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24)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25화
속죄 (3)
‘뭐지?’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지?
라키엘의 표정에 당황이 서렸다.
뭔가 잘 못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눈치 챘다.
아니, 굳이 직감이 아니라도 지금 눈앞에서 분노하고 있는 여신을 본다면 모르고 싶어도 알 수밖에 없다.
‘내가 저 인간을 납치하고 고문했다고?’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그런 일은 없었다.
애초에 있을 수가 없다.
그는 봉인이 풀린 후 바로 지구로 넘어올 준비를 했고, 오자마자 가이아가 있는 장소를 찾느라 정신없었으니까.
지구의 인간을 건드린 적은 신성에 맹세코 한 번도 없었다.
‘대체 뭐야.’
라키엘은 강우를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매의 청년은 가슴을 움켜쥔 채, 고통스럽게 몸을 비틀고 있었다.
인간에게 마기를 강제로 주입했을 때와 같은 모습.
‘누구냐 넌.’
누군데 내게 납치당했다는 거짓을 말한 거냐.
머릿속이 복잡했다.
혼란에, 혼란이 겹친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 저는 저 인간을 납치한 적이 없….”
-콰앙!
다급히 고개를 젓고 있을 때, 벽한 쪽이 박살났다.
그곳에서 여덟 장의 날개를 지닌 청발의 소년이 나타났다.
‘천사?’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여덟 장의 날개라면 대천사격의 존재이니 아마 자신이 봉인된 이후 대천사의 위(位)를 받은 천사일 것이다.
청발의 소년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응시한다.
“하, 꼴에 얼굴도 좀 바꾸고 나타났네.”
소년이 코웃음 친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소년은 짙은 살기가 남긴 목소리로 말했다.
“뭐? 이제 와서 속죄하겠다고? 인간을 납치한 적 없다고?”
으드득.
우리엘은 이를 갈았다.
“바로 얼마 전 일은 기억도 안 나나 보지? 앙?”
“그게 무슨….”
“가이아 님이 부활하자마자 바로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우리엘은 역겹다는 듯 라키엘을 노려보았다.
아직 가이아의 부활과 뒤바뀐 라키엘의 태도가 100퍼센트 연관이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으나, 타이밍이 딱 들어맞는다.
실컷 악행을 일삼다가 지구의 주신이 힘을 되찾으니 바로 꼬리를 내린 것.
“이 쓰레기 자식…!”
라키엘의 간사함에 치가 떨렸다.
아마 가이아의 자애로운 성품을 노리고 벌인 얕은 술책이리라.
하지만.
“이럴 거였으면 적당히 설치고 다녔어야지.”
파직, 파지지직!
푸른 뇌전이 튀어 올랐다.
“라파엘을 타락시키고, 강우까지 마물로 만들려고 했으면서… 감히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냐!!”
“라파엘? 라파엘은 또 누구….”
“닥쳐!!”
우리엘은 더 이상 라키엘의 뻔뻔한 태도를 참을 수 없다는 듯 거칠게 호통 쳤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
라키엘의 악행을 두 눈으로 목격한 이상, 그에게 ‘속죄’의 기회 따위는 줄 수 없었다.
‘라파엘.’
오랜 친우를 떠올린다.
그 친우를 죽인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아직도 가끔 라파엘의 환영이 그를 괴롭힌다.
왜 자신을 죽였냐며, 소중한 친구가 아니었냐며 그를 힐난했다.
‘네 복수는.’
피에 젖은 라파엘을 떠올렸다.
어깨를 짓누르는 죄책감만큼,
분노가 타오른다.
‘내가 해주겠다.’
파지지지지직!!
우리엘이 손을 들어올린다.
푸른 뇌전이 그의 손에 맺혔다.
언어에 힘을 담아, 마법을 구체화시킨다.
“쏟 아 져 라!”
수호의 전당 천장에 푸른 뇌전 구름이 맺힌다.
눈부신 빛과 함께 뇌전이 쏘아졌다.
그와 동시에,
“천룡━”
김시훈이 달려 나간다.
“일섬!”
짧은 기합과 함께, 그의 검이 빛을 뿌렸다.
“너만큼은….”
김시훈의 눈이 이글거린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씹어 뱉듯 외쳤다.
“네놈만큼은 편히 죽지 못하게 해주마!”
광기까지 느껴지는 목소리.
온화한 이상이었던 김시훈의 얼굴이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여신에,
대천사에,
영웅까지.
그들은 타락한 천사를 징벌하기 위해 맹렬한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아니.’
라키엘은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공격들을 바라보았다.
“대체 뭐야….”
라파엘을 타락시켰다느니, 가이아의 권속을 납치해 고문했다느니.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억울했다.
차라리 그가 과거 저질렀던 죄악에 대해 그들이 분노한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마신에게 조종당했다고 해도, 그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들의 분노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조용히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적어도,
진심 어린 사죄를 했다는 얄팍한 위안을 가슴에 품으며.
‘하지만 이건.’
자기가 저지르지도 않은 일에 대해 죗값을 치르다니.
이것은,
이것만큼은,
‘오해를 풀어야 해.’
봉인에서 풀려났을 때, 그는 더 이상 삶의 미련을 갖지 않았다.
그토록 무수한 죄악을 저질렀는데 뻔뻔하게 살아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이렇게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죽을 수는 없었다.
“크읏!”
라키엘이 양팔을 들어올렸다.
검은 뇌전이 튀어 오르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푸른 뇌전을 막아냈다.
길게 손을 뻗으니 검은 뇌전이 뭉쳐 기다란 창이 만들어졌다.
창을 잡고, 휘두른다.
사선으로 올려쳐진 창날에 김시훈의 검이 격돌한다.
-콰앙!
폭음이 울렸다.
김시훈은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크윽.”
강렬한 충격에 손바닥이 얼얼했다.
김시훈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하!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우리엘이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외친다.
라키엘이 억울한 목소리로 답했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
“시끄럽다고 했어!”
다시 한 번 푸른 뇌전이 쏘아진다.
라키엘은 반사적으로 푸른 뇌전을 쳐냈다.
‘제길.’
이대로는 끝이 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군.’
여기서는 그들을 제압하지 않으면 대화를 시도할 수조차 없을 것 같았다.
“후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열장의 날개 사이에 검은 뇌전이 튀어 오른다.
거대한 마기가 꿈틀거린다.
한때 성력이었던 기운. 집착이 광기에 닿으며 변질된 그 기운이 몸을 일으켰다.
신성(神聖).
신의 격을 지닌 존재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그 힘이 라키엘의 몸을 타고 흘러나왔다.
“…미안하다.”
창대를 쥔다.
검을 뽑고 달려드는 김시훈에게 말했다.
하지만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도 그를 제압해야 했다.
몸을 반 바퀴 회전시키며, 창을 내질렀다.
신성을 담은 창날이 김시훈의 검과 격돌한다.
그리고.
“뭐, 뭐야?”
김시훈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소멸.
성검에 둘러진 검강이 라키엘의 창과 부딪힌 순간 흩어지듯 사라졌다.
김시훈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저게….”
신성의 힘.
‘제길.’
닿자마자 내공이 흩어져버리다니, 사기적인 것도 정도가 있었다.
김시훈은 처음 겪은 신성의 힘에 당황했다.
“…하지만.”
당황하는 것도 잠시.
김시훈은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냐.’
저 기묘한 힘이 일렁거리는 창날.
그 창날만 피한다면 싸울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김시훈은 몸을 낮게 낮췄다.
‘정면에서는 절대 안 돼.’
닿는 것만으로 내공이 흩어진다면, 정면 승부로는 답이 없다.
‘무형검.’
정신을 집중한다. 허공에 보이지 않는 검날이 만들어진다.
이기어검으로 검을 조종한 김시훈은 라키엘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일대 일이라면 어림도 없는 전략이지만,
“타 올 라 라!”
파지지지직!
푸른 뇌전이 라키엘의 몸을 때렸다.
“크읏!”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쉽게 제압하기는 힘들겠군.’
라키엘은 창을 고쳐 잡았다.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여유롭게 상대할 만한 상대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충분히 저 둘을 제압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리석구나.”
“커헉!”
그런 그의 확신을 짓밟으며, 여신이 나섰다.
김시훈과 우리엘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어느새 뒤로 돌아온 가이아가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신성(神聖)의 힘이, 라키엘의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그를 짓눌렀다.
“기껏해야 중하(中下)급 신격을 지닌 자가… 감히 나를 대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
라키엘은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다.
가이아는 최상급 신. 별을 관장하는 주신이었다.
지금 비록 본래의 힘에 비해서는 한참 약해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최상격은 최상격.
한낱 타락천사와는 그 격이 다르다.
‘하지만.’
라키엘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긴장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쥐었다.
방법은 있었다.
‘마신의 힘.’
바울리가 그에게 직접 심어준 힘.
과거 그의 육체를 조종하고, 지배했던 힘.
최상을 넘어, 초월(超越)급 신격을 지닌 마신의 힘을 사용한다면 아주 순간적으로나마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
“…제길.”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가이아의 오해를 푸는 것은 포기해야만 한다.
라키엘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쿠웅! 쿵!
“크읏! 커헉!”
망설이는 중에도 공격이 쏟아졌다.
가이아와 김시훈, 우리엘의 합공에 라키엘의 몸이 난자당한다.
“쿨럭! 크윽….”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선택의 기로.
‘아, 안 돼….’
이렇게 억울하게.
하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 쓴 채 죽을 수는 없었다.
‘제길, 제길, 제길!’
라키엘은 초조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때.
‘아.’
그의 시야에,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에게 납치당했다고 주장했던 인간.
끔찍한 고문을 받고, 마기를 주입 당해 마물로 되어가고 있다는 인간.
“네놈….”
라키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까 전에는 너무 갑작스러운 사태에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지만, 생각해 보니 이 ‘오강우’라는 인간이 아무래도 수상했다.
‘그렇다면.’
라키엘의 눈에 결심이 서렸다.
그는 오른손을 자신의 심장 부근에 가져다 대었다.
-두근.
심장이 크게 요동친다.
마신이 심어 넣은 마기가 광포한 기세로 전신에 퍼졌다.
그리고.
-쿠구구구구궁!!
무저갱(無低坑)과도 같은 칠흑의 마기가 폭발하듯 주변을 휩쓸었다.
* * *
“응?”
바닥에 쓰러져 흑염룡을 봉인한 중2병마냥 오른팔을 부여잡고 몸을 비틀던 강우의 눈이 빛났다.
섬뜩한 감각이 등골을 스친다.
라키엘의 몸에서 칠흑의 마기가 뿜어짐과 동시에, 주변 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뭐야 이건.’
공간이 찢어지며, 강력한 흡입력이 그를 끌어당겼다.
“가, 강우 씨!”
한설아가 다급히 그의 몸을 끌어안는다.
그것도 잠시.
찢어진 공간이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며 다가왔다.
‘흐음.’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이쪽을 바라보는 라키엘의 모습과, 그가 힘을 해방함과 동시에 찢어진 공간.
‘그렇게 된 거구만.’
라키엘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눈치챈 강우는 씩 웃었다.
‘나를 데려가고 싶다, 이거지.’
그건 이쪽이 바라던 바였다.
강우는 활짝 웃으며 자신을 끌어안은 한설아의 손을 쥐었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따라와 임자.”
“가, 강우 씨…?”
한설아의 동그랗게 뜨인 눈을 바라보며 찢어진 공간 속으로 몸을 던졌다.
* * *
어둠이 내려앉은 공간.
마치 거대한 통로를 연상시키듯 일직선으로 길게 이어진 내부구조.
강우에겐 낯익은 장소였다.
-띠링.
[에르노어 대륙과 이어진 ‘차원의 틈’에 입장하였습니다.]루시스가 리리스를 납치했을 때와 같은 장소.
“하아, 하아.”
강우를 차원의 틈 안으로 끌어들인 라키엘은 거친 숨을 토해냈다.
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오른팔을 부여잡으며 바닥을 뒹굴던 인간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입가를 올리고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돌변한 그의 태도에, 라키엘은 이 모든 일이 저 인간이 꾸민 일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눈치 챘다.
“대체 누군데 내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웠는지를 물었다!!”
발작을 일으키듯 외쳤다.
“나?”
강우는 손가락을 자신을 가리키며 낄낄 웃었다.
너는 누구냐, 라는 질문.
질릴 정도로 많이 들은 질문이다.
예전에는 그 대답을 망설였지만, 이제는 망설일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악마의 악마이자.
지옥의 지옥이며.
포식자의 포식자.
……가 아닌.
“빛의 수호자다.”
빛강우의 몸을 타고 거대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아, 씨바. 잠깐만.”
실수했다.
다시.
“빛의 수호자다.”
빛강우의 몸에서 뿜어진 휘황찬란한 황금빛 기운이 어두운 공간을 밝혔다.
“…….”
라키엘은 벙찐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뭐.”
“…….”
“뭐, 새끼야, 뭐.”
“…….”
팍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