔다.
라파엘의 지금 상태는 병상에서 막 몸을 일으킨 환자나 다를 바 없는 상태.
예언의 악마와 싸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천사의 힘이 고작 이 정도인가?]라파엘의 눈이 떨렸다.
검은 점액질로 이루어진 악마를 응시한다.
“너는… 대체 누구냐. 신화의 기록 어디에도 너 같은 존재는….”
[신화라.]예언의 악마는 웃었다.
[역사는 너무 많은 것을 잊었지.]예언의 악마의 뒤에 검은 균열이 만들어졌다.
느긋한 걸음으로 균열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검은 균열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기 직전, 예언의 악마는 속삭이듯 말했다.
[기대하고 있겠다, 인간.]예언의 악마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김시훈은 굳게 입을 다문 채 바닥에 떨어진 보석을 주워들었다.
그와 함께, 한계에 도달한 그의 시야가 검게 점멸했다.
쨍그랑. 손에 쥔 성검이 바닥에 부딪혀 새하얀 가루로 흩어졌다.
* * *
“후우, 후우. 와, 시바.”
권능으로 게이트를 만들어 도망친 강우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X될 뻔 했잖아.”
아슬아슬했다.
아니, 아슬아슬이고 뭐고 사실 그냥 망한 것이 맞다.
이미 쏟아진 물을 김시훈과 차연주, 가이아와 쌓아왔던 신뢰에 기대 억지로 담은 것에 불과했다.
“…이제부터야.”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본격적인 시작은 지금부터가 맞다.
벌어진 상처를 어찌저찌 응급 처치하는 것에는 성공했으니 이젠 디테일한 계획을 짤 때였다.
“후우.”
강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소파가 사라져 휑하니 남은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강우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전개였기 때문에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시간은 어느 정도 있을 거야.’
자신을 구하고 싶으면 이곳으로 오라며 보석을 던지긴 했다.
그 보석은 전에 리리스와 함께 만든 물건으로, 루드비히를 타락시켰던 던전으로 통하는 게이트를 활성화 시킬 때 사용한 보석이었다.
‘바로 사용하진 않겠지.’
그냥 누가 보더라도 함정이라는 게 뻔히 보이는 방법이었다.
사실 바로 사용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생각하긴 해야 했다.
“…….”
잠시 고민을 이어가던 강우는 고개를 저었다.
‘오긴 할 거야.’
그는 김시훈을 안다.
함정이라는 게 뻔히 보일지라도,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라도 그는 뛰어들 것이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그런 놈이니까.’
강우는 피식 웃었다.
김시훈에 대한 죄책감이 다시금 끓어올랐다.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이어갔다.
‘상황 정리부터.’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사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한 것 치고는, 꽤나 얻은 것이 많다.
‘타이밍도 적절해.’
가이아가 나타나서 예언의 악마가 사탄이 아니라며 트롤짓을 해버린 직후다.
‘어차피 필요한 일이었어.’
가이아의 발언으로 바닥까지 추락한 사탄 코인.
머지않은 시기에 사탄을 대신해 ‘예언의 악마’가 될 존재를 찾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
강우는 이마에 손을 올렸다.
가이아의 존재를 떠올렸다.
‘다른 누군가를 예언의 악마로 만드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만약 루시퍼를 예언의 악마로 몰아간다고 하자.
어차피 성과가 슬금슬금 나올 때쯤 또 한 번 가이아가 나타나 그자는 예언의 악마가 아니라며 판을 뒤집어 버릴 가능성이 농후했다.
‘이 무능한 년.’
가이아만 생각하면 열불이 터져 나오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미워도 지구를 수호하는 주신격 존재다.
만약, 혹시라도 죽게 된다면 그 파급력은 세계의 존망과 연결될 것이다.
‘외계의 신이 단체로 출입이라도 하면….’
생각할 것도 없다.
자신이 아무리 뛰어나도, 강하다고 하더라도.
지구는 파멸할 것이다.
만 년간 갈망해 온 보금자리는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후우.”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전환했다.
지금은 예언의 악마에 대해 집중할 때다.
‘예언의 악마는….’
그 정체를 알 수 없어야 한다.
추리 만화에서 검게 표시되는 악당처럼 정확한 정체도, 모습도 알 수 없어야 한다.
동시에.
‘너무 철저하게 숨겨도 안 돼.’
예언의 악마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단서 정도는 계속 던져줘야 했다.
앞서 비유한 추리 만화로 치면 결국 범인은 존재해야 한다는 것.
“…더럽게 복잡하네.”
강우는 이마를 쓸어 올렸다.
예언의 악마의 존재를 감추면서, 동시에 예언의 악마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뿌려야 한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지만 신의 눈을 피하기 위해선 지금 이게 가장 효율이 좋은 방법이다.
‘존재를 감추면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가늘게 눈을 떴다.
머릿속이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방법은 있어.’
강우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생각해둔 것은 있었다. 그것을 위해 일부러 보석을 김시훈에게 건네주기까지 했다.
“일단… 리리스랑 발록에게는 연락해 둘까.”
막상 복잡한 상황이 되니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 둘이었다.
미우나 좋으나 가장 오래 함께해 온 사이니 손발을 맞추기도 편했다.
‘에키드나랑 할키온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 둘과 손발을 맞춰본 경험은 많지 않았다.
예전 레이날드를 죽일 때 에키드나와 살짝 맞춰본 정도.
할키온 또한 과연 연기란 걸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순 없었다.
무대를 꾸며줄 조연이 필요했다.
‘일단 그럼 발자하크랑 할키온, 에키드나에게도 연락해 둘까.’
한설아가 내심 걸렸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진실에 대해 아는 존재가 적을수록 좋았다.
한설아는 다른 사람과 달리 그와 영혼이 이어진 권속조차 아니었으니 진실을 숨기는 게 맞다.
강우는 몸을 일으켰다.
‘지금 당장 해야 할 건.’
연극을 위해선 그에 걸맞은 무대가 필요한 법.
언제 김시훈이 보석을 사용할지 모르는 이상 무대를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것은 효율이 좋지 않다.
다행히 그에게는 전에 한 번 사용한 적절한 무대가 있었다.
그는 예전에 만들어 둔 던전으로 이동했다.
-띠링.
[SS+급 던전 ‘리리스♡마왕님의 러브하우누가이름이렇게설정하래아니시바벌써만들어졌잖아’에 입장하였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머리를 움켜쥐었다.
“아, X발….”
무대부터 다시 만들어야 했다.
* * *
-쾅!!
요새를 방불케 하는 거대한 건축물.
그 안에서 포탄이 터지는 듯한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드득.
김시훈이 내려찍은 테이블이 반으로 쪼개져 갈라졌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김시훈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샤르기엘을 노려보았다.
샤르기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사는 이번 구출 작전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