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41)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42화
누굴 이기게 만들까? (1)
‘뭐야 이건.’
김시훈과는 달라도 너무도 다른 대우에 강우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제국 신민들이 입을 모아 말했던 ‘악녀’라는 칭호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니까….’
평소 그녀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딱 저렇다는 의미.
‘이거 이번 작전 안 했으면 좀 곤란할 뻔했겠는데.’
위기의 상황에 김시훈을 등장시켜 황녀의 호감을 사지 않았다면 시작부터 트러블이 꽤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꺼지란 말 못 들었어? 귀라도 먹어버린 거니?”
“…….”
새침하게 자신을 노려보는 아이리스.
싸가지를 말아먹은 듯한 그녀의 태도에 분노보다는 어이없다는 감정이 먼저 밀려왔다.
“저희 형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이리스의 건방진 태도에 김시훈이 먼저 반응했다.
그는 희미한 살기까지 섞으며 자신의 등 뒤에 숨은 아이리스를 노려보았다.
그런 그의 행동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강우였다.
‘야야, 시훈아.’
그만해 이놈아.
기껏 올려놓은 호감도 떡락할라.
“아, 으. 죄, 죄송해요. 시훈 님의 형이라고는 생각을 못 해서….”
아이리스는 다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담긴 경계와 적의의 시선은 여전했다.
강우는 가늘게 눈을 뜨며 그녀를 바라봤다.
‘뭔가 좀 이상한데.’
단순히 그녀의 성격 문제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하기엔 반응이 너무 격해.’
형제 사이라는 것은 몰랐을 수도 있다. 실제 강우와 김시훈은 친형제 사이가 아니니까.
하지만 적어도 김시훈과 자신이 동료 사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시훈과 대화하는 모습도 보여줬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적의를 품는다고?’
역시 이상했다.
애초에 아이리스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적의를 품을 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다.
김시훈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의 동료인 자신에게 호의를 품는 것이 당연했다.
‘성격이 나쁘다는 거로는 설명이 안 되는데.’
다시 한번, 목덜미를 자극하는 이질감이 전신에 퍼졌다.
아이리스를 바라보는 강우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거….’
더글라스의 중얼거림이 머릿속을 스쳤다.
-적어도, 그분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네.
‘뭔 일이 있었구만.’
아직 그 일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이리스의 성격을 이 정도로까지 비틀어버린 무언가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잠시만.’
강우는 콧등을 툭툭 손가락을 치며 생각에 잠겼다.
아이리스를 보며 느낀 이질감과 반란군을 봤을 때 느꼈던 이질감.
그 두 개의 감각이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논리가 아니다.
직감에 의한 빈약한 추측.
“황녀님, 아까의 질문을 계속해도 될까요?”
“…뭔데? 피곤하니까 빨리 끝내줘.”
아이리스는 여전히 반말로 말했다.
김시훈이 불편한 듯 눈살을 찌푸렸지만, 강우가 눈짓으로 그를 말렸다.
반말을 하건, 쌍욕을 하건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딴 아무래도 좋을 것들이 아니다.
“이번에 어디를 시찰하러 가셨다가 오시는 길입니까?”
“…뭐?”
아이리스는 황녀가 이 질문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초대 황제 폐하의 무덤에 기도를 드리고 왔어. 나라가 어려우니 좀 보살펴달라고.”
“…….”
세상 쓸데없는 짓이다.
아니,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은 문제조차 아니다.
‘저 황녀 성격에.’
자진해서 무덤에 기도를 드리고 왔다?
그것도 고작 수십밖에 안 되는 호위대를 데리고?
‘이거, 이제 좀 그림이 그려지는구만.’
강우는 씩 미소를 지었다.
안개에 가려진 듯 흐릿했던 형상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던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된 거였군.’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돌렸다.
복면을 쓴 반란군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정확히는, 그 반란군이 들고 있는 검을 내려다보았다.
‘들고 있는 병장기가 지나치게 좋았지.’
검뿐만이 아니다. 손목에 차는 둥그런 방패와 반란군이 입고 있는 갑옷들도 흠집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
‘그리고.’
반란군은 마치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듯 완벽하게 진형을 형성했다.
김시훈이 워낙 압도적으로 강해서 그렇지 어지간한 강자였다면 그들의 진형을 뚫기 힘들 정도로 정교한 진형을.
‘그건 말이 안 되지.’
반란군이,
가난하고 배고파 나라를 뒤집어엎을 생각으로 생업을 뒤로 한 채 검을 든 사람들이 최상급 무구를 차고 정교한 진형을 짠다?
“쯧.”
강우는 혀를 찼다.
깊게 생각할 것도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의 해답은, 의외로 단순한 경우가 많다.
‘반란군이 최상급 무구를 차고 정교한 진형을 짜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애초에 이놈들이 반란군이 아니었다는 거지.’
적어도 다른 누군가의 입김이 들어간 반란군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황녀를 죽이기 위해 이들을 조직했고, 이곳에 보낸 것이다.
“황녀님에게 시찰을 다녀오라고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
순간적으로, 황녀의 몸이 굳는다.
그녀는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내가 가자고 했어.”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아이리스 황녀는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난 제국의 황녀야. 감히 누가 나한테 시찰을 다녀오라고 시켰을 것 같아?”
“아, 예. 그렇군요.”
강우는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를 써서 자존심을 세우는 모습이 퍽 귀엽게 느껴졌다.
높이 있는 물건을 쥐기 위해 발돋움하려는 꼬맹이를 보는 기분이랄까.
“…뭐야, 물어볼 건 그게 끝이야?”
“예, 끝입니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원래는 몇 가지 더 물어볼 것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했다.
누가 황녀를 저렇게 만들었지 지금 당장 알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곧 싫어도 알게 될 것이다.
강우는 김시훈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김시훈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황녀에게 말했다.
“아이리스 황녀님, 저희가 수도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시훈 님…?”
“이런 일이 있었는데 황녀님 혼자 둘 수는 없죠.”
“흑. 가, 감사합니다.”
강우에게 향했던 건방진 태도와는 정반대의 태도.
아이리스는 감격에 찬 눈빛으로 뚝뚝 눈물을 흘렸다.
“돌아가면 꼭 시훈 님에게 큰 포상을 내려드릴게요!”
그녀는 두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강우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이거 뭐.’
서러워서 살겠나.
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몸을 돌렸다.
“읏차.”
“앗….”
김시훈은 발목을 다친 아이리스의 몸을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들어올렸다.
아이리스가 뺨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럼 강우 형님 말고도 제 다른 동료들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 아, 흠흠. 네. 시훈 님의 동료분들이라니, 정말 기대되네요.”
아이리스가 꺄르르 웃었다.
“저… 황녀님.”
그녀의 시녀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또 왜?”
강우에 이어 시녀에게까지 즐거운 시간을 방해받은 아이리스가 가시 돋친 목소리로 물었다.
“그… 이번 일에 대해서 보고를….”
“…….”
아이리스의 표정이 갑작스럽게 어두워졌다.
그녀는 가늘게 몸을 떨며 말을 이었다.
“으응, 그, 그래. 보고해야지. 반란군의 습격이 있었고, 시훈 님이 나타나서 구해줬다고 얘기해줘.”
“…예.”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분위기.
그런 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강우는 슬쩍 입가를 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역시.’
뭔가 있다.
‘일이 재밌게 됐네.’
강우는 눈을 반짝이며 입술을 핥았다.
만약 그가 생각한 대로의 그림이 맞는다면.
‘조금 고민을 해봐야겠는걸.’
급할 필요는 없다.
천천히, 여유 있게 고민한 후에 선택해도 늦지 않는다.
무너져가는 아르난 제국에서, 누구를 승리하게 만들 것인지.
‘어차피.’
선택하는 건 그의 몫이니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오롯이 그만 갖고 있으니까.
나머지는 그의 선택에 굴복해 따라오는 떨거지에 불과하다.
‘자.’
강우는 팔짱을 낀 채, 즐거운 고민에 잠겼다.
김시훈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는 아이리스와, 그녀를 이곳에 보내 죽이려고 했던 배후.
‘누굴 이기게 만들까?’
낄낄낄.
재미있는 게임을 하듯, 악마의 눈이 빛났다.
* * *
강우 일행과 아이리스 황녀는 함께 수도로 향했다.
아이리스가 타고 있던 마차는 반란군의 습격으로 박살났지만, 가까이에 있는 도시에서 다시 조달할 수 있었다.
강우 일행은 추가로 마차 몇 대를 구해 수도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에키드나가 본체로 변신해서 수도로 날아가는 것이 훨씬 더 빠르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아이리스가 기겁해서 쓰러질 수도 있으니까.’
저 철없는 아가씨가 드래곤을 봤을 때 보여줄 반응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일단 에키드나는 마룡(魔龍)이다.
섣부르게 보여줄 수 있을 리가 없다.
처음 아이리스 황녀는 김시훈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까칠하게 대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간간이 미소를 보이기도 했고 식사 중에 잡담을 하기도 했다.
물론,
강우가 예상치 못했던 이변도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아이리스가 새된 비명을 내지르며 손에 쥔 스푼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매, 매워어어어어어!”
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김치찌개를 먹고 있는 강우를 노려보았다.
“대체 이딴 걸 어떻게 먹는 거야?!”
“…….”
강우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참자, 참아.’
맵다고 하지 않나.
매우면 어쩔 수 없지.
외국인도 아닌 이세계인에게 왜 이 맛있는 걸 못 먹냐고 따질 정도로 정신머리가 없지는 않다.
-턱.
“강우, 물 가져와.”
“황녀님이 직접 따라 마시시죠.”
“난 발목 다쳤잖아.”
“나은지 며칠이 지난 상처 가지고 아직도 찡찡거리십니까?”
“이익! 말이 많아!”
“저 원래 말 많습니다. 꼬우세요?”
“물! 물!”
“시훈아 황녀님이 물 좀 드시고 싶다고 하신….”
“꺄아악! 시, 시훈 님을 부르지 말고!”
아이리스와 강우의 사이에 소란이 일었다.
다른 파티원들은 그런 둘의 모습이 이젠 익숙해졌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강우가 생각하지 못했던 이변.
‘왜 시훈이가 아니라 나한테 달라붙는 거야?’
강우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김시훈에게 한눈에 반한 아이리스가 그와 친해지며 ‘영웅-황녀’ 사이에 기막힌 유대관계를 형성해야 했다.
하지만 며칠간 함께 지낸 결과 그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아이리스는 김시훈이 아닌 자신에게 찰싹 달라붙어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그 이유라는 게 씨바 가관이지.’
아이리스는 혹시 진짜 김시훈이 물을 떠 오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 눈초리로 힐끔힐끔 김시훈을 쳐다보았다.
김시훈은 그런 아이리스를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레이라와 사이좋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레이라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 아이리스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덩달아 강우의 표정도 시무룩해졌다.
‘내가 미친다 진짜.’
아이리스는 김시훈에게 말을 거는 것이 부끄럽다는 개똥같은 이유로 자신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문제는 성격이 워낙 비틀려 있다 보니 애초에 대화 자체가 명령조로 이뤄졌던 것.
강우 성격에 순순히 명령에 따를 일도 없으니 당연히 트러블이 일어났다.
‘근데 더 큰 문제는.’
아이리스가 그 트러블이라는 것을 꽤나 즐긴다는 것.
이제껏 황녀로 살아오며 명령에 거스르는 사람을 만날 일 없던 그녀는 강우의 신선한 반응을 오히려 반기고 있었다.
‘아니, 씨발.’
무슨 미연시에 나오는 아가씨 캐릭터니?
‘나, 나를 이렇게 대한 건 네가 처음이야!’ 뭐 이런 거야?’
“하아….”
강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수도에 도착해라.’
아무리 계획의 일부라고 해도 시건방진 아가씨를 상대해 주는 것은 지친다.
강우는 마음의 힐링을 위해 한설아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이쪽을 지그시 바라보는 한설아의 눈빛에서 섬뜩한 살기가 느껴졌다.
“어서 물 떠오라니까!”
“…….”
야, 시바.
‘빨리 수도에 도착해야 해.’
진짜 빨리.
제발 빨리.
계획이고 나발이고 좆된다, 이대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