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8)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9화
라면사리까지 넣어놓고(1)
강우는 경계어린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싼 플레이어들을 노려보았다.
화랑부대의 선두를 이끄는 백화연이라는 여인은 딱 보기에도 보통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맹시의 권능을 사용해 펜스를 넘은 강우를 충분히 봤을 수도 있는 노릇.
“그다지 복잡한 검문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라. 지금 수사망에 오른 플레이어들이 있는지만 간단하게 조사하고 가겠다.”
백화연은 담담한 말투로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부대원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들은 깍듯한 자세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플레이어들을 향해 다가왔다.
‘다행히 보지는 못한 것 같네.’
강우는 복잡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일이 별탈 없이 넘어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펜스를 넘는 모습은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나저나 카오 플레이어라.’
자연스럽게 그의 머릿속에 안드라스 길드에서 있었던 사건이 떠올랐다.
플레이어를 ‘제물’로 바치는 정신 나간 악마숭배자들.
‘움직이고 있는 건가.’
아직 확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플레이어를 산 제물로 바치는 ‘의식’이라는 것을 반복하고 있는 이상 결국 표면에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 플레이어 자격증을 보여주기 바란다.”
백화연이라고 불린 여인은 그녀의 부하들과 함께 직접 움직여 플레이어들의 자격증 검사를 도왔다.
강우에게 다가온 그녀가 늠름한 미소와 함께 한 손을 내밀었다.
‘대장부 같은 여자군.’
강우는 그녀에게 플레이어 자격증을 내밀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직접 움직여서 검사하시네요.”
“부대원들에게만 일을 맡긴 채로는 단장의 위신이 서지 않지.”
“훌륭한 마음가짐이십니다.”
가볍게 말문을 튼 강우는 침착하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요즘 카오 플레이어들이 많은 가요?”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불시검문도 하는 거고.”
“음. 몬스터만 잡아도 먹고 살기는 충분할 텐데 돈 때문에 사람까지 죽인다니, 무섭네요.”
“…그렇지.”
그의 말에 백화연은 살짝 몸을 움찔거렸다.
강우는 그녀가 보인 찰나의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카오 플레이어가 많다는 것에 반응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반응한 것은 카오 플레이어들이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는 부분.
‘돈이 목적이 아니란 걸 알고 있군.’
화랑부대의 수사망은 어쩌면 악마숭배자들의 의식에까지 손을 뻗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조사 중이신 카오 플레이어가 누군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저도 한 명의 플레이어로서 우연히 마주친다면 꼭 제보하겠습니다.”
“제의는 고마우나 아쉽게도 비밀 수사라서 말일세. 나중에 공개수사로 전환된다면 꼭 협조 부탁하지.”
“아, 그렇군요.”
“요즘 보기 드문 정의로운 청년이로군. 마음에 들어.”
백화연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내민 플레이어 자격증을 내려다보았다.
“어제 C급으로 올라선 플레이어로군. C급 게이트에 오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한동안은 D급 게이트에서 좀 더 레벨을 올리고 오는 게 더 안전할 걸세. 페널티를 좀 받지만 25레벨까지는 D급에서도 경험치를 얻을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오강우라… 자네 같은 플레이어가 많아지면 좋겠군.”
그녀는 강우에게 자격증을 돌려주고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그녀의 말에 강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 같은 놈이 많아지면 좀 곤란할걸.’
일반적인 도덕적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강우는 선인보다는 악인에 가까운 인간이었다.
백화연과의 대화를 마친 강우는 다른 플레이어를 조사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비밀 수사라.’
과연 그 수사망에 걸린 대상이 조덕현인지 아니면 다른 악마숭배자인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한눈에 보더라도 보통 경지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는 그녀에게 공포의 권능 같은 지배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은 일단 정부 측에서도 악마숭배자를 조사하기 시작했다는 걸 알았다는 것만으로 만족할까.’
그에게 완전히 굴복한 조덕현도 지금 밤낮없이 길드원들을 굴려 다른 악마숭배자의 정보를 찾고 있었다.
여기서는 급하게 움직이는 것보다 한 걸음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돌아갈까.”
강우는 화랑부대를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 * *
보스 몬스터를 잡고 난 이후 며칠이 지났다.
꾸준히 C급 게이트에서 사냥을 통해 힘을 기르던 강우는 한설아가 기초교육 과정을 완전히 끝내고 사냥을 나설 준비를 한다는 말에 태수를 불렀다.
그의 전화에 순식간에 한설아의 집 근처 카페에 도착한 태수는 특유의 서글서글한 태도로 한설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이고~ 반갑소. 아씨가 형님이 말씀하던 힐러요?”
“아, 예. 반갑습니다.”
“햐~ 참 곱게도 생기셨네. 멀리서 봤을 때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소!”
“가, 감사합니다.”
한설아는 2미터에 가까운 우락부락한 거한이 눈을 반짝이며 다가오자 부담스럽다는 듯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슬쩍 강우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본 태수는 히죽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이거 두 사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형님과는 어떤 사이쇼?”
“아, 그, 그건….”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강우는 주문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선 태수, 너는 설아 씨를 데리고 D급 게이트에서 사냥해 줬으면 한다.”
“물론이오. B급 특성을 가진 힐러인데 오히려 제가 부탁하고 싶은 일이지. 형수님의 특성은 치료만 가능한 거요?”
“혀, 형수님이라니….”
갑작스러운 태수의 호칭에 한설아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태수는 부끄러워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껄껄껄. 얼굴에 다 적혀 있는데 뭘 부끄러워하쇼. 그보다 특성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려줄 수 있겠소?”
“끄응…. 우선은 빛의 축복이라는 특성이에요. 치료도 가능하지만 그것보다는 근력이나 체력, 민첩을 올려주는 버프 기술도 사용할 수 있어요.”
“오오오! 그럼 힐이랑 버프랑 동시에 가능한 거요?”
“예. 조금이지만 공격 스킬도 사용 가능해요.”
“…대단하구만.”
태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 탄성을 흘렸다.
치료와 버프가 동시에 가능하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었다.
버퍼 계열이라는, 파티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는 계륵 같은 역할을 그녀 혼자서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니까.
“버프까지 가능하다면 두말할 것도 없소. 형수님 정도면 한울 길드에서도 그냥 바로 받아줄 거요.”
“하하. 고마워요. 하지만 지금은 딱히 길드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네요.”
“껄껄. 사실 나도 그렇소. 난 앞으로 형님과 함께 플레이어계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거요!”
태수는 사람 좋은 미소를 흘리며 뜨거운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크으으으!! 여윽시 크피는 으메리카노지! 안 그렇소, 형님?”
‘그거 맥주 아니야.’
구수한 발음으로 호들갑을 떠는 태수를 바라보며 강우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딜러로 생각해 둔 사람은 있어?”
힐러와 탱커만 가지고 파티가 꾸려질 리가 없었다.
강우는 태수에게 솜씨 좋은 딜러를 알아봐 달라고 며칠 전에 부탁해 두었다.
“그럼! 기가 막힌 사람으로 두 명 알아뒀소!”
“그래?”
“흐흐흐. 이 강태수가 또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알아주지 않소? 두 명 다 왜 길드에 들어가지 않는지 의아할 정도로 재능 있는 사람들이요.”
“…어떻게 알게 된 사람들인데?”
강우는 경계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중요한 것은 실력보다는 그들이 믿을 만한 플레이어인지였다.
악마숭배자들이 저레벨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움직이고 있는 이상 언제 또 같은 사건이 터질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강우의 걱정을 눈치챘는지 태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자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한창 고블린들을 잡았을 때 만났던 사람들이요. 이번에 2차 각성을 했는데, 믿을 만한 사람들이요.”
“흠….”
강우는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태수를 바라보았다.
‘믿을 수가 있어야지.’
태수는 이전 안드라스 길드원들을 같은 파티원으로 받아들인 전과가 있었다.
‘역시 직접 확인해야겠어.’
태수도 그렇지만 특히 한설아는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사람이었다.
괜한 일에 휘말리게 둘 수는 없었다.
“그 두 사람, 직접 볼 수 있어?”
“물론이요. 내일 사냥 출발하기 전에 형님에게 소개시켜 드리겠소.”
“좋아.”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설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설아 씨는 괜찮은가요?”
“강우 씨가 소개해 준 분인데 당연히 괜찮죠. 후훗. 어서 레벨을 올려서 강우 씨와 같이 다닐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설아 씨 안전이니까요.”
강우와 한설아의 눈빛이 허공에 교차했다.
두 사람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피어올랐다.
“으흐흐흐흐.”
태수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히야, 아주 깨가 떨어지다 못해 쏟아지겠소, 형님.”
“하으으.”
태수의 말에 한설아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태수는 한설아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이 실실 웃으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진짜 형님과 설아 씨랑은 어떤 관계요? 역시 사귀는 거요?”
“아, 아니에요!”
한설아는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꽤나 컸던 탓에 카페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모였다.
주변의 시선이 모인 것을 의식한 그녀는 당장에라도 터져 버릴 듯이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 사귀는 거 아니에요.”
아직은, 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듯이 덧붙인 그녀는 옆에 앉은 강우의 눈치를 살폈다.
“뭐, 라고요…?”
강우는 그녀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는 듯이 표정을 굳혔다.
마치 뒤통수를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듯한 멍한 표정.
그는 덜덜 몸을 떨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희 사귀는 거 아니었습니까?”
“…예?”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한설아는 무슨 헛소리를 햐냐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과 강우는 사귀기는커녕 그런 쪽으로 얘기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강우는 그런 그녀의 태도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매일 제게 맛있는 김치찌개를 만들어주신다고 했잖아요!”
“아뇨, 그런 말까진 한 적 없는데요.”
“라면사리까지 넣어놓고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강우 씨가 무슨 말씀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생각보다 침착한 한설아의 반박.
강우는 남자에게 배신당한 비련의 여주인공마냥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어…. 음. 그러니까.”
두 사람의 콩트 아닌 콩트를 본 태수는 난처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사귀는 거 맞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