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4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48화
악신의 재림 (2)
[걱정하지 마시오, 나의 그대여.]루시퍼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중년 여인을 진정시켰다.
[우리 루시스가 살아갈 터전은 이미 생각해 뒀소.]“그, 그게 어디죠?”
그녀는 떨리는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루시퍼는 김시훈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구, 라는 세계가 있소.]“…지구.”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지 중년 여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곳에서 우리는 새롭게 출발할 거요.]“다른 세계라니….”
생각하지도 못한 발상에 중년 여인은 꿀꺽 침을 삼켰다.
확실히 나쁜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그녀는 환희에 찬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 라고?”
김시훈이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그는 바스러질 듯 거칠게 검자루를 움켜쥐며 외쳤다.
“네 뜻대로 놔둘 것 같으냐!”
울부짖듯 말했다.
에르노어 대륙도 모자라 지구까지 노리려는 악마를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김시훈은 루드비히에 내공을 쏟아부으며 길게 검강을 뽑아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자세를 취하는 김시훈을 바라보며 루시퍼는 손을 들었다.
[오늘은 너와 나의 무대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여기까지 와서 무슨 또 개소리야!”
루시퍼는 피식 웃으며 황성 위에 나타난 검은 균열을 가리켰다.
끔찍한 녹색 촉수가 꾸물거리고 있는 균열.
그 속에서 파티장을 습격했던 언데드 마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문제는.
“이, 이런 미친….”
그들이 제국 황성이 아닌 수도를 향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정도로 김시훈은 멍청하지 않았다.
“너 이 미친 새끼가!!”
저 마물들이 수도에서 날뛰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무수한.
정말 무수한 인간들이 마물의 손에 뜯어먹히게 될 것이다.
평화롭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이 살아가고 있던 제국 수도에 말 그대로 지옥이 펼쳐지는 것이다.
“저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아!!”
그렇다.
루시퍼가 정말로 저 중년 여인을 위해 복수를 하는 거라면.
복수의 대상은 응당 귀족들이 되어야 옳다.
[그렇다.]루시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한심하게 불평불만을 쏟아낼 뿐이었다. 술자리에 앉아, 세상은 잘못됐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뿐이다. 마치 그러면 세상이 바뀌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지.]오만한 눈빛으로 세상을 굽어본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사고하지 않았다.
반항하지 않았다.
행동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비참한 가축처럼 살아가면서도,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지.]그것이.
[그들의 죄다.]루시퍼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쩌적. 그의 앞에 3미터 정도 되는 크기의 균열이 생겼다.
한 걸음, 한 걸음.
균열로 다가간다.
“어딜!”
이대로 루시퍼를 놓칠 순 없었다.
김시훈은 다급히 발을 박차려고 했다.
[나를 상대할 여유가 있나?]그 한 마디에, 내딛던 발이 멈췄다.
[아직 황성 안에 있는 것들도 정리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루시퍼는 슬쩍 시선을 옮겼다.
그의 말마따나, 주변에는 수백에 달하는 마물이 남아 루시퍼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나의 종들에게 명하노라.]천천히 손을 들어, 김시훈 뒤쪽에 있는 아이리스 황녀를 가리킨다.
“히익!”
아이리스 황녀가 몸을 웅크린 채 비명을 질렀다.
아랑곳 않고,
선언한다.
[죽여라.]“키에에에에에엑!!!”
“크르르르!!”
그와 동시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마물들이 몸을 일으켰다.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며 아이리스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들었다.
“크읏!”
김시훈은 루시퍼에게 달려들려던 몸을 비틀어 마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럼.]루시퍼는 뒤돌아선 채 손을 저었다.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지.]검은 균열 속으로 루시퍼는 사라졌다.
* * *
수도 밖.
어둠이 내려앉은 들판으로 걸어 나왔다.
[후우.]강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의태의 지속시간은 넉넉한 모양인지, 아직 그는 루시퍼의 모습이었다.
[일단 첫 단추는 성공….]“루시퍼. 왜 벌써 돌아오신 거예요?”
아니 이 아줌마는 또 왜 따라왔어.
강우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따라온 거야.’
그가 권능으로 만들어낸 검은 균열은 마기를 지닌 존재만 통과할 수 있는 악마 전용 게이트였다.
그런데 저 여인이 아무렇지 않게 따라 들어왔다는 의미는.
‘역시 단순한 인간은 아니었구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짙은 마기.
저런 마기를 지니고도 악마나 마물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는 그 정도로 완벽하게 마기를 다루고 있다는 의미였다.
‘흑마법사, 라고 했던가.’
에르노어 대륙에는 그녀처럼 인간의 모습을 유지한 채, 마기를 다루는 인간들이 있다고 들었다.
“제 눈앞에서 귀족들을 갈가리 찢어버리시는 것 아니었나요?”
중년 여인은 이제 막 피의 복수를 시작하려고 하던 참에 돌아온 루시퍼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강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죽일까?’
더 이상 김시훈이 보고 있는 것도 아니니, 가면을 벗어던지고 그녀를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냐.’
잠시 생각을 이어가던 강우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루시퍼의 아내, 라는 귀중한 말을 여기서 버릴 수는 없었다.
‘나중에라도 쓸모가 있을 거야.’
아직 진짜 루시퍼가 어디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저 여인이 있다면 그와의 연결고리가 되어 줄 수도 있었다.
[아니, 오늘은 아직 때가 아니오.]“뭐가 때가 아니라는 거죠! 조금만 더하면 다 죽일 수 있었는데!”
중년 여인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다.
일그러진 얼굴에서 끔찍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마녀.’
순간적으로, 그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악에 받친 채 광기를 쏟아내는 그녀의 모습은 딱 마녀 그 자체였다.
‘마녀라.’
고작?
강우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은발을 쓸어 넘기며, 뺨을 쓰다듬었다.
“…….”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지.]“…예?”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소.]낄낄.
광기에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오로지 삶만이 고통이지.]“아….”
여인의 몸이 떨렸다.
두 눈을 크게 떴다.
루시퍼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녀는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이렇게 쉽게 복수를 끝내도 좋겠소?]“아, 아뇨! 제가 당한 게 얼마인데, 이렇게 끝낼 수는 없죠!”
여인은 미친 듯이 머리를 끄덕이며 답했다.
강우는 씩 웃었다.
[그러면 날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오.]“예, 기다릴게요. 얼마든지 기다릴게요, 나의 사랑.”
중년 여인이 강우의 품에 안겼다.
다시 한번 짙은 키스가 이어졌다.
“루시퍼….”
여인은 몽롱한 눈빛으로 입고 있는 드레스를 슬쩍 끌어내렸다.
‘워워.’
아줌마 진정해요.
컴 다운, 컴 다운
“하응, 루시퍼….”
컴 다운!
씨발, 컴 다우우우운!
[미안하오. 이제는 가봐야 할 시간이오.]“가봐야 하다뇨? 서, 설마 또 제 곁에서 사라지는 건가요?”
[…….]루시퍼는 쓸쓸한 눈빛으로 몸을 돌렸다.
[그대와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오.]“가, 가지 말아요, 루시퍼! 나도 같이 가요!”
[그럴 수 없소.]“대체 왜….”
[그것 또한… 지금은 말할 수 없소.]루시퍼는 가늘게 어깨를 떨더니, 다시 한 번 몸을 돌려 거칠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언젠가… 언제가 그대에게 모두 말해주겠소.]“…루시퍼.”
여인의 뺨을 타고 투명한 눈물이 흘렀다.
루시퍼의 몸이 점차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루, 루시퍼!”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루시퍼를 붙잡았지만, 허망하게 손 틈으로 빠져나갈 뿐이었다.
연기가 되어 사라져가는 루시퍼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두 사람의 손이 허공에서 겹친다.
“예! 기다릴게요, 루시퍼! 얼마나 더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당신을 기다릴게요!
그녀의 마지막 외침을 듣지 못하고, 루시퍼의 몸은 완전히 사라졌다.
* * *
“하아, 하아!”
수백에 달하는 마물을 쓸어버린 김시훈의 입에서 거친 숨이 토해졌다.
녹색 촉수가 돋아난 마물은 처음 파티장을 습격했던 마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근위대! 근위대가 왔다아!”
“이제까지 뭘 하다 온 겐가!”
중간에 제국 근위대가 나타나 협력하지 않았더라면 몇 명은 죽었을 수도 있다.
마물들을 모조리 처치하는 데 성공한 김시훈은 다급히 몸을 돌렸다.
황성을 습격한 마물은 다 정리가 되었지만, 아직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수도가 위험해.’
허공에 나타난 균열에서 쏟아진 마물들이 수도로 향하고 있다.
“황녀님! 어서 수도로 향하고 있는 마물들을 막아야 합니다!”
“예, 예! 알겠어요!”
아이리스 황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근위병에게 고개를 돌렸다.
“근위병들은 들어라! 지금 당장 황성 밖으로 나가 제국 신민들을 구하…!”
근위병들에게 명령하던 아이리스의 표정이 갑작스럽게 굳었다.
그녀의 표정이 파랗게 질린다.
“어…? 왜, 왜?”
아이리스는 이해할 수 없듯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녀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황녀님?”
김시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리스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 근위병은… 여, 여기에 남아 황성을 지켜라.”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김시훈이 두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마물들이 수도로 몰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근위병들을 황성에 두다니?
“아으….”
아이리스는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김시훈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떨궜다.
드레스를 움켜쥔 주먹이 애처롭게 떨렸다.
“아, 아직 황성에 마물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 근위병들은… 화, 황성을 지켜라.”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
김시훈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황녀님!”
뿌드득.
김시훈은 거칠게 주먹을 쥐었다.
아이리스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제길!’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김시훈은 거칠게 몸을 돌렸다.
황성에서 수도로 이어지는 통로를 향해 달려갔다.
그곳에는 균열에서 쏟아진 마물들이 수도로 빠져나가기 위해 모여 있었다.
어째서인지 그들은 굉장히 느릿하게 통로를 지나고 있었다.
“키에에에엑!!”
“크읏!”
김시훈은 수도로 향하는 통로를 막아선 채, 검을 쥐었다.
균열에서 쏟아진 마물은 어림잡아 수백.
‘지킨다.’
김시훈은 고개를 쓸쩍 뒤로 돌렸다.
야밤 중의 소란에 밖으로 나온 제국 신민들이 당황한 시선으로 마물과 대치하고 있는 김시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에 뜨거운 불이 타오른다.
‘무슨 일이 있어도!’
-파아아앗!!
김시훈의 몸을 타고 새하얀 빛이 폭발했다.
어둠에 물든 땅이 밝게 타올랐다.
* * *
“제길, 제길, 제길!”
화려한 방 안.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노인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흘러나왔다.
“아, 악신 루시퍼라니… 가, 갑자기 무슨 일이야 이게!”
그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거칠게 표정을 일그러트린다.
“이런 상황에서 근위병을 밖으로 보낸다고? 미친년!”
씨익, 씨익.
피델리오의 어깨가 분노로 떨렸다.
그는 손에 쥔 투명한 구슬을 바스러지라 움켜쥐었다.
텔레파시 마법이 들어있는 마도구.
단순히 음성을 흘려보내는 통신 구슬과는 달리 정해진 대상의 머릿속에 직접 말을 흘려보내는 고급 마도구였다.
만약 자신이 재빠르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아이리스는 근위병을 수도로 보냈을 것이 틀림없다.
“아무래도….”
피델리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다시 한번 그녀를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후우.”
깊게 숨을 토해내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최근 들어 순탄하던 그의 계획이 망가져 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멍청한 놈들이 흑마법사랑 손을 잡은 것도 그렇고… 대체 이게 무슨.”
그가 각종 무구와 훈련 교관을 지원해준 반란군이 뜬금없이 흑마법사와 손을 잡아버렸다.
심지어 그러고도 실패까지 했다.
‘무능한 새끼들.’
피델리오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똑똑.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달칵.
방문이 천천히 열린다.
“자네는….”
피델리오는 방 안으로 들어온 불청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무사하셔서 다행이네요.”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전에 한 번 뵌 적 있죠? 오강우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