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91)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92화
함정 카드 (1)
“이, 이 미친 새끼!”
새뮤얼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사납게 웃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자신의 손가락에 힘을 주며 짓누르려 하는 행동에서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미친놈은, 진짜 수천 명이 죽어도 눈 하나 깜빡할 놈이 아니라는 것을.
‘이놈이 검룡이 따르는 형이라고?’
이해할 수 없었다.
검룡의 성격은 남미지역 수복 작전에 직접 참여했던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한없이 착하며, 정의롭다.
곤경에 처한 이를 저버리지 않으며 사람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움직인다.
말 그대로 영웅.
소설이나 만화 속에 흔히 등장하는 전형적인 주인공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런 검룡 주변에.’
왜 이런 미친놈이 있단 말인가.
“안 눌러?”
“읏….”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새뮤얼의 몸이 덜덜 떨렸다.
오강우란 인간의 눈, 마치 무저갱(無低坑)을 들여다보는 듯한 검은 눈이 자신을 향한다.
설명할 수 없는 공포가 전신을 잠식한다.
‘이걸 누르면.’
자신은 죽는다. 비참하고, 끔찍하게.
하지만 누르지 않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와서 포기한다고 해도 이미 저지른 죄를 회피할 순 없었다.
‘망했어.’
낭떠러지의 끝에 내몰렸다.
계획은 실패했고, 돌이키기는 한창 늦었다.
입술을 짓씹었다.
‘어차피 죽는다면-.’
독한 기운이 그의 눈에 서렸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안 돼!!”
김시훈이 다급히 발을 박찼다. 그의 손이 새뮤얼이 쥔 리모컨을 향했다.
‘그래.’
새뮤얼은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그래도, 당해주는 놈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숨을 포기하면서까지 한 마지막 일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비참한 건 없었을 테니까.
‘다 뒤져라.’
새뮤얼은 망설임 없이 버튼을 눌렀다.
곧 이어질 대폭발과 참사를 머릿속에 그리며.
“…응?”
새뮤얼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뭐, 뭐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발렌시아 근처에 플레이어의 레벨 업과 마석 수급을 위해 게이트가 몇 개 있었다.
등급이 높지 않은 게이트라고는 하나 제어 장치가 화려하게 폭발하는 모습 정도는 보여야 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파지지지지직!!!
“아아아아악!!!”
아니, 일이 일어나기는 했다.
다만 새뮤얼이 생각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붉은 버튼을 누르자 강력한 전류가 그의 손을 타고 전신을 휩쓸었다.
새뮤얼의 몸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미친 듯이 사지를 떨더니, 이내 그 자리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어?”
새뮤얼을 향해 달려오던 김시훈의 몸이 굳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황망하게 손을 앞으로 내뻗은 상태.
“무, 무슨 일이….”
김시훈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진 새뮤얼에게 다가갔다.
그의 목에 검지와 중지를 가져다 대었다.
‘맥박이….’
뛰지 않는다.
새뮤얼은 리모컨에서 쏟아진 강력한 전력에 그대로 즉사했다.
새뮤얼 헤이든이 어떤 인간이었던, 그는 한 도시의 시장을 차지할 만한 강자였다.
그런 그를 죽일 수 있는 전력이라면.
‘처음부터.’
새뮤얼이 버튼을 누를 것을 상정하고 만든 장치라는 것.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뭐지.’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김시훈의 시선이 강우를 향했다.
강우는 바닥에 쓰러진 새뮤얼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싱겁다는 듯 웃었다.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 이건가.”
살인멸구(殺人滅口)라고 했나.
죽은 놈은 말이 없으니 어쩌면 가장 적절한 대처라고 할 수 있었다.
“쯧.”
강우는 다시 몸을 돌려 새뮤얼의 사무실 안에 있는 소파로 향했다.
발록이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그의 입술이 조금씩 달싹거렸다.
“흣차.”
강우는 자리에 앉았다.
김시훈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혀, 형님 이게 무슨….”
“이번 남미지역에 사용한 게이트 제어 장치를 만든 게 누군지 알아?”
“아, 아뇨.”
김시훈이 고개를 저었다.
“카드가라고 가디언즈랑 계약한 마법사야. 머리는 좀 모자랄지 모르겠지만, 실력은 확실하지.”
“아, 예. 들어본 적 있습니다.”
“그런데 폭탄 테러에 대처도 안했을 것 같아?”
“아….”
김시훈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그렇군요! 역시 형님입니다!”
그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이 그렇게 단호하게 나오신 이유가 있었군요! 하하! 제가 그런 줄도 모르고 형님을 오해했네요.”
김시훈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안도했는지 눈에는 찔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새뮤얼의 폭탄 테러를 막았다는 안도감도 있었겠지만, 강우가 수천 명의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 냉혈한이 아니었다는데서 오는 안도감이 더 컸으리라.
“정말… 정말 다행입니다.”
김시훈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
강우는 그런 그의 김시훈의 모습을 바라보며 쯧, 혀를 찼다.
‘사실.’
폭탄 테러에 대한 대처 따위는 한 적 없었다.
그냥 되는 대로 말한 것뿐이다.
리모컨의 버튼을 눌렀는데도 제어 장치가 폭발하지 않은 것은 그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물며 새뮤얼이 죽을 줄이야. 완전히 예상 외였다.
알았다면 재빠르게 재생의 권능을 사용해 즉사하지 못하도록 막았을 것이다.
‘이걸 좋다고 해야 하나, 아깝다고 해야 하나.’
김시훈에게 적당한 변명을 둘러댈 수 있다는 점에선 좋았다.
김시훈은 아직 그의 본 모습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으니까.
하지만.
‘차라리 터지길 바랐는데 말이지.’
안도에 차 눈물을 흘리고 있는 김시훈을 바라보았다.
김시훈은 천성이 착하다. 정의롭고, 상냥하다.
이제까지 전투를 겪어오며 적에게는 거침없이 검을 휘두를 정도로는 만들어놨으나,
‘아직 힘없는 일반인에 대해서는 기를 쓰고 지키려고 한단 말이지.’
적어도 자신의 기준에선, 마음에 들지 않다.
구천지옥에서보다 강해진 자신조차 손에 쥔 것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까지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친다니.
병신 같은 짓도 정도가 있다.
이번 일로 어느 정도는 자극을 받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필요 없는 것을 가차 없이 버릴 용기를, 얻기를 바랐다.
‘뭐, 그래도.’
이거야 말로 김시훈이란 인간이리라.
그의 본질이요, 본성이다.
그것을 부정할 생각도, 무리해서 바꿀 생각도 없다.
그는 선하다.
김시훈이 살아온 처절했던 삶을 생각하면 그럼에도 그가 선할 수 있다는 것은 조롱의 대상이 아닌 존경과 존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너는 그대로 살아라.’
그렇게 살아도 괜찮도록 자신이 만들어주겠다.
“그나저나 이해할 수 없네요. 새뮤얼은 대체 왜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통할 거라고 생각했나 보지. 제어 장치에 폭탄 테러 방비가 있는 건 일부로 숨겨뒀거든.”
“아, 만약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더라면….”
“그걸 우회하는 방법을 사용할 테니까.”
거짓말이다.
제어 장치에는 폭탄 테러를 방비하는 기능 따위는 없다.
“그렇군요.”
김시훈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 갑자기 새뮤얼이 죽은 것도….”
“내가 죽인 거야. 마음에 안 들어서.”
거짓말이다.
새뮤얼을 죽인 건 그 리모컨 안에 숨겨진 함정 장치였다.
“하하하. 형님도 가차 없으시네요.”
“수천 명의 사람을 죽이려고 했던 쓰레기 자식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거짓말이다.
자신과 관계없는 사람이라면 수천 명을 죽이건 말건 무슨 상관인가.
“후우, 그래도 아무 일 없이 끝나서 다행입니다.”
“그래.”
“저는 그럼 바로 발렌시아의 일을 그레이스 씨에게 보고하러 가겠습니다. 원주민들을 학대한 놈들을 싸그리 잡아들여서 패악질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습니다.”
김시훈이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에 담긴 살기를 느끼며 강우는 피식 웃었다.
“그래, 난 새뮤얼의 집무실에 이 일과 연루된 자가 또 있는지 조사하고 갈 테니까 먼저 수호의 전당으로 가서 상황을 보고해 줘.”
“예, 형님.”
김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일으킨 그의 눈빛에 강렬한 의지가 빛났다.
‘새끼들 고생 좀 하겠네.’
김시훈의 모습을 보니 발렌시아에 있었던 가디언즈는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 같았다.
강우는 옆자리에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발록 너는?”
“저도 리리스와 합류하러 가겠습니다. 거의 다 도착했다고 하더군요.”
“그래, 그럼 먼저 가.”
발록과 김시훈이 밖으로 나갔다.
방 안에는 검게 탄 새뮤얼의 시체와 적막만이 남았다.
“자, 그럼 시작하기 전에.”
강우는 새뮤얼의 사무실 선반을 바라봤다.
고급스러운 양주가 가득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좋아, 분위기 좀 간지나게 잡아보자.’
맥주와 소주 외에는 마셔본 적 없는 싸구려 입맛이지만, 역시 이런 분위기에는 양주가 제격이다.
대충 아무 양주나 꺼내 온 강우는 술잔에 졸졸 양주를 따랐다.
비싼 양주인지 향이 확 올라왔다.
“좋아.”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힘껏 분위기를 잡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존나 써, 씨발!”
푸훕. 입 안에 머금은 양주를 뿜어냈다.
* * *
“푸흡, 푸하하하하!!”
어두운 방 안.
고급스러운 의자에 앉은 사내가 폭소를 터트렸다.
그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낄낄 웃었다.
“아, 설마 이 정도로 잘될 줄이야.”
여유에 찬 태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내는 통신용 수정 구슬에 찍힌 영상을 바라보았다.
이 영상이야 말로 이번 계획의 목적이자, 값진 결과물이었다.
-누르라고, 이 씹새끼야.
“캬하! 명대사야, 명대사!!”
손뼉을 치며 웃었다.
그는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 아니 계획했던 것 이상으로 이뤄졌다.
“설마 저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솔직히 새뮤얼이 탈출하도록 멍청하게 내버려 둘까 봐 조마조마했었다.
‘뭐, 그건 그것대로 써먹을 만 했겠지만.’
가디언즈 내부에 테러범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디언즈를 크게 흔들 수 있었다.
애초에 이번 계획의 가장 큰 목적은 ‘가디언즈의 무능력을 증명하는’ 거였으니까.
‘이번 일로 무능력을 증명하지는 못하겠지만.’
수천 명의 사람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말을 육성으로 내뱉었으니, 무능력한 것보다 오히려 임팩트가 강하다.
‘이 영상이 이제 퍼지면.’
가디언즈는 대중에게 완전히 버림받게 될 것이다.
인류의 수호자라는 역겨운 타이틀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푸하하하하하!!”
사내는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오강우라는 멍청한 놈이 나서준 덕분에 일이 훨씬 수월하게 풀렸다.
“이제 미국 쪽에 성공했다고 연락만 하면 되겠구만.”
사내는 낄낄 웃으며 영상 데이터를 USB에 옮겨 담았다.
그때였다.
-존나 써, 씨발!
“응?”
영상을 통해 양주를 뿜어대고 있는 강우의 모습이 보였다.
“쯧쯧, 저게 얼마나 비싼 술인데.”
사내는 혀를 찼다.
“하긴, 고아 출신이라는데 뭐 술맛을 알겠나.”
조사해뒀던 오강우의 기록을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래도 이것도 쓸 만하겠네. 죽은 테러범이 가지고 있던 술을 처마시는 놈이라니. 사람들이 알면 아주 좋아하겠어.”
다시 의자를 끌어 영상에 집중했다.
-후우.
영상 속 강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씨발, 멋 부리려다가 개쪽만 당했잖아.
테이블 위에 은밀히 설치해 둔 카메라가 있는 방향을 향해.
정확히,
고개를 돌렸다.
“…어?”
-야 이거 편집 안 되냐? 다시 한 번 시도해 볼게. 이번에는 진짜 잘할 수 있어.
“뭐, 뭐야.”
영상으로 보이는 방 안에는 분명 아무도 없었다.
“누, 누구한테 말하는 거야.”
사내의 피부에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이쪽을 바라보는 강우의 입가가 비틀어 올라갔다.
이루어 설명할 수 없는 섬뜩한 감각이 사내의 등골을 타고 전신에 퍼졌다.
‘뭐야.’
무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야, 듣고 있어? 여기 뭐 통신 구슬 없냐. 아, 여기 있네.
우우우웅.
사내의 테이블 위에 올려진 통신용 수정 구슬이 진동했다.
새뮤얼과 대화할 때 사용한 통신 구슬이었다.
“어, 어?”
자기도 모르게, 통신 구슬에 손을 올렸다.
[왜? 다 네 생각대로 되는 줄 알았어?]통신 구슬을 통해 강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게 내 전문 분야인데 내가 당하겠냐, 이 빡대가리 새끼야.]“뭐, 뭐야, 씨발.”
덜덜덜.
사내의 몸이 떨렸다.
그때.
-찔꺼억.
무언가 끈적거리는 점액질이 움직이는 소리가, 그의 뒤에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