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6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68화
그놈 안 씻더라고 (1)
“…악신, 이라고요?”
미카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더니 이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퍼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만….”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설마 고대 마물과 함께 산탄젤로를 기습할 줄은 생각지 못했네요.”
“저도 우리엘에게 소식을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엘이 강우 씨 쪽으로 간 모양이더군요. 우리엘은 좀 어떻습니까?”
“다행히 위급상황은 넘겼습니다.”
미카엘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다행이군요.”
미카엘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루시퍼는 강우 씨 혼자서 상대하신 겁니까?”
“예.”
“…놀랍군요. 아무리 가이아 님의 권속이라 해도 루시퍼는 신격을 얻어 악신의 칭호를 획득한 존재인데.”
뭔가 의심스럽다는 듯, 가늘게 눈을 뜨며 강우를 살폈다.
신격을 지니지 못한 존재가 신격을 지닌 존재를 상대로 얼마나 불합리한 싸움을 하게 되는지 미카엘도 잘 알고 있는 모양.
강우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사실… 그걸 혼자 상대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거의 농락을 당했거든요.”
“…그렇다면 루시퍼가 강우 씨를 의도적으로 살려줬다, 그 말씀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저도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
미카엘은 굳게 입을 다문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강우 씨, 혹시 루시퍼가 뭔가 지니고 있지 않았습니까? 좀 수상쩍어 보이는 물건이라든가….”
“…….”
침착한 표정으로 물어보는 미카엘의 질문에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수상쩍은 물건이라.
고통의 성좌의 살점 하나하나 남김없이 씹어먹었지만 미카엘이 말하는 수상쩍은 물건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실제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수상쩍어 보이는 물건은커녕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미카엘이 가장 먼저 저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이 자식 이거.’
뭔가 좀 알고 있는 모양이구만.
“…뭔갈 숨기려는 듯한 모습을 몇 번 보여주기는 했습니다.”
“혹시 뭘 숨기려고 했는지 보셨습니까? 어떻게 생긴 지 기억나십니까?”
새끼 바로 무는군.
“으음. 저도 제대로 본 건 아니어서요.”
“…혹시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는 어둠은 아니었습니까?”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는 어둠이라.
당연히 보지 못했다.
“아, 그러고 보니 루시퍼와의 전투 중에 비슷한 것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
“혹시 그게 무엇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죄송합니다. 외부인에게는 알려드릴….”
“조금만 더 정보가 있으면 미카엘 씨가 말한 그 물건이 맞는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여쭤보는 겁니다. 하지만 외부인에게 알려주실 수 없는 정보라면… 어쩔 수 없죠.”
강우는 정말로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
미카엘의 눈빛에 갈등이 서린다.
강우에게 그 물건의 정체를 말하는 것과 루시퍼가 지닌 물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둘 중 무엇이 중요한지 머릿속으로 저울질한다.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어둠의 정체는 마신 바울리가 남긴 유산입니다. 산탄젤로에서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던 물건이었죠.”
“바울리의 유산이라고요?”
강우의 눈이 커졌다.
설마, 여기서 이런 고급 정보를 얻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바울리의 유산이라면 설마.’
주먹을 쥐었다. 기대감이 차올랐다.
만약 바울리의 유산이라는 것이 시체의 위치를 찾는 단서가 된다면 지금 하고 있는 눈물의 똥꼬쇼를 할 필요가 없었다.
“마신의 시체와 연관이 있는 겁니까?”
“아뇨, 그건 아닙니다.”
쯧. 아니었나.
강우의 표정에 살짝 실망감이 감돌았다.
‘뭐.’
모든 게 잘 풀릴 수는 없지.
용신의 보은이란 보물과 미카엘을 잘 속여 넘긴 것만으로도 수확은 충분했다.
“그럼 그 마신의 유산이라는 것을 도난당했다는 겁니까?”
미카엘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래서 루시퍼가 숨기고 있던 것이 그 유산이 맞는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번에 산탄젤로를 습격한 존재는… 한둘이 아니었으니까요.”
즉, 도둑이 너무 많이 들어 가장 중요한 귀중품을 누가 가져갔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가.
‘확실히.’
미카엘의 입장에서는 곤란한 상황이 맞다.
갑자기 고대 마물을 비롯한 붉은 악마 가면의 존재들이 들이닥쳤고 보관하고 있던 마신의 유산을 악마의 손에 탈취했으며, 심지어 그 범인이 누구인지, 지금 누가 유산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망했잖아.’
망해도 이미 너무 망했다.
산탄젤로가 습격당해 유산이 탈취당한 순간, 이미 천사들은 악의 성좌들에게 패배한 것과 마찬가지다.
‘일단 그 마신의 유산이라는 건 악의 성좌 중 하나가 가지고 있을 테고.’
고통의 성좌가 지니지 않고 있었으니 다른 성좌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누가 지니고 있는지, 아니 애초에 남은 악의 성좌가 몇인지도 알 수 없지만.
‘지금 선택할 건 하나로군.’
누가 마신의 유산을 지니고 있다고 해야 하는가.
사실 여기서는 솔직하게 악의 성좌가 범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만약 루시퍼에게 죄를 뒤집어씌운다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용의자 선상에서 벗어나게 되어버린다.
오히려 적을 도와주는 꼴.
그들의 입장에서는 천사들이 엉뚱한 존재를 범인이라 가정하고 움직일 것이니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푸는 격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루시퍼를 범인으로 몰아간다면, 그에게 집중된 종말의 위기가 한층 더 고조될 수 있다.
하이엘프를 물질계에 현신시킨다는 계획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
‘서로 장단점이 있어.’
하나는 적의 계획을 방해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계획을 앞당길 수 있다.
“…….”
강우는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미카엘을 살폈다.
절박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마신의 유산이라는 것이 꽤나 중요한 물건인 모양.
‘자.’
어떻게 할까.
강우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천천히 눈을 떴다.
“아무래도 유산을 탈취한 범인은 루시퍼가 맞는 것 같군요. 차분히 생각해 보니 아까 말씀하신 꿈틀거리는 어둠을 루시퍼가 지니고 있는 걸 확실히 봤습니다.”
“…역시, 악신이 유산을 탈취한 거였군요.”
미카엘은 거칠게 주먹을 쥐었다.
분노가 그의 눈빛에 서린다.
‘오래전부터 루시퍼와 싸우고 있었다고 했나.’
나쁘지 않은 사실이다.
미카엘이 루시퍼를 증오하면 증오할수록, 계획은 더 빨라지니까.
“예. 이번 일은… 모두 악신이 배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확신에 찬 강우의 말에, 미카엘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주먹을 쥐었다.
손등에는 굵은 힘줄이 돋았고, 어깨는 가늘게 떨렸다.
미카엘은 깊은 한숨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사실 처음 산탄젤로가 습격당했을 때는 다른 자를 범인이라 생각했습니다.”
“다른 자요?”
“예.”
황금을 녹여 만든 것 같은 금발을 쓸어넘기며, 미카엘은 말을 이었다.
“악의 성좌, 그들이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미카엘의 추측이 맞다.
고대 마물을 소환하고, 산탄젤로를 습격하여 천사를 학살하고, 그 안에 보관되어 있는 마신의 유산을 탈취한 자는.
과거 마신을 따르던 친위대가 맞았다.
하지만.
“제가 본 것은 악신 하나뿐이었습니다.”
단호히 말했다.
악의 성좌를 향해 뻗어가는 의심을 잘라내어, 루시퍼에게 집중시켰다.
미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오만의 대공이 다른 존재와 손을 잡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마녀와 맺어진 후 한동안 조용히 있다고 생각했더니… 결국은 이렇게 됐군요.”
미카엘은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강우의 눈이 반짝였다.
“혹시 루시퍼와 맺어졌다는 마녀가 누군지 알고 계십니까?”
“글쎄요. 루시퍼가 워낙 철저하게 숨겨서 어떤 인간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제가 아는 건 그 마녀를 만나고 루시퍼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던 거지요.”
“태도가 달라졌다고요?”
“예. 그 전까지는 마왕에게 복수하겠다느니, 이 대륙에 구천의 지옥을 현신시키겠다느니 소란을 많이 일으켰지만, 마녀를 만나고 난 이후에는 확실히 조용해졌습니다.”
“흐음.”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줌마를 만나면서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나?’
모를 일이다.
애초에 악마가, 그것도 보통 악마가 아닌 대공이 왜 인간 여자와 결혼을 했는지부터 알 수 없었으니까.
‘뭐 어쨌든.’
지금 신경 쓸 일은 아니다.
-파지지지직!!
그때, 스파크가 튀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우리엘이 날아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상처가 회복되자마자 바로 이쪽으로 온 모양.
“강우!!”
다급히 땅에 착지한 우리엘이 강우를 향해 달려왔다.
그는 시뻘겋게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내가 도망치라고 했잖아!! 왜 이쪽으로 온 거야!”
그는 옆에 미카엘이 있던 말던 신경 쓰지 않고 버럭 소리쳤다.
“크흠.”
미카엘이 가볍게 헛기침했다.
“헛. 미, 미카엘 님?”
우리엘은 허둥지둥거리며 살짝 어깨를 움츠렸다.
평소 보여주던 당돌한 태도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모습.
미카엘은 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상처는 좀 괜찮으신가요, 우리엘?”
“아, 예. 강우가 치료해 줬습니다.”
우리엘은 강우에게 스리슬쩍 다가가 조심스럽게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강우는 우리엘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아악! 왜, 왜 때려?!”
“가만히 쉬고 있지 왜 또 여기까지 날아온 거야?”
“그, 그야 걱정 돼….”
돼서, 라고 말하려던 우리엘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강우가 자신에게 존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편하게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
“크, 크흠!”
우리엘은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붉혔다.
‘아니.’
왜 붉히는데.
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놨던 건데 생각보다 반응이 격하다.
다시 높일까 생각하던 강우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말을 놓고 말고가 뭐가 중요한가.
“그보다 그 붉은 가면 놈은 어떻게 됐어? 혹시 얼굴을 본 거야?”
우리엘은 주변에 가득한 전투의 흔적을 돌아보며 물었다.
미카엘이 대신 답했다.
“붉은 가면을 쓴 습격자의 정체는 루시퍼였다고 하시더군요. 물론… 유산을 훔쳐간 범인도 그입니다.”
“…뭐, 뭐라고요?”
우리엘은 두 눈을 크게 뜨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입술을 깨문 채 어깨를 떤다.
푸른색 머리칼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푸른 스파크를 튀었다.
‘초사이언이냐.’
화나면 머리카락부터 솟구치게.
강우는 픽 웃으며 몸을 돌렸다.
“우선 산탄젤로로 가보죠. 습격 현장을 보면 다른 단서를 더 얻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예.”
미카엘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산탄젤로는 인간의 출입을 불허(不許)하는 금지였지만, 지금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것으로.’
루시퍼는 파티장을 습격해 귀족들을 학살하고, 힘없고 나약한 수많은 제국 백성들을 죽이려 했으며, 악의 성좌와 손을 잡고, 산탄젤로를 습격해 마신의 유산을 뺏어간.
실로 ‘종말’에 어울리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강우.”
우리엘이 물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시퍼가… 원래 그렇게 썩은 냄새가 났었어? 예전에 봤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
아 맞다.
강우의 눈에 당혹감이 서렸다.
사실 이번에 우리엘이 만난 것은 고통의 성좌였으니 정보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발.’
어쩌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강우는 냄새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제길.’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루시퍼가 왜 그렇게 냄새가 심한지 설명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입 밖으로 나온 설명이라고는.
“그놈….”
꿀꺽, 침을 삼킨다.
“안 씻는 것 같더라고.”
“…….”
침묵이 내려앉았다.
우리엘은 역겹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이로써.
루시퍼는 파티장을 습격해 귀족들을 학살하고, 힘없고 나약한 수많은 제국 백성들을 죽이려 했으며, 악의 성좌와 손을 잡고, 산탄젤로를 습격해 마신의 유산을 뺏어간.
그리고 몸을 씻지 않아 악취가 몹시 심한.
실로 ‘종말’에 어울리는 존재가 되었다.
‘루시퍼….’
쫌 씻고 살아라,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