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36)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37화
하이엘프의 전설 (3)
“하하하! 자네 아주 좋은 동료를 두었더군!”
밖으로 나온 더글라스가 껄껄거리며 강우의 어깨를 쳤다.
“…….”
강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라와 더글라스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몰아치고 있었다.
“레이라 씨, 무슨 방법으로 더글라스 씨를 설득한 겁니까? 좀 깐깐하신 분이신 것 같던데.”
김시훈이 레이라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속삭이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레이라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점잖게 웃었다.
“다행히 더글라스 씨도 가이아 님에 대해 신앙심을 품고 계시더라고요.”
‘거짓말하지 마.’
“가이아 님이 얼마나 거룩하며, 자애에 넘치는 분이신지 설명해 드리니 바로 경계를 푸시던걸요?”
‘가아아에 대한 건 한마디도 안 했잖아.’
“아, 그러면 레이라 씨가 가이아 님의 화신이라는 것을 밝히신 겁니까?”
“아뇨, 그건 아니에요. 그저… 가이아 님을 모시는 충실한 신도라고만 밝혔죠.”
“서로 같은 신을 모시는 사이라. 과연, 더글라스 씨가 왜 갑자기 경계를 푸셨는지 이해할 수 있겠네요.”
김시훈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문 채, 레이라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시훈아.’
너 아무래도 제수씨한테 잡혀 살 것 같다.
강우는 가볍게 혀를 찼다.
거짓말은 그가 가장 혐오하는 것 중 하나였지만, 지금 레이라의 상황에서 솔직하게 밝힐 수 없다는 사정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건가.’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그럼, 그럼.
어쨌든.
“레이라 씨는 자랑스러운 동료죠.”
강우는 활짝 웃으며 더글라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더글라스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래, 하이엘프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지?”
“에, 그렇습니다.”
강우는 눈을 빛냈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정확히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하이엘프가 사는 위치입니다.”
“허어….”
더글라스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표정.
“하이엘프가 어디 있는지는 모르시는 겁니까?”
“모르네. 정확히는 알 수가 없지. 하지만 그들이 나타나는 조건은 알고 있네.”
“조건이요?”
실망감에 휩싸이던 강우의 표정이 밝아졌다.
더글라스는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긁으며 말을 이었다.
“음. 일단 하이엘프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군.”
“천천히 설명하셔도 괜찮습니다.”
“알겠네.”
더글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자네는 엘프와 하이엘프의 차이에 대해 아는가?”
“어… 음. 엘프들의 귀족이나 왕, 같은 느낌 아닌가요?”
“그것과는 느낌이 다르지.”
더글라스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비교하자면 차라리 신에 가깝네. 실제 기록에 따르면 하이엘프들은 각자 신성을 지닌 신격의 존재로 기록되어 있지. 그중 엘더 하이엘프의 경우 천신 세라핌님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신격을 지닌 존재라고 하지.”
“…허.”
강우의 입에서 짧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이엘프가 신격체였어?’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하이엘프라고 하면 엘프의 왕, 정도라고 생각했으니까.
‘왕이 아닌 엘프들이 모시는 신이었다는 건가.’
그렇다면 그들의 위치에 대해 알고 있는 존재가 거의 없다는 것도 납득이 갔다.
“…잠깐, 그러면 하이엘프를 물리적으로 만날 방법은 없는 것 아닙니까?”
신격을 지닌 존재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이아를 비롯한 우라노스 등 대부분의 신격체들은 ‘섭리’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질계에 나타나지 않는다.
가이아만 하더라도 레이라의 몸을 빌려 강신이라는 방법을 통해 물질계에 영향을 행사했으니까.
“그건 아닐세. 음… 아니, 어느 정도 맞는 말이려나?”
더글라스가 애매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이엘프의 경우 물질계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나, 세계수의 힘을 빌려 육체를 가지고 현신 자체는 할 수 있다네.”
“그렇군요.”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육체를 가지고 물질계에 현신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들을 직접 만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의미였다.
더글라스는 테이블 위에 놓인 책을 펼치며 말을 이었다.
“실제로 과거 아르난 제국의 건국 당시 하이엘프가 나타나 초대 황제 폐하에게 직접 축복을 내려주시기도 했지.”
“그러면 하이엘프는 아르난 제국의 수호신, 같은 겁니까?”
“그건 잘 모르겠네. 다만… 적어도 황가의 핏줄에 한해서는 수호신이라고 불러도 좋겠지. 그 증거로 아르난 황가의 핏줄은 모두 엄청난 미남, 미녀에 굉장히 장수하지.”
레이날드의 얼굴이 떠올랐다.
금발 영웅의 눈부신 외모는 김시훈과 비벼볼 정도였다.
“그렇다면… 결국 그 하이엘프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지금 정보로 하이엘프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있는 위치.
마신의 시체로 향하는 길을 인도해 줄 안내자와 만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이엘프와 관련된 전설이 하나 있네.”
더글라스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세계가 종말(終末)의 위기에 처했을 때, 구원자의 앞에 세계수의 수호자가 현신할 것이다.”
“…….”
“여기서 세계수의 수호자가 하이엘프라네.”
“잠깐만요, 그렇다는 말은….”
“그래.”
더글라스는 픽 웃었다.
“현실적으로 그들을 만날 방법은 없다는 의미지.”
“…….”
강우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결국 돌고 돌아 원점이다.
더글라스는 허허, 웃으며 강우의 어깨를 두들겼다.
“너무 낙담하지 말게. 문헌에 의하면 엘프와 하이엘프의 외적인 차이는 크지 않다고 하네. 하이엘프를 만날 수는 없어도 우리에겐 엘프가 있지 않은가!”
흐음!
거센 콧김을 뿜으며 레이라 쪽을 바라보았다.
“…다른 방법은 없는 겁니까? 엘프 중에 하이엘프와 교신이 가능한 자, 라던가 하는 거요.”
사실 직접적으로 하이엘프를 만날 필요는 없었다.
레이라가 강신을 통해 가이아의 의지를 전하듯, 엘프들 중에서도 하이엘프의 의지를 전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수도 있었다.
아니, 있어야만 했다.
“음.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걸세. 엘프에 대해서는 나만큼 잘 아는 자가 없으리라 자부할 수 있네만, 이제까지 하이엘프와 교신할 수 있는 엘프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네.”
“…….”
쐐기를 박아버리는 더글라스의 말.
강우를 비롯한 원정대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형님, 그렇다면….”
“하이엘프의 도움 없이 마신의 시체를 찾는 방법밖에는 없겠지.”
강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실 하이엘프를 찾아야만 마신의 시체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식한 방법이지만, 대륙 전역을 뒤져서 찾는 방법도 있었다.
‘대체 시간이 얼마나 들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별 하나를 뒤지는 일이다.
아무리 강우 일행이 자유롭게 하늘을 이동할 수 있다고 하나 쉬울 리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마신의 시체가 발견된 적 없는 것을 생각하면 일단 하늘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에 없을 가능성이 컸다.
‘심해나, 깊은 동굴 속이나.’
최악의 경우, 하이엘프처첨 물질계 자체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제기랄.”
나지막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에 손을 짚었다.
고민에 잠긴 것 강우만이 아니었다.
레이라 또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어두운 표정으로 입술을 짓씹고 있었다.
연구실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강우 씨….”
한설아가 고민에 잠긴 강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등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린다.
“저는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리건 괜찮아요.”
“…….”
한설아가 밝게 웃는다.
에키드나도 종종 걸음으로 다가와 강우의 무릎 위에 앉았다.
“흐응! 나도 강우랑 함께라면 아무리 오래 걸려도 괜찮아!”
분위기 환기를 위한 작은 위로.
강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손을 뻗어 무릎 위에 앉은 에키드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에키드나는 즐거운 듯 콧소리를 내며 다리를 흔들었다.
“그래, 얼마나 오래 걸리던 찾아야지.”
몇 년, 혹은 몇십 년이 걸리더라도 찾아내야 했다.
이대로 가만히 손 빨고 있으면 지구가 외계(外界)에 침식당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으니까.
‘문제는.’
한설아와 에키드나의 위로에도 강우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사실 설아와 에키드나, 다른 동료들과 함께라면 에르노어 대륙에 얼마나 오래 있건 그도 상관없었다.
지옥에서처럼 먹고, 마시고, 즐길 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것도 결국 시간제한이 있다는 거지.’
가이아가 말하기를, 별의 수호는 사람 인(人)자처럼 서로를 지탱해주고 있다고 했다.
제시간 내에 마신의 시체를 찾지 못하면 지구의 수호는 무너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다른 세계에까지 그 여파가 미치는 것은 금방이다.
지지대가 무너진 기둥은 필연적으로 쓰러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가이아가 그래도 몇 년은 버틸 수 있다고 말했지만.’
바꿔말하면 몇 년 이내에 찾지 못하면 그대로 지구의 수호가 무너져 버린다는 의미.
“…하아.”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연구실 안의 분위기는 여전히 무겁다.
강우는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겼다.
‘마신의 시체를 찾을 방법이 필요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다.
믿었던 루시스는 그 위치에 대해 전혀 기억도 하지 못하고, 천사는 물론 가이아조차 그 위치를 전혀 몰랐다.
단서조차 없었다.
‘바울리에게… 기대야 하나.’
심연 속에 잠들어 있는 바울리를 끌어내는 것.
생각을 이어가던 강우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위험하다.
지나칠 정도로 리스크가 크다.
‘대체 어떻게 해야….’
머릿속이 답답하다.
그때였다.
“아.”
짧은 탄성이 강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머릿속에 한 줄기 벼락이 내리쳤다.
‘그래.’
하, 강우는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이걸 왜 생각하지 못했지.’
자신의 멍청함에 무심코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했다.
처음부터 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한심스럽게 느껴질 정도.
‘아무것도 아니었잖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방법은 우스울 정도로 간단했다.
더글라스가 말한, 하이엘프의 전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세계가 종말(終末)의 위기에 처했을 때, 구원자의 앞에 세계수의 수호자가 현신할 것이다.
‘세계가 종말의 위기에 처했을 때만 하이엘프가 나타난다는 건.’
강우의 입가가 비틀어올랐다.
사악하게 일그러진 미소가 악마의 입가에 걸렸다.
낄낄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에르노어 대륙을 종말의 위기에 처하게 만들면 된다는 거잖아?’
캬, 고건 몰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