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4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44화
(헬)파티 (1)
“그런 일이 있었군요.”
김시훈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쓰럽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아이리스의 오라버니가 레이날드였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강우는 파티원들을 불러 아이리스의 사정을 전했다.
“설마 사탄의 영향이 이런 머나먼 이계에까지 퍼졌을 줄은….”
김시훈은 분하다는 듯 입술을 짓씹었다.
분노의 대공, 사탄.
그가 마(魔)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악마.
사탄에 대해 떠올리니 가슴 속에 뜨거운 불길이 타올랐다.
자기도 모르게 뿜어져 나오는 짙은 살기에 강우가 김시훈의 팔을 잡았다.
“진정해, 시훈아.”
“아, 죄송합니다, 형님.”
김시훈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사탄이 죽은 지 1년이 넘게 흘렀는데도… 쉽게 잊혀지지가 않네요.”
잊혀질 리가 없다.
사실 김시훈은 사탄에게 승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를 죽인 것은 어디까지나 같은 사천왕 중 하나였던 라키엘이었다.
-나는 죽음이다. 나는 종말이다. 모든 분노한 자의 어버이이며, 분노 그 자체다.
자신을 바라보는, 금빛으로 빛나는 눈이 떠오른다.
서늘한 한기가 등골을 타고 흐른다.
주먹을 굳게 쥔다.
-나는 사탄이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의 기억이,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무력하게 무릎 꿇은 자신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면 두렵다.
무서워서 참을 수가 없다.
“시훈아.”
강우가 김시훈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두 사람의 눈빛이 교차했다.
강우는 피식 웃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 인마. 사탄은 죽었잖아.”
“그랬… 죠.”
김시훈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팔을 잡고 있는 강우의 손등에 손을 겹쳤다.
‘따듯하다.’
형의 온기가 서늘하게 식은 몸에 퍼졌다.
눈앞에 아른거리던 사탄의 환영이 사라졌다.
김시훈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면 아이리스 황녀님의 성격이 그런 것도… 레이날드 씨가 죽은 것과 연관이 있는 겁니까?”
“근데 아무리 오빠가 죽었다고 그 정도로 지랄 맞게 되는 게 말이 돼?”
차연주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아오, 진짜 며칠 동안 그 썅년 대가리 한 대 후려갈기고 싶은 거 간신히 참았네. 성격이 뭐 그렇게 개같이 꼬인 거야?”
거친 욕설과 함께 불만을 토했다.
차연주만큼 원색적인 욕은 하지 않았지만 다른 파티원들의 표정을 보니 그녀와 같은 의견인 것 같았다.
“나 아이리스 싫어. 자꾸 강우한테 치근덕거려.”
에키드나가 이를 갈며 강우의 팔을 잡아끌었다.
수도로 오는 며칠 동안 아이리스 때문에 강우와 거의 얘기도 하지 못했던 것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모양.
불만 가득히 양쪽 뺨을 부풀리고 있는 모습이 퍽 귀엽게 느껴졌다.
“마, 맞아요! 가, 강우 님한테. 막…! 마악!”
할키온이 부들부들 몸을 떨며 작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발록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왕에게 지나치게 무례하다. 만약 왕의 명령만 아니었다면 그년의 목을 바로 뜯어버렸을 것이다.”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리리스가 피식 웃는다.
“전 그래도 귀여워서 괜찮던데요?”
“그게 귀엽다고?”
차연주가 헛웃음을 흘렸다.
리리스는 답하지 않고 작게 웃었다.
“…예, 맞아요. 제가 생각해도 귀여운 것 같아요.”
차연주의 물음에 답한 것은 의외로 한설아였다.
“앞으로…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네요.”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흘렸다.
입으로는 웃고 있지만, 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왠지 모를 섬뜩한 감각이 차연주의 등골을 타고 퍼졌다.
“어, 어어.”
차연주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는 끄응, 침음을 흘렸다.
‘이렇게 평가가 바닥이어서야.’
리리스를 제외하고서는 다들 이를 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리스의 편을 들어주기로 결정한 이상 조금 곤란한 상황.
‘일단 아이리스의 성격을 고치는 게 시급할 것 같은데.’
이 부분이 좀 애매하다.
“나도 연주 말이 맞는 것 같아. 단순히 레이날드가 죽어서 성격이 저렇게 된 것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그렇게 보기에는 피델리오에 대한 아이리스의 반응이 너무 격렬하다.
‘아무래도 피델리오가 연관된 것 같은데 말이야.’
만약 그렇다면, 강우로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피델리오를 제거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 될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잠시,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강우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확신하기는 어려운 추측이다.
“제가 한 번 가서 얘기해 볼까요?”
김시훈이 손을 들며 물었다.
“아니. 이건 내가 맡을게. 시훈이 너는 지금처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황녀와 친분을 쌓아줘.”
“으음. 알겠습니다.”
아이리스의 삐뚤어진 성격을 고치는 것.
사실 김시훈이 하는 것이 맞는 일이지만, 왠지 그에게 맡기는 게 불안했다.
‘시훈이 성격을 생각하면.’
이런 섬세한 작업에 대해서는 젬병일 것이다.
자신이 일일이 대사 하나하나까지 지시해주는 것도 피곤한 일이니 그냥 이 부분은 직접 해결하는 것이 편했다.
“그러면 일단 계속 이렇게 황성에 있는 거야?”
차연주가 입술을 삐쭉 내밀며 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강우가 입을 열었다.
“아니, 그건 너무 비효율적이야.”
사실 이번 계획에는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은 필요 없었다.
‘아니.’
김시훈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이렇게 많은 인원은 방해였다.
‘그리고 언제 하이엘프가 현신하는지 정해진 게 아니니까.’
이대로 하이엘프 하나에만 기댄 채 손 빨며 구경할 수는 없었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파티를 반으로 나누자.”
“파티를….”
“반으로 나누자고요?”
차연주와 한설아가 두 눈을 부릅떴다.
“시훈이를 구원자로 만드는 일을 하는 동안, 다른 파티는 마신의 시체에 관한 단서가 될 수 있는 걸 찾는 거야.”
“자, 잠깐 그 말은….”
몇몇 파티원들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파티를 나눈다는 것은, 당연히 강우와 떨어지는 파티가 생긴다는 의미였다.
“저, 저는 강우 씨랑 같이 있을 거예요!”
한설아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강우는 픽 웃었다.
“2파티는 생각해 둔 멤버가 있어.”
이번 계획에 큰 비중이 없는 파티원들.
“발록, 연주, 에키드나, 할키온, 그리고 레이라 씨까지.”
전부 이번 계획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없는 멤버였다.
리리스의 경우 ‘진짜 계획’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파티원이었고, 베르나크의 경우 언데드를 통해 계획의 디테일을 살릴 수가 있다.
김시훈이야 말할 것도 없다.
‘설아가 좀 애매하긴 한데.’
환하게 밝아진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를 보니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한설아의 경우 예전에 타천(陀天)한 경력도 있으니 최대한 자신이 붙어서 케어해 줘야 한다.
‘아직은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니까.’
현재 한설아를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은 리리스와 자신 정도였다.
리리스와 강우 둘 다 1파티에 남아 있는 이상 한설아와 함께 있을 수밖에 없다.
“아….”
“뭐, 뭐야! 내가 왜!”
강우의 말이 끝나자 희비가 엇갈렸다.
차연주는 발끈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뿌득뿌득 이를 간다.
“왜, 나랑 떨어져서 싫어?”
“아, 아니거든! 귀찮게 밖에 나돌아다니기 싫어서 그런 거거든!”
강우는 낄낄 웃으며 고갤 돌렸다.
“2파티의 리더는 발록, 네가 맡아.”
“알겠습니다.”
발록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이곳에 남아 있어봤자 딱히 할 게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모양.
“…강우.”
에키드나가 글썽거리는 눈으로 강우의 옷깃을 잡았다.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래 떨어져 있을 건 아냐. 그리고 본체로 돌아오면 금방 날아올 수 있잖아?”
“우으. 알았어.”
에키드나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주먹을 굳게 쥔 채 콧김을 뿜었다.
“흐응! 내가 금방 찾아서 강우한테 알려줄게.”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강우는 픽 웃으며 답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단서라도 찾으면 다행이지.’
왜 괜히 에르노어 대륙에 종말의 위기를 불러와 하이엘프를 현신시킨다는 귀찮은 선택지를 골랐겠는가.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마신의 시체를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파티를 나눈 목적은 ‘진짜 계획’에서 김시훈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목적이 더 크다.
‘그럼 다음은….’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피델리오 가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귀족들을 불러 성대한 파티를 열어야겠네요.
‘파티라.’
강우는 짙게 웃었다.
‘좋은 무대가 만들어지겠어.’
* * *
발록이 2파티를 이끌고 황성을 나섰다.
처음 그 소식을 듣고 당황하던 아이리스는 김시훈이 황성에 남아 있다는 말에 안도한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강우는 파티에 필요한 여러 준비를 했다.
그중 하나는 현재 에르노어 대륙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
그 부분에서는 황성을 나와 대륙을 돌아다니고 있는 2파티의 도움을 받았다.
‘평화의 시대라.’
현재 에르노어 대륙의 상황을 간략히 말하면, 딱 그 말이 맞았다.
악신 루시퍼를 추종하는 세력은 몇 년 전 갑작스럽게 자취를 감춘 루시퍼 때문에 소수의 세력만이 남았다고 한다.
대륙의 북쪽에서부터 무수한 언데드를 끌고 여러 왕국을 침공했던 마왕 발자하크도 영웅 레이날드의 눈부신 희생으로 퇴치한 상황(적어도 그렇게 알려져 있다).
악신 루시퍼가 나타난 이후 처음으로 대륙은 마(魔)가 들끓지 않는 평화의 시대를 맞이했다.
‘별로 평화의 시대 같지는 않다만.’
강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평화의 시대라는 말과 달리 아르난 제국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 대륙인들의 머릿속에 악마에 대한 공포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 정도.
놀랍게도 지금 아르난 제국의 상황이 전쟁 당시보다는 훨씬 살만하다고 한다.
-쾅쾅!
생각에 잠긴 채 현재 대륙 상황에 대해 얻은 정보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있을 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달칵,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강우 씨, 준비 끝나셨나요?”
“아, 응.”
강우는 생각을 멈추고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와아.”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새하얀 파티 드레스를 입은 한설아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잘… 어울리나요?”
한설아가 조금 과하게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최곤데.”
강우는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한설아가 배시시 웃는다.
“그럼 슬슬 가볼까.”
강우는 한설아의 손을 가볍게 잡고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피델리온이 말했던 파티가 개최되는 날이었다.
황성은 낮부터 들이닥친 각지의 귀족들로 인해 북적거리는 상황.
김시훈의 압도적인 무위에 대한 소문을 들은 귀족들은 낮부터 그를 찾아가 각종 선물 공세를 하며 환심을 사고 있었다.
강우는 창문 밖으로 황성을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오늘.’
김시훈을 위한 (헬)파티가 이 황성에서 개최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