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60)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61화
광기는 더욱 큰 광기 앞에 고개를 숙인다 (1)
“뭐야, 씨발.”
거기서 내 이름이 왜 나와.
강우의 눈빛이 떨렸다.
다급히 고개를 들어 아이리스 쪽을 바라본다.
이쪽을 바라보는 그녀의 입가에는 짙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광기에 젖은 눈빛으로 더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듯 몸을 파르르 떨고 있다.
“야, 이 개….”
뒷골이 띵, 하고 울렸다.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왜?
의문이 떠올랐다.
그 해답까지 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간단한 이유다.
이제까지 눈치채지 못한 것이 우스울 정도로, 단순한 이유다.
‘아이리스는.’
언제부터 김시훈이 아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왜 자신은 그러한 감정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걸까.
“…….”
강우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이유는 알고 있다. 뼈저리게.
그는 감정이라는 것에 기본적으로 민감하다.
잘 알고, 잘 다룬다.
악마였기 때문이다. 만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을, 욕망과 욕망이 얽히는 세계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타자가 보내오는 호의(好意)만은 잘 알지 못했다.
느끼지 못했다.
무뎌졌거나, 망가졌다고 해도 좋다.
지나칠 정도로 오랜 시간 경험하지 못했다.
그의 삶은 언제나 처절한 전투의 연속이었고, 생존의 연장이었다.
승리에 관련되지 않은 감각은 자연스럽게 마모되어 갔다.
명확하게 언어로 전달하는 호의가 아니라면 그는 그 미묘한 변화를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놓쳤다.
그렇기에 실수했다.
‘제길, 요즘 좀 나아진 줄 알았더니.’
한설아를 만나면서 많이 알게 되었다 자부했지만 오판이었다.
주변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강우?”
“누구야 그게?”
“제국을 구한 영웅이면 당연히 김시훈 님 아닌가?”
환호성을 내지르던 사람들은 전혀 예상도 하지 않았던 이름이 나오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했다.
지구에서야 강우의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졌다고 하지만 에르노어 대륙에서 그를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니까.
강우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겼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위험해.’
강우는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가 의도적으로 정체를 숨긴 이유는, 그만큼 하이엘프의 이목을 김시훈에게 쏠리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갑자기 제국민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하이엘프의 관심 또한 그를 향한 것이다.
최악의 경우, 예언의 악마라는 사실이 들키게 된다.
‘아니, 그래도 가이아 보증 수표가 있으니 어느 정도는 괜찮겠지만.’
빛의 수호자가 되면서 그는 신격(神格)을 지닌 존재에게 가이아의 권속이라 인식된다고 했다.
하이엘프 또한 쉽사리 그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그가 그리고 있던 그림이 찢어 발겨진 것은 사실.
강우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다소 억지를 써서라도, 지금 일을 해결해야 한다.
“강우 님….”
아이리스가 촉촉이 젖은 눈빛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제게도 반지를 주세요.”
입가를 올리며 속삭이듯 했다.
뒤틀린 욕망으로 반짝이는 시선이 강우를 향했다.
그리고.
‘종속의 권능.’
강우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이리스의 옆에 선, 김시훈과 의식을 동조했다.
그는 계획으로 들었던 것과는 전혀 달라진 전개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훈아.
“혀, 형님?”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분명 계획대로라면….
-아이리스가 멋대로 한 짓이야.
-그렇다면….
김시훈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강우 쪽을 바라봤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무언가 말하려던 김시훈은 이내 굳게 입을 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의 지시가 이어졌다.
김시훈은 강우를 향해 걸어가는 아이리스의 손을 붙잡았다.
“아이리스 님. 그 이름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잘못 알아듣지 않겠습니까.”
“으, 응?”
아이리스는 갑자기 김시훈이 손을 붙잡자, 뭔 소리냐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이름은… 우리 둘만 있을 때 부르셔야죠.”
김시훈은 희미하게 웃으며 아이리스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는 아이리스의 손을 잡아끈 채, 음성 증폭 마도구 앞에 섰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아르난 제국민이 아닙니다.”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저희 고향에서는 아이에게 두 개의 이름을 붙여줍니다.”
김시훈을 통해 말이 되지 않는 개소리를 쥐어짜내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잖아.’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는 중이다.
당연히 억지스럽고, 궁색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강우는 눈을 빛냈다.
어차피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말을 듣는다.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김시훈과 아이리스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통할 거야.’
다소 억지스럽다고 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해도.
통한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이름을 물려받죠. 아이리스 님이 말한 것은 어머니에게 받은 이름입니다.”
“오오.”
광장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해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오, 그런 것도 있어? 근데 그러면 결국 김시훈 님이 아이리스 님과 결혼한다는 거지?’라는 듯한 느낌의 탄성.
김시훈은 활짝 웃었다.
“예, 저와 아이리스 황녀님은 혼약을 맹세했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휘익! 휘익!”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리둥절하던 사람들이 다시금 휘파람을 불며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이익, 아, 아니야! 나는….”
아이리스가 사납게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무언가 소리치려고 했다.
그때 강우가 나섰다.
“아이리스. 잠깐 이리로 와.”
“강우 님?”
최대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아이리스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김시훈이 주의를 끄는 사이 아이리스를 단상에서 내려오게 만들었다.
화난 표정으로 그녀를 쏘아봤다.
“뭐 하는 짓이야 이게?”
“그, 그게.”
아이리스는 우물쭈물 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강우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 나름 궁색한 변명을 쥐어짜내기 시작했다.
“제국 부흥을 위해 제국의 영웅과 약혼을 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강우 님도 어엿한 영웅인데,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이번에 강우 님의 업적에 대해 공표하려고….”
강우의 사정을 모르는 그녀는 그의 업적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
강우는 팍 얼굴을 구겼다.
“누가 멋대로 그런 짓 하래?”
“죄, 죄송합니다.”
아이리스는 풀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강우는 갑자기 단상에서 내려간 아이리스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쯧, 혀를 찼다.
“일단 나중에 얘기하자. 다시 올라가서 마저 연설 끝내.”
“…예.”
아이리스는 살짝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그 뒤로 연설은 별 탈 없이 성황리에 끝났다.
사람들은 김시훈과 아이리스의 이름을 연호했고, 두 사람도 최대한 사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단상에서 내려왔다.
연설을 끝까지 지켜본 강우는 방안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쓰러지듯 눕자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미리 눈치채지 못한 죄도 있지만.’
아이리스의 독단적인 행동이 더욱 책임이 크다.
‘좀 엄하게 말하긴 해야겠네.’
이제까지는 아이리스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 때문에 엄하게 말하기 힘들었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곤란하다.
강우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에 손을 올렸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
아이리스의 감정을 알았다고 해도 특별히 바뀌는 것은 없다.
한설아가 있는 이상, 다른 여인에게 손을 뻗을 생각은 없었다.
“…응?”
그때, 머릿속에 무언가가 걸렸다.
‘설아?’
그러고 보니, 연설 중간부터 한설아가 보이지 않았다.
강우의 표정이 창백하게 굳었다.
“잠깐만.”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강우는 아이리스의 방으로 달려갔다.
-쾅!
거칠게 문을 연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런 씨발.”
휑하니 빈방에서 아이리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 *
칠흑으로 물든 방 안.
의자에 묶인 금발의 여인이 천천히 눈을 떴다.
“으, 응?”
눈을 뜬 아이리스는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여, 여긴 어디야?”
아이리스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찰그락.
쇠사슬이 스치는 소리가 울렸다.
그제야 아이리스는 자신이 쇠사슬에 결박당해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뭐, 뭐야?”
등골을 타고 섬뜩한 공포가 번진다.
아이리스는 기억을 더듬었다.
‘연설이 끝나고… 시훈 님과 헤어지고 방에 들어온 다음….’
거기서 더 기억이 이어지지 않는다.
“이익! 이이익!”
아이리스는 미친 듯이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은은하게 빛나는 쇠사슬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끼익.
“누, 누구야?!”
방문이 열렸다.
아이리스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보인 것은.
“한, 설아…?”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는 여인이 보였다.
한설아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번에는 아주 재미있는 짓을 하셨더라고요.”
“읏….”
“제가 전에 분명 말씀드렸죠?”
한설아는 의자에 묶인 아이리스의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섬뜩한 살기가 흐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조용히 찌그러져 있으라고.”
“이익…!”
아이리스가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그녀는 한설아에게 달려들 듯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외쳤다.
“시끄러워! 강우 님은 너 같은 것보다 나를 더 좋아하신다고!”
울부짖듯 소리쳤다.
강우와 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피델리오의 몸을 찌르며 교차했던 감정.
그때 느꼈던 감정을, 그때 느꼈던 열락을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다.
분명 그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이제… 강우 님이 아니면… 안 된다고.”
아이리스는 광기 어린 눈빛으로 한설아를 쏘아보았다.
그는 자신을 구원했다.
아니, 자신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등을 떠밀어주었다.
이제까지 레이날드의 그림자 속에, 몸을 웅크려 숨어 있는 자신을 밖으로 꺼내주었다.
“…….”
침묵이 내려앉았다.
한설아는 몸을 숙인 채, 배를 움켜쥐었다.
“푸훕.”
억눌린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강우 씨가 당신을 더 좋아한다고요?”
비웃듯, 입가를 올렸다.
“헛소리도 정도껏 하세요, 아이리스 씨. 이걸 보시고도 그런 말이 잘도 나오시네요.”
한설아는 왼손에 낀 반지를 그녀의 앞에서 흔들었다.
“…….”
아이리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설아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왔다.
손을 들어, 천천히 뺨을 쓰다듬었다.
“사실 리리스 씨도, 에키드나도, 연주…까지도 괜찮았어요. 참을 수 있었어요.”
이해할 수 없는 말.
“하지만.”
한설아의 눈빛에서 빛이 사라진다.
초점을 잃은 눈빛이 아이리스를 향했다.
“당신은 안 돼요.”
당신 같은 사람은,
“강우 씨에게 다가가게 둘 수 없어요.”
“읏…! 왜, 왜 나한테만 그러는 건데!”
아이리스가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외쳤다.
한설아는 그녀의 뺨을 쓰다듬고 있는 손을 천천히 내렸다.
“왜냐하면요.”
뺨에서 턱으로.
“당신은.”
턱에서 목으로.
“강우 씨를 사랑하는 게 아닌걸요.”
목에서 가슴으로.
“…뭐?”
아이리스의 표정이 굳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 멍한 눈빛.
“그게 무슨 말이야!”
사납게 외친다.
한설아는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말이냐고요? 그건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잖아요.”
“나는 강우 님을 사….”
“사랑한다고요?”
한설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당신은 강우 씨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섬뜩한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아이리스의 두 눈을 응시했다.
“당신은 강우 씨를 이용하려는 거예요.”
“…뭐?”
“무슨 이유로 갑자기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리스 씨는 그냥 ‘의지할 곳이 필요해서’ 강우 씨를 바라고 있을 뿐이라고요.”
아이리스는 평생을 누군가에게 지켜지며 살아왔다.
레이날드에게.
김시훈에게.
그리고.
“죽은 오빠를 대신할 사람으로 강우 씨를 택했죠.”
“아, 아냐!”
아이리스가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
레이날드를 대신할 사람으로 강우를 선택했다니.
간신히 그림자 속에서 빠져나와, 두 발로 설 수 있게 됐는데.
또 다른 사람의 그림자 속에 몸을 웅크리려고 했다니.
그럴 리가 없다.
“아니라고요?”
한설아는 짙게 웃었다.
깔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다시금,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이리스는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아냐….”
아니야.
“나는 강우 님을 사랑한다고.”
그의 뒤에 숨기 위해 그를 바랐던 게 아냐.
“네가, 네가 뭘 안다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발작하듯 외쳤다.
광기에 찬 목소리.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한설아를 노려보았다.
한설아는 입술을 핥으며 허리를 숙였다.
의자에 앉은 아이리스와 두 눈을 마주친다.
“몰라도 상관없어요. 사실 제가 틀렸다 해도 상관없죠.”
설사 당신이 정말로 강우 씨를 사랑하고 있다 해도.
“이제 당신은 더 이상….”
천천히 손을 뻗었다.
무시무시한 기운이 그녀의 몸을 통해 쏟아졌다.
“히익!”
아이리스는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한설아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의 등 뒤에 새하얀 날개가 펼쳐졌다.
광기가,
아이리스가 지닌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짙은 광기가 그녀에게서 흘러나왔다.
“더 이상 강우 씨를 사랑하지 못할 테니까요.”
등 뒤에 펼쳐진 열두 장의 날개가,
찬란한 빛을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