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4화
낯선 지구, 낯익은 풍경(1)
“저… 그게 무슨….”
한설아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프러포즈에 분노해야 할지,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붙잡은 강우는 고개를 저으며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놓았다.
‘정신 차려야지.’
가까스로 만난 인간이었다.
처음부터 미친놈으로 낙인찍히고 싶지는 않았다.
“제 이름은 오강우라고 합니다. 한설아 씨라고 했나요? 다치신 곳은 괜찮으십니까?”
“아, 네. 큰 상처는 아니…. 읏!”
그녀는 다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짧은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쓰러졌다.
그녀가 바닥에 쓰러지며 주머니에서 네모난 물건 하나가 굴러 떨어졌다.
‘스마트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본 강우의 눈이 반짝였다.
한설아의 바지주머니에서 떨어진 물건은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스마트폰이 확실했다.
‘지구가… 맞는 건가?’
스마트폰에 한설아라는 한국적인 이름.
그리고 무엇보다.
‘대화가 통하잖아.’
자신은 악마들의 언어가 아닌, 지옥에 오기 전 사용했던 한국어로 그녀와 대화하고 있었다.
언어가 통한다는 의미는 이곳이 지구이며, 그녀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까먹지 않게 계속 사용해 둬서 다행이네.’
자신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국어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부하들에게 악마어의 사용을 금지하고 한국어를 가르쳐 일상적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괜찮으십니까?”
-찌익.
강우는 그가 입고 있는 옷을 찢어 그녀의 다리에 묶어주었다.
의복이라는 개념이 희미한 지옥에서 어렵게 구한 천으로 만든 옷이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한설아는 망설임 없이 옷을 찢어 다리에 묶어준 그를 올려다보며 살짝 뺨을 붉혔다.
처음에 결혼을 하자니 아이는 셋이 좋다느니 이상한 소리를 해서 살짝 경계하고 있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이렇게 신경 써주셔서 고마워요.”
그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지금쯤 고블린 무리에 난자당했을 것이다.
더 최악의 경우 고블린들에게 끌려가 몹쓸 짓을 당했을 수도 있었다.
‘몬스터 중에는 인간에게 욕망을 품고 있는 개체도 있다고 들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강우는 그녀에게 있어 생명의 은인 이상의 존재였다.
그녀는 잠시나마 경계심을 품었던 스스로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고마운 사람.’
한설아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플레이어로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세계에 대해서는 평소에도 익히 들어왔다.
이득을 위해서라면 같은 파티원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배반할 수 있는 냉혹한 존재.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강우처럼 비명을 듣고 달려와서 도와줄 정도로 이타심 있는 플레이어는 드문 것이 사실이었다.
“무리하지 말고 앉아 계세요.”
“네.”
강우는 그녀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를 바라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녀의 호감을 얻는다는 것은 상당히, 아니, 매우 가치 있는 일이었다.
한설아의 존재는 강우에게 있어서 꽤나 중요했다.
지옥에서 귀환한 후 처음 만난 사람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정보였다.
‘대체 지구에서 왜 저런 괴물들이 나타나고 있는 거지.’
그가 알던 지구와 지금 모습 사이에 괴리가 너무 심했다.
그녀는 그런 괴리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는 소중한 존재였다.
‘우선은.’
강우는 그녀가 떨어뜨린 스마트폰으로 몸을 돌렸다. 그는 스마트폰을 들어 자연스럽게 홈 버튼을 눌렀다.
홈 버튼을 누르자 그가 가장 알고 싶었던 정보 중 하나가 화면에 떠올랐다.
[2023년 5월 22일 오후 3시 34분]‘2023년?’
그가 지옥으로 떨어진 것은 분명 2018년. 지금은 그로부터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미래라는 의미였다.
‘시간 조정이 실패한 건 아니야.’
크게 10년, 20년의 오차도 각오하고 있었던 강우였다.
5년이 흐른 미래에 떨어졌다는 사실은 오히려 시간 조정이 그의 예상보다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고작 5년이 흘렀다고 하기에 지구는 너무나도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5년 만에 지구에 이런 괴물들이 나타났다고?’
대체 지난 5년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숲속에 괴물들이 태연하게 돌아다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보가 부족해.’
당장 상황 파악을 하기에는 가지고 있는 정보가 부족했다. 강우는 한설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기, 떨어진 스마트폰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보다 설아 씨는 왜 이런 곳에 계셨던 거죠?”
“으….”
그의 말을 들은 한설아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금 사정이 있어서 솔로로 게이트 사냥을 했어요. 하하. 이제 갓 플레이어로 각성했는데 E급 게이트를 솔로로 사냥하다니… 제가 미련했죠.”
그녀는 자책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강우의 눈이 반짝였다.
‘게이트, 플레이어.’
게이트라는 것은 지금 그들이 있는 장소를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플레이어로 각성했다는 건….’
강우는 방금 보았던 상태창을 떠올렸다.
상태창에는 분명 ‘플레이어명’이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레벨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강우는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얼마 전에 각성해서 이제 레벨 6이에요. 그런데 강우 씨 같은 고레벨 플레이어가 E급 게이트에는 무슨 일이세요?”
그녀는 레벨 3에 불과한 강우를 자연스럽게 고레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가.’
레벨 6인 그녀가 고전을 면치 못했던 고블린 무리를 일방적으로 학살한 그였다.
그녀가 말하는 레벨이라는 것이 플레이어가 가진 힘의 척도를 나타낸다면, 그를 고레벨로 착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따로 사정이 있어서 왔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대답을 회피하는 그를 보며 한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레벨 플레이어가 하급 게이트에 들어오는 일은 자주 없는 일이었지만 그가 이유를 숨기려는 이상 그걸 캐물을 권리는 없었다.
“읏….”
“일어나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강우 씨 덕분에 이제 좀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아, 아뇨. 괜찮아요. 더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사양하는 것만이 미덕은 아닙니다.”
강우는 비틀거리는 그녀의 한쪽 팔을 잡았다.
한설아는 희미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어느 쪽으로 가면 되죠?”
“이, 이쪽이요.”
부끄러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그녀는 왜 고레벨인 강우가 게이트 입구로 가는 방향도 모를까, 라는 당연한 의문조차 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손을 가리켰다.
“가죠.”
강우는 그녀를 부축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별 의심을 하지는 않는군.’
어차피 자신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 그녀가 알 수 있을 리가 없겠지만 되도록 수상하게 보이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았다.
‘미친놈 취급 받을 테니까.’
만 년 만에 만난, 심지어 아름다우기까지 한 여인에게 정신 나간 놈으로 생각되고 싶지는 않았다.
성공적인 귀환의 첫 단추는 지금 이 지구의 사회에 어색하지 않게 녹아드는 것.
강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절뚝거리며 걷는 그녀와의 페이스를 자연스럽게 맞췄다.
“여긴….”
“입구에 도착했네요.”
-우우우우웅.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가니 하얀색 게이트가 보였다.
그 크기는 대략 30여 미터 정도.
강우가 지옥에서 넘어왔던 칠흑색의 게이트에 비해서 훨씬 더 큰 크기를 가지고 있는 게이트였다.
‘그렇다면 여긴 완전히 지구는 아니었던 모양이군.’
게이트란 곳을 통해 들어온 장소가 이곳이라면, 방금 만난 녹색 괴물들이 살고 있는 이 숲은 지구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지옥… 같은 곳인가.’
게이트를 통해 들어온 다른 차원이라는 점에서는 지옥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장소였다.
‘이 게이트는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 거지.’
강우는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약간 탁한 빛을 띠고 있는 흰색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일곱 악마 대공의 무구처럼 공간 균열을 만들어 버리는 강력한 무구들이 보이지 않았다.
“강우 씨?”
“아, 예. 어서 나가죠.”
설아의 부름에 정신을 차린 강우는 그녀를 부축한 채 게이트에 발을 디뎠다.
차원과 차원 사이를 이동하는, 기묘한 감각과 함께 그의 몸이 하얀색 게이트를 지나쳤다.
-웅성웅성.
“E급 게이트 고블린 사냥 파티 모집합니다!”
“탱커! 어디 탱커 없나요?!”
“저… 도적 계열인데 파티 참여 괜찮을까요?”
“아, 죄송한데 도적 계열은 사절입니다.”
게이트 밖으로 나가니 여러 사람들이 모여 소리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시장에 온 것 같은 소란스러움이었다.
“아, 아아.”
강우는 게이트 앞에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인간.
그토록 갈망하던 인간이 사방에 존재했다.
‘진짜 돌아온 거야….’
그가 알고 있던 지구와는 다른, 낮선 지구였지만 보이는 풍경만큼은 낯익었다.
이제야 자신이 지구로 귀환했다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희미하게 남아 있던 불안이 사라지며 활기가 그의 전신에 퍼져나갔다.
강우는 차오르는 감격에 가볍게 몸을 떨었다.
“저… 강우 씨.”
한설아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강우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 와주실래요?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어요.”
그녀는 자신의 다리에 묶느라 찢어진 강우의 옷을 바라보며 미안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금전적으로 보답을 줘야 마땅하지만 그녀에게 그런 여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그에게 고맙다는 말만하고 헤어지기도 싫었다.
“……!”
그녀의 말에 강우의 몸이 흠칫 떨렸다.
여자가, 그것도 방금 자신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여자가 직접 집으로 초대해 주다니.
만 년간 여자라고는 상상에서 밖에 만나지 못했던 그에게 있어 격한 자극이 되는 말이었다.
마치 ‘오빠, 우리 집에서 라면이라도 먹고 갈래?’라는 말을 들은 듯한 기분.
‘이건….’
강우는 거칠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강렬한 흥분이 그의 몸에 끓어올랐다.
‘바람 분다.’
온갖 상상의 나래가 그의 머릿속에 펼쳐졌다.
상상속의 그는 따듯한 집에서 한설아와 아이 셋을 낳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있어!!!’
지옥에서 보낸 만 년간 썩을 대로 썩어버린 그의 마음에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