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62)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63화
그래서 님 티어는요? (1)
하늘이 맑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천사들이 부르는 노랫소리와 비슷하다.
구름 사이로 비친 따사로운 빛이 환하게 방안을 밝혔다.
“아아.”
이게,
이게 인생이란 말인가.
어쩌면 오늘을 맞이하기 위해 만 년이란 지독한 세월을 버텨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필시 그럴 것이다.
우수에 찬 눈빛으로 창밖으로 올려다보았다.
“…뭔 지랄이야?”
오후가 지나 그의 방에 찾아온 차연주가 거칠게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강우는 그녀를 바라보지 않은 채 창문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하늘이… 맑지?”
“비 오잖아.”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지 않니?”
“비온다고 미친놈아. 새가 어디 있어.”
“천사의 노랫소리처럼 들려….”
“…하.”
차연주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강우는 픽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우매한 중생을 바라보는 듯한 오만한 눈빛을 그녀에게 향한다.
차연주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진다.
“대체 뭔데.”
지나칠 정도로 기분 나쁜 눈빛에 절로 사나운 말투가 흘러나왔다.
강우는 그런 그녀의 반응을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헤실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내가 어떻게 보여?”
“병신새끼처럼 보여.”
“뭔가 새롭게 느껴지지 않아?”
“뇌가 좀 새로워진 것 같긴 하네.”
신랄한 독설이 이어졌다.
평소라면 가만히 독설을 듣고 있을 성격의 강우가 아니었지만, 지금 그는 달랐다.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성자(聖者)의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
차연주는 쩍 입을 벌렸다.
소름이 돋는다는 듯 양팔을 비볐다.
“대체 뭔 일이야 너? 머리에 총이라도 맞았냐?”
의미 없는 가정이다.
에르노어 대륙에 총이 있을 리도 없고, 설사 있다고 해도 강우의 피부조차 뚫지 못할 것이다.
아니, 실제 머리통에 총알이 박혀도 강우는 멀쩡하다.
그리고 그런 점은 차연주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잠깐….”
차연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사 빠진 것처럼 웃고 있는 강우의 모습과 잠을 대체 어떻게 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난장판이 난 침대의 모습.
그 사실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얼씨구.”
차연주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강우를 바라보았다.
“어째 잠도 거의 안 자는 놈이 낮까지 모습도 안 비친다고 했더니, 아주 살판났네, 살판났어.”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자 뒷골이 당겼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차오른다.
마음 같아서는 헤실헤실 웃고 있는 강우의 뺨이라도 한 대 후려치고 싶은 심정.
괜한 짜증을 부리며 근처의 의자를 걷어찼다.
-파각.
의자가 박살났다.
“강우 씨, 누가 오셨나요?”
그때, 한설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손에 보글보글 끓고 있는 냄비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생각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리라.
“읏…!”
차연주의 몸이 움찔 떨렸다.
최근 한설아의 상태가 많이 이상하다는 것은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한설아의 앞에서 자신과 강우가 단둘이 있는 모습을 보이기라도 했다가는 무슨 참사가 일어날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이건, 그, 그그그그러니까.”
차연주는 어버버 말을 더듬으며 뒷걸음질 쳤다.
“어머, 연주도 와있었네?”
한설아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 위에 냄비를 올려뒀다.
“잘됐다. 연주 너도 같이 먹어.”
“…엥?”
차연주는 동그랗게 눈을 떴다.
최근 들어 강우만 관련되면 사방에 살기를 뿌리던 그녀의 모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태도.
처음 한설아를 만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강우 씨, 잘 주무셨어요?”
한설아는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강우에게 다가갔다.
가볍게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응.”
강우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훗. 식사 준비 끝났어요. 이만 일어나세요.”
한설아는 강우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
차연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절로 한숨이 흘러나온다.
“에휴. 끼리끼리 잘들 논다, 아주.”
커플 죽어라.
제발 죽어라.
“어머, 밥 안 먹고 가게?”
“…그 사이에 끼고 싶지는 않은데.”
“그런 말 하지 말고 와서 같이 먹어.”
한설아는 밝게 웃으며 차연주의 손을 잡았다.
차연주는 잠시 고민하다가 자리에 앉았다.
한설아는 강우의 옆자리에 앉고는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장어와 마늘이 가득 담긴 김치찌개의 모습이 드러났다.
“…뭐?”
장어?
“호호호, 많이 드시고 잔뜩 기운 차리세요, 강우 씨.”
“잘 먹을 게 임자.”
“아니, 아니, 아니, 잠깐만.”
차연주가 다급히 손을 저었다.
“김치찌개에 장어라고?”
듣도보도 못한 조합이다.
“왜? 평소에 이렇게 자주 먹는데?”
강우가 무슨 문제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
차연주는 굳게 입을 다물더니, 한설아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한설아는 강우의 앞 접시에 김치찌개를 덜어주며 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
차연주는 측은한 눈빛으로 잠시 강우를 바라보았다.
“왜?”
“아니, 아니다.”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강우는 한설아가 덜어준 김치찌개를 먹으며 말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아.”
그제야 차연주는 강우의 방에 찾아온 목적을 떠올렸다.
“아이리스가 깨어났어.”
“아, 그래?”
강우는 먹고 있던 그릇을 살짝 내려놓으며 물었다.
“상태는 좀 어때?”
“좀 이상해. 뭔가 겁에 질렸다고 해야 하나? 일어나자마자 엄청 떨고 있던데.”
“…….”
움찔. 한설아의 어깨가 가볍게 떨렸다.
그녀는 죄책감에 가득한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봤다.
“아, 그리고 그… 아이리스의 몸에서 묘한 기운이 느껴지더라고. 가끔 황금빛 오라 같은 게 몸 주변에 뿌려지기도 하고.”
“음.”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한설아에 의해 아이리스의 안에 잠들어 있던 하이엘프의 힘이 각성했기 때문이리라.
“근데 애초에 왜 그 계집애가 기절해 있던 거야? 무슨 일 있었어?”
“좀 사정이 있어서.”
강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피했다.
천사의 본능이 폭주한 한설아가 아이리스를 납치해서 협박했다는 것을 어찌 말할 수 있을까.
“아이리스는 내가 나중에 한 번 찾아가 볼게.”
“아니에요.”
한설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강우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갈게요, 강우 씨.”
“…설아 네가?”
강우는 난처한 표정으로 한설아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효과만 있을 것 같았다.
한설아는 죄책감에 물든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가 직접 사과드려야 할 것 같아요.”
“음….”
강우는 침음을 흘렸다.
납치한 당사자가 직접 찾아가는 것이 썩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굳은 의지가 담긴 눈빛을 보고 무작정 말리기는 또 애매했다.
“알았어. 그럼 아이리스는 임자한테 맡길게.”
어젯밤의 결실(?)로 인해 한설아의 정신은 많이 안정된 상태였다.
‘언제 재발할지 모르겠지만.’
본능이 가져다주는 충동이 얼마나 강렬한지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한설아가 품고 있는 존재가 세라핌인 이상, 그녀의 집착이 언제 다시 폭발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도.’
강우는 고개를 돌려 한설아를 살폈다.
아이리스에 대한 죄책감과 걱정으로 가득한 표정은 그가 익히 알고 있던 상냥하고 착한 한설아의 모습이었다.
‘당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으려나.’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지만, 적어도 바로 다시 폭주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사과? 설아 너 아이리스한테 무슨 짓이라도 한 거야?”
“아…. 그, 그게.”
“왜, 혼쭐 좀 내줬어?”
차연주는 실실 웃으며 물었다.
한설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뺨을 긁적였다.
“걔는 좀 당해도 괜찮아. 이제까지 우리가 참아준 게 얼만데.”
차연주는 손을 휘휘 저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 어쨌든 그 얘기 하려고 온 거야. 근데 누구씨는 아주 그냥 0킬 14데스한 원딜이 23킬 블라디 만난 것마냥 쫙 빨려 계시더라고. 아니, 이 경우는 탐켄치가 더 적절한가?”
“…뭔 말이야 그건.”
“흥, 원딜 CS나 뺏어 먹는 트롤러가 뭘 알까.”
강우의 눈썹이 올라갔다.
당최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굉장히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가늘게 눈을 뜨며 그녀의 약점을 입에 담았다.
“브론즈 주제에.”
“…….”
“저번에 궁금해서 한 번 검색해 봤거든. 거의 벌레나 다름없는 취급이던데?”
“아, 아니거든!! 내가 팀운이 없어서 그렇지 실력만 놓고 보면…!”
“그래서 님 티어는요?”
“이, 이 개자식이!”
차연주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반론을 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 앞에 좌절해 무너져 내리는 모습.
뭔가 몹시 통쾌한 기분이다.
방금 전에 느껴졌던 불쾌감이 말끔히 사라진 강우는 낄낄 웃었다.
“뭐, 잡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식기 전에 먹기나 하자고.”
“이익! 두고 봐! 내가 진심으로 안 해서 그렇지, 제대로만 하면 그깟 브론즈쯤은…!”
“그 피지컬을 가지고도 거기에 있는 것 자체부터 그냥 가망이 없어 보이는데 말이야.”
강우는 헛웃음을 흘렸다.
차연주와 몇 번 게임을 같이 해본 적이 있기에 그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애초에 차연주의 반응속도와 신체 능력을 갖추고도 벌레 취급을 받는 등급에 있는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다.
“닥쳐!! 네가 뭘 알아!”
아마도 저 불같은 성격이 문제가 됐겠지.
뭐,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다만.
강우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한설아가 만들어 준 김치찌개를 크게 떠서 먹었다.
“크으.”
역시 맛있어.
장어가 들어갔든 뭐가 들어갔든 역시 김치찌개는 김치찌개였다.
순식간에 밥 세 공기를 비운 강우는 빈 그릇들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이건 내가 치울게.”
“아뇨, 강우 씨. 제가 치울게요.”
“임자가 만들어줬잖아. 치우는 건 내가 해야지.”
강우는 몸을 일으키려는 한설아의 어깨를 잡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임자는 아이리스한테 가보기로 했잖아.”
“아….”
한설아는 그제야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떠올랐는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는 천공의 권능을 일으켜 냄비들을 공중에 띄웠다.
차연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 그럼 그릇 닦으러 가자.”
“…난 또 왜.”
“너도 먹었잖아.”
“네가 10배는 더 처먹었거든!”
차연주는 버럭 화를 내며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그럼에도 몸을 돌려 나가지 않고 툴툴거리며 강우의 뒤를 따랐다.
강우는 픽 웃으며 차연주와 함께 황실 주방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콰아앙!
황실 천장이 박살 나며 무언가 떨어져 내렸다.
강우는 차연주의 어깨를 붙잡아 뒤로 잡아당기며 앞으로 손을 뻗었다.
은은한 황금빛이 흘러나오는 방패가 전면을 막았다.
“뭐, 뭐야?!”
다급한 차연주의 목소리를 뒤로하며, 천장에서 떨어진 존재를 살폈다.
그곳에는.
“우리엘?”
“강, 우.”
피에 젖은 천사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그에게 내뻗고 있었다.
“지금, 빨리.”
비틀거리며 다가온다.
강우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무너지는 몸을 지탱한다.
걸레짝이라도 불러도 좋을 만큼 전신에 상처가 가득한 천사는, 쥐어짜 내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망, 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