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84)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85화
광휘(光輝)의 신 (1)
손가락 끝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관절을 움직였다.
매끄럽게 움직이는 관절.
더 이상 몸을 짓누르는 피로감도, 무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흣차.”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운동하고 난 후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근 것처럼 몸이 가볍다.
‘마기 제어력이 또 오른 것 같은데.’
개문을 사용하면서 목숨이 경각에 달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뒤에 한설아가 목숨이 경각(?)에 달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이미 ‘경이’라는 표현을 넘어 ‘괴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아득한 경지에 오른 마기 제어력이 한층 더 상승해 있었다.
‘목숨값을 하긴 하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했던가.
건 것이 많을수록, 얻은 것이 많은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목숨을 수없이 배팅했기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운이 좋았던 건가.’
단순히 ‘운이 좋다’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만큼 셀 수 없을 정도로 목숨을 건 것은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마기 제어력은 스텟으로 따지면 어느 정도 되려나.”
문득, 궁금해졌다.
현재 그의 마기 스텟은 167.
마기 스텟이 마기 제어력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기는 하지만 정확한 수치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마기 스텟은 제어력보다는 그가 ‘부담 없이’ 다룰 수 있는 마기의 총량을 수치화했다고 하는 것이 적절했다.
후유증이 있다고는 하나 개문처럼 현재 다룰 수 있는 마기의 총량을 아득히 넘어선 힘도 어느 정도는 제어할 수 있으니 그의 마기 제어력은 적어도 167이라는 마기 스탯보다는 높을 것이다.
-띠링.
“응?”
그때 익숙한 방울소리가 들렸다.
눈앞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플레이어 오강우의 마기 제어력을 스텟으로 수치화합니다.] [오류, 오류.] [𝌦𝌤의 수치화 작𝌥이 실패𝌣습니다.]“뭐야 이건 또.”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짓눌려 깨진듯한 문자가 메시지창을 가리고 있었다.
상태창에 쓰여 있는 것과 같은 문자였다.
‘시스템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건가?’
얼추 맞는 추측 같았다.
강우는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지 알 수 없었다.
뭔가 RPG로 치면 만렙을 넘어 버그 캐릭이라도 된 기분이라 좋기도 하지만,
그만큼 시스템이 주는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였으니까.
‘설마 10차 각성 특성 못 받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진짜 그랬다가는 시스템을 만든 놈의 얼굴을 저 찌그러진 문자처럼 만들어 주리라.
-달칵.
문이 열리며 리리스가 들어왔다.
그녀는 침대 밖으로 나와 서 있는 강우의 모습을 보며 흠칫 몸을 떨었다.
다급히 달려와 그의 팔을 잡았다.
“벌써 일어나시면 안 돼요. 조금 더 쉬셔야죠.”
“아니, 이제는 괜찮아.”
강우는 고개를 저으며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리리스는 걱정 어린 표정으로 그를 팔을 만졌다.
“정말로 괜찮으신 거예요? 또 무리하시는 거 아니죠?”
“괜찮대도.”
피식 웃으며 답했다.
리리스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정말… 마왕님 때문에 못 살겠어요. 이제 마왕님 목숨은 마왕님만의 것이 아니라고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마왕님이 죽으면 저도 따라 죽을 거란 의미에요.”
리리스는 담담하게 말했다.
광기 어린 말이었지만, 리리스의 목소리와 눈빛에서는 조금의 광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당연한 일을 한다는 듯 태연했다.
“그건 좀….”
“설아 씨라고 해서 안 그럴 것 같아요?”
“…….”
굳게 입을 다물었다.
리리스라면 몰라도, 한설아는 자신이 죽거나 사라지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죽음을 택할 것이다.
“발록이나 에키드나도 마찬가지일걸요?”
“에이, 그래도 에키드나는 아니겠지.”
“자신하실 수 있어요?”
자신할 수 없다.
강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내가 미안하다.”
어깨에 짊어진 것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다.
자신이 죽는다면, 그 모든 것들이 무너져 사라진다는 것도.
‘하지만.’
강우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이처럼 목숨을 걸어야 할 때가 온다면.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할까.
길게 고민할 것도 없다.
‘또 한 번 목숨을 걸겠지.’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
리리스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내가 누워 있는 동안 별일은 없었어? 아이리스는?”
“아직 화신으로 각성하지 못했어요. 강우 님이 누워 있는 동안은… 우리엘이랑 미카엘이 한 번 찾아온 것 말고는 별다른 일은 없었어요.”
“그래?”
“예. 그리고 우리엘이 강우 님이 깨어나시면 꼭 연락 한번 달라고 했어요.”
“알았어.”
급한 일이 끝나면 한 번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이엘프가 현신할 조짐이 확인되었으니 슬슬 천사들에게도 성좌들에 대한 정보를 풀어서 그들이 어디서 뭘 준비하고 있는지 알아봐야 하기도하고.
“성좌나 루시퍼가 움직인 흔적은?”
“없었어요.”
리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강우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 몰아붙인 건가.’
그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여줘야 꼬리를 잡던가 할 텐데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니 다음 계획을 짜기가 쉽지 않았다.
“아.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긴 해요.”
“이상한 점?”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제국 거리가 조금씩 활기를 찾고 있다고 할까요? 거리에도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고 멈춰 있던 경제도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음.”
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공포로 가득 찼던 에르노어 대륙인들이 다시 활기를 되찾은 것.
딱히 ‘이상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공포라는 감정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도 아니요, 당장 먹고 살기 바쁘다 보면 차차 잊혀지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웠으니까.
‘하지만.’
리리스가 그것을 모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가 이상하다고 말했다면, 정상적이지 않은 속도로 대륙에 넓게 퍼진 공포가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이리라.
“시훈이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강해진 건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긴 해요. 이번에 황실에 나타난 수만의 망령을 시훈 씨가 처리한 것도 입소문을 타고 바로 퍼졌거든요.”
강우는 턱을 쓰다듬었다.
뭔가 자신이 말하고 나서도 석연치 않다.
‘사실 이제 와서 큰 상관은 없지만.’
이미 하이엘프의 현신 조건은 맞춰졌다.
더 이상 루시퍼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할 필요도, 억지로 정보를 조작해 퍼트릴 이유도 없었다.
마무리만 깔끔하게 끝낸다면 굳이 손을 쓸 필요는 없다.
‘그렇긴 한데.’
똥 싸고 뒤를 안 닦은 것처럼 기분이 찜찜했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리리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 일도 한 번 조사해 봐.”
“예.”
리리스가 깊게 허리를 숙였다.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조금 더 쉬세요. 혹시 후유증이 남았을지 모르잖아요.”
그녀는 몸을 돌려 떠나기 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강우의 팔을 쓰다듬었다.
강우는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물론, 쉬고 있을 생각은 없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하아. 그럼 먼저 가볼게요, 마왕님.”
리리스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달칵.
문이 닫혔다.
방 안에 홀로 남은 강우는 가볍게 몸을 풀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디 보자.’
벌써부터 기대감이 끓어올랐다.
몸 안을 관조하자, 마해에 집어 삼켜져 있는 공포의 성좌가 느껴졌다.
고통의 성좌 때처럼 의식은 남아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망령이라도 된 것처럼, 이지를 상실한 채 바다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이번에는 10차 각성 찍을 수 있겠지.’
10차 각성에 필요한 90레벨까지는 고작 1이 남았다.
아무리 레벨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올리기 어렵다고 해도, 신 하나를 통으로 집어삼키는데 1이 오르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까 깨진 문자 때문에 좀 불안하긴 하지만.’
그거야말로 강우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신화의 시절보다 더욱 아득한 과거, 거인들의 시대에서부터 존재했다는 시스템에 간섭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니까.
“자, 그럼.”
강우는 정신을 집중했다.
마해에 붙잡힌 공포의 성좌의 신격을 천천히 녹여냈다.
“흐, 아.”
짜릿한 전율이 몸을 달렸다.
막대한 힘이 검은 바다에 집어 삼켜지는 것이 느껴졌다.
[공포의 성좌의 신격을 흡수했습니다!] [흡수한 신격이 시스템의 제약을 일부 해제합니다.] [레벨 제한이 89에서 93으로 상승했습니다.] [10차 각성에 도달했습니다. 새로운 특성이 부여됩니다!]‘그렇지.’
강우의 입가가 올라갔다.
다행히 10차 각성 특성이 증발한다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다.
메시지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흡수한 사기(死氣)를 마기로 변환합니다.] [마기 스텟이 5상승합니다.] [마기 스텟이 172에 도달했습니다. 심연의 마기를 조금 더 많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좋구요.”
공포의 성좌가 마기와는 다른 기운을 사용하기에 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마기 스텟도 올랐다.
강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경지가 경지인 탓일까.
마기가 상승했다고 해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부담 없이 다룰 수 있는 마기가 늘어났다는 것은, 부담을 각오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마기의 폭이 그만큼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강우가 고대하던 메인 디쉬는 마기 스텟의 상승이 아니었다.
“어디 그럼 10차 각성 특성은 뭔지 확인….”
기대감에 부푼 표정으로 상태창을 열려고 했을 때였다.
눈앞에 푸른 메시지창이 다시금 떠올랐다.
[10차 각성 특성, ‘신격찬탈(神格簒奪)’을 획득하였습니다.] [특성의 효과에 따라 흡수한 신격의 일부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마신이 되는 길’이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흡수한 신격이 격하(格下)됩니다.]“응?”
강우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흡수한 신격의 일부를 획득할 수 있는 특성이라니.
마신이 되는 길을 완료하지 못했기에 신격이 격하된다고는 하나, 저 특성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신격을 얻는다는 건.’
신성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드디어!”
강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신성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의 전투가 얼마나 불합리하고 불공평한지는 직접 체험하지 않았는가.
물론, 강우의 경우 압도적인 양의 마기로 그 차이를 극복했다고 하지만 어쨌든 끔찍하게 비효율적인 싸움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
강우는 반짝이는 눈으로 메시지창을 바라보았다.
[특성 ‘신격찬탈’의 효과로 인해 중하(中下)격 신격을 획득하였습니다.]‘중하, 라.’
무려 셋이나 되는 성좌를 잡아먹은 것치고는 지나치게 낮은 신격이다.
‘마신이 되는 길’을 완료하지 못한 페널티가 생각 이상으로 큰 모양.
‘뭐, 그래도.’
이제까지 신격도 없이 신을 상대로 무식하게 싸웠던 것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우우우웅!
신격을 획득했다는 말과 함께 이제까지 다뤄보지 않은, 이질적인 힘이 몸을 가득 채웠다.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힘.
‘이거….’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처음 가이아 시스템에 만마전이 봉인당했을 때.
만마전을 봉인하고 있던 정체불명의 힘과 흡사한 힘이었다.
“섭리에 개입할 수 있는 힘이라고 했던가.”
눈을 빛내며 몸안을 떠도는 신성의 힘을 느꼈다.
그 힘을 시험해 볼 새도 없이.
-쾅!
“가, 강우 씨?”
거칠게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은 레이라였다.
다른 파티원들과 같이 있었는지, 레이라의 뒤에는 한설아를 비롯한 김시훈, 차연주 등의 파티원들이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방금 그건….”
레이라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가이아의 화신인 만큼, 신격을 획득했을 때의 기운을 느낀 모양.
강우는 레이라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때, 눈앞에 다시금 푸른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신격을 획득함으로써, 플레이어 오강우에게 가장 적합한 ‘신명(神名)’을 부여합니다.]‘신명?’
고통의 성좌니, 타락의 성좌니 하는 건가.
강우는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이어지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뭐가 나오려나.’
마신은 아직 퀘스트 달성 못 했으니 아닐 것 같고.
포식의 신?
마해의 신?
[플레이어 오강우에게 ‘거짓의 신’의 신명을 부여합니다.]“뭐요 씨발?”
거짓의 신?
‘뭐라는 거야 이 새끼가.’
불쾌하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거짓의 신이라니.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어이가 없네 진짜.
“강우 씨… 혹시, 신격을 얻으신 건가요?”
레이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강우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예, 그렇습니다.”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 메시지를 보니… 광휘(光輝)의 신, 이 되었다고 하네요.”
[플레이어 오강우에게 ‘거짓의 신’의 신명을 부여합니다.]“하하. 광휘의 신이라니… 당황스럽네요.”
[플레이어 오강우에게 ‘거짓의 신’의 신명을 부여합니다!]“아무래도 가이아님이 빛의 수호자로 절 선택해 주신 덕분에 이런 신명을 얻게 된 것 같습니다.”
[플레이어 오강우에게 ‘거짓의 신’의 신명을 부여합니다!!!]강우의 몸에서 눈부신 황금빛이 흘러나왔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찬란히 빛나는 황금빛 기운을 바라보았다.
“빛이라는 게… 이토록 따듯했던 거군요.”
강우는 황금으로 빛나는 몸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