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75)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76화
아니 내가 했다고 (1)
“잠깐 이쪽으로 와주세요.”
“무슨 일입니까?”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레이라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참담한 표정으로 벽에 묶여 있는 생존자들을 풀어주고 있던 김시훈도 레이라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벽에 그려진 검은 문양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뭐야 이 이건?’
벽에는 커다란 육망성이 그려져 있었다.
거친 붓질로 그린 듯한 육망성에서는 농밀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니.’
단순한 마기만이 아니다.
신격을 지닌 존재가 그려낸 듯, 희미한 신성까지 느껴졌다.
“마신의 상징이에요.”
레이라의 설명이 이어졌다.
“신화 시절… 세상을 종말 직전까지 몰고 갔던 마신 바울리와 악의 성좌들. 그들을 상징하는 문양이 바로 이 육망성이었어요.”
“그런 것 치고는 좀 흔하지 않습니까?”
에르노어 대륙이라면 몰라도 지구에서 육망성은 지나치게 흔하다.
레이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지구에는 신화가 거의 전승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에르노어에서는 아직도 이 육망성은 악마와 공포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아, 저도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들은 적 있습니다. 이 문양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즉결 처형이 가능할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김시훈이 레이라의 말을 거들었다.
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신의 상징하는 문양.’
이 문양이 벽에 그러진 이상, 이 저택을 누가 만들었는지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악의 성좌들이 움직인 건가.’
강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악의 성좌들이 움직인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산탄젤로를 습격해 마신의 유산을 탈취했으니까.
그 시점에서 이미 그들은 웅크려 숨어 있는 것을 멈추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악의 성좌들의 행동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강우는 그들에게 도움을 줬다.
산탄젤로를 습격한 범인으로 다른 존재를 지목하여 용의 선상에서 그들을 벗어나게 만들었다.
‘걔들 입장에서는 완전 땡잡은 거나 다른 없었을 텐데.’
값비싼 보물을 훔치기 위해 강도질을 했는데 정작 경찰들이 엉뚱한 놈을 용의자로 지목해서 수사하고 있다면 당연히 손뼉을 치며 좋아할 상황이 아닌가?
‘근데 이걸 이렇게 자기들이 한 짓이라고 광고까지 한다고?’
너무 노골적인 행동이라 오히려 다른 누가 악의 성좌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이 일을 벌인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아니, 근데 그럴 이유가 없잖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악의 성좌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이득을 볼만한 세력이 없다.
“악의 성좌들이… 한 짓일까요?”
레이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김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신은 오래 전에 죽었으니 그들이 범인이 맞을 것 같습니다. 왜 이런 짓을 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레이라와 김시훈도 당연히 악의 성좌가 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즉, 저 육망성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본다면 대부분 그들의 짓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의미.
그리고 에르노어 대륙에서 육망성을 모르는 존재는 극히 드물다.
‘…잠깐.’
강우의 눈이 빛났다.
머릿속에 벼락이 스치듯,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애초에 존재를 숨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알리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왜?’
왜 굳이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악의 성좌들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하나하나가 신격을 지닌 존재고, 시스템의 제약에 묶여 있지도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은 압도적인 소수였다.
굳이 의미도 없이 정체를 대놓고 드러낼 이유가 없다.
“강우 씨. 여기….”
그때, 다시금 레이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망령에게 납치되었던 생존자들의 머리를 만지며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었다.
“다들 뭔가 이상해요.”
“이상하다뇨?”
“마치 텅 빈 것처럼… 정신 회복 계열 마법을 사용해도 듣지 않아요. 단순하게 정신이 붕괴된 게 아닌 것 같아요.”
“…….”
텅 비었다.
레이라의 그 표현이 머릿속에 걸렸다.
강우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이곳을 배회하던 망령들을 떠올렸다.
살아남을 리 없는 사람들이, 살아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아.”
짧은 탄성이 흘렀다.
조각조각 흩어졌던 퍼즐이 맞춰지는 감각.
‘이곳에 있던 망령들은 전투에 특화된 게 아니었어.’
물론 전투에 특화되지 않았다고 해도 어지간한 강자가 아닌 이상 영체에 타격조차 주지 못했겠지만, 어쨌든 성좌의 권속이라고 하기에 지나치게 ‘약한’ 것이 사실이었다.
‘놈들의 목적 자체가 전투가 아니었다면.’
전투가 아닌, 다른 것이 목적이라면.
방 안의 모습이 보인다.
50평은 넘어 보이는 거대한 방 안.
벽에는 사람을 줄지어 묶기 좋도록 일정한 간격을 두고 쇠사슬이 설치되어 있었다.
처음 이 방 안에 들어왔을 때부터 하고 있던 생각.
마치 이곳은.
‘공장, 같아.’
사람들을 납치해,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장.
그들이 무엇을 원했는지는 레이라의 말로 인해 확실해졌다.
“…레이라 씨.”
“아, 예. 강우 씨.”
“혹시 공포나 슬픔, 절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서 힘을 얻을 수 있는 마법에 대해 알고 계신 게 있습니까?”
“…음.”
레이라는 턱을 잡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천천히 입을 연다.
“예. 들은 적 있어요. 예전에… 마신 바울리가 활동하던 시절에 삼원(三元)의 세계에서 부(否)의 감정을 흡수해서 대규모 마법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해요.”
“무슨 마법이었죠?”
“그것까진 잘 모르겠어요.”
레이라는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강우는 가볍게 혀를 찼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야 좀 알겠군.’
강우는 눈을 반짝였다.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던 퍼즐이 완성된 듯한 기분.
악의 성좌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정체를 밝히는 게 목적이었구나.
공포의 감정을 무한정 뽑아낼 수 있는 공장을 늘려가면서.
“…하.”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강우는 한 손을 들어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를 가렸다.
‘그 말은.’
놈들이 자신의 정체를 알리기 위해 이 난리를 치고 있다는 의미는.
‘애초에 땡을 잡은 게 아니었다는 거구만?’
입가가 올라간다.
낄낄낄 웃음을 터트리고 싶었다.
안 그래도 루시퍼를 산탄젤로 습격 사건의 배후로 지목하는 것 때문에 악의 성좌들이 가만히 앉아서 꿀 빨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었다.
‘나 때문에 다른 놈 잘되는 꼴은 또 내가 못 보지.’
다 같이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행동으로 영문 모를 놈이 횡재를 하는 꼴은 절대 볼 수 없다.
‘왜냐고?’
배 아프잖아?
기분 더럽잖아?
만약에 어쩌다가 다른 사람의 복권을 대신 사줬다고 하자고. 근데 그 사람이 당첨됐네?
근데 그 사람이 나한테 와서 ‘덕분에 잘 됐어요, 고마워요’ 이딴 말이라도 해봐.
대가리부터 깨고 싶어질걸?
그러니까.
‘내 성격이 더러운 게 아니란 말이지.’
원래 사람 본성이 그런데 어쩌겠어.
“형님?”
“아. 아무것도 아냐.”
손을 휘휘 저으며 몸을 돌렸다.
대충 상황은 알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악의 성좌들의 공포, 슬픔, 절망 등 부정적인 감정을 모으려고 한다.
‘단순히 모으는 것도 아니지.’
이미 대륙은 파리 군주 루시퍼에 대한 공포에 집어 삼켜져 있다.
만약 부정적인 감정을 흡수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그냥 아무 곳에서나 공포를 흡수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귀찮은 장치까지 만들면서, 정체를 알리려고 했지.’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였다.
‘루시퍼에 대한 공포는, 흡수할 수 없는 거야.’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굳이 정체를 드러낼 이유가 없다.
“햐, 이거.”
상황이 재밌게 됐네.
강우는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놈들의 목적을 알았다. 방법을 알았다.
그렇다면.
‘이용해 줘야지.’
안 그래도 파리 군주 루시퍼가 재림한 이후 적당한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강우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벽에 그려진 육망성에 손을 올렸다.
‘어디 마음껏 날뛰어보라고.’
화르륵.
벽에 그려진 육망성이 불타 사라졌다.
‘그래봤자 바뀌는 건 없을 테니까.’
신격을 지닌 신이라고 해봤자.
진실을 비틀어 왜곡하는 것만큼은, 그를 따라올 수 있을 리가 없다.
“혀, 형님? 왜 문양을 태우신 겁니까?”
육망성을 불태운 강우를 보며 김시훈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강우는 픽 웃으며 몸을 돌렸다.
굳이 상황을 설명해 줄 필요는 없다.
“이런 저택이 하나둘이 아닐 거야.”
굳이 저택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이 정체를 드러내기로 한 이상,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공포를 확산시키기 위해 손을 쓸 것이다.
“모두 찾아.”
찾아서.
“불태워 버려.”
강우는 짙게 웃었다.
* * *
“잘돼 가고 있나?”
감정이 도려내진 듯, 무기질적인 목소리.
얼굴을 가로 짓는 기다란 검상을 지닌 무뚝뚝한 사내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의 물음에 반투명한 형체를 가진 존재가 허리를 숙였다.
“예, 물론입니다.”
자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그런 그의 대답에 길게 누워 앉아 있는 프로세르핀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런 것 치고는 부(否)의 감정이 영 모이는 것 같지 않은데?”
“읏….”
반투명한 형체의 존재, 공포의 성좌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의 말대로 부의 감정이 모여드는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느렸다.
“이러지 말고 그냥 가서 닥치는 대로 죽이자니까? 뭐 하러 이렇게 귀찮은 방법을 쓰는 거야?”
“흥. 아무것도 모르면 그냥 조용히 있으시죠.”
공포의 성좌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한 번 새겨진 공포의 대상을 바꾸는 게 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대륙 전체가 루시퍼에 대한 공포에 잠식되어 있다.
프로세르핀의 말대로 닥치는 대로 죽이며 날뛰어 봤자, 루시퍼의 짓이라는 얘기가 나돌 것이다.
그래서는 의미가 없다.
공포의 방향은 ‘육망성’을 향해야 한다.
“괜히 보채지 말고 기다려보십시오. 이제 곧 신들에게서 반응이 올 겁니다.”
대륙의 영웅이라고 불리는 김시훈이라는 인간이 대륙 곳곳 돌아다니며 저택을 파괴하고 있다.
그의 정체가 가이아의 권속이라는 것은 이미 파악이 끝난 상황.
그가 신의 사도인 이상, ‘육망성’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신들에게 그 사실이 전해진다면.’
지금처럼 루시퍼만을 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육망성은, 한때 그 신들을 절멸 직전까지 몰고 간 존재를 상징하는 징표였으니까.
“…반응이 왔어.”
멍한 눈빛의 소년이 입을 열었다.
공포의 성좌가 활짝 웃으며 몸을 돌렸다.
“흐흐흐. 예상한 대로군요.”
그는 으스대듯 프로세르핀을 흘겨보았다.
“…흥.”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자, 그러면 한 번 반응을 볼까요.”
공포의 성좌는 소년의 어깨에 손을 뻗었다.
그의 신성(神聖)을 사용해 ‘섭리’에 간섭한다.
큰 간섭은 아니었다.
삼원의 세계 중 하나인 지구에서 나타난 섭리의 축복을 받은 존재들이 받은 축복을, 아주 살짝 이용할 뿐.
-띠링.
[신계의 신들이 몹시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그렇지.”
공포의 성좌는 눈앞에 떠오른 푸른 창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신계의 신들이 종말(終末)의 공포를 느낍니다.]“흐흐, 공포에 집어 삼켜지거라.”
[신계의 신들이 악신 루시퍼의 만행에 분노를 터트립니다!]“그래, 분노를 터….”
어?
“루시퍼?”
왜 또 그 새끼 이름이 나오는 거야.
“자, 잠깐!”
공포의 성좌는 손에 잡힐 리 없는 푸른 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가 한 일이다!”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신계의 신들이 악신 루시퍼의 만행에 분노를 터트립니다!]“루시퍼가 한 일이 아니라고!!”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친다.
[신계의 신들이 신도에게 루시퍼의 만행을 알립니다!]“아니.”
[신계의 신들이 루시퍼를 파리군주라고 모욕합니다!]“내가 한 거라고!!!”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소리 높여 외쳤다.
물론, 신계에 있는 신들에게 그의 목소리가 들릴 일은 없었다.
[신계의 신들이 루시퍼를 한시라도 빨리 처치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읍니다!] [신계의 신들이 대책을 강구합니다.] [신계의 신들이 신성을 모읍니다. 세계수의 가지를 사용합니다.] [엘더 하이엘프, 엘룬이 현신(現身)의 의지를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