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76)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77화
내 방식대로 (2)
“네, 네놈….”
샤르기엘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한설아라는 여인의 반응을 보면 이제까지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게 느껴졌다.
강압적으로 나가기는 했다고 하나 오강우라는 인간을 위해서라면 희생을 받아들이겠다고 스스로 말했으니까.
‘그런데.’
처음에 연인이니 뭐니 지껄이더니 본색을 드러낸 이후 자신의 연인을 인질로 삼아버리다니.
뿜어내는 분위기와 살기를 보면 허투루 말하는 것조차 아닌 것 같다.
그는,
진심으로 저 여인을 죽이려 하고 있다.
샤르기엘은 전율했다.
‘이런 사악한!’
치가 떨렸다.
악마라는 종족이 으레 그렇지만, 이 정도로 비열하고 사악한 쓰레기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하다못해 그 악신 루시퍼마저 사랑하는 연인은 건드리지 않았거늘!’
저 오강우라는 악마에게는 선이 없었다.
정신 나간 광인(狂人)이요, 악마보다 더한 악마였다.
세상 모든 것을 손바닥 위에 놓고 조종하는 냉혈한이다.
“크읏….”
“왜, 거짓말 같아?”
강우는 비릿하게 웃었다.
어딘가 몽롱한 표정으로 서있는 한설아의 팔을 잡아끌어 안았다.
“조금만 맞춰줘.”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무, 무슨 짓을 할 셈이냐!!”
샤르기엘이 다급히 외쳤다.
강우는 혀를 내밀어 한설아의 뺨을 핥았다.
“아니, 생각해보니 소멸시키는 걸로는 좀 부족할 것 같아서. 이참에 색다른 시도를 해보는 건 어떨까?”
“뭐, 뭐라고?”
“생각해봐, 궁금하지 않아?”
손을 뻗어 한설아의 풍만한 가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최대한 비열한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천신이라는 세라핌이 악마의 아이를 잉태하면 어떻게 될지 말이야. 응?”
“이, 이런 미친…!”
샤르기엘의 동공이 커졌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토악질이 쏟아질 것 같았다.
아직 세라핌의 영혼이 깨어난 것은 아니지만, 분명 저 여인의 육체 안에는 세라핌의 영혼이 잠들어 있었다.
즉, 저 여인이 아이를 잉태한다면….
“아, 아아.”
너무나 아득한 절망에 샤르기엘은 차마 말조차 잇지 못했다.
강우는 슬쩍 웃으며 한설아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앗….”
한설아의 뺨이 붉어졌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붕붕 저었다.
“가, 강우 씨도 차암.”
‘응?’
“이, 이런 곳에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아니, 저기요? 임자?’
화끈.
한설아는 뺨에 손을 올린 채 몰라몰라, 하며 방방 뛰었다.
강우의 표정에 다급함이 서렸다.
‘씨바, 뭐야 이거.’
한설아가 전혀 협조해 주지 않는다.
아니, 분명 지금 상황이 당황스러울 거란 건 이해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설아가 이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조, 좋아요.”
‘뭐가 좋은데요.’
아무리 봐도 협조해줄 생각이 없다.
강우는 가슴 위에 올린 손을 떼어내 그녀의 입을 막았다.
왠지 모르겠지만 열기를 띈 숨이 손가락을 간질인다.
‘씨바, 설마 눈치 깐 건 아니겠지.’
불안불안한 눈빛으로 샤르기엘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그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갈등에 잠겨 있었다.
강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 어떻게 할래?”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샤르기엘이 고개를 떨궜다.
“약속, 해라.”
씹어뱉듯 말을 이었다.
“절대 세라핌 님에게는 손을 대지 않겠다고.”
“흐응~ 글쎄. 어떻게 할까? 가만히 놔두긴 너무 예쁜 것 같은데 말이야.”
“네노옴!!”
“하하하하! 알았어. 그렇게 화내지 마. 약속할 게. 아, 못 믿을 수 있겠지만 난 적어도 약속한 말은 꼭 지킨다고?”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질끈 눈을 감은 샤르기엘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묻고 싶은 게… 뭐냐.”
‘그렇지.’
강우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지었다.
패배 선언이 떨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반전’에 필요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
“일단, 라파엘은 이 사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그, 그분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네 정체에 대해서도 짐작하고 계시지.”
샤르기엘이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강우는 피식 웃었다.
떨리는 시선과 손. 불안에 찬 목소리. 딱딱 이가 부딪히는 소리.
‘거 참.’
속아주고 싶어도 못 속아주겠네.
-우드득!!
“아아아아악!!”
강우는 샤르기엘의 날개를 손으로 잡았다. 발로 그의 머리를 짓누르며 팔을 당겼다.
섬뜩한 파골음(破骨音)과 함께 날개가 뜯겨졌다.
새하얀 깃털이 눈처럼 쏟아졌다.
“샤르기엘.”
밝게 빛나는 은발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고개를 가까이 기울인다.
“내가 아까 약속한 말은 잘 지킨다고 했지? 그런데 정작 네가 약속을 안 지키려고 하네? 응? 이거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크윽, 으, 어.”
샤르기엘의 몸이 덜덜 떨린다.
전신을 헤집는 끔찍한 통증에 파랗게 입술이 질렸다.
그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그분은… 현재 빛의 품에서 상처를 치료 중에 계신다. 이번 일은 내 독단으로 한 일이다.”
“좋아. 그렇게 나와야지. 근데 빛의 품은 또 뭐야?”
“성력으로 채워진 관(罐)이다. 한 번 들어가면 빠르게 상처를 치료할 수 있지만….”
“외부와의 연락은 차단된다는 거군.”
“…그렇다.”
샤르기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핥았다.
“그럼 그때 나랑 만난 이후로 계속 치료만 하고 있었다는 거야?”
“…그렇다.”
“샤르기엘, 내가 아까 뭐라고 말했지?”
“크읏…!”
샤르기엘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는 입술을 짓씹으며 말을 이었다.
“연구를… 하고 계셨다.”
“연구?”
“라키엘이 타락한 이유에 대해 자료를 조사하셨다. 마신 바울리가 무슨 방법으로 그를 유혹했는지… 라키엘이 다른 천사를 타락시켰을 때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와 같은 것들을.”
“연구라….”
강우의 눈이 빛났다.
어느 정도 계획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엎질러진 물을, 담을 방법이 떠올랐다.
“우리엘이 지구에 오는 건 언제쯤이지?”
“그, 그건 나도 모른다.”
샤르기엘이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강우는 천사들의 내부 사정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더했다.
하지만 라파엘의 오른팔인 샤르기엘조차 천사의 내부 사정에 대해 아는 바는 많지 않았다.
“뭐, 그래도 들은 만큼은 들었어.”
강우는 짙게 웃었다.
아직 확신할 수 있는 단계도, 계획이 완벽하게 정립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은 잡을 수 있었다.
진짜 전쟁까지 생각하고 판을 뒤집어엎은 것치고는 눈부신 성과.
“…그럼 약속은.”
샤르기엘이 떨리는 눈빛으로 한설아를 바라보았다.
강우가 그의 어깨를 짚었다.
“걱정하지 마, 인마. 아이 셋 낳고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 테니까.”
“야, 약속과는 다르지 않은가!!”
샤르기엘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그는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비틀었다.
“네노오옴!! 그 더러운 물건으로 감히 세라핌 님을 능욕하려 하느냐!!”
“아니 이 개새… 안 더러워 새끼야. 혹시 몰라서 매일매일 박박 씻고 자고 있다고.”
아직까지 성과는 없지만.
뒷말을 감추며 강우는 표정을 구겼다.
그때였다.
“마, 맞아요! 더럽지 않아요! 전에 봤는걸요!”
“어…?”
한설아의 외침.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아, 아! 그, 그게… 보, 본 게 아니라. 그, 그게!”
한설아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는지 다급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대체 언제….”
“마, 말이 잘 못 나왔네요. 잊어주세요.”
“아니….”
“그, 그때 너무 곤히 잠든 강우 씨가 잘 못 한 거예요. 그, 그렇죠? 강우 씨도 그렇게 생각하죠?”
“아뇨.”
“가, 같이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있는 거잖아요. 그, 그렇지. 사고! 사고였어요!”
“자는 도중에 옷을 들춘 게?”
“그, 그그그그그럼요! 불가항력이었어요!”
한설아가 맹렬한 기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샤르기엘은 벌어진 콩트에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대체 이게 무슨 개 같은 일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어, 음.”
강우 또한 난처한 건 마찬가지.
기껏 분위기 잡고 있던 것이 송두리째 날아간 기분이었다.
‘일단 설아한테 절대 연기는 시키면 안 되는 건 알겠다.’
걸어 다니는 폭탄이나 다름없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가이아가 그리웠다.
“미안하다.”
샤르기엘을 향해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래도 좀 멋진 최후를 맞이하게 해주려고 했는데.”
언젠가 네놈에게 빛의 심판이 떨어질 것이다! 등의 대사로 그럴싸한 마무리를 짓고 싶었는데,
뭔가 어긋나버렸다.
강우는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샤르기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잘 가라, 인마. 잊지 않을게.”
“아니… 대체 뭐가 어떻게….”
콰득.
어깨를 치던 손이 샤르기엘의 가슴을 꿰뚫었다.
펄떡펄떡 뛰는 심장에 손에 쥐어졌다.
퍼석. 손에 쥔 심장을 터트렸다.
“후우.”
강우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통신용 수정 구슬을 들어 올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마스터.
“발자하크. 언데드 끌고 와서 여기 천사들 시체 좀 수거해.”
짧게 명령을 내린 후 통신을 끊었다.
“…….”
한설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주변의 참사를 둘러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강우 씨….”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표정.
그리고 그녀가 알고 있던 강우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당황한 눈빛이었다.
강우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덤덤히 말했다.
“일단 여기 있다가 발자하크 오면 같이 돌아가. 알았지?”
“가, 강우 씨는!”
“나는 따로 할 일이 있어서 그쪽으로 먼저 가봐야 할 게.”
“…….”
“알고 있어. 지금 상황이 이해도 안 되고, 당황스럽기도 하겠지.”
처음으로 가면을 벗어던진 강우의 민낯을 보는 것이다.
당황스럽지 않을 리가 없다.
“…전에 나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고 했지.”
“아, 예! 더, 더 알고 싶어요.”
“이번 일이 끝나면 알려 줄 게. 그러니까 일단 지금은 여기 있다가 발자하크랑 돌아가.”
“…….”
한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는 그녀를 내버려 둔 채, 재빨리 수호의 전당으로 향하는 게이트를 열었다.
‘시간 싸움이다.’
이미 뒤집어엎어진 판을 되돌리기 위해선, 그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 * *
“진짜 병력이란 병력은 다 긁어모아서 온 것 같네.”
강우는 휑하니 빈 요새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아프리카 쪽에 구축한 천사의 요새에는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도, 내부를 돌아다니는 순찰병도 보이지 않았다.
“쯧.”
가볍게 혀를 차며 은신의 권능을 사용했다.
발을 박차고 요새의 내부로 들어갔다.
강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가늘게 눈을 떴다. 주시자의 권능을 활성화시켰다.
‘빛의 품에 들어갔다는 라파엘도 찾고 싶지만….’
그보다 먼저 찾아야 할 것이 있었다.
강우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라파엘의 연구실이었다.
그곳에는 무수한 책들이 쌓여 있었다.
짧은 감탄사가 흘렀다.
“이게 모두 라키엘에 관한 자료야?”
시간 자체가 길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연구는 하지 못했을 거라고 추측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자료들이 모여 있었다.
강우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라파엘의 수기(手記)를 읽었다.
그곳엔 라키엘이 왜 타락했는지에 대한 연구의 진행 상황이 날짜에 따라 서술되어 있었다.
“…….”
눈이 가늘어졌다.
‘이거….’
입가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그때였다.
-우우웅.
테이블 위에 올려진 새하얀 수정 구슬이 빛났다.
[야! 라파엘!! 나 우리엘인데, 왜 이렇게 연락을 안 받는 거야?]맑고 낭랑한 소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히히, 뭐 사탄에게 털렸다더니 진짜 다친 거야? 되게 궁금하네. 모습이라도 좀 보여줘 봐!]“…….”
강우는 혼자 떠들기 시작한 우리엘의 목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여하튼, 이쪽 일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으니 일주일 후에 게이트가 활성화되면 바로 지구로 출발할 거야. 거긴 별일 없지?]쾌활한 그 목소리를 들으며 강우는 입술을 핥았다.
그의 눈이 음산한 빛으로 반짝였다.
‘생각해 보니 고민할 필요도 없었어.’
뒤집어엎은 판을 무슨 수로 되돌리냐니, 애초에 고민할 필요가 없던 일이다.
낄낄낄.
강우의 입가를 비집고 천박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으면 간단히 해결됐을 텐데 말이야.’
강우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말 그대로였다.
고민할 필요도,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내 방식대로.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을, 가장 잘해왔던 것을 그대로 이어갈 뿐이다.
-달칵.
우리엘의 목소리가 들린다.
강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엘, 님….”
[엥? 샤르기엘? 왜 라파엘이 아니라 네가 받는 거야?]‘샤르기엘’의 목소리가 강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죄송합… 이미… 라파엘 님은… 늦었….”
[뭐? 뭔 말이야 그게?]“라키엘이… 라파엘 님을 타락… 크윽.”
[야! 뭐, 뭐야? 뭔 말이야!!]“제, 제길! 이미 이곳도…. 쿨럭! 우리엘, 님… 어서 도망….”
-삐익.
통신이 끊겼다.
강우의 입가가 비틀어 올라갔다.
“자.”
이제.
“무대를 준비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