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76)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77화
만찬의 시간이다 (1)
“아이리스가 아프다고?”
아이리스의 시녀 하나가 달려와 다급히 말한 소식에 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시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하아. 예. 어제부터 조금 어지럽다고 하시더니 아침에 가보니 엄청난 열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끝을 흐렸다.
강우는 시녀를 뒤로하고 아이리스의 방으로 향했다.
쾅.
거칠게 문을 여니 침대에 누워 땀을 흘리고 있는 아이리스가 보였다.
“하아. 하아. 강우, 님?”
아이리스가 흐릿한 시선으로 강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피부에는 마치 나무뿌리를 연상시키는 듯 굵은 혈관이 도드라져 있었다.
아이리스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가만히 있어.”
강우는 몸을 일으키려는 그녀의 몸을 지그시 누르며 손을 올렸다.
통찰의 권능을 사용하여 그녀의 몸을 살폈다.
‘뭐지?’
통찰의 권능을 사용했음에도 특별한 병색을 찾을 수 없었다.
강우는 엄지를 물어뜯었다.
“마셔.”
“쿨럭! 쿨럭! 강우… 님.”
당황해하는 아이리스의 입안에 억지로 피를 흘려 넣었다.
재생의 권능을 사용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강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병에 걸린 게 아니야.’
이로써 확실해졌다.
강우는 초조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더니, 이내 다른 사람들을 불렀다.
그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었다. 도움이 필요했다.
“아이리스 씨가 아프다고요?”
연락을 들은 한설아가 다가왔다.
한설아는 나무가 뿌리를 내린 것처럼 아이리스의 몸에 혈관이 도드라진 것을 보고는 표정을 굳혔다.
손을 들어 아이리스의 몸을 쓰다듬었다.
눈을 감는다.
-우우웅.
새하얀 빛이 흘러나와 아이리스의 몸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이건….”
한설아는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회복 마법이랑 치유 마법이 전혀 들지 않아요.”
이제까지 이랬던 적은 없었는지 눈빛에 혼란이 서렸다.
“…….”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재생의 권능도, 설아의 신성 마법도 소용없다는 건.’
아이리스의 몸이 병이나 상처로 인해 아픈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강우는 통신 구슬을 들어 레이라를 불렀다.
연락을 받은 레이라는 바로 아이리스의 방으로 들어와 그녀를 살폈다.
레이라는 진중한 눈빛으로 그녀의 몸을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화신(化神)이 되려는 징조예요.”
“화신?”
“예. 제가 처음 가이아님을 받아들였을 때도 이랬거든요.”
화신이라.
아이리스가 누구의 화신이 되려고 하는지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강우의 입가가 올라갔다.
“그 말은….”
“예.”
레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엘프가… 아이리스 씨의 몸을 빌려 현신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렇지.’
강우는 예상했던 대답에 불끈 주먹을 쥐었다.
‘드디어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는구만.’
에르노어 대륙에 종말의 위기를 불러일으켜, 하이엘프를 현신시키는 것.
누가 들으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만한 그 계획이 실현 직전까지 왔다.
“그럼 언제쯤 하이엘프가 현신하는 겁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일단 아이리스 씨가 화신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얼마 정도 걸릴지 정확히 알 수 없어서요.”
“레이라 씨 때는 얼마나 걸리셨죠?”
“저는 한 달 정도 걸렸어요.”
한 달이라.
“하지만 아이리스 씨도 그 정도 걸릴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신의 화신이 되는 경우가 흔치 않으니 정확한 시간을 예측하긴 힘들었다.
강우는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아이리스의 몸에는 이상이 없는 거죠?”
“예. 신성을 받아들이는 중이라 이런 것뿐이에요.”
강우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강우… 님?”
아이리스가 끊어질 듯 희미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강우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쉬고 있어.”
“…….”
그 말에 마음을 놓았는지, 아이리스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강우는 레이라와 한설아와 함께 아이리스의 방 밖으로 나왔다.
“계획은… 성공했네요.”
레이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김시훈을 영웅으로 만들어 하이엘프를 현신시키겠다는 계획.
터무니없어 보이던 그 계획이 실현 직전까지 왔다.
쌍수를 들고 환호성을 질러도 좋을 상황이지만 정작 아이리스가 저런 상황이니 그러기도 민망했다.
화신(化神)이 되는 과정이 굉장히 괴롭다는 것은 그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예.”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큰 감흥은 없었다.
어차피.
‘성공할 줄 알았으니까.’
레이라가 알고 있는 것보다, 자신이 한 일은 많았다.
악신 루시퍼의 탈을 써서 제국을 습격했고, 산탄젤로를 습격한 범인으로 그를 몰고 갔으며, 정보를 조작해 공포를 확산시켰다.
이 정도까지 했는데도 하이엘프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자, 그럼.’
이제는 뒤처리가 남았다.
뒤로 밀어둔 일을 처리해야 했다.
강우는 웃었다.
사실 이 ‘뒤처리’는 그가 하이엘프의 현신보다 간절히 기다려온 일이다.
갈망하고, 고대하던 일이다.
두근, 두근.
기대감에 부푼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짜릿한 흥분이 몸을 뜨겁게 달궜다.
“하아.”
열기를 띤 숨을 토해냈다.
억지로 참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힘들다.
가슴을 움켜쥐었다. 숨이 거칠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기억을 더듬었다.
‘산탄젤로.’
천사의 사원의 지하, 아득한 성력으로 보호되고 있는 장소가 누군가의 힘으로 박살 난 것을 봤을 때.
아니, 어쩌면 그보다 전 구천지옥의 붉은 모래가 발견된 순간부터일 수도 있다.
타오르는 듯한 충동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강우는 조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잠깐 갈 곳이 있어서 먼저 갈게.”
“아, 예. 알겠어요. 이번 일은 제가 파티원들에게 전달해 둘게요.”
한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강우는 몸을 돌렸다.
흥분에 찬 발걸음을 옮겼다.
황성 밖으로 걸어 나가자, 넓게 펼쳐진 정원이 보였다.
정원을 지나친다.
“강우 님.”
누군가 그를 불렀다.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갈색 머리칼을 가진 장신의 청년이 서 있었다.
“발록.”
인간의 탈을 썼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자신과 천년을 함께 싸워온 동료이자 충실한 부하였다.
“…….”
침묵이 내려앉았다.
강우의 모습을 바라보던 발록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참기 힘드신 겁니까.”
역시 들켰나.
강우는 낄낄 웃었다.
‘평소엔 눈치라고는 찾을 수가 없는 놈이 꼭 이럴 때만 빠르더라.’
천 년 동안 같이 있었던 짬밥이 어디 안 간다는 건가.
기막힌 새끼.
리리스한테도 안 들켰는데.
“너무 오래 참았거든.”
강우는 태연히 답했다.
목소리는 태연했지만, 속은 미칠 듯한 열기로 터질 것만 같았다.
“…….”
발록이 천천히 감았던 눈을 뜬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왕의 모습.
인간의 꺼풀을 벗어던지고 악마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모습.
‘적어도… 지구에서는 처음인가.’
그만큼 그가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다는 의미이리라.
“전에 조금 해결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아니,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심해졌어. 막 타오를 것 같다가 허무하게 꺼져 버렸거든.”
고통의 성좌를 떠올렸다. 허무하고, 허망하게 끝나 버렸던 전투.
달아오른 몸이 차갑게 식어버렸던 기억.
엔진에 시동만 넣은 것과도 같다.
억누르고 있던 것이, 필사적으로 참고 있던 것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스스로 알고 있다.
더 이상, ‘본능’을 억누를 수 없다는 것을.
‘오래 참긴 했지.’
예전과 비교하면 기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오랫동안 참았다.
‘언제였을까.’
언제부터, 전력으로 싸우지 못했을까.
기억을 더듬었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적어도.’
마왕으로서의 힘을 되찾고 난 이후에는 없었다.
아니, 그 전부터 전력까지 긁어내면서 싸운 기억은 없다.
천사의 본능이 집착이듯, 악마의 본능은 욕망이다.
수명이 없는 존재이기에 그 정신이 붕괴되지 않도록 끝없는 욕망으로 삶을 지속시킨다.
수많은 욕망의 종류 중에서 강우가 지닌 욕망은 단순했다.
먹는 것.
자신보다 강한 적과 싸워, 죽고 죽이는 생사(生死)의 결투 속에서 승리해 피륙을 씹어 삼키는 것.
이제까지 만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 동안 그를 존재시켜왔고, 유지시켜온 욕망.
“하, 으.”
거칠게 숨을 쉰다.
끔찍한 갈증이 목을 긁어낸다.
하지만 그 욕망은 충족되지 않는다.
충족될 리가 없다.
단순히 많은 악마들을, 마물들을 잡아먹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더 강한.
자신에게 ‘전율’을 줄 만한 먹잇감이 필요하다.
‘이럴 때는 설아가 참 부러워.’
그녀의 욕망은, 집착은 해소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은 다르다.
그에게 전율을 줄 만한 먹잇감은, 이제 와서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렇기에.’
입가가 올라간다.
이번 일의 뒤처리.
그것이 그토록 기다려지는 이유였다.
“오늘 오는 겁니까?”
발록이 물었다.
“글쎄. 하지만 적어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
악의 성좌들의 계획을 철저하게 이용하고, 박살냈다.
온 대륙은 악의 성좌가 아닌 루시퍼에 대한 공포로 잠겼다.
‘머저리가 아닌 이상.’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강우는 기대감 어린 시선으로 고개를 돌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발록.”
“예, 마왕님.”
발록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슬쩍 들어 강우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광기에 물든 악마가, 마왕이 있었다.
악마를 상징하는 산양의 뿔도, 박쥐의 날개도, 검은 꼬리도 없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서 있는 존재가 틀림없는 악마의 왕이라는 것을.
“방해하지 마.”
“…….”
발록이 굳게 입을 다문다.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왕의 뜻대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발록을 지나쳤다.
전에 상대했던 고통의 성좌는 무슨 이유에선지 신격이 봉인된 상태였다.
극도로 배고픈 상태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보다, 애매하게 고기 한 점 먹는 것이 더욱 괴롭듯.
미칠 듯한 갈증과 허기가 전신을 지배했다.
“하아.”
입술을 핥았다.
침을 삼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그들의 흔적도,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알 수 있다.
그들은, 이곳으로 올 것이다.
자신들의 계획을 망쳐 놓은 하찮은 필멸자들을 벌하기 위해.
“자.”
만찬의 시간이다.
강우는 웃었다.
* * *
어둠이 내려앉은 황성 정원.
반투명한 형체를 지닌 수백, 수천의 망령(妄靈)들이 나타났다.
[죽이자, 죽이자, 죽이자.] [인간들을 잡아서, 조금씩, 조금씩. 살을 발라내자.] [비명 속에서 같이 춤을 추자.]수천의 망령들은 섬뜩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
가장 스산한 사기(死氣)를 흩뿌리는 영체가 정원에 내려앉았다.
[오강우와 김시훈이라고 했던가.]성난 목소리로 자신의 계획을 망친 가이아의 권속들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공포의 성좌는 원혼(冤魂)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낫을 어깨에 걸쳤다.
가이아의 권속은 두 명이라고 하지만, 누가 계획을 망친 주범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김시훈.]소드엠페러.
검의 황제라고 칭송받는 영웅.
[감히….]스르릉. 원혼으로 이루어진 망령의 낫이 짙은 사기를 뿜어냈다.
공포의 성좌는 눈앞에 보이는 인간들의 황성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에이… 뭐야.”
고개를 돌리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청년이 보였다.
청년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차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고작 한 마리야?”
잔뜩 기대하고 간 뷔페에 먹을 게 별로 없다는 듯,
실망 가득한 목소리로 청년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