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4)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5화
말했잖아.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3)
“좋은 생각이다.”
문영호는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인 강우를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저놈을 손봐줄 수 있다는 생각에 어깨가 자연스럽게 들썩일 정도였다.
‘다시는 우리 길드장님에게 까불지 못하게 만들어주지.’
그는 자신의 왼쪽 눈을 더듬었다.
길게 그어진 검상이 후끈거렸다.
그는 초보 플레이어였던 시절, 카오 플레이어에게 습격을 받았다.
그런 그를 구해준 것이 바로 차연주였다.
그에게 있어서 차연주는 단순히 몸을 담은 길드의 길드장이 아니었다.
생명의 은인이자, 충성을 맹세한 주인이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바친 여인이었다.
‘그런데 감히 너 따위가.’
문영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강우를 노려봤다.
그는 강우가 차연주를 ‘누나’라고 불렀을 때 속이 뒤틀리는 듯한 역겨움을 느꼈다.
지난 몇 년간 소중하게 쌓아온 감정이 처참하게 능욕당하는 감각.
‘난….’
문영호는 차연주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차연주는 갑작스러운 지금 상황에 표정을 있는 대로 구기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분노에 차 있는 그녀의 모습조차도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감히 손댈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진 그녀에게 아무렇지 않게 다가간 강우에 대한 분노가 더욱 끓어올랐다.
‘격의 차이를 깨닫게 해주지.’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세상물정 모르고 나대고 있는 그를 가만히 놔둘 수 없었다.
문영호는 이대로 강우를 내버려 두면 나중에 은혜도 모르고 뒤통수를 치고 말 것이라는 자기합리화까지 하며 그를 데리고 건물 5층에 있는 대련실로 향했다.
강우는 어디까지나 여유로운 태도로 그의 뒤를 따라갔다.
마치 소풍이라도 가고 있는 듯한 그의 태도에 문영호의 속이 한 번 더 뒤집어졌다.
-달칵.
“여기가 대련실이다.”
“오오. 꽤 설비가 괜찮은데?”
강우는 한층 전체를 사용해서 만든 넓은 대련실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언제까지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지 지켜보지.”
“그래. 열심히 한번 지켜봐.”
강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련실 한 쪽에 섰다.
그런 그에게 차연주가 다가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미친 짓이야. 그만둬.”
“하하하. 괜찮대도.”
“…후회할 거야.”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를 돌아보며 강우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차연주가 걱정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그도 알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플레이어가 된 지 2주가 지난 애송이가 대형 길드의 간부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아무것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시작하지.”
문영호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지도 않은 채 두 팔을 늘어뜨렸다.
“삼 초를 양보하지. 먼저 공격해라.”
“햐, 너도 무협지 좀 읽었나보네.”
“…….”
“괜히 똥폼 잡지 말고 칼 들어, 인마.”
강우는 한 손을 까딱거리며 그에게 충고했다.
괜히 나중에 가서 방심해서 졌다느니 양보하지 않았으면 이겼을 거라느니 하는 구차한 변명을 듣고 싶지 않았다.
‘하려면 확실하게 해야지.’
힘을 숨길 필요가 있다면 철저하게 숨긴다.
드러낼 필요가 있다면 확실하게 드러낸다.
지금은 확실하게 드러내야 할 때였다. 그래야만 그의 가치가 올라가고, 더욱 좋은 보상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뭐야. 검 들라니까?”
“…애송이에게 전력을 다할 생각은 없다.”
“아, 그러셔?”
강우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허세를 부리는 문영호의 모습이 너무도 가소롭고, 하찮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강우는 양팔을 늘어뜨린 채 몸을 숙였다.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는 듯한 준비자세. 강우는 마기를 다리에 집중하며 신속의 권능을 펼쳤다.
-콰앙!!!
그의 몸이 튕겨지듯 앞으로 쏘아졌다.
검을 뽑지도 않은 채 강우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던 문영호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무!”
엄청난 속도로 쏘아지던 강우는 창공의 권능을 이용해 공중에서 몸을 비틀었다.
관성의 법칙이 무시되며 그의 몸이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속도로 방향을 틀었다.
강우는 되돌려 차기로 문영호의 배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빠악!
“커허어억!!”
발길질에 얻어맞은 문영호의 몸이 공처럼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는 물수제비처럼 바닥에 통통 튕기며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그가 처박힌 벽이 우그러지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우에에에에엑!!”
문영호는 속이 뒤틀리는 감각에 바닥을 짚은 채 토사물을 쏟아냈다.
꼴사납다는 표현조차 아까울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쿨럭! 쿨럭! 어, 어떻게…?”
문영호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경악에 찬 눈빛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경악에 차 있는 것은 문영호만이 아니었다.
“뭐, 뭐야? 대체 무슨 일이….”
강우의 신위를 본 차연주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구토를 쏟아내고 있는 문영호와 강우의 모습을 번갈아 보았다.
플레이어가 된 지 고작 2주가 지난 애송이가 7차 각성을 마친 플레이어.
그것도 레드로즈 길드의 행동대장직을 맡을 정도로 강력한 플레이어를 일격에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모습은 마치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럼 앞으로 두 번 남은 건가?”
강우는 비틀거리며 간신히 몸을 일으킨 문영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허공에 만들어진 검은색 창이 문영호를 노리고 쏘아졌다.
“허업!”
문영호는 다급한 신음성과 함께 검은색 창을 피해 몸을 구르며 재빠르게 검을 뽑아들었다.
그는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강우를 향해 검을 겨눴다.
“응? 삼 초는 양보해 주는 것 아니었어?”
강우는 느긋한 발걸음으로 그에게 걸어가며 물었다.
“…….”
문영호는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대답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는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그의 등골을 타고 축축한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위험했어.’
만약 자신이 입고 있던 유니크 등급 장비, 가고일 갑주의 힘이 아니었다면 처음 한 방으로 그대로 의식을 잃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격이었다.
문영호는 떨리는 눈빛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저게 2주 차 플레이어라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차연주도, 심지어 백강현도 2주 만에 이 정도로 강해지지는 않았다.
지금 상황은 세 살배기 꼬맹이가 다 큰 어른을 집어던지는 것과 같은 상황.
천재라는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거냐.”
“아무 수도 쓰지 않았어. 단순히 내가 너보다 강할 뿐이야.”
“개소리하지 마라! 어떻게 2주차 플레이어가 이런….”
“그러니까, 넌 지금 개소리하지 말라고 소리칠 정도로 터무니없는 제안을 했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는 얘기지?”
“…….”
“그리고 뜻대로 안 되니까 이건 사기라면서 찡찡거리는 거고?”
“그, 그건….”
당황하는 문영호를 바라보며 강우는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던 강우가 이내 정색하며 딱딱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적당히 해, 이 찌질한 새끼야.”
“크읏.”
문영호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수치심에 차오른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쟤 뼈 맞은 것 같은데.’
강우는 붉게 달아오른 문영호의 얼굴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 이 자식이!!”
강우의 입가에 떠오른 선명한 조소를 본 문영호는 눈이 뒤집어진 채 검을 움켜쥐었다.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
지금 이 자리에는 그와 강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마음속에 담아둔 여인, 차연주도 이 승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이렇게 비참한 모습만을 보여줄 수 없었다.
“천살검!”
문영호가 검을 들어 올리며 소리치자 푸르스름한 검기가 하늘로 길게 뻗어나갔다.
순식간에 십여 미터로 늘어난 그의 검이 강대한 기운을 뿜어냈다.
“그거 꼭 그렇게 오그라드는 기술명을 외쳐야지 쓸 수 있는 기술이야?”
“…….”
“아니지? 지금 멋져 보이려고 일부러 소리친 거지?”
“다, 닥쳐라!”
“야, 똥폼 잡다가 바닥에 토까지 쏟았는데 이미 멋져 보이는 건 물 건너간 거 아니냐?”
“이, 이 개…!”
“그러니 아까 검 들라고 했을 때 들지 그랬어. 지금 갑자기 폼 잡으니까 더 추해보이잖아.”
“으아아아아아!!!”
신랄한 비난에 정곡을 찔린 문영호는 눈이 뒤집어 진 채 강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껏 문영호의 화를 돋우던 강우는 침착한 눈빛으로 그의 움직임을 살폈다.
‘확실히 강하기는 하네.’
푸른 검기가 뿜어져 나오는 그의 검에 담긴 위력은 결코 얕볼 수 없는 수준.
철벽의 권능을 사용해서 막아도 정면으로는 막기 힘들 정도의 공격이었다.
‘제대로 붙었으면 쉽지 않았겠는데.’
처음에 괜히 허세를 부리지 않고 전력을 다해서 그가 상대했다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됐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강우는 분노에 찬 채 정직하게 달려드는 문영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저렇게 이성을 잃은 전사에게 당할 정도로 그의 전투 경험이 얕지 않았다.
‘암영의 권능.’
강우의 그림자가 바닥을 타고 길게 뻗어나갔다.
“죽엇!!”
평소였다면 바닥을 타고 그림자가 접근하고 있는 것을 눈치챘을 문영호였지만.
강우의 도발에 이성을 잃은 그는 바닥을 타고 온 그림자가 자신의 그림자에 달라붙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월식(月蝕).’
그림자가 연결된 것을 확인한 강우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권능의 힘을 발현시켰다.
문영호의 검이 그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자, 잠깐, 영호야!”
대련이 아닌, 명백하게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서 검을 휘두른 모습에, 차연주는 다급히 달려 나왔다.
문영호는 평소 감정 표현이 거의 없을 만큼 침착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판단력이 없어질 정도로 흥분한 것은 그와 몇 년을 함께한 차연주도 처음 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문영호의 검을 막기 전에, 강우의 몸이 검은색 덩어리로 변해 녹아내리듯 바닥으로 사라져 버렸다.
“무, 무슨…!”
문영호의 입에서 당황에 찬 외침이 흘러나왔다.
그는 갑작스럽게 사라진 강우를 찾아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탁.
“그럼, 이번이 세 번째야.”
문영호의 그림자에서 나타난 강우는 그의 등에 손을 올렸다.
제로 거리에서 사용된 파동의 권능이 문영호의 몸 전체에 퍼져나갔다.
“쿨럭!”
그의 입에서 한 움큼의 피가 쏟아져 나오며 문영호는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졌다.
“…….”
전투를 말리려고 달려들었던 차연주는 멍한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는 그런 그녀에게 몸을 돌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