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85)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86화
호모나 세상에 이 게이 무슨 일이야 (1)
새하얀 요새.
한때 은은한 빛으로 아름답게 빛났을 그 요새에는 정체 모를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크륵! 크르륵!”
음산한 어둠 속에서 가래가 끓는 소리가 들린다.
철벅, 철벅. 비틀거리는 발자국을 따라 핏자국이 새겨진다.
썩은 피부, 흐리멍덩한 눈두덩. 생기를 잃은 입술.
수십에 달하는 망자(亡者)가 걸어오고 있었다.
“…….”
푸른 하늘을 연상시키는 청발(靑髮)의 소년이 통로에 섰다.
굳게 입을 닫은 채, 입술을 짓씹으며 통로를 가득 채운 망자를 응시했다.
“크르르륵!!”
생자(生者)를 발견한 망자가 이빨을 드러낸다. 누렇게 변색된 이빨에서 끈적한 침이 흐른다.
투두두두!
언제 비틀거렸냐는 듯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통로를 질주한다.
청발의 소년은 팍 표정을 구기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수십에 달하는 망자가 달려들고 있지만 그 얼굴에 비치는 공포는 없었다.
“아르고·라·풀미네.”
낮은 목소리로 영창을 읊는다.
파지직. 푸른 뇌전이 튀어 올랐다. 앞으로 뻗은 손바닥에 무시무시한 뇌전이 뭉쳤다.
한 음절 한 음절, 씹어뱉듯이 외친다.
“휩 쓸 어 라!”
파지지지지지직!!
푸른 뇌전의 격류가 파도처럼 통로를 채웠다.
뇌전에 닿은 요새의 벽이 검게 타오르며 푸른 뇌전이 질주한다.
“크르르륵?!”
망자들이 당황할 틈도 없이, 푸른 격류가 그들을 휩쓸었다.
수백 수천 개의 뇌전의 격류에 휩쓸 망자의 몸이 검은 재가 되어 흩날렸다.
“…….”
단 한 방.
한 번의 마법으로 수십의 망자를 쓸어버린 소년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신과도 같은 위세를 뿜어낸 것에 비해 얼굴에 맴도는 표정은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라파엘….”
청발의 소년, 우리엘의 입에서 침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엘은 어두운 기운이 맴도는 통로에 주저앉았다.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내 손으로.’
전우를 죽였다.
수천 년을 함께한, 셀 수 없는 전장을 넘어온 친우를.
“제길, 제길….”
흐느끼는 듯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정(精)에 대한 집착.
관계에 대한 갈망이 그를 잠식했다.
‘…….’
더 이상 위험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이 본능과 갈망에 몸을 맡기고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
“크읏.”
우리엘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떨궜다.
자신의 군세들이, 충실한 부하들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까.
알 수 없었다.
“…쓸데없는 생각이지.”
무리하게 지구로 넘어오느라 산탄젤로는 막대한 자원을 소모했다.
자기 하나를 보내는 게이트를 활성화하는데도 수백에 달하는 고위 천사가 탈진으로 쓰러졌는데 모든 군세가 넘어오기까지는 최소 한 달 이상은 걸릴 것이다.
-네가 이번에 대천사의 좌(坐)를 받은 우리엘인가.
-뭐야, 넌?
-쯧, 체형이 인간과 비슷한 것을 보면… 인간의 피가 섞였나 보군.
-그래서 어쩌라고. 그건 가브리엘 그 미친년도 마찬가지 아니야?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대할 필요 없다. 너를 차별하고자 하는 얘기가 아니다. 아니, 애초에 함께 마(魔)를 멸하는 동지 사이에 차별이란 건 당치도 않지.
-…….
-라파엘이라고 한다, 꼬맹이.
-이 개자식이!
처음 만남은 아무리 포장해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
-후우. 지치는군. 괜찮나, 꼬맹이?
-닥쳐.
수많은 전장을 넘어오며, 악신(惡神)의 태동에 맞서 싸우며.
“…….”
우리엘은 질끈 눈을 감았다.
참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가늘게 떨리는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자신의 친우를 죽인, 손을.
-탁.
“여기서 무슨 궁상을 떨고 계십니까?”
“……!”
우리엘이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파지직! 푸른 뇌전이 튀어올랐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청년.
타락한 라파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속아넘어갈 뻔한 순간, 자신의 몸을 던져 그의 목숨을 지켜준 인간.
“…상처는?”
“우리엘 님의 치료 덕분에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강우는 픽 웃었다.
우리엘의 표정에 일순 안도가 스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엘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문을 텄다.
“여긴 뭐 하러 온 거야? 요새 정화랑 천사들 시체 수습은 내가 한다고 말했을 텐데?”
“…….”
“꼴에 동정하러 온 거라면 꺼져. 내가 생긴 건 이래도 너보다 적어도 백배는 더 오래 살았을 테니까.”
“실례가 아니면 나이를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인간으로 치면 3천 살 쯤 됐겠네. 정확한 건 안 세어봐서 몰라.”
강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피식 웃었다.
우리엘의 말을 무시한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의 옆에 털썩 앉았다.
우리엘이 가늘게 눈을 떴다.
“뭐 하는 짓이야?”
“몇 살인지가 중요합니까?”
“…뭐?”
“그거 아십니까? 인간의 정신적 성숙은 대부분 사춘기 시절에 이뤄진다고 합니다. 즉, 그때부터 병신의 싹이었던 인간은 나이를 몇 살을 처먹어도 병신이 된다는 거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나이와 정신적 성숙은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 고작 백 년조차 살지 못하는 인간이 뭔 소릴 하는 거야. 나는 3천 년을….”
“설령.”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
우리엘은 흠칫 몸을 떨었다.
자신을 응시하는 인간의 눈빛에,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세월(歲月)이 느껴졌다.
“만 년을 살았더라도.”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아플 땐 아픕니다. 힘들면 힘들고, 괴로우면 괴롭습니다. 감정(感情)이란 것은 물과 같습니다. 흘러가는 걸 억지로 틀어막을 수는 있어도, 흐르는 것 자체를 막을 순 없습니다.”
“…….”
“괜찮은 척 허세를 떠는 게 멋있습니까? 부모가 죽고, 친우가 죽어도 꾹 참고 억누르고 있는 것이 대단해 보입니까?”
“그건….”
“울고 싶을 땐 우는 게 좋습니다.”
“…….”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무 대화도 없이,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한 시간.
우리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그렇게 죽이 잘 맞는 놈은 아니었어.”
대꾸하지 않은 채, 가만히 얘기를 들었다.
“천사의 육체는 본능적으로 집착을 불러일으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정신이 붕괴하지 않도록, 강제적으로 무언가에 몰두하게 만들거든.”
“…….”
“라파엘의 집착은 마(魔)에 물든 존재들을 모조리 죽이는 거였지.”
“신기하네요. 모든 천사들이 그런 줄 알았는데.”
“라파엘의 권속만 그래. 악마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적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라파엘처럼 광적으로 죽이려하는 천사는 많이 없거든.”
어쨌든, 우리엘은 말을 이었다.
“맨날 싸우기도 더럽게 많이 싸우고…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혼자 적진에 뛰어드는 거 구하려고 지랄도 하고. 진짜… 진짜 개 같은 새끼였는데.”
고개를 숙였다.
투명한 눈물이 고였다.
가늘게 어깨가 떨렸다.
손을 거칠게 움켜쥐며, 흐느끼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적어도… 적어도 그렇게 죽으면 안 되는 놈이었어. 이렇게 죽기 위해 수천 년을 싸워온 놈이 아니라고….”
“…….”
강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굳게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우리엘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시바.’
겉으로 내색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머릿속은 꽤나 착잡했다.
‘괜히 찾아 왔나.’
자신의 계획으로 전우를 죽인 당사자를 자신이 직접 위로하다니.
아무리 죄책감을 신경 쓰지 않는 그라고 해도 이건 좀 견디기 힘들었다.
가만히 울고 있는 우리엘이 더 이상 보고 있기 힘들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서 좀 기다리고 계십쇼.”
“…뭐?”
강우는 답하지 않은 채 몸을 돌렸다.
넘어 온 게이트를 통해 수호의 전당으로 들어간 후, 집으로 돌아왔다.
한창 에키드나와 얘기하고 있던 한설아를 불렀다.
그리고.
“…이건 뭐야?”
“김치찌개라는 지구의 요리입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냄비를 보며 우리엘은 헛웃음을 흘렸다.
“미안하지만 나는 따로 뭘 먹을 필요가….”
“알고 있습니다.”
강우는 우리엘의 앞에 김치찌개를 내려놓고, 같이 가져온 새하얀 밥을 꺼냈다.
그릇에 밥을 나눠 담고 우리엘에게 내밀었다.
“그래도 먹을 수는 있지 않습니까?”
“…….”
“우울할 땐 뭐라도 먹어야 기분이 좀 나아집니다.”
우리엘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강우를 바라보다가 이내 픽 웃었다.
어처구니없는 지금 상황에 웃음이 흘러나온 것이다.
강우가 준 젓가락을 어설프게 잡고, 김치찌개라는 요리를 먹었다.
“…….”
별다른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뜨겁다는 것 정도가 느껴질 뿐.
강우는 그의 옆에서 함께 김치찌개를 먹으며 입을 열었다.
“천사들의 미각이 거의 퇴화됐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 왜 이런 걸 준비한 거야?”
“그래도 가만히 쭈그리고 앉아서 우는 것보다 뭘 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아까는 울고 싶을 땐 우는 게 좋다며.”
“그거랑은 다르죠. 참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강우는 가볍게 웃으며 김치찌개를 먹기 시작했다.
우리엘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그래….”
솔직히,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누군가와 이렇게 뭔갈 먹을 기회는 천사들 사이에선 없었던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좀 집중하면 맛도 느낄 수 있고.’
미각을 하도 안 써서 그렇지 아예 기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입 안에 우물거리고 정신을 집중하니 시큼한 맛과 함께 감칠맛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맛있… 네?’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감각에 우리엘은 눈을 크게 떴다.
“생각보다 괜찮… 응?”
우걱우걱.
집중해서 맛을 느끼고 있는 사이, 어느새 김치찌개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아니, 이런 씨….”
“왜 그러십니까?”
“네가 다 먹어버리면 어떡해!”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죠.”
“아니, 뭐 기분 풀어주겠다고 같이 먹자는 거 아니었어?”
“어차피 맛도 잘 못 느끼는데 먹어서 뭘 합니까.”
“야 이 개자식아!!”
우리엘이 버럭 화를 냈다. 다급히 손을 움직여 얼마 남지 않은 김치찌개를 밥에 올렸다.
‘…….’
어느새 입가에 지어진 미소를 느끼며,
우리엘은 걸신들린 듯 김치찌개를 먹는 강우의 얼굴을 응시했다.
밥에 올린 김치찌개를 입에 담았다.
입 안으로 들어온 따듯함이, 몸 전체로 퍼졌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따듯함이었다.
* * *
“여기가 시신을 모아둔 곳이군요.”
강우는 요새 밖에 정갈하게 모여 있는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타락한 라파엘에 의해 키메라로 변하고 있던 샤르기엘과 다른 천사들은 강우와 우리엘의 활약으로 구출됐다.
강우는 우리엘을 돌아보며 물었다.
“시체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 요새 정화 작업이 끝나는 대로 장(葬)을 지내줄 생각이야.”
“장(葬)이요?”
“응. 빛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화장(火葬)을 하거든.”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타이밍이 무르익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제.’
두 번째 목표를 실현할 때다.
“그렇다면 제게 맡겨 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네게 맡기라고?”
“티리온 님에게 배운 게 있거든요. 위대한 영웅의 죽음을 기리는 방법입니다. 화장과 형식 자체는 비슷합니다. 마력을 사용해 육체를 태우는 거죠.”
“…….”
우리엘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는 강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영웅신 티리온의 사도.
지구의 수호자 중 하나.
그의 마음 씀씀이와 배려에, 가슴이 찡하게 울렸다.
“그, 그래? 그럼 부탁해 볼까?”
영웅신 티리온에게 배운 방법이라면 믿을 만하리라.
티리온은 비록 하위 계(界)의 신이었지만 그 신념과 정의심은 높게 평가할 수 있었으니까.
“감사합니다.”
강우는 빙그레 웃었다.
‘그렇지!!’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
그가 샤르기엘의 장을 지내주려는 이유는 단 하나.
‘아까운 성력인데 버릴 순 없지.’
씨익 웃으며 포식의 권능을 사용했다.
물론, ‘마력’의 기운을 띄게 마기의 성질을 변환해서.
우드득. 우득.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간 황금빛 기운이 천사들의 시체를 덮었다.
-띠링.
[성력 스텟이 113으로 상승하였습니다.]기분 좋은 메시지와 함께 바닥에 놓여 있던 천사들의 시체가 가루가 되어 천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보이기만 그렇게 보일 뿐 사실은 아주 조금씩 육체가 뜯어 먹히고 있는 거였지만.
‘진실이 뭐가 중요해.’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그렇다.
진실은 중요한 적이 없다.
‘진실처럼 보이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강우는 백여 구에 달하는 시신에 모조리 포식의 권능을 사용했다.
[성력 스텟이 118로 상승했습니다.]‘역시 높아지니까 잘 안 오르네.’
어쨌든 오르기는 올랐다.
강우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꼬맹이랑 헤어져볼까.’
첫 번째 목표였던 원만한 관계를 만드는 것도 성공했으니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었다.
‘임자아아아아! 내가 갑니다!’
이 일을 끝으로 당장 급한 일은 없으니 생활이 한결 여유로워질 것이다.
강우는 히죽거리며 우리엘을 향해 몸을 돌렸다.
“잘 끝났군요.”
“고, 고마워.”
“아뇨. 짧지만 함께 싸우던 전우들이었는데요.”
“아….”
전우, 라는 말에 우리엘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강우는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
“뭐, 뭐?”
‘응?’
돌아가겠다고 하니 우리엘이 굉장히 당황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뭐야, 이 꼬맹이. 뭐가 또 문젠데.’
“아, 아니 그게….”
우리엘이 꼬물꼬물 몸을 움직이며 강우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입술을 삐쭉 내밀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버, 벌써 돌아가게…?”
“…….”
뭐?
“조, 조금 더 있다가! 아! 그렇지! 너! 요새 정화작업을 도와줘!!”
‘아니 혼자 하겠다며.’
우리엘이 종종 걸음으로 다가와 그의 팔을 잡아 당겼다.
억지로라도 보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아니, 의지가 아닌… ‘집착’에 가까운 감각.
‘뭐야 씨바.’
강우는 입을 쩍 벌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